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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요약이 쉽지 않다. 그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의 요약된 메시지라기보다는 독서 과정에서 얻게 되는 감각 그 자체일 때 요약은 무의미해진다. 모호한 사유, 모호한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저자는 모호한 감각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내길 제안한다. 독자는 책 속에서 헤매며 길을 잃고 같은 곳을 반복해서 맴도는 경험을 하게 되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책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감각에 익숙해질 때다.
『어두운 생태학』은 여러 면에서 길 잃기에 적합한 책이다. 티모시 모턴은 데카르트, 칸트, 헤겔, 니체, 하이데거와 같은 서양 철학 대가들의 개념과 사유를 ‘이 정도는 다 알지?’를 전제한 채로 조립하고 망가뜨리며 자기 식대로 놀이한다. 객체지향 존재론, 사변적 실재론, 신유물론 등 현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적 흐름을 숙지하고 있지 않은 독자라면 어려운 개념들에 위축되기 쉽다.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 등 여러 과학 개념과 다양한 시대의 영화, 음악, 문학, 미술 작업이 예고 없이 등장할 때마다 미주를 통해 책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 멈춘 곳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할 수도 있다. 많은 것들이 얽히고설켜 울창하게 뻗어나가는 아마존과도 같은 숲속에서 수많은 책을 지나쳐야 하는 독자에게 수수께끼 같은 말이 들려온다.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안으로 들어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며, 그래서 나는 내 접근법을 어두운 생태학이라고 부른다.”
최근 등장하는 생태적 사유의 흐름은 공통으로 인간 중심적인 관점과 개개인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일상적 직관과는 다른 세계를 감각하길 제안한다. 티모시 모턴은 상호 공존의 생태학을 친절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언어의 놀이 혹은 글쓰기의 형식 안에서 감각적으로 수행한다.
목차를 살피면 어두운 생태학이라는 감각적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첫 번째 실, 두 번째 실, 세 번째 실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실인 생태적 알아차림은 어두운 우울함으로 얽혀있다. 생태적 알아차림이란 우리가 우리 자신이 아닌 온갖 존재들에 의해 깊이 뒤덮이고, 둘러싸이고,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생태적 인식을 통해 어두운 생태학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내가 다른 것들과 더 많이 얽혀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건, 나를 포함한 세계가 더욱더 알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인식이기에 필연적으로 우울함과 만난다.
티모시 모턴은 서문에서 자신이 이 책을 출간하기 직전까지 빠져있던 우울함과 함께 이 책을 썼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어두운 우울함은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책과 함께 쓰인 글자들 속에 스며있으며, 그렇기에 결국 독자를 책 바깥으로 인도하는 힘을 품고 있다.
어두운 기묘함
생태계에 대한 죄책감과 무력감을 강조하는 허무주의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면, 두 번째 실은 독자를 어두운 기묘함과 만나게 한다. 고대 노르드어 어스(urth)로부터 유래한 ‘기묘한(weird)’이라는 단어는 비틀린, 고리 속에 있는, 운명의 실타래가 감기는 것, 인과적인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명사로서의 ‘기묘’의 의미로부터 전환, 돌림, 비틀림, 고리, 사건의 전환, 나타남의 낯섦이라는 연결고리를 발견하며, 이 용어 속에서 인과성과 미학적 차원 사이, 수행과 나타남 사이의 어두운 통로가 깜빡이고 있다고 말한다. 지배적인 서양 철학이 차단한 이 통로는 독자들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장소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법, 비논리성, 우연이라고 치부되어 온 수많은 순간이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의자가 아니다. 나는 테이블이 아니다. 나는 컵이 아니다. 나는 커피가 아니다. 나는 당신이 아니다. 나는… 내가 아닌 것이 아니다. A는 not A가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명제들을 의심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왔다. 아주 오랫동안. 그동안 이러한 문장들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 당연하게 들렸다.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나는 나일 수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성하는 경계를 눈으로 선명히 목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컵과 커피와 내가 앉은 의자와는 별개인 몸을 가진 나. 이러한 믿음을 따르는 여러 ‘나’들로 구성된 세계는 현재의 명제들을 증명하고 교정하면서 미래로 굴러간다.
모순율(矛盾律)은 어떠한 진술도 동시에 참이거나 거짓일 수 없다는 믿음인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위시한 서구 철학이 축적해 온 주된 사유의 흐름이었다. 더 나아가 티모시 모턴은 A가 늘 A 자신으로 있으려는 동일성의 원리가 어떻게 자신으로부터 자신이 아닌 것들을 배제하고 제거하기 위해 움직이며 자기 파괴의 경로를 개척하게 되었는지 지적한다.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초원에서 나무, 소, 옥수수, 마녀, 잡초를 제거해 온 폭력. 그것은 자신이 아닌 것과의 깔끔한 경계를 만들기 위해 광적으로 집착해 온 인간 역사의 폭력이었다.
고대에서 근대를 거쳐 서구 남성 철학자들이 이러한 믿음을 견고하게 다듬어왔다. 이것을 거부하거나 다른 감각을 제시하는 이들이 어떻게 호명되어 왔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미치광이, 마녀, 미개인, 유아, 미성숙한 인간, 그리고 여성. 이들은 A가 B가 되는 것을 보고 들었으며 또한 그것을 미리 알 수 있었다. 어딘가에 늘 존재했던 기묘한 목소리들은 논리의 무논리를 지적하며 자신을 불태우고 변화시켜 왔다. 수많은 가능성의 경로 속에서 A는 not A와 연결되어 있고, A는 not A로 변화하기도 하며, 연결된 수많은 명제의 연쇄 속에서 A가 A이면서 동시에 not A일 수도 있다는 비모순율의 명제는 항상 깜빡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에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으나 분명 실재하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이 ‘기묘함’이라고 말하며, 티모시 모턴은 우리가 이미 하나 이상의 시간 스케일 안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생태적 알아차림은 이러한 다중 규모의 시간성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그것은 지금 익숙한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두운 달콤함의 윤리학
“우리가 현재와 다른 사유를 원한다면, 사유는 예술을 향해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어두운 생태학으로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에서 언급하는 세 번째 실, 즉 어두운 달콤함은 더욱 기묘하게 들린다. 티모시 모턴이 말하는 세 번째 실은 시작과 끝이 이어진 기묘한 앎, 즉 낯선 고리를 바꾸는 윤리와 정치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달콤함은 다시 우울함과 연결된다. 사건의 범인도 나이고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도 나이다. ‘괴물들이 현존한다’는 메시지는 범인과 형사에게 동시에 도달한다. 그것은 우울하지만 동시에 즐겁다. 어두움과 기묘함을 통과한 달콤함을 고려한다면, 생태학적 알아차림 속에서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달콤함은 부정적 정동을 경험하는 힘에 가깝게 들리기도 한다.
세 번째 실을 서술하며 티모시 모턴은 우울증은 정확하다고 말한다. 갈망은 슬픔을 느끼게 하고 슬픔은 갈망을 느끼게 한다. 즐거움은 공포를 알게 하고 공포는 즐거움을 알게 한다. 그러니 우울증을 밀어내지 말고, 즐거움을 찾자. 어쩌면 생태적 앎은 허무주의나 낙관주의가 아니라 어두움을 통과하면서 겪게 되는 즐거움이기에, 저자가 말하는 어두운 생태학은 무언가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힘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죄책감, 수치심, 멜랑콜리, 공포, 우스꽝스러움, 슬픔, 갈망, 그리고 즐거움.
하나의 동심원으로 얽힌 시간성 안에서 깜빡이는 것들을 따라가며 뒤에 경험한 것을 잊지 않는 여행을 하는 오래된 존재. 이것은 일면 ‘다크 투어리즘’(전쟁, 재난, 역사적 비극이 일어난 장소를 돌아보는 여행)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다크 투어리즘에 대한 연상이 적합한 것은 이 책이 ‘소닉 액츠 프로젝트’(Sonic Acts project)와 함께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티모시 모턴은 2014년부터 3년간 예술가들과 함께 어두운 생태학이라는 예술 기획에 함께했다. 2014년 말 티모시 모턴과 음악가, 예술가, 작가로 구성된 소규모 그룹은 러시아 북부의 니켈 마을을 방문한다. 그곳은 합금을 만드는 데 유용한 니켈이 대량 매장되어 있어 니켈 제련소가 있는데, 그 공장에서 나오는 아황산가스는 주변의 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해 왔다.
구글에 찾아 보니 2020년에 그곳의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고 나오는데, 티모시 모턴이 예술가들과 방문한 2016년 ‘소닉 액츠 프로젝트’ 기록 영상을 보면, 이미 산업이 쇠락한 2010년대 중후반의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다. 니켈 제련소에 의해 황폐해진 숲과 이산화황에 의해 죽어가는 나무들, 낡은 집들과 건물들 속에서 이들은 조사하고 탐구하고 공연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무언가를 만든다.
티모시 모턴은 자신이 니켈 마을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곳이 아주 황폐하고 암울해 보였지만, 계속 있을수록 어떤 따뜻함이 생겼는데, 그건 니켈 마을과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자각하고 있다는 감각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즉,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유토피아적 상상 속에서 산다고 느끼는 것보다, 이러한 장소를 방문하고 자신의 삶 안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솔직한 감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티모시 모턴이 말하는 어두운 달콤함의 윤리학을 이해하는 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티모시 모턴의 『어두운 생태학』이 그저 막연한 생태계, 자연, 어떤 거대한 세계를 상상하며 써 내려간 것이 아니라, 특정한 장소가 당면한 생태적 문제와 역사성과 장소성을 염두하고 쓰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 책의 모호함과 어려움은 철학과 과학 개념들을 통해서 머리로 이해하며 돌파할 수도 있지만, 특정 장소의 생태 이슈들에 관심을 갖고 방문하고 행동하고 사유하면서 더 아래로 내려간 몸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자신의 삶과 맞닿은 현장으로 우회하며, 예술 작업으로 우회하며. 우회로는 종종 가장 정확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러시아 니켈에서 끌어 올린 감각적 지식, 기묘한 앎이 니켈 마을을 상상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저자 또한 변화시켰듯이, 목소리를 필요로 하는 특정 장소를 방문하고 연루되는 경험으로부터 독자 또한 이 책의 기묘한 앎을 더 깊이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소개] 전솔비. 시각문화 연구자. 정체성과 수행성의 문제를 연구하며 전시와 책을 만들어왔다. 동시대 현장에서 생산되는 이미지의 정치성과 예술적 실천을 탐구하며 예술가, 연구자, 활동가 동료들과 여러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난민캠프라는 현장을 만나며 〈연약한 기록들의 춤〉(신촌문화발전소, 2022), 〈캠프 사운드 커뮤니티〉(웹사이트, 2023)를 함께 만들고,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파시클, 2024)라는 책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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