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시간이 흘렀지만, 선명히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자취를 하던 시절의 어느 날 아침,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아침 일찍 무슨 일인가 했는데, 언니와 대화하던 도중 수화기 너머에서 힘겹게 딸꾹질을 하는 아빠의 목소리를 들었다. 잠시후 언니는 아빠가 딸꾹질을 멈추지 않는다며 전화를 끊었다. 막 잠에서 깬지라 비몽사몽 상황을 알 수 없던 나는 이상한 불안감이 밀려와 전화를 끊고 대성통곡을 했다. 그 당시 아빠의 몸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고, 그날따라 꿈자리가 뒤숭숭했고, 아침 일찍 전화라니 일상적이지 않았고,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아빠의 딸꾹질 소리는 불안정해 보였고. 그 모든 상황이 순간적으로 아빠와의 이별을 떠올리게 했던 것 같다.
몇 분 뒤, 전화가 왔고 언니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지만, 나의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직감한 것이 현실이 아니었는데도 아빠를 잃을 수 있다는 찰나의 심리적 경험은 매우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그런 감정을 경험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내가 갖는 아빠에 대한 감정은 존경한다, 애정한다와 같은 군더더기 없는 표현이 가능한 직선적이고 긍정적인 감정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빠와 사이가 매우 좋았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접어들면서 정치적인 신념이 달라 많은 불화를 겪었다. 그 시절 내가 읽는 모든 책을 보며 아빠는 우려를 표했고, 나는 그런 아빠가 싫었다. 우리는 한 지붕 아래 살았지만 각각 시켜보는 신문 종류가 따로 있었으며, 서로가 매일 아침 받아보는 신문의 종류를 경멸하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가 읽는 것, 서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차라리 거기서 멈추었으면 좋았을까. 아빠와 나는 서로를 설득하려 들었다. 서로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싶은 건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 채 각자의 옳음을 주장했다. 아빠와 나의 전쟁은 계속되었고 결국 우리는 지쳐 나가떨어졌다. 결과적으로 나는 독립을 선택했다. 실은 거의 도망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우리는 차츰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의 독립성을 인정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는 서로를 잘 피해 왔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다 뒤돌아보니, 아빠와 그 시절 이야기를 엉성하게 마무리 지은 지도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넘었음을 깨달았다.
얼마 전부터 아빠와 나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이대로 정말 괜찮은가, 시간은 계속 흐를 테고 마주하기 싫은 현실도 언젠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올 텐데 그때도 난 괜찮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을 이제 와서 들춰 이야기한들 우리가 다시 친해질 수 있을까.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럼에도 해보지 않은 일이니,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친해진다면 지금보다는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질문들이 아빠를 떠올릴 때, 아빠의 문자를 볼 때, 아빠와 가끔 통화할 때 시시각각 목구멍으로 기어 올라왔다. 그러던 중 평생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감독이 자기 아빠의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커스틴 존슨 감독, 2020)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모의 죽음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에 등장하는 딸(감독)과 아빠(딕 존슨)의 관계는 갈등적이진 않다. 딕 존슨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정신과 의사로 살아왔다. 게다가 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유쾌함을 잃지 않는 귀여운 사람이다. 또 손주들과 놀아 주는 것을 좋아하며 딸에게도 한없이 다정한 스윗한 노인이기도 하다. 딸은 그렇게 늙어온 아빠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러던 중, 아빠의 기억력이 점점 감퇴하고 더 이상 환자 진료를 보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게 된 딸은 아빠와의 이별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알츠하이머로 엄마를 상실한 경험을 공통으로 갖고 있는 딸과 아빠는 죽음과 이별을 또다시 겪어야 한다는 것이 더 두려웠을 수 있다. 딸은 아빠를 잃는다는 것을 몹시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그렇다면 아빠의 죽음을 회피하고 생각하지 않고 싶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딸은 다른 뱡향에서 죽음을 바라보자고 아빠와 관객들에게 제안한다. 그것은 아빠의 죽음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찍자는 것이고, 아빠 또한 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제안이 시작되자마자 감독은 정말로 아빠를 참혹하게 죽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쉬운 방법이 아니라 굉장히 디테일하고 어려운 방식으로 여러 번에 걸쳐 아빠를 죽인다.
감독은 아빠가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고 재현한다. 그러기 위해 아빠와 함께 스턴트 배우를 만나 차에 치일 때의 연기를 보기도 하고, 심장마비가 걸렸을 때의 연기는 어떤지 보고 배운다. 영화 안에서 딕 존슨이 죽음에 이르는 상황을 연출한 장면은 꽤 많고 기발하기도 하다. 길을 걷다가 무거운 물건의 머리를 맞고 즉사하기도 하고. 공사장을 지나치다 위험한 물건에 목이 찔려서 죽기도 한다. 그 연기가 어디까지는 딕 존슨이 연기한 것이고 어디서부터 스턴트 배우가 연기한 것인지를 모두 알 수 있다.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사람의 죽는 연기라니. 아이러니하고 때로는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죽음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수용하는 과정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을 외면하지 않고 충실히 겪어내려는 감독과 딕 존슨의 관계와 대화도 주목할 만하다.
영원하라, 딕 존슨
지갑을 어디에다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 내 집 문을 보고도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 병원에서 하는 기억력 테스트에서 제대로 답할 수 없는 것. 어떤 일을 기억하지 못해 대화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관계에 대한 추억을 잊어버리는 것.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판단하기 어려워지는 것.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 죽어간다는 것. 영화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안에서 딕 존슨이 죽음과 가까워지는 실제의 순간들이란 위와 같은 것들이다.
딸의 인생에서 어려운 순간마다 좋은 조언자 역할을 했던 딕 존슨은 이제 그런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그의 깜찍한 발상으로는 자신이 이제 딸의 동생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 딸과 잠시 떨어져야 하는 상황에서 이제 그는 눈물을 흘리고 무서워한다. 자신의 고유성을 잃어간다는 것이 유쾌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딕 존슨과 딸은 그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서로를 외롭게 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쓴다. 돌봄이 필요한 자신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일 때까지 두 사람은 끊임없이 대화하며 슬퍼지지 않기 위해 유쾌한 방법을 찾아나간다. 그것은 어떤 위안을 남긴다.
아마도 딕 존슨은 2019년 6월 23일. 심정지가 와서 사망한 것처럼 영화에서 그려진다. 감독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내레이션을 녹음했던 옷장에서 “내가 아는 건 딕 존슨이 죽었다는 거다. 내가 할 말은 딕 존슨이 죽었다는 거다”라는 말을 입으로 뱉어본다. 그러는 동시에 감독은 그가 영원하기를 염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옷장을 나가면 딸을 반겨주는 딕 존슨이 서 있다. 아마도 딕 존슨이 살아있을 때 미리 찍어둔 장면이겠지만. 이 영화 안에서 딕 존슨은 감독의 염원대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인생은 초콜릿 퍼지 케이크와 같은 것
딕 존슨은 초콜릿 퍼지 케이크를 매우 좋아한다. 그가 행복한 시간에는 언제나 초콜릿 퍼지 케이크가 등장한다. “딕 존슨은 죽기 전날 초콜릿 퍼지 케이크를 세 조각이나 먹었다.”라는 문구가 영화 안에 나올 정도이다. 감독은 초콜릿 퍼지 케이크를 마음껏 좋아할 줄 아는 사랑스러운 아빠에게 기쁜 순간 늘 초콜릿 퍼지 케이크를 선물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다.
이별을 경험해야 한다면, 하지만 두렵다면. 마주하기 싫은 고통을 유쾌하고 낭만적으로 접근한 영화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를 추천한다. 나도 아직 체념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나도 이 감독이 낸 용기와 비슷한 것을 내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초콜릿 퍼지 케이크 같은 것을 마음껏 먹어보는 것부터 함께 하자고 그에게 제안해 보면 어떨까 싶다.
[필자 소개] 변규리. 2016년부터 ‘연분홍치마’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첫 장편 연출작인 통신설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팟캐스트 방송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Play On〉(2017)을 연출. 두 번째 장편으로 “성소수자 부모”라는 정체성을 마주한 두 여성의 성장 서사를 그린 〈너에게 가는 길〉(2021)을 연출했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소개] 2004년 설립된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소통과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다양한 현장에서 미디어로 연대하며 다큐멘터리, 극영화, 웹컨텐츠 등을 제작하고 있다. pinks.or.kr
이 기사 좋아요 10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다큐멘터리 감독이 추천하는 영화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문화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