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생활에 드는 플라스틱 값을 계산해 보았다

도시 생활의 경제학① 서울에 사는 현대인의 삶의 비용

| 기사입력 2024/10/18 [18:49]

도시 생활에 드는 플라스틱 값을 계산해 보았다

도시 생활의 경제학① 서울에 사는 현대인의 삶의 비용

| 입력 : 2024/10/18 [18:49]

19세기 소로의 ‘숲 생활의 경제학’

 

이 글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재사용한 글이다.

 

소로는 미국 ‘자연인’의 원조라 할 만한 사람이다. 그는 1845년부터 1847년까지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마을에 있는 ‘월든’이라는 이름의 호수 근처에 오두막을 짓고 자연을 벗 삼아 살았다. 그 경험을 『월든』이라는 책에 담아, 너무 많은 것을 끌어안고 사는 문명의 모습을 비판하며, 변하지 않는 월든 호수를 찬양했다.

 

▲ 소로가 예찬했던 월든 호수의 가을 풍경. 출처: wikipedia (사진: ptwo)


소로는 괴짜였다. 먹을 것이 없다면 튀긴 쥐라도 먹을 수 있다거나, 술이 아니라 공기에 취한다며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었다. 또한 모순덩어리이기도 했다. 소로가 예찬한 자연은 사실 문명과 동떨어지지 않았다. 월든 호수 근처에는 철길이 깔리고 있었고, 자연 곳곳에서는 문명의 소리인 기차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는 이런 모순 때문에 오히려 소로에게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문명 없는 자연이란 남아 있지 않고, 그럼에도 우리는 어떻게든 자연을 누리고자 하는 모순적인 욕망을 지녔으니 말이다.

 

소로는 『월든』에서 숲 생활의 경제학을 펼쳤다. 일반적인 경제학은 자본으로 어떤 상품을 만들어서 어떤 가격에 얼마나 많이 팔아서 얼마나 큰 이윤을 남길지 계산한다. 이에 반해 소로는 숲에서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계산했다. 이를 통해 문명으로 얼룩진 삶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주려 했다.

 

21세기 나의 ‘도시 생활의 경제학’

 

오늘날에도 소로처럼 일반적인 경제학과는 다른 경제학을 펼칠 수 있을까. 도시에 사는 현대 한국인이 삶의 비용을 계산하는 일은 여간 복잡하지 않다. 숲 생활의 경제학과 달리 도시 생활의 경제학은 고려할 요소가 너무 많다. 전기, 물, 동물, 식물, 교통, 온갖 오염물질과 쓰레기….

 

▲ 플라스틱 도시 서울의 풍경. 출처: pixabay (사진: cskkkk)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전부 계산하지 못한다고 해서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이 중 하나라도 선택해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너무 작고 가벼워서 간과하기 십상이지만 전체를 계산해 보면 너무나 무거운 물질을 골랐다. 도시 생활에 드는 플라스틱 값을 계산하기로 했다는 뜻이다.

 

이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가장 합당하고도 간결한 방법은 1년 동안 드는 플라스틱 값을 계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기억력은 1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었다. 도시의 문명이 나의 기억을 뿌옇게 했다. 결국 나는 2024년 1월부터 6월까지 지출한 플라스틱 값을 토대로 1년 동안의 플라스틱 값을 계산하기로 했다. 이 글의 모든 서술은 2024년 6월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뒤에 이어지는 글 곳곳에는 『월든』이 배어 있다. 소로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오기도 했고, 그 허세를 빌리기도 했다는 점을 밝힌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개정3판, 강승영 역, 은행나무, 2011. 이 글을 쓰면서 참고한 번역본이다.


나는 서울 소재 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는 기숙사에 룸메이트와 함께 살았다. 이곳은 가장 가까운 역과도 버스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이지만, 여전히 도시 안에 있다. 나는 순전히 정신노동으로 도시적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곳에서 1년 4개월 동안 살면서, 나는 단 한 번도 문명생활권의 체류자가 아닌 적이 없었다.

 

도시에서 내가 어떤 식으로 생활하는지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은 우리 할머니 외에는 딱히 없다. 그러나 내 삶의 양식을 우연히 알게 되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너 같기만 하면 지구는 망하지 않을 거야.”라거나 “너 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어.”라는 말을 한다. 그 사람들이라고 해서 내 삶의 양식에 유별난 관심이 있다거나 나처럼 살고 싶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살다가 하루쯤은 내가 생각날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한 번쯤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드는 일을 단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나는, 내게 특별한 관심이 없는 독자들에게, 내가 이 글에서 몇 가지 자문자답을 하더라도 양해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제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미국인이나 월든 호수의 이주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이곳, 한국의 도시에 사는 나와 여러분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러분의 형편, 즉 이 세상이나 이 도시에서 처한 외적인 형편이나 상황이 어떠하며, 현재처럼 그렇게 비참해야만 하는지, 아니면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은 없는지 말하려는 것이다.

 

나는 이곳 도시를 꽤나 싸돌아다닌 사람이다. 그런데 가게에 가든, 사무실에 가든, 또는 공원에 가든, 도시 사람들이 온갖 희한한 방법으로 고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불멸의 영혼을 지녔다는 인간들이 가엽게도 등에 진 쓰레기의 무게에 눌려 깔리다시피 한 채, 플라스틱 더미를 앞으로 밀고 가면서 힘든 인생의 길을 걷는 모습을 나는 수없이 보았다. 그들의 육신은 조만간 땅에 묻혀 퇴비로 변하거나 불에 타서 한 줌의 재로 남겠지만, 그들이 등에 진 플라스틱은 퇴비나 재가 된 육신을 수백 년 동안 짓누를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철저하게 현재의 생활을 신봉하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부인한다. 우리는 “이 길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어.”라고 말한다. 우리는 플라스틱을 ‘생활필수품’으로 여기며, 플라스틱 없이 살아가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플라스틱 대부분은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닐뿐더러 인간 향상을 방해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플라스틱을 추가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은 사치에 불과하다.

 

▲ 어느새 우리는 플라스틱을 ‘생활필수품’으로 여기며, 플라스틱 없이 살아가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출처: pixabay (사진: Ralphs_Fotos)


지금까지 내가 무슨 말을 꺼내려고 하는지 적어 보았다. 다음번에는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더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필자 소개] 초: 대학원생이다. 환경과 이주 문제에 관심이 있다. 이 두 문제와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전공에서 박사논문 주제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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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4/10/21 [16:01] 수정 | 삭제
  • 플라스틱 쓰레기 값을 디 계산하시는 건가요.. 기대기대. 오늘도 플라스틱 분리수거하며 마음이 무겁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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