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하고 돌보겠다는데, 국가가 왜 거부하지?결혼과 가족에 대한 질문 많아지길…문숙, 지아 부부 그리고 "엄마” 영순※ 세계에서 현재 동성혼이 가능한 나라는 38개국으로, 내년 1월부터 동성 커플도 혼인신고가 가능해진 태국을 비롯해 아시아에서도 대만, 네팔, 태국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된 상황이다. 일본은 일부 지역에서 동성커플이 파트너쉽 제도 등록을 할 수 있고,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소송도 이어가고 있다. 드디어 한국에서도 2024년 10월 10일 혼인평등을 위한 소송이 시작됐다. 2014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혼인신고 불처리 처분이 부당하다”며 낸 ‘혼인신고서 불수리 처분 불복’ 소송 이후 10년만에, 무려 11쌍의 부부가 함께 진행하는 역사적인 소송이다. 원고인단 중 두 부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편집자 주]
여성단체 활동가인 손문숙 씨와 변호사인 박지아 씨는 8년째 동거 중인 동성 부부다. 이들은 17살 나이 차이가 나는 부부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문숙 씨가 일했던 여성단체의 한 프로그램을 통해 활동가와 참여자로 처음 만났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혼인신고를 하러 가는 부부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혼인평등권을 보장받기 위해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소송’을 제기하는 원고인단이 됐다.
-지아, 문숙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어땠나요? 연애 과정이 궁금해요.
지아: 문숙이네 단체에서 진행한 집담회가 있었어요. 그 때 참여자로 갔어요. 문숙의 첫인상은 ‘신기하다’는 거였어요. 그 땐 머리가 훨씬 길었고 파마 머리였고. 문숙이가 노출 있는 옷을 좋아하는데 그 때도 그런 옷이었고. 이름표를 맨살 가슴팍에 붙이고 있더라고요. 되게 신기한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그 뒤 집담회로 거의 매주 만났는데, 끝나고 뒷풀이 갈 때 둘 다 발이 좀 빨라서 같이 걷게 되더라고요. 그 때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문숙: 좋은 사람이다, 조금 더 알았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근데 나이 차이가 좀 있잖아요? 사실 이전에도 위아래 상관없이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람도 만났기 때문에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요. 그리고 바이섹슈얼이긴 하지만 여자랑 연애를 해 본 적이 없기도 해서, 처음부터 연애 감정을 키우려고 하진 않았어요. 일단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죠. 지아가 그 때 대학교 4학년인가 그랬는데, 우리 단체 행사에 일을 도와주러 온 적이 있어요. 일을 정말 잘하더라고요. 주변 활동가들이 다 칭찬했어요. ‘저 사람은 칭찬 받는 사람이구나’ 싶어 호감이 더 생기더라고요. 사실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이 지아가 대학교 4학년이라고 했더니 나한테 도둑년이라고(웃음) 다 말리더라고요. 맞다, 정신 차리자 했는데 자꾸 지아랑 이야기하고 싶고 놀고 싶더라고요.
지아: 문숙이는 사람의 외적인 것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믿지 않고 좀 더 살펴보려고 하는 점들이 있었어요. 사려 깊은 사람이다 싶더라고요. 항상 누군갈 좋아할 때 빛이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문숙이가 빛이 나는 사람이었어요.
문숙: 지아가 그 때 만나던 사람이 잠수 중이어서 헤어짐을 고한 상태였는데, 마무리한다고 한번 만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 때 그 사람한테 시집을 선물했대요. 마지막 만남을 이렇게 정리하다니, 어떤 관계를 종료할 때 잘 매듭지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구나 싶어서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 이후 지아와 긴 카톡을 주고 받다가, “지금 볼래요?” 하고.
지아: 그 때 꽤 먼 길을 택시 타고 갔죠.(웃음)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 때가 2017년이에요.
영순: (둘이 같이 살고 있어서) 종종 반찬 같은 걸 갖다줬어요. 근데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요. 한번 지아한테 떠 본 적이 있어요.
지아: 정말? 언제? 나 기억 안나는데?
영순: ‘문숙이는 남자친구 없니?’ 하고 물어봤는데 지아가 얼버무리더라고요. 사람의 촉이라는 게 있잖아요. 근데 그걸 차마 이야기하진 못하는 거죠. 사실을 알고 싶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그렇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크니까? 사람 마음은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거다 싶어서 일단 그냥 두자 했어요. 그런데 지금 이 집으로 이사하고 나서, 한번 집에 왔더니 ‘레즈비언 변호사’라는 명찰이 떡 하니 잘 보이는 곳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어머 얘, 너는 이런 걸 공개적으로 알리고 다녀?”라고 해 버린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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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 그게 작년이에요. 지아가 로스쿨 졸업하고 변호사된 게 2022년인데, 직장을 구하고 나면 엄마한테 커밍아웃 할거라 그랬어요. 근데 지아가 취업한 시점에 오빠도 취업을 해서 엄마가 좀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아한테 ‘엄마 행복한 시간 좀 더 갖게 두자’고 하고 커밍아웃을 약간 미뤄뒀어요. 사실 엄마가 알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는데 입 밖으로 말하기 싫으니까 그냥 모르는 척하는 거라고요. 그러다 이사를 하게 됐고, 집들이 겸 엄마를 초대했는데, 그 때 이야기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죠. 근데 엄마가 집에 들어와서 ‘레즈비언 변호사’를 보더니 ‘이게 뭐야? 레즈비언 변호사가 뭐야? 레즈비언이 뭐야?’ 하는 게 아니라 “넌 왜 이걸 알리고 다녀?”라고 해서.(웃음)
영순: 내가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어유, 내가 미쳤지. 괜히 그렇게 말을 꺼내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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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 엄마한테 커밍아웃을 하려고 온갖 준비를 다 했는데 엄마가 이미 알고 있다고 하니까. ‘아, 괜찮겠구나’ 싶어서 엄마한테 속사포로 온갖 이야기를 다 했죠. 엄마 나 레즈비언이야. 우리 둘은 애인 사이야. 우리 혼인 신고도 했어. 저번에 발리에 갔던 거 신혼 여행이었어! 이렇게 와다다다.(웃음)
영순: 좀 섭섭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둘이 이미 결혼했고, 알아서 다 했다는 거에 대해서요. 성소수자라 차별 받고 그런 게 걱정되고 그렇다기보다 ‘그냥 너희들끼라 다 했어?’ 이런 생각이 들어서 섭섭했어요. 둘이 여자, 남자 관계였다면 자기네들끼리 결혼하지 않았을 거잖아요. ‘엄마 나 결혼해. 근데 결혼식은 안해.’ 뭐 이런 이야기라도 했을텐데, 이미 다 했다 그러니까. 이미 끝난 일이니까.
지아: 어떻게 지금이라도 상견례 한번 잡아볼까요?
영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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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순: 문숙이네 어머니 얼굴이라도 알아야지. 서로 모르는 사이면, 길에서 언쟁이 붙어서 싸울 수도 있잖아요. 적어도 ‘문숙이 엄마다’ 알고 있으면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지아, 문숙 관계를 알게 된 이후에 고민을 하지는 않으셨나요?
영순: 큰 고민은 안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예전부터 짐작해서 알고 있었으니까요. 지아가 학창 시절에도 여자친구들을 꼭 데려다 줬어요. 아니 자기도 여잔데 자꾸 데려다준대. 너도 위험해 했더니 “아니야 엄마, 걔가 더 위험해.” 이래요(웃음) 그런 모습들을 봐 왔기 때문에, 큰 고민은 안 했고. ‘그냥 나만 알고 있어야지. 애들도 조용히 살았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문숙 님의 가족 분들은 어떤 반응이었나요?
문숙: 명절 때 가족들이 모여 술 한잔 먹고 있을 때 이야기를 했어요. “엄마, 지아는 그냥 후배(문숙, 지아는 놀랍게도 알고 보니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졸업했다)가 아니라 (예전 남자친구 이름을 말하며) 나한텐 OO이 같은 사람이야.” 엄마가 못 들은 척 하더라고요. 형제들은 네가 걱정된다는, 평범한 사람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일반’인들 생각엔 성소수자면 혼자서 외롭게 살다 죽을 거라는 인식이 있나 봐요. 그런 걸 걱정하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소리야? 난 지금 너무 행복하고. 아마 언니, 오빠들 보다 내가 더 행복할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나중에 그 감정을 ‘억울함이었다’라고 정리했어요. 내가 우니까 엄마도 “네가 잘 지내면 됐다” 하더라고요.
근데 여전히 그 단어를 절대 이야기하지 않아요. 담배처럼(웃음) “야, 너 그것 좀 피지 마라” 이런 식으로, 그 ‘문제’의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질 않는 거죠. 근데 또 지아를 엄청 챙겨주세요. 안부 물을 때 꼭 지아 안부도 물어요. 지아는 밥 먹었냐, 잘 지내냐 이러면서요. 음식 같은 거 챙겨줄 때 지아 엄마네 것도 챙겨주시는 거죠. 참기름도 우리 거 말고도 지아 엄마네 거까지.
-그래도 문숙 님의 가족들도 지아 님이 가족이라는 인식은 분명히 있는 거네요.
지아: 그쵸. 한번 문숙이네 집에 갔는데요. 문숙이 남동생의 아내 분이 있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거든요. 그래서 “언니”라고 불렀는데 어머니가 “언니라 부르면 안 되지” 그러시더라고요.
문숙: 왜냐면 내 남동생의 부인이니까, 손아랫사람인 거에요. 그러니까 언니라 부르면 안 된다는 거죠. 엄마 입장에선 지아가 오히려 ‘언니’인 거에요.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족 관계에서 그렇게 되는 거죠.
-오, 너무 재미있네요. 뭔가 인정을 안 했지만 한 느낌?
문숙: 엄마 입장에선 그게 인정일 거에요. 엄마는 성 정체성의 세세한 단어는 모르지만, 그냥 이렇게 여자 둘이 사는 사람도 있구나, 얘네도 그런 사람이구나 하는 거죠. 그리고 둘이 잘 지내고 있으니까 다행이다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문숙: 혼인신고를 한 이유는 사실 전통적인 의미로 우리가 가족을 이뤘고, 결혼을 했고가 아니라 그냥 실리적인 이유였어요. 회사에서 경조사 휴가를 받고 싶어서요.(웃음) 그 때가 5주년이었고 지아가 사회 생활도 시작하게 됐고 그래서 여행 갈까 하던 참이었거든요. 혼인신고를 하고 경조사 휴가를 받으면 되겠다 싶었던 거죠. 그렇게 혼인신고를 하면서 ‘이게 우리한테 무슨 의미지?’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지아는 결혼 생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난 원래 결혼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걸 왜 하는 걸까?’ 둘이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죠.
또 지아가 이왕 하는 거 조금 더 공식적으로 하고 싶다 그래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 저희 결혼 공지도 올렸어요. 그랬더니 남동생한테 연락이 온 거에요. “누나 결혼했다며? 축하해” 그래서 깜짝 놀랬죠. 신기한게 남동생 회사 상사가 민변 회원이었나 봐요. 그 공지를 보고 “이거, OO씨 누나 아니에요? 축하한다”고 했대요. 조금 미안하더라고요. 먼저 이야기를 못 해서. 세상이 참 좁아요?(웃음)
지아: 원래 커밍아웃을 늘 해왔어요. ‘걸커’, ‘걸어다니는 커밍아웃’이라고 해야 하나?(웃음) 온갖 곳에 다 커밍아웃을 하는 거죠. 대학 때나 로스쿨 때도 그랬고 취업할 때도 말했고요. 혼인신고 하면서 그렇게 알린 건, 나도 성 정체성으로 차별 받는 직장이 아니고 문숙도 그런 직장이 아니니까 알릴 수 있는 한 알려보자 싶었어요. 당장 뭘 바꾸진 못해도, 이런 사람이 존재해. 당신 옆에도 있고, 같이 일하는 동료이기도 하다는 걸요. 이번 (혼인평등) 소송 원고인단 참여 제안이 왔을 때도 ‘당연히 해야지’ 생각했어요. 문숙과 난 운 좋게도, 이 소송 참여가 직장에 위협이 되는 게 아니니까요. 이런 여유가 있는 사람이 더 해보자 하는 생각이었어요.
-페미니즘 담론에서 결혼, 물론 주로 이성애결혼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 결혼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이 있죠. 동성/퀴어 커플이 결혼제도에 편입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있고요. 여기에 대한 생각도 궁금합니다.
문숙: 저도 결혼제도에 편입하는 것과 결혼이 우리에게 어떻게 의미화되는가, 이번 소송은 어떤 중요성이 있고 어떤 의미가 있냐에 대해 생각했어요. 지아와 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고 있는데요. 일단 결혼하려고 하는 것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삶의 다양한 방식 중 하나로 이해하고 있죠. 다만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결혼제도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을 불편하게 하고, 선택하지 않은 것조차 수행해야 하는지 알죠. 그런 지금의 구조와 문화가 문제적인 거에요. 그러니 많은 여성들이 결혼하기 싫어하는 거고요.
그리고 결혼이 무슨 관계의 종착지이고 완성이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생각하고, 그에 전혀 동의하지 않아요. 사실 우리도 결혼 안하고 살 수 있어요. 나한테 결혼은 필수적인 게 아니에요. 하지만 이 소송을 같이 하기로 하고,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의 형태를 선택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에요. 또한 이번 소송이 결혼과 가족, 이것이 사회적으로 갖는 의미 등을 다양한 이들의 입장에서 들어보고 또 말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해요.
결혼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왜 누군가는 결혼하고 싶어 하나? 결혼이 왜 중요한가? 결혼으로 관계가 달라지나? 사회는 결혼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다르게 대하는가?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이란 무엇인가? 우린 어떻게, 어떤 가족을 구성하고 살아가고 있나? 등 확장할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나한텐 동성혼 법제화 한다, 못한다 보다 이런 논의가 더 중요해요. 사실 개인적으론 내 결혼을 딱히 허락 받고 싶지도 않거든요. 승소로 가는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아: 문숙 말대로 이번 계기로 조금 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논의하고 또 오히려 기존 결혼제도를 변화시키는 방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또 결혼을 하는 게 어떠어떠한 혜택을 나도 받겠어! 권리를 얻겠어!에 국한되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전 오히려 내가 내 옆의 이 사람을 돌보고 싶어, 돌볼 거야 라는 선언이고, 그런 점에선 의무를 부담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이런 걸 왜 국가가 거부하지?
영순: 그쵸. ‘왜 그럴까, 그냥 조용히 살지’ 생각하긴 했어요.
지아: 근데 내가 기자회견 함께 해 달라고 하니까 바로 “갈게”라고 했잖아.
영순: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딸이 부탁한 거니까. 이렇게 부탁한 거면 필요한 일인가 보다 했어요. 근데 기자회견 연대 발언자 보니까 나랑 다른 분 엄마 둘이더라고요? 그래서 ‘왜 나지?’ 싶었어요. 그럼 나 안가도 되는 거 아닌가? 다른 부모들도 다 오는 줄 알았거든요. 지아 엄마만 없으면 안 되니까, 간다 그랬는데. 아니네? (웃음)
문숙: 엄마가 무대에 서는 걸 사실 무서워하거든요.
지아: 떨리면 내 손 잡아!
-영순 님도 기자회견 참석하시면, 주변에서 알아볼 수 있잖아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영순: 마음의 준비는 됐어요. 뭐, 뭐라고 하겠어요. “그래, 맞아.” 해야죠. 주변에서 나한테 뭐라고 하면 “그래” 하고 편안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어요. 누가 뭐라고 할 수도 있죠. ‘뭐 불쌍하다 어쩌네’ 할 수도 있는데, 근데 어떻게 할 거에요? 그게 내 딸 인생인데.
지아: 엄마 마음이 어려울 땐 우리한테 전화하고 알려줘.
영순: 근데 뭐 그렇게 상처 받을 일은 아니야.
지아: 그래도 사소한 게 계속되면 마음이 안 좋을 수도 있어요.
문숙: 엄마를 불쌍하다 생각하는 사람이 사실 더 불쌍한 거에요. 하지만 마음이 상할 수도 있죠, 그게 즉각적인 반응으로 올 수도 있고 예고 없이 갑자기 올 수도 있어요. 엄마는 다양한 감정을 느낄 권리가 있으니까. 속상할 땐 우리한테 이야기해요. 우리가 속상할 까봐 말 못하고 그러지 않아도 돼요.
영순: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부딪혀 보려고요.
영순: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행복한 관계. 서로 지지해 주는 사이.
지아: 영순위! 내 일을 좋아하고 평생 하고 싶긴 하지만 일 때문에 좀 지쳐서 문숙한테 날카롭게 굴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문득 ‘문숙이가 없으면, 일이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요.
문숙: 전 가족에게 너무 큰 의미가 부여되는 걸 경계하는 사람이에요. 가족이니까, 가족이라서…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고 서로 존중하지 못하는 관계가 되기도 하니까요. 나한테 가족은 일상을 함께 하는 사람, 위로를 주고 받고 지지해 주는 사람.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관계인 것 같아요. 지금 나한테 박지아가 그런 사람이고요.
-이번 소송은 동성혼을 법제화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혼인평등’과 관련된 생각을 하게 할 거라고 생각해요. 결혼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도요.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됨으로써 우리 사회 또한 바뀔 걸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떤 걸 기대하시나요?
지아: 지금도 주변 사람들이 나와 문숙의 관계를 알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겠죠. ‘저 사람들이 동성부부구나’하고 조금 더 알아가는 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결혼제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으면 좋겠고요. 누군가가 서로를 돌보겠다는 선언을 정말 막을 수 있는지, 금지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문숙: 요즘 언론 인터뷰를 몇 번 했는데,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저도 같은 걸 다르게 이야기 하더라고요. 관점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 소송은 성소수자 인식에 대한 캠페인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결혼제도와 가족관계에 대한 좋은 질문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서로 좋은 질문을 주고 받았으면 좋겠다.
영순: 이왕 소송 하는 거 잘 됐으면 좋겠다!
지아에게 사진 한장 찍어서 보내며 오늘도 파이팅이라고 말해본다. 이 펜을 들며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지 잘 정리가 안된다. 어느 날 네가 나에게 책을 한 권 주었지. 너와 같은 사람들의 스토리와 부모님의 이야기가 담긴 책. 난 읽지 않고 책을 거꾸로 꼽아 놓았다. 누군가 제목을 볼까봐. 그들의 이야기도, 생각도 알고 싶지 않고 내 눈을 두 손으로 가리면 난 하늘도 아무 것도 안 볼거라 생각했으니까. 네가 집을 나가 둘이서 동거를 시작하고 어느 날인가 느낌이 오더라. 그렇지만 외면하고, 알고 싶지 않았고, 말하지 말기를 바라면서 지내는 시간 동안 우연히 네가 자꾸 세상에 드러낸다는 걸 알고 왜 그러니 하고 물었을 때 너희 둘이 깜짝 놀라던 그 모습도 떠오르네. 세상과 맞서 싸울 용기를 가진 너희에게 이제 작은 힘을 보태고 싶구나. 오늘 하루가 소중한 날이다. 오늘 내 딸 지아가 웃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딸 지아를 숙이 너에게 맡긴다. 나에게 돌려주지 말고 항상 사랑하고 행복하렴. 이제는 얼굴을 가진 두 손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아야겠다.” -신영순 님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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