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처벌법」이 제정, 시행된지 이제 3년이다. 스토킹이 범죄로 인지되고 처벌되는 현실을 맞이했다. 과연 피해자들은 이 변화를 실감하고 있을까?
한국여성민우회는 법 제정 3주년을 맞아, 민우회 소속 5개 성폭력상담소의 최근 3년(2021년~ 2023년)의 스토킹 상담 통계를 분석했다. 총 88건의 상담건수와 339회의 상담에 대해 상담일지를 확인하며, 상담분석틀을 만들어 진행한 분석이다. 이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 〈스토킹 상담통계 및 피해자·주변인 인터뷰 분석 토론회 - 스토킹은 우리를 고립시킬 수 없다: 다음을 바꾸는 공동체의 실천〉이 11월 5일 저녁 열렸다.
스토킹처벌법 3년, 여전히 홀로 고군분투하는 피해자들
스토킹 상담사례 분석에 따르면 “피해자의 성별은 여성이 93.2%, 가해자의 성별은 남성이 92%”로, 류벼리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상담 대부분 여성 피해자-남성 가해자 구도가 있었다”고 했다. “피해자-가해자 관계 중 87.5%가 아는 사이였으며 그 중 61.4%가 친밀한 관계였고 그 중에서도 전 애인이 52.3%”였다. 또, 스토킹 가해의 범위는 피해자(93.2%) 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가족 20.5%, 친구, 선후배 등 지인 14.8%)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피해 유형은 “폭언 및 폭행이 37%로 가장 높았고,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유포, 협박도 25.9%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스토킹 행위 유형을 살펴보면, 가장 많은 게 “전화, 문자, SNS, 카톡 등 글·말·부호·그림·영상이 나타나게 하는 행위(70.5%)”였다. 류벼리 활동가는 “피해자에게 수백 통의 전화와 문자를 발송하는 것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연락을 받지 않으면 발신번호표시제한으로 연락하거나, 회사 다른 동료들과 법인 메신저 연락처로 연락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 다음은 “주거, 직장, 학교 등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기(39.8%)”로, 류벼리 활동가는 “피해자를 지켜보는 행위는 오프라인 상에서만 이뤄지지 않았으며, 이별 후 피해자의 카톡 프로필,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지켜보면서 다른 남성과 친해지는 것 같으면 위협적인 메시지를 발송하는 등 온라인에서 피해자의 활동을 지켜보는 것 역시 해당됐다”고 덧붙였다. 이어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26.1%), 주변에 피해자에 대한 소문 내기(19.3%), 선물, 돈 등의 물건을 피해자 부근에 놓는 행위(온라인송금포함) 17%” 등이 있었다.
가해자의 목적은 “연애 종료 후 만남요구(36.4%)가 가장 높았으며, 보복 및 괴롭힘(25%)과 금전요구(10.2%), 일방적 구애(5.7%) 등”이었지만 “미파악 또한 36.4%”였다. 류벼리 활동가는 “상담 자체가 단회 상담이어서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지만, 목적이 보이지 않는 행위를 지속하는 가해자도 있었고, 피해자와 관계를 재개하고 싶다는 요구 없이도 피해자를 통제하기 위해 피해자의 일상을 파괴하는 일들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스토킹 처벌법이 마련됐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개인대응(64.8%)을 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경찰신고(34.1%), 형사고소(18.2%)도 물론 있었지만, 홀로 해결하고자 하는 비율이 높게 나온 것”이다. 류벼리 활동가는 “스토킹 피해자들은 내가 겪고 있는 피해가 가족, 지인, 직장동료들에게 확장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공동체적 해결을 도모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분석했다.
온라인 세계로 침투한 스토킹…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국여성민우회는 ‘스토킹 피해자와 그 주변인’을 온라인으로 모집해, 각각 8명과 6명을 별도로 인터뷰했다. 김제이 활동가는 피해자들이 겪은 피해가 “짧게는 몇 개월에서 10년인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또한 이들의 피해 유형은 “매우 다양”했고, 어떤 피해는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어 보이거나, 그 이전 단계인 스토킹의 경우 피해로 인정되지 못하거나, 피해 정도의 심각성이 무시”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피해는 ‘나를 집 앞에서 기다렸다, 나한테 문자를 보냈다, 나를 지켜봤다’ 이런 몇 문장으로 표현이 안 되는 감정들이거든요. 지속적이고 그 지속적인 것에서 오는 걱정, 무서움 이런 것들도 많았죠. 그러니까 내가 언제까지 두려움에 떨어야 할 것인가 기약 없는 게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박지희)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한 지점은 “끝이 없다는 느낌, 언제까지일지, 어디까지일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10년 동안 드문드문 하지만 완전히 끊이지 않고 오는 연락, 1년에 한 번 배송되는 익명의 우편물, 잊을 만하면 SNS 계정에 찾아와 흔적을 남기는 것 등의 상황은 가늠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스트레스”가 된다. 스토킹 피해는 “언제 어디서나 일상의 평온함이 박탈되어 있다는 감각을 남긴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삶을 변동시키고 위축”시킨다. 가해자의 협박으로 “주변에 ‘폐 끼치는’ 것이 미안해서 주변 관계망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주변인들이 가해자의 협박이나 괴롭힘에 못 이겨 피해자와의 관계를 단절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피해자가 가만히 있는 건 아니다. “적극적 대처는 피해자가 본인의 삶에 일정 정도의 통제력과 주체성을 지키도록 하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비용과 고립/감, 스트레스, 피로를 유발한다”고, 김제이 활동가는 설명했다.
스토킹 가해의 또 다른 양상은 “온라인 세계로도 침투”했다는 점이다. “피해자의 온라인 공간에 온갖 경로도 침투해 들어”온다. “’피해자의 SNS 계정에 공개적으로 또는 DM으로 연락하기’, ‘피해자나 주변인이 볼 수 있는 계정의 프로필 사진을 피해자 또는 피해자를 암시하는 이미지로 변경하기’, ‘데이팅 어플에 피해자 사칭 계정 만들어 피해자에 관한 허위사실 및 개안정보 유포하기’ 등등”. 이를 설명하며 김제이 활동가는 “일상 생활의 많은 부분이 온라인 기반으로 옮겨감에 따라 피해의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제가 느낄 때 불안한 건 (오프라인 피해와) 똑같다고 생각하거든요. (…) 그 사람이 나를 폭행하거나 성폭행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그럴 수 있다는 불안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 스토킹이라고 생각하는데, 계속 따라다니는 거잖아요. 제가 원하지 않는데, 그걸 온라인으로만 한다고 해서 그런 불안이 없지는 않거든요. 이 사람이 언제든지 오프라인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불안이 있어요. 온라인으로 당해도 너무 무서운 것 똑 같은 것 같고 다른 점은 도움을 요청할 떄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달라지는 것 같거든요. (…) 온라인으로만 쫓아다니면 ‘네가 실제로 받은 피해가 없지 않냐, 네가 인터넷을 안하면 되지’ 이런 식의 반응만 나오고, ‘네가 무시하면 되잖아’ 약간 아직까지 이런 분위기인 것 같아요.” (장나래)
김제이 활동가는 “작년 7월에야 스토킹 처벌법에 온라인 스토킹이 행위 유형 중 하나로 추가”되었지만, “그럼에도 상담지원 현장에서는 최근에도 경찰이 온라인 스토킹 사건 접수를 안 받으려 했다는 사례를 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처신을 똑바로 못해서’? 성차별적 통념도 한 몫
피해자들을 힘들게 하는 건 가해자뿐만이 아니었다. 법제도가 아직 다루지 못하고 있는 스토킹 범죄의 다양항 유형, 그리고 스토킹 범죄를 대하는 사람들의 통념과 인식도 큰 걸림돌이었다.
김제이 활동가는 “처음엔 문제적이지 않은 호의의 표현에서 시작하여 스토킹으로 발전하는 경우, 피해자가 본인의 감각에 대한 확신이 어려운 구간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유튜버, 인플루언서, 연예인, 공연예술가, 정치인, 영업직 등 불특정 다수에게 연락처나 동선이 노출되고 다수의 관심과 반응을 모아야 하는 직종에 종사할 경우, 누군가의 어떤 표현에 감사를 표하거나 거부를 표할 경계선을 어디에, 어떻게 그을지 고민스러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하루 수백 통의 전화나 문자 연락, 집요한 구애 행위, 물리적 위협이라는 전형적인 스토킹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고, 피해자도 이러한 통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며 “스토킹이 특별한 사람에게나 일어나는 비일상적 일이라는 통념 역시 피해자가 자신이 경험하는 일을 스토킹 피해로 해석하기를 주저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통념은 “피해를 주변에 알리기 어렵게” 하고, “지지는커녕 오히려 ‘처신을 똑바로 못해서’ 이런 일을 자초했다는 비난을 받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김제이 활동가는 “이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만연한 현실을 고칠 수 없는 기본값으로 두고, 조심하지 않은 피해자를 탓하는 사회적 분위기 영향”이라고 짚었다.
조력자가 둘 이상이어야…공동의 안전망 필요해
김제이 활동가는 “공동의 기준선을 끌어올리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모든 폭력과 마찬가지로 애초에 스토킹을 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스토킹 행위는 그것이 심각한 잘못이라는 인식과 법적 처벌로 어느 정도 억제 가능하다. 즉, 타인이 원하지 않는 연락, 만남, 관계 지속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여전히 중요하게 요구된다. ‘상대가 원치 않는 행위를 계속 하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진심이고 간절하든 간에 가해행위’라는 대원칙이 공유되어야 한다.”
또한 “타인의 거절의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더하여, 개인정보와 사적 영역에 대한 경계선 설정도 보다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주변인의 역할도 중요하다. 피해자의 “조력자가 되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 김제이 활동가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조금이라도 털어놓았을 때 주변에서 가볍게 듣고 넘기지 않고 진지하게 반응한다면, 피해자의 상황 인지도 더 뚜렷해지고 이후의 대응 경험도 달라진다”고 했다. “‘그건 범죄다’, ‘네 잘못은 없다’, ‘너 혼자 다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함께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의 존재는 사건의 실제 해결을 도울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정신적 지구력에도 큰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중립적 판단자’, ‘갈등의 중재자’로 위치 짓는 태도”를 지양하라고 당부했다.
“폭력은 이미 기울어진 권력 구조에서 발생한다는 것, 피해자의 피해 증언은 그 기울어진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며 이뤄졌다는 것, 피해자가 미처 다 이야기하지 못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우리의 생각과 감정 역시 이미 그 기울어진 구조 속에서 영향 받아오고 있다는 걸 감각해야 한다. 폭력과 통제, 그리고 친밀한 관계에서의 권력 작동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 한다.”
조력자로서 “무리하지 않기 위한 선을 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김제이 활동가는 특히 “’독박조력’이라면 무리하기 쉽다. 조력자는 둘 이상이어야 한다. 동료, 친구들이든 지역사회든 경찰의 도움을 받든, 공동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폭력에 대한 공동 대응은 피해자 개인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모두의 안전을 위한 공동의 ‘책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며 “피해자가 결국 실망 속에서 공동체를 이탈할 때 피해자도, 해당 공동체도 더 안전하지 않은 상태가 된다”고 덧붙였다.
법, 제도의 변화도 필요하다. 김제이 활동가는 “현행 법의 ‘피해 대상범위’가 피해자와 피해자의 동거인 또는 가족으로 되어 있는데, 피해자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스토킹 피해 대상범위에 포함될 수 있게끔 피해 대상 관련 조항을 포괄적인 용어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한 “2021년 10월부터 2024년 8월까지 스토킹 범죄로 사건이 송치된 피의자 중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며, “이 중 17.9%만이 실형을 선고 받았고, 32.9%가 집행유예, 28.52%가 벌금형을 선고 받은 지점”을 짚었다. 김제이 활동가는 “법 위반 시 실형을 선고하는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가해행위 제재 조치을 위반할 경우의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토킹 피해 자체의 심각성을 형사사법기관도 적극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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