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에서 현재 동성혼이 가능한 나라는 38개국으로, 내년 1월부터 동성 커플도 혼인신고가 가능해진 태국을 비롯해 아시아에서도 대만, 네팔, 태국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된 상황이다. 일본은 일부 지역에서 동성커플이 파트너쉽 제도 등록을 할 수 있고,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소송도 이어가고 있다. 드디어 한국에서도 2024년 10월 10일 혼인평등을 위한 소송이 시작됐다. 2014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혼인신고 불처리 처분이 부당하다”며 낸 ‘혼인신고서 불수리 처분 불복’ 소송 이후 10년만에, 무려 11쌍의 부부가 함께 진행하는 역사적인 소송이다. 원고인단 중 두 부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편집자 주]
어느 휴일, 직장인인 두 엄마가 쉬지 못하고 아이와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고군분투하는 집을 찾아갔다. 종종 고양이가 식탁 위로 올라와 노트북 키보드를 대신 눌러 주는 일들이 있긴 했지만 기대보단(?) 원활한 인터뷰였다. 인터뷰를 통해 ‘이미 그렇게 가족을 이뤘으니 그냥 살면 되지 않느냐’가 아니라, 이 가족의 삶을 뒷받침해 줄 제도의 필요성과 더 많은 앨라이(지지자)가 필요함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두 분 결혼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2019년에 결혼식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세연: 사실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결혼식 로망 그런 건 없었어요. 결혼식을 하게 된 건 사회적인 이유에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동성 부부로 ‘인정’되는 게 없으니까 그럼 가족, 친구, 동료들 불러놓고 공식적인 무언가를 보여줘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야 그 사람들한테 진지하게 받아질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굳이 안 해도 되는 거였는데 말이죠.
규진: 이성애자 친구들 결혼식 갈 때면 정말 축하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굉장히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난 저런 거 평생 못해보겠지’ 싶어서 집에 와서 운 적도 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평범한’ 공장식 웨딩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런 결혼식을 안 하고 혼인신고만으로 (주위에서) 결혼으로 인정받는다는 점은, 지금 이성애자들의 특권이라고 봐요. 동성 부부는 동거하며 사실혼 관계에 있어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지금도 제 배우자를 ‘여자친구’라 부르는 사람도 있어요.
-두 분은 결혼 전부터 동거 중이었나요?
규진: 보수적인 사람이라(웃음) 결혼하기 전에 동거할 순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미국에서 혼인 신고한 다음에 동거를 시작했어요. 결혼식은 그 이후이긴 했고요.
-아, 전통(?)을 따르는 스타일이셨군요.(웃음) 그럼 결혼할 때 걱정은 없었나요? 같이 살아본 적 없는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하게 되는 거니까요.
규진: 걱정했죠. 둘 다 오랫동안 혼자 살았거든요. 전 대학생 때부터, 와이프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누군가와 공동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많았죠. 정말 다행인 건, 둘 다 작은 부분은 좀 잘 잊고 넘어가는 스타일이어서 서로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세연: 양말 접는 방법이 서로 다른데, 이걸 참아야 하더라고요. 규진이가 원하는 방식이 있다, 내 방식이 맘에 안 든다? “오케이. 그럼 네가 다 접어” 라고.(웃음) 이렇게 되니까 서로 각자 방식대로 하고 상대도 넘어가는 걸로.
-결혼해서 지내다 해외 발령으로 프랑스에서 거주하던 때, 상사가 “아이 가질 거지?”라고 묻는 바람에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고 들었어요. 그런 말을 접하지 못했다면 아이를 가진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규진: 결혼식을 하는 것도 사실 어떤 분의 블로그를 보고 생각하게 된 거에요. ‘난 캐나다에 있는데, 여긴 외국인끼리도 결혼할 수 있다, 동성결혼 가능하다’는 글을 보고 이런 방법이 있었어? 놀랐죠. 임신·출산 같은 경우는 프랑스에서 상사한테 ‘레즈비언 부부’라고 했는데, 자연스럽게 “아이 가질 거지?” 하는 걸 보고 생각하게 됐죠.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도 생각하게 될 시점이 왔을 거에요. 그 즈음에 주변에 있는 레즈비언 부부 중 두 부부가 아이 낳는 걸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나이나 환경 등이 그럴 때였던 거죠. 해외에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가지기 쉬운 환경에 있기도 했고요.
세연: 처음 아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 놀랐달까, 와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예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니까요. 그래서 처음엔 ‘너무 좋아’도 아니었고, ‘안돼’도 아니었어요. 규진이가 아이를 낳고 싶어 한다면 응원하자, 그리고 아이를 나와 함께 기르고 싶다고 하면 같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규진: 그쵸. 지금 시대가 아이 낳기 좋은 시대라고 말할 수 없죠. 특히 레즈비언 부부가 한국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건 많은 생각을 동반해야 하고요. 이런 사실들을 받아들기로 했어요. 출산이 이기적인 선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아이에 대해선 최선의 책임을 지자고요. 사실 또 우리 부부만 소수자인 것도 아니잖아요?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여러 부모가 있고, 그렇지 않는 이들도 완벽한 부모가 되긴 어렵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벨기에 난임 클리닉에서 정자를 제공 받을 때 심리상담을 두 번 받게 하는데, 그 때 심리상담사가 “아이가 밖에서 차별을 경험하게 되면 어떻게 하겠냐?” 묻더라고요. “차별 받을 일이 없도록 미리 선생님과 상의하고, 학부모들에게도 상황을 설명해 두는 등 미리 조치를 하겠다”고 답했더니, “아이를 영원히 보호할 순 없다. 중요한 건, 집에 있을 때 아이가 사랑 받고 안전한 것이다.”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동의했고, 아이가 독립적인 이로 자랄 수 있게 집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책임지자고 생각했어요.
세연: 걱정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잖아요. 약간 대책 없는 성격일 수도 있는데, 일단 아이가 태어나면 잘 키우면 되지 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또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두면 그 또한 안전망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정 안 되면 한국을 뜨자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어요.
-그렇게 라니가 태어났고, 모모(母母) 패밀리를 이루게 되었는데요. 양육의 성역할 편견과 고정관념이 강하다 보니, 그래도 아빠가 필요하다고 보거나 혹은 엄마가 둘 있으면 모든 게 원만할 것 같다는 판타지도 있잖아요. 실제론 어떤가요?
규진: 아빠가 필요한 건 아닌데, 키 2m 되고 몸무게 120kg 정도 되는 짐꾼(?!)이 있음 좋겠다고 생각해요.(웃음) 일단 성역할이 나눠져 있지 않다 보니, 어떤 걸 두고 ‘당연히 이건 네가 해야지’ 이런 게 없긴 해요. 그래서 다툼이 없고, 둘이 함께 노력하고 분담하게 되는 부분은 확실히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혼자 만능으로 해내는 그런 ‘엄마’가 둘 있는 건 아니고요. 1인분 안 되는 0.8인분 정도의 두 사람이 함께 노력하는 느낌? 게이 부부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아빠가 둘 이라고 아무 것도 못하진 않을 거에요.
세연: 아빠가 둘이든, 엄마가 둘이든 능력에 차이가 있진 않을 거에요. 다만 아무래도 사회적 인식 때문에 엄마가 둘이라고 하면 기대치가 좀 더 높긴 하겠죠.
규진: 그런 분들이 우리 육아 하는 거 보면 놀랄텐데…(웃음)
세연: 어린이집에 일주일 동안 같은 옷 입혀 보내고.(웃음)
규진: 세상이 생각하는 그런 엄마들은 아니죠.(웃음) 사실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베이비시터 님이에요. 또 아이가 6개월 됐을 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냈거든요. 그러니까 어린이집과 베이비시터 님의 돌봄을 많이 분담해 주고 있는 거죠. 둘이서만 아이를 보는 건 주말이나 휴일 정도니까요.
-아이를 키운다는 게 힘든 것도 있지만, 요즘은 조기 교육이니 뭐니 경쟁도 너무 하니까, 여러 모로 신경 쓸 게 많을 것 같아요.
규진: 주변 보면 어릴 때부터 과하게 경쟁하게 하는 것 같더라고요. 내가 레즈비언이고 우리가 모모 패밀리인 걸 떠나서, 아이 기르는데 고민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세연: 이전엔 성소수자 이슈가 아니면 사회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근데 이젠 자꾸 여러 가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또 출산, 양육을 앞두고 직장 상사, 동료나 친구들이 선물도 많이 주고 혹시나 힘든 일이 생기면 연락 달라고 말도 건네줬어요. 나는 그런 일을 못 했던 것 같은데, 좀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아이 관련된 이슈는 나랑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관심 갈 수 밖에 없죠.
규진: 어린이집을 보내다 보니, 양육기관은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어린이집 가면 밥 먹여줘, 기저귀도 갈아줘, 매일매일 새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고. 정말 좋아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어린이집을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못 들어가는 경우도 있으니까, 범위가 넓어지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출산 후 1~2년 정도까진 정부 지원 등이 있는데 아이가 영아에서 벗어나 아동·청소년이 됐을 때의 지원은 너무 부족한 것 같더라고요.
지금 한국 사회 시스템 속에서 저희는 ‘한부모’ 가족으로 되어 있는데요. 그래서 알게 된 건데, 이 한부모 관련 지원도 엄청 까다롭더라고요. 자가가 있으면 경제적 지원이 없고, 심지어 자차가 있어도 그렇고요. 한부모 가정의 경우 소득 문제도 있지만, 사실 절대적으로 아이를 돌볼 사람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한 지원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와이프(세연 씨)가 라니의 법적 보호자로서 어떤 권리도 갖지 못하고 있어요. 만약 내가 죽으면 라니를 와이프가 입양할 수 있을지, 그걸 판사가 허락해 줄지도 모르는 거죠. 사실 한국은 동성 부부의 재생산권 접근이 거의 불가능해요. 정자은행도 없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IVF(체외수정) 시술을 받기도 너무 어렵고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동성 부부, 성소수자 부부가 이렇게 결혼하고 임신, 출산, 양육하는 것에 대해 퀴어 커뮤니티 내부에서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어요. 이런 경로가 ‘정상성’에 맞춰가는 것이고, 앞으로 사회에서도 ‘정상성’에 대한 요구(이성애자와 같아져야 한다)가 많아질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경계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는 거죠.
세연: 아직 한국 사회는 (거기까지 가려면) 한참 남은 것 같긴 해요.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모든 것들이 ‘정상성’에서 다 비껴나가고 있거든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아직도 이걸 ‘엽기’ 인생으로 보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결혼과 임신, 출산, 양육을 한다고 해도 쉽게 ‘정상 사회’에 속할 수 없는 것 같거든요.
규진: 왜 그런 걱정을 하는지 알고, 이해해요. 다만 아직 한국 사회는 멀었다고 생각하고요. 또 우리 내부에서도 이런 욕망이 있다는 걸 한번 들여다 봤으면 좋겠어요. 주변의 퀴어 친구들이 ‘자신의 퀴어 친구가 김규진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 나도 아이 낳고 싶다고 한다’는 거에요. 그런 욕망이 누군가에겐 있다는 거죠. 퀴어 중에서도 결혼하기 싫은 사람들, 결혼 말고 다른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결혼을 원하는 사람도 있어요. 모두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넓혀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커밍아웃해야 하는 범위도 넓어질 것 같아요. 비(非)퀴어 사회와의 접촉도 점점 늘어나고 있을 것 같은데요.
세연: 퀴어로서 규진과 연애할 때, 혹은 결혼해서 우리끼리 있을 땐 대체로 안전함을 느꼈어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사람 혹은 퀴어 당사자인 친구만 만나니까 불편한 일을 겪을 일이 별로 없었죠. 근데 라니가 생긴 이후엔 달라졌어요. 아이와 함께 이웃들을 마주하게 되고, 평생 섞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많은 이성애자 부부들을 대면해야 하죠. 우릴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거에요.
규진: 오픈리 퀴어로 이렇게 이야기 하다 보면 아무래도 어떤 대표성이 따라오다 보니 좋은 이야기, 긍정적인 이야기를 최대한 하려고 하는데요. 당연히 어린이집 부모님들 모두가 저희를 반기는 건 아니에요. 얼마 전 어린이집 운동회가 있었는데, 3일 전부터 너무 두려웠어요. 그들이 다 비퀴어인지 모를 일이긴 하지만, 여튼 그런 가족들 사이에 우리가 덩그러니 놓이는 거잖아요. 혹시 일어날 돌발 상황이나,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할 건지 생각하는 게 막연하고 또 왜 이런 생각까지 해야 하나 비참하기도 하고…
세연: 아직 라니가 한 살이니까 크게 일이 있진 않아요. 하지만 말하기 시작하고 친구들이 생기고, 서로 집에 놀러 가는 일 등이 생기면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겠죠. 그에 대한 변수도 생각해야 하고요. 뭘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계속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규진: 지금까지 경험으로 봤을 때, 예를 들어 사람이 한 10명 정도 있으면 그 중 한 명 정도는 적극적인 앨라이/지지자가 있어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내가 말하지 않아도 ‘본인이 나서서 힘든 일이 있으면 이야기를 해 달라, 도와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적극적인 혐오자도 있긴 해요. 하지만 앨라이가 혐오자를 제지하더라고요. 그런 걸 보고 희망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고, 우리 사회에 앨라이를 많이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요.
세연: 이웃 사촌을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닌데, 아이가 있으니까 엘리베이터만 타도 사람들이 말을 걸고, 인사를 하니까요. 어떤 할머니는 자기 손주 자동차 물려준다고 하시고, 만날 때마다 되게 예뻐하시고요.
규진: 엄마가 둘이라고 했을 때 잠시 혼란스러워 하셨지만, 또 바로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세연: 엄마가 둘이어서 좋겠다고.(웃음)
규진: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만, 나한텐 조용히 사는 건 사실 숨기고 사는 거고 외면하고 사는 거고 거짓말하며 사는 거에요. 사회초년생 때 주변에서 애인에 대해 물어보면 어디까지 밝혀야 되고 어디까진 숨겨야 되는지 너무 어렵더라고요. 스트레스 받기도 했고요. 그냥 후련하게 밝히는 게 나답다고 생각했어요. 또 굳이 이렇게 나서서 이야기하는 건, 나도 앞서 나서서 이야기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내가 결혼을 실행할 수 있었던 건 어떤 분이 블로그에 글을 써 놨기 때문이잖아요.
물론 모든 사람이 투쟁을 할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권리를 주장하려면 나서서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고 말하는 사람의 존재는 필요한 것 같아요. 마침 난 운 좋게 유리하게 태어난 면이 많았어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해외에서 생활도 했고, 직장도 외국계 회사고. 그렇다면 내가 나서서 이야기하는 게 맞니 않나?
세연: 규진이는 나한테도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 이런 거 해야 한다’고 말해요.(웃음)
규진: 이번 소송은… 사실 오히려 저 포함 안 시켜 줄까 봐 걱정했어요.(웃음) (소송을 준비한 ‘모두의 결혼’에서) 원고인단을 다양한 사람으로 꾸리고 싶다고 했거든요. 근데 서울 사는 30대 여성은 이미 많다는 거에요.(웃음) 또 아이가 있으니까 좀 걱정되는 부분이 있긴 했어요. 우리의 행동이 아이의 미래에도 영향을 줄 테니까요. 하지만 그래서 엄마들이 이름을 걸고 싸우는 게 맞지 않나 싶더라고요. 아이를 위해 세상을 바꿔야 하니까요.
-라니가 마주할 세상을 위해서군요. 미래를 위해서요.
세연: 우리 셋이 정말 그냥 즐겁게 살 수 있으면 이렇게 소송 안 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사실상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이에요. 그냥 그렇게 사는 건 많은 걸 포기하고 사는 거죠. 사실 나도 원래 그렇게 살았는데, 규진이가 오픈리 레즈비언으로 활동하는 거 보고 알게 됐어요. 내가 성소수자라서 직장에서 얻지 못하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요. 손해 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포기했는데, 이젠 그렇게 못살겠더라고요.
규진: 우리가 무인도에 살 게 아닌데, 라니가 학교에 갔을 때 “엄마가 둘이야.”라는 말을 부끄럽게 이야기하면 안되잖아요. 차별이 없는 세상을 조금 더 당기기 위해선 우리가 열심히 뛰어야 하는 거죠. 우리 말고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 레즈비언 부부들도 있지만, 일단 이렇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우리니까.
세연: 나중에 라니가 학교에 가고 친구들을 사귈 때 차별이나 혐오를 마주할 수 있잖아요? 그 때 애가 ‘엄마들은 지금까지 뭘 했냐, 나 낳은 거 빼고 한 거 있냐?’라고 했을 때 할 말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만약 그때까지도 세상이 안 바뀌었다면, 아직 사회가 이렇긴 하지만 우리도 노력했다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규진: 지금도 사실 좋은 변화가 있고 친구, 앨라이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이모, 삼촌이 이렇게 많은 아이도 드물걸요?(웃음) 그런 면에서 장점도 있어요.
세연: 요즘 둘이서 맨날 하는 이야기인데, 물론 애 키우는 거 힘들고 하지만 라니 보고 있으면 그냥 귀엽고 즐거워요.
규진: 아이가 웃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는데, 이게 학습된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렇더라고요.
세연: 그러니 둘 다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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