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특별법의 한계, 한국 성매매 산업의 현재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불처벌의 정치학” 기획연재⑤

김주희 | 기사입력 2025/01/24 [15:40]

성매매특별법의 한계, 한국 성매매 산업의 현재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불처벌의 정치학” 기획연재⑤

김주희 | 입력 : 2025/01/24 [15:40]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된 2004년을 복기하며

 

얼마 전에 해가 바뀌었지만 2024년을 복기해보고자 한다. 실은 2004년을 복기해보고자 하는 의도다. 2024년은 성매매특별법(이하 성특법) 제정 20주년이면서,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이하 이룸) 설립 20주년의 해다. 2004년이라는 시점은 여성주의 반성매매 운동의 역사 혹은 성판매여성 인권운동의 역사와 관련해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 “어떤 이유로도 성매매 여성 처벌은 정당화될 수 없다!” 불처벌을 요구하는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의 피켓. (이룸 제공)


한국에서 성매매 문제가 여성주의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역사는 오래지 않았다. 그 시점은 대략 원미혜의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학위 논문(1997)이 나온 시기인 1990년대 후반으로 볼 수 있다. 여성운동계에서 ‘윤락’이나 ‘매매춘’ 대신 ‘성매매’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고작 2001년이었다.(정미례, 2003)

 

1980년대 초반 막달레나의 집, 두레방 등 쉼터 운동으로 시작된 ‘매춘여성’ 인권운동의 역사가 있지만, 당시에 이들은 종교적 맥락에서 활동을 이어갔고 적극적으로 여성주의 언어를 차용하진 않았다.(민경자, 1999) 한편, 민주화 이후 조직화된 ‘진보적’ 여성운동계는 ‘매춘여성’과 다사다난한 일상을 함께하는 이러한 쉼터 운동과는 또 다른 경로를 통해 성매매 문제와 접속했다. 2000년 9월 군산 대명동 성매매업소 화재참사가 그 계기였는데, 이들은 집결지에 감금되어 희생된 여성들을 중심에 두고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기적으로 보았을 때 성특법이 제정된 2004년은 성매매 문제를 둘러싼 여성주의적 쟁점이 충분히 토론되지 못한 시점이었다. 또한 대표성과 관련해서 생각했을 때, 당시 성을 판매하는 여성 내부의 차이도 주요한 쟁점이 되지 못했다. 그 결과, 한국 성매매 산업의 특수성에 대한 여성주의적 인식도 희박한 채 개인을 보호하거나 처벌하는 활동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당시 여성운동계가 성매매를 전지구적 보편성의 문제로 인식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노동 착취로부터 이윤이 발생함을 상기할 때 성착취와 성노동은 큰 틀에서 그 의미가 다르지 않지만, 성노동만이 한국어로 유독 금기어가 되었다. 하지만 두 의미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관한 논의 역시 공백이었다.

 

동시에 서구를 위시한 글로벌 담론장에서 sex work이라는 단어가 훨씬 자유롭게 사용되지만, 이 개념으로 포스트식민주의적이며 초자본주의적인 한국에서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는 역시 의문이다. 해외에서 (실은 서구와) 소통하려면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둥 한국의 지식장과 활동장에서는 이중의 무책임만 넘쳐났고, 자발적으로 성을 판매하는 여성에 대한 처벌 조항을 남겨둔 문제적인 성특법의 시간은 흘러만 갔다.

 

여성운동계 내부의 ‘다른 목소리’도 등장하였다. 2004년 이룸은 여성운동 내부의 차이를 가시화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이룸은 20년 전 여성단체에서 이루어진 동료활동가에 대한 일방적 해고에 집단 저항하며 조직되었다.(이룸 홈페이지, ‘이룸 10년사’ 참고) 이룸은 그 시작부터 활동단체의 조직구성 문제와 활동가들의 노동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성매매 문제에의 여성주의적 개입은 요원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룸의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운영 원칙은 때로 활동의 속도를 더디게 했지만, 또한 시간을 거듭하면서 형식적으로 조직구성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져 왔지만, 이를 통해 운동과 담론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는 시간과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 성매매특별법 제정 20주년이자, 단체 창립 20주년을 맞아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이 2024년 9월 26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개최한 “불처벌의 정치학” 토론회 중. 김주희 덕성여자대학교 교수의 토론 모습. (이룸 제공)


성특법 제정 20주년의 시간에 이룸은 ‘불처벌의 정치학’에 대한 토론을 제안하였다. 이는 우리가 개입하는 현재 반성매매 운동에 대한 성찰적 고민을 게을리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다시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제안한 ‘불처벌의 정치학’은 여성주의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고, 무엇이어야 하는지 소견을 덧붙이는 것이 미약하나마 이 글의 역할이 될 것이다.

 

개인의 수요-공급 담론과 여성 피해자화 담론의 틈새에서

‘여성주의 불처벌의 정치학’이라는 화두

 

불처벌의 정치학은 성을 판매하는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서 ‘언제나’ 처벌되어 온 역사로부터 출발한다. 이때 처벌은 사회적, 도덕적 처벌과 연동하는 법적 처벌을 의미한다.

 

나아가 불처벌의 정치학은 성을 판매하는 여성과 이 여성들을 징발하여 이윤을 창출하는 산업구조를 구분하여 사고하고, 여성을 고립화하는 처벌이 성산업을 확대 재생산하는 동력이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때문에 여성 불처벌 전략을 통해 성산업의 이윤 창출 구조를 타격하되, 여성의 탈성매매를 전제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성산업의 동인은 여성을 불법화, 낙인화하며 전개되는 여성 매춘화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특법의 제정 이래, 성매매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개인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처벌이 강조되었다. 그 한편에 남아있는 여성 처벌 조항으로 인해, 이 법을 ‘반쪽짜리 법’이라고 평가하는 것조차 과분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가시성 있는, 동시에 가장 빈곤한 삶을 영위하는 여성들이 모여있던 성매매 집결지만 쓸려나가고 거대한 규모의 성시장은 눈에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하지만 성구매자를 타깃하여 처벌하자는 ‘수요 차단’의 논리는 성매매 문제를 개인 간 수요-공급의 문제로 보는 관점을 강화한다.(김주희·황유나, 2024) 북유럽식 성구매자 처벌 제도를 이식하자는 ‘노르딕 모델’은 북유럽 사회의 높은 여성 고용률로 인해, 현저하게 적은 수로 유지되는 성판매 여성들의 수적 차이를 드러내지 못한다.(박정미, 2022) 다른 한편, 현재의 성노동 운동은 ‘한국 남성’의 성문화와 이들이 형성하는 성시장의 특수성 앞에서 한없이 빈약한 설명력을 갖는다.

 

이룸은 자유주의 수요-공급 담론과 여성 피해자화 담론의 틈새에서 ‘불처벌’이라는 여성주의 반성매매 정치를 제안하였다. 그것은 “한국 성매매 산업의 현실에 기반해 여성주의 정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시도”로 정의된다.(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2022)

 

▲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은 성매매에 관한 ‘자유주의 수요-공급 담론’과 ‘여성 피해자화 담론’의 틈새에서, ‘불처벌’이라는 여성주의 반성매매 정치를 제안하였다. 2022년 11월 24일, 홍대 다리소극장에서 열린 『불처벌-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사회에 던지는 페미니즘 선언』(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기획, 휴머니스트, 2022) 북토크 행사 참여자들. (이룸 제공)


나는 책 『레이디 크레딧』의 많은 분량을 한국 성산업의 특수성을 설명하기 위해 할애하였는데, 성특법이 제정된 이후 오히려 강남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대형 성매매 업소가 더욱 우후죽순 등장했다. 성특법 제정과 무관하게, 2000년대 신용대란 이후 유흥업소는 대형 성매매 업소 창업을 지원해주는 대출상품을 활용하였고, 한국에서 전례 없이 대형화된 성매매 업소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지적으로 게으른 이들은 이에 대해, 한쪽(집결지)을 누르니 다른 쪽(대형 업소)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효과’라고 말하겠지만, 이러한 시각은 ‘한 번 성매매 여성은 영원한 성매매 여성’이라는 관점을 내포한다. 성매매 문제가 다양한 사회문제 및 경제구조와 얽혀있다는 것에 대한 몰이해는 성매매 문제를 ‘성을 판매하는 여성’의 문제로 치부하고, 법의 제정과 처벌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이해하도록 만든다.

 

성매매특별법 제정 20주년을 지나는 시점에서, 성특법 제정의 후과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있어야 하며,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는 여성주의적 전략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재고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이룸 홈페이지 https://e-loom.org

-김주희·황유나(2024), “‘성매매는 성착취’ 구호에 대한 여성주의 비판”, 『한국여성학』 40(1): 213-247.

-민경자(1999), “한국 매춘여성운동사”,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엮음, 『한국 여성인권운동사』, 한울아카데미. 

-박정미(2022), “같은 전략, 다른 결과? 스웨덴 성구매처벌법과 한국 여성운동”, 『한국여성학』 38(3): 215-249.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2022), 『불처벌』, 휴머니스트.

-원미혜(1997), “한국사회의 매춘여성에 대한 통제와 착취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정미례(2003), “자발과 강제의 이분법을 넘어서”, 정희진 엮음, 『성폭력을 다시 쓴다』, 한울 아카데미.

 

[필자 소개] 김주희: 여성학자,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이사. 한국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동원해온 금융, 문화, 제도, 국제정치에 관해 연구한다. 『레이디 크레딧』의 저자이며 『불처벌』,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등을 함께 썼다. 황유나와 함께 번역한 『페미니즘으로 부채 읽기』가 곧 출판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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