엄마가 말하던 ‘희망의 봄’, 나에게도 올까?
엄마는 매년 봄이 시작될 때면 희망의 봄이라며 다가오는 봄날을 한껏 누리랬다. 하지만, 나의 봄은 매년 눈물 젖은 수땜의 봄이다.
3월 끝 무렵이 되면, 작은 풍선을 닮은 사과 꽃망울이 부풀기 시작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꽃망울이 부풀기 시작하면 꼭 눈이 오거나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 꽃망울이 얼어 죽으면 나의 한 해도 꽁꽁 얼기에, 그 작은 꽃망울들을 보며 올 한 해는 어떨지 두려움과 동시에 이겨내길 기대하는 희망이 공존한다. 본격적으로 농번기가 시작됐다는 신호탄이다.
이 삶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땅이 좋았고, 그 땅에서 열매를 맺어가는 과정들이 모두 좋았다. 진로 고민에 방황하면서도 돌고 돌아 나는 땅을 일구고 열매를 가꾸며 살겠다고 꿈꿨다. 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지금은 농업대학에서 만난, 나의 아빠와 많이 닮아 있고 나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짝꿍과 강원 정선에 터를 잡아 생활 공동체를 꾸렸다.
2016년에 들어왔으니 벌써 8년차가 되었다. 첫 해는 사과와 청양고추 농사를 지었다. 사과는 3년차까지 소득이 없으니 고추에 전념했다. 망했다. 그것도 아주 쫄딱. 농협 외상 값도 벌지 못해 겨우겨우 금리 높은 대출받아 갚았는데… 나름 탄탄히 계획도 세웠고, 각오도 했지만, 첫 해부터 결과는 처참했다. 첫 단추가 단단히 잘못 꿰졌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햇병아리 농부 두 명은 그저 우리가 서툴렀다고만 생각했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하우스 재배가 아니면 더운 날이 길어져 노지에서 고추 농사는 이제 안 된다고 하셨다, 첫 농사에 참 안 되는 것도 골랐다는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 해 가장 많이 들은 노래가 설운도의 다 함께 차차차였다. 미련 버리고, 좀 굶어도 우리는 일굴 땅이 있으니 다음 해에 잘해보자고 서로를 위로했다.
소비자는 배추 ‘포기’ 6천원 사는데, 농부는 ‘평당’ 6천원 팔아
다음 해엔 약만 잘 치면 판로는 걱정 없다는 배추, 무 농사를 지었다. 개뿔. 이 해 여름 날이 찌는 듯이 더웠는데, 더위에 약한 배추에 당연지사 꿀통이 찼다. 우리뿐 아니라 임계 지역 배추 농가들이 꿀통 찬 배추로 골머리를 앓았던 기억이 난다. 이대로라면 손가락 쪽쪽 빨아야 하니, 밭뙈기로 사러 온 상인에게 사정사정하며 배추를 넘겼다. 어떻게든 팔아보겠다고 김치 공장에 가져갔다가 물건이 별로라며 반 값을 받기도 했다. 8,000평 심긴 무를 짝꿍과 11월에 찬물로 흙 씻어 짚으로 묶어 밤낮없이 작업해 공판장으로 내봤지만, 1kg에 890원정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해에 배추 값이 폭등해서 폭염보다 뜨거운 배추 값 폭등세라는 말이 돌았었다. 소비자들은 배추 한 포기에 6,000원씩에 사는데, 우리는 평당 6,000원에 팔았다. 받은 돈에서 농자재 값, 외상값, 다음해 농사 자금 빼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생활비가 없어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란 말인가…. 억울하고 분했다. 야속한 날씨도, 모든 것이 서툰 우리가 밉고 또 미웠다.
4년 차까지 몸도 마음도 탈탈 털린 채로 억지로 살아냈다. 짝꿍과 울기도, 다투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해발 600m 강원도 고랭지 채소도 다 옛말이다. 무, 배추는 이제 어렵다는 판단이 섰다. 이 때까지만 해도 ‘농사는 사람이 반, 하늘이 반’이라 생각했지 기후재난이라는 말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저 운이 나빴고, 우리가 서툴렀다고만 생각했다.
3월, 초봄에 ‘50년만의 대설’로 무너진 하우스
앞으로 우리는 무얼 일구며 먹고 살아가야 할지 살 궁리만 했다. 그렇게 생각한 게 사과와 감자, 아스파라거스였다. 정선을 대표하는 작물을 선택하면 지원금을 받을 수 있고, 모험을 하더라도 그나마 안정적이라는 이유가 컸다.
사과는 식재 3년이 지나 드디어 소득이 생기고, 감자도 정선 임계의 날씨에 맞는 품종을 찾느라 헤맸지만 곧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차차 안정기에 접어들었지만, 아슬아슬 외줄타기는 끝나지 않았다.
한국농수산대를 졸업하면 나오는 지원금 각각 2,500만원과, 모자란 돈은 또 겨우 대출받아 마련한 시설하우스에 우리의 온 기운과 희망을 담아 아스파라거스를 심었다. 짓고 2년이 지난 2021년 3월, 초봄에 꽃샘추위도 아닌 50년만의 대설로 설거지하는 창 밖 너머로 하우스가 눈 앞에서 우드드득 큰 소리와 함께 무너졌다. 천운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무너지기 하루 전날 하우스 보험을 들어 놓은 게 지금껏 일군 모든 걸 관두고 강원도에서 떠났을 수도 있는 우리를 다잡아줬다.
입추는 배신해도 처서는 배신하지 않는다더니, 올해는
정선에 들어와 농사지은 지 8년이 지난 지금도, 날씨는 매년 변하고 있다. 매년 더위가 지속되는 날짜가 경신되고, 보름만 무지 더웠던 여름인데 올해는 두 달 내 푹푹 찌듯 더웠다. 날씨는 경기나 대회가 아닌데 ‘작년이 덜 더웠네’를 내뱉는다.
기후재난은 매년 우리를 훅 치고 들어온다. 올해는 사과 수확에 영향이 컸다. 입추는 배신해도 처서는 배신하지 않는다더니, 올해는 처서도 우리를 배신했다.
꽃이 피고 열매로 바뀌는 4개월동안 쭈-욱 솎아주는 작업인 적뢰, 적화, 적과를 하면서 농사 8년 만에 꽃도, 사과 크기도 실하고 좋아 큰 기대를 품었지만, 두 달 내 찌는 더위가 아침 저녁으로 이어지니 사과가 크는 속도가 더뎌지고, 홍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황로가 된 사과가 생겨났다. 한창 크고 발갛게 색을 낼 시기에 일교차 없이 날이 마냥 더운 탓이었다. 약을 쳐서 예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설을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올해 비는 덜 왔지만, 다가 올 겨울이 무섭다. 눈을 얼만큼 쏟아내려고, 내년 꽃 필 무렵에 얼마나 또 때아닌 눈을 퍼붓거나 서리가 내리려고. 비가 너무 오지 않는 것도 우리에게 이젠 무섭다.
정선에서 농부로 지속적인 삶을 살기 위해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레 이어지고 있다. 내 작은 행동이 끓는 지구를 지금 당장 식힐 수는 없겠지만, 도전해 보기로 했다.
3kg 사과 포장재는 종이 사용하기! 자연 분해 가능한 재료를 사용해 재활용률을 높이는 게 목적인데, 친환경 포장재라고 단정짓기엔 물론 부족함은 있지만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행동이라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사과 판매는 거의 택배로 하는데, 여기에 사용되는 쓰레기들이 만만찮다. 외부 충격으로부터 과일을 보호하는 난좌와 팬캡, 망패드는 킬러문항 쓰레기다. 내가 사용하는 난좌, 팬캡, 망패드는 스티로폼 같지만 발포폴리에틸렌 재질인데,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와 한국폐기물협회에서 이 재질은 재활용 가치가 낮아 종량제 봉투에 배출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사용하는 포장재들은 ‘소포장재 지원사업’을 통해 재료들을 구입하게 되는데, 문제는 기존 사용하는 자재와 친환경자재 값이 2-3배 이상 차이 난다는 것. 쉽게 100장 구입할 수 있는 금액으로 50장도 구입 못 하는데, 모자란 50장 나머지는 농가 개인 자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우리는 사과를 3kg, 5kg, 10kg 다양한 규격으로 팔고 있지만, 포장재 가격이 비싸서 선뜻 전체 도입하지 못하고 아직은 3kg에만 도입 중이다.
신선농산물에 적합한 친환경 포장재의 가이드 라인이 제시되고, 다양한 친환경 포장재가 개발되고 규격화되어 접근이 쉬워져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친환경이 아닌 필환경 시대. 친환경 포장재는 단순히 환경 보호를 위한 선택이 아닌, 우리 모두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다.
정부가 팔을 걷긴 했다. 2023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포장재 낭비를 줄이고 친환경 소재 사용을 유도하는 내용이 담긴 ‘농산물 표준규격 개선 작업’에 착수했고, 환경부도 같은 해 친환경·자원 절약에 방점을 둔 농산물 포장 지침을 내놨다고 하는데, 여전히 구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기업에 요청해 주문 제작으로 한 번에 3,000장을 구입해야 하는데, 나 같은 작은 농가에서 개인 자금으로 뛰어들기에는 시중에 나와있는 발포폴리어쩌구를 구매해 쓰는 게 금전적으로 타격이 적다는 것, 또 사용하는 지역이 있다 해도 관련 지역 사람이 아니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희박하다.
친환경 포장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러한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 습관으로 이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포장 디자인도 개발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깊어지는 만큼 간절하다.
이런 행동과 고민을 하며 농사 짓고 살아가니, 문득 허무맹랑하게 느껴졌던 엄마의 ‘희망의 봄’이 진짜 이겨낼 힘이 됨을 느낀다. 매년 봄마다 힘들지만, 그렇게 우리는 매년 희망의 봄을 외치며 농번기를 시작한다.
[필자 소개] 최보란. ‘식물 한 포기의 역사에 온 세상의 성장이 깃들어 있음을’ 글귀를 새기며 사는 여성 농민입니다. 인스타그램 ‘열매달_보란정민 농사일기’ @bomincrop_
-‘기후위기 체감하는 여성 농부들의 메시지’ 기록은 아름다운재단(beautifulfund.org) 지원으로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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