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원래 ‘지구별’ 것이니까

수도만 틀면 삼다수인 제주, 생수 소비 줄이기 캠페인

이경아 | 기사입력 2024/11/19 [10:42]

물은 원래 ‘지구별’ 것이니까

수도만 틀면 삼다수인 제주, 생수 소비 줄이기 캠페인

이경아 | 입력 : 2024/11/19 [10:42]

여성환경연대에서 주관한 제9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 “플라스틱으로 온 세상이 뒤덮이기 전에”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한 기사입니다. [편집자 주]

 

“목이 마를 땐 생수병을 사는 대신 개인 컵에 물을 받아가세요.” -지구별 약수터

 

이 약수터는 개인 컵이 있는 사람들에게 마실 물을 무료로 제공해주는 장소(카페, 식당 등)를 말합니다. 캠페인이 시작된 건 2019년 제주였고, 2020년에는 제주시 80여 곳의 ‘지구별 약수터’가 참여했습니다.

 

취지는 플라스틱 생수병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생수병을 이용하는 것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요? 그린피스 플라스틱 2.0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사용한 페트 생수병이 56억 개, 일렬로 세워 지구 14바퀴를 돌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 제주 서귀포시 가파도에서 플로깅(Plogging,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 사진. (출처: 지구별약수터)


어느새 플라스틱병에 담긴 물을 사서 마시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 그러나 밀도가 큰 물을 플라스틱병에 담아 유통시키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와, 수돗물의 700배 이상의 온실가스 배출. 최근에는 수돗물을 마시는 사람들보다 수십 배의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된다는 연구 보고도 있었습니다.

 

제주는 100m 밖에서 봐야 이쁘다? 섬 곳곳, 사방에 플라스틱 쓰레기

 

“제주도는 가까이 가봐, 사방에 쓰레기 천지야. 너 바닷가 바위틈 봐봤어? 쓰레기들이 말도 못 해.”

9년 전, 2015년 봄에 제주로 이사를 하고서 너무 좋아하는 제게 큰 오빠가 한 이야기입니다.

 

하루에 두 번 밀물 썰물이 반복될 때마다 바닷가에는 쓰레기가 퇴적됩니다. 겨울이 되어 북서 계절풍이 불고 폭풍이 심한 날이면 섬의 북쪽 해안가에는 마치 쓰레기 차가 와서 쏟아부은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의 쓰레기가 쌓이기도 합니다. 생수병, 음료수병, 포장재, 담배꽁초에 다양한 어구들까지. 대부분이 플라스틱 쓰레기입니다.

 

제주도로 이사 오기 전, 휴양지로 유명한 태국 남부의 작은 섬에서 3년 반을 살았습니다. 아름다운 곳이었고 여전히 그립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니 몇 가지 부분에서 삶이 참 윤택해져 행복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수돗물이었습니다. 수도꼭지만 틀면 언제든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는 생활이라니. 이런 저를 보고 또 큰 오빠가 말을 보탭니다.

“제주도는 수도 틀면 삼다수야.”

 

제주에서 사용되는 물, 공업용수 생활용수 할 거 없이 지하수가 기반입니다. 한 연구 조사를 보니 제주에서 우리가 퍼 올리는 물은 20여 년 천연 암반을 따라 정수된 지하수라고 합니다. 비가 땅으로 스며들어 20여 년 지하를 흐르다 온다는 건데요. 물론 제주도가 건강해야 그 곳을 돌아다니는 물도 건강하겠죠.

 

어쨌든 삼다수가 좋다면 지하수를 기반으로 하는 수돗물도 당연히 좋을 수밖에요. 제주 상하수도본부 연구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돗물은 물이 아무리 깨끗해도 소독약을 넣어야 하는데, 워낙 원수가 좋아 정수장에서도 약품 처리가 적다고 합니다.

 

▲ 애월 해안 쓰레기. 대부분 플라스틱이다. ‘제주에서 사용되는 물은 천연 암반을 따라 정수된 지하수라는데, 왜 제주 사람들조차 플라스틱병에 담긴 생수를 사서 마실까?’ 우리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했다. (출처: 지구별약수터)


“환경 생각해서 다른 쓰레기는 줄이는데 생수병은 어떻게 줄일 수가 없네.”라던 어느 환경 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랐던 것이 제주 생수병 문제에 대한 고민의 시작이었던 거 같습니다.

 

통계 자료를 찾아보니 제주도에서 수돗물을 음수로 사용하는 비율은 10%도 되지 않고, 커피나 차, 음식에 넣어 이용하는 음용률이 50%대라고 합니다. 제주 사람들도 정수기나 플라스틱병에 든 물을 사서 마시고 있다는 거죠. 큰 행사장에 가보면 트럭으로 실려온 엄청난 양의 생수병들, 회의를 가도 테이블마다 플라스틱 물병이 준비되어 있곤 합니다. 천연암반수가 플라스틱병에 포위당하고 있습니다.

 

환경캠페인 공연단 ‘BYE BYE 플라스틱~’ 캠페인송으로 출발

땅을 파지 않고도 찾아낸, 80여 곳의 ‘지구별 약수터’

 

‘지구별 약수터’는 2019년 1월에 일곱 명의 직장 여성들이 만든 단체입니다. 처음 캠페인송을 만들고 환경 문제와 실천 방법에 대해 함께 공부하며 거리공연을 할 팀을 모집했습니다.

플라스틱 오염 없는 건강한 내일을 함께 만들자는 ‘BYE BYE PLASTIC BAG’. 우리의 첫 번째 캠페인 송이었습니다. 춤과 노래라는 소재 다양한 연령의 분들이 참여하는 계기가 되어, 20대부터 80대까지 구성된 지구별 공정여행 캠페인 공연단은 동문시장과 탑동 거리에서 바이바이 플라스틱을 노래하며 함께 춤추었습니다.

 

▲ 여성환경연대에서 주관한 제9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 “플라스틱으로 온 세상이 뒤덮이기 전에” 중 이경아 지구별약수터 대표의 강연 모습.   © 여성환경연대

 

그 해 5월, 제주시가 생활 속 문제들을 시민들이 직접 풀어보도록 돕는 ‘리빙랩’을 진행했는데, 당시 서툴렀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저희는 지구별 약수터 캠페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참여했습니다.

 

팀원들은 시민운동이나 체계적인 캠페인 활동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습니다. 전문가로 구성된 멘토의 의견은 응원도 많았지만 ‘착한 아이디어에서 끝날 일’이라고 걱정하셨던 분들도 계셨습니다. 한 분은 ‘될 수 있는 일을 기획해야 한다’고도 하셨는데요. 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라는 말이었던 거 같습니다. 전문가만이 아니었습니다. 유일하게 알고 지내던 카페 사장님 한 분은 자신은 그 캠페인에 참여할 마음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먼저, 지역의 생수회사에 제안을 했습니다.

‘최소한 제주도 내에서만이라도 페트병에 물을 담아 팔지 말고 다른 방법들을 찾아주세요.’

재사용하는 벌크형 물통으로 물만 받게 한다거나, 불편함을 더해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시민들도 함께 고민하도록 유리병을 사용한다거나 하는 우리의 제안은 예상대로 씨알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음수대를 만들도록 제안을 하자, 마을 사업으로 공동 우물을 파자’ 등의 의견들도 나왔습니다. 사업을 벌일 돈도 없었지만, 되도록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지 않고 있는 것들을 이용하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땅을 파 약수터를 만들 필요가 없다. 우리 주변에는 안전한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들이 이미 충분히 많고, 여기는 인심 좋은 대한민국이 아닌가. 분명 우리의 생각에 공감해 주며 번거롭고 혹은 불편할 수 있는 상황을 감안하고도 함께 해줄 사람들이 곳곳에 있을 것이다’라고 믿으며 안전한 식수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곳, ‘지구별 약수터’를 찾아 나섰습니다.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2020년, 코로나19로 사회는 얼어버린 듯 했습니다. 접촉을 무엇보다 꺼리던 상황이었지만, 일과가 끝나면 마스크를 쓰고 버스를 타고 또 걸어다니며 제주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습니다. 어쩌면 일상의 소중함, 환경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밖에 없던 팬데믹 시기였기에 더 열심히 매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제주 곳곳을 헤매고 다녔던 그 5-6개월, 힘든 일도 많았지만 함께해 줄 동료들을 만났던 가슴 벅찼던 때로 기억합니다.

 

그 해 우리는 제주시에서 80여 곳의 지구별 약수터를 찾아냈습니다.

 

▲ 지구별 약수터 로고가 붙은 가게 모습.  (출처-지구별약수터)


지구별 약수터 수질검사 결과는 모두 ‘합격’

과연 캠페인은 성공할까, 아니면 착한 아이디어에서 끝날까?

 

카페나 매장이 마실 물을 제공한다는 이야기에, 그 물은 어떤 물인지, 어디서 가져온 좋은 약수인지 문의가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수돗물을 바탕으로 한다는 이야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제주 지하수가 좋아서 수돗물도 원래는 좋다는 거 안다. 그런데 수도관이 문제 아닌가? 오래된 집들, 오래된 관들이 있는 곳은 물이 좋을 수 없다.’

 

식수로 마시기에 적합지 않다는 제주 수돗물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에 새삼 놀랐습니다. “저는 수돗물 마십니다.”와 같은 말로 대응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상하수도본부에 협조 요청을 해서 약수터 캠페인에 참여하는 카페들의 수돗물 수질 검사를 했습니다. 수돗물에 대한 염려는 카페 운영자 분들도 마찬가지여서 혹시 부적합 판정 나오면 장사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시던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검사결과는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오래된 건물이 많은 구도심의 카페를 포함해 참여한 모든 카페의 수돗물이 마시기에 충분히 좋은 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도 40년이 더 된 집인데요. 역시 검사를 해 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후 ‘우리집수돗물안심확인제’라는 수돗물 수질 검사를 무료로 해주는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막연히 수질 걱정으로 수돗물 음용을 꺼리는 분들을 만날 때면 검사를 받아보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캠페인의 공감하고 수돗물을 음용수로 이용하면서 생수를 안사는 것만으로도 삶이 무척 단순하고 깔끔해졌다며 감사의 말씀을 전해 오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지구별 약수터에서 주는 물이 마시기에 충분히 좋은 물이라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캠페인이 활기를 띠게 되었을까요. 카페 수돗물이 좋은 건 안심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시민들이 약수터를 이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민폐를 싫어하는 국민 정서상, 돈 안 내고 물만 받아가려고 카페에 들어가는 것은 좀 어색합니다. 마음 편하게 물 한 병을 사는 것이 쉽습니다. ‘착한 아이디어일 뿐이라던 전문가들의 의견은 이런 것을 예상했구나.’ 제 서울 지인 중 한 분은 심지어 혐오스러운 캠페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멈출 이유가 없었습니다. 캠페인 확산을 위해 시민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어디든 아름다운 제주에서 ‘상상’은 참 쉽고 즐거운 일이라, 캠페인에 참여하는 카페 사이를 함께 걷는 ‘지구별 약수터 가을 여행’, 공간이 큰 지구별 약수터(카페)에서는 장필순 님과 함께 공연도 하고, 약수터마다 시그니처 메뉴로 프로그램도 하고, 2021년부터는 제주도 곳곳의 지구별 약수터 사이를 걸으며 쓰레기도 줍고 약수터에 들러 물도 마시는 ‘지구별 플로깅여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 여행을 오신다면 매주 주말에 진행되는 플로깅여행에 한 번 참여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 2019년 지구별 가을여행 때 찍은 사진. ‘우리는 모두 지구별 여행자들. 공정여행을 하고 가자.’ (출처-지구별약수터)


2024년, 지구별 약수터 캠페인은 진행 중입니다. 이용자는 여전히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생수시장은 점점 확대되어 2023년, 2010년 대비 시장 규모가 8배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실패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플라스틱 오염 없는 지구를 위해 노력하는 많은 단체, 활동가들의 활동이 당장의 수치화된 결과를 만들지 못했을지라도, 탄소배출 문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병 속 미세플라스틱 문제 등 사회에는 생수병 소비에 대한 의문점이 커가고 있습니다. 그 흐름 어딘가에 우리들의 작은 물방울도 있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결실은 캠페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성장이 아닐까 합니다. 많은 상상과 시도, 다양한 의문과 반대, 크고 작은 성공, 실패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진해져 가는 걸 느낍니다.

 

우리는 모두 지구별 여행자들, 공정여행을 하자

 

인구 증가, 자원남용, 환경 파괴로 개발을 이어간다면 100년도 안가 지구는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는 ‘성장의 한계 보고서’가 나와 세계에 충격을 안겨준 지 50년이 더 지났습니다. 그 사이 인구는 두 배가 되었습니다. 우리 각자는 더 많은 에너지, 더 많은 자원, 더 많은 물을 사용합니다. 마르지 않을 거 같던 제주의 지하수도 점점 지하수 수위가 낮아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중산간이 개발되고 빗물이 오염물질을 녹여내 숨골을 통해 지하로 흘러듭니다. 대부분의 물을 지하수에 의존하는 제주로는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 의존하며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나의 생각이 온전히 나 개인의 창작이 아니듯, 인류가 이룬 부 역시 지금 그 부를 소유한 특정 집단, 개인의 소유일 수 없습니다. 하물며 이 자연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구를 다녀가는 여행자일뿐 지구의 창조자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여행이 같은 시간을 여행하는 다른 많은 생명들과 나중에 올 지구별여행자들에게도 공정한 것이길 바랍니다.

 

[필자 소개] 이경아.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 기후변화 강사. 제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민단체 지구별약수터 대표.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행동하는 시민의 힘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생활 속 친환경 습관 만들기 캠페인에 관심이 많다. 지구별약수터 캠페인, 바담깨비 캠페인(해양 폐부표를 이용해 만든 담배꽁초 휴지통을 담배꽁초가 많이 버려지는 해안가나 상가 앞에 설치하고 시민봉사자들과 함께 관리하는 담배꽁초 무단투기 금지 캠페인), 호텔 폐시트 활용하여 만능손수건 캠페인, 환경캠페인 송 제작 등, 다양한 친환경 생활습관 만들기 프로젝트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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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사랑 2024/12/02 [04:00] 수정 | 삭제
  • 쓸데없는 시간 낭비 하지 말고, 플라스틱을 무공해, 친환경적으로 처리할수있는 기술적인 처리시설이나 연구하던지, 개발을 공공기관에 독촉해라.
  • 레즈커플로 태어난 북극성커플 2024/11/23 [14:40] 수정 | 삭제
  • 물이 생명의 근원이라면 여성은 생명 탄생의 근원이다
  • 정재익 2024/11/22 [20:43] 수정 | 삭제
  • 어릴적.. 그러니까 국민학교때 여름에 목이 마르면 아무 구멍가게에 들어가 물을 얻어먹있습니다. 열살도 안된 어린 나는 문득 "나중에는 물을 병에 담사 팔면 되겠네"라는 생각을 했었죠. 다행히도 저는 운나쁘게도 봉이 김선달이 되지 못해 운좋게도 행복합니다. 아마도 돈이라는 볼성사나운 것에 현혹된 사람들이 운이 나쁘게 돈을 벌고 말았습니다. 저는 운이 좋습니다. 최소한 지구에게 그만큼 미안한 죄를 짓지 않았으니 말이죠.
  • 뭍에사는사람 2024/11/21 [13:54] 수정 | 삭제
  • 지하수 수질 검사 결과가 음용에 적합하다고 나왔다니 부럽네요.. 생수 사서 마실 이유가 없는데.. 캠페인이 많이 알려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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