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 도시 들어가 한국 발효요리, 김치, 타파스를 나누고[공연예술 독립기획자 고주영이 만나다] 마하키친 신소영(下)올해 2월 19일, 제3회 이영만연극상(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고(故) 이영만 씨의 어머니이자 연극배우 이미경 씨가 주도해 제정한 상) 시상식에 케이터링을 해주러 온 소영이 “곧 팔레스타인에 셰프 레지던시 가요.”하는 근황을 알려줬다. “그 팔레스타인...에 간다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구실로 팔레스타인 침공을 시작한 지 3년차에 접어들었으니.
“‘기후미식연구회’ 멤버의 소개의 소개로 참여하게 됐어요. 팔레스타인에서 한국요리를 가르쳐줄 영어가 가능한 셰프를 찾고 있다고. 가기 전에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어요. 전쟁 뉴스를 봤지만, 그보다는 미지의 세계에 가본다는 호기심이 컸어요. 다른 땅에서 나는 재료를 연구할 수 있는 셰프 레지던시에 관심이 있어, 이전에 일본 아와지섬에서도 참여한 경험이 있긴 했어요.
이번에는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에 있는 아트센터인 원더캐비넷 주최의 셰프 레지던시로 15일간 체류했는데, 하루하루의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충격이었어요. 입국부터 쉽지 않더라고요.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를 경유했는데, 심사 때 팔레스타인 간다는 말을 절대 해서는 안 되고, 짐은 일일이 다 열어서 검사하고, 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계속 울다가 어딘가로 이끌려 가더니 결국 돌아오지 않고….
막상 팔레스타인에 도착했을 때는 평화로운 순간들이 있었어요. 일단 자연이 너무 아름답고, 하루 다섯 번 이슬람 기도 소리가 들리고…. 워낙 땅이 비옥해 농작물이 풍요롭고 재료가 좋으니 본연의 맛을 살리는 지중해 요리와 비슷한 음식문화가 있고요.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하면서 살던 땅에서 쫓겨나 난민이 된 팔레스타인 이주민들에게 아랍 여성들이 식사를 해주면서 활동을 시작한 아랍여성연합도 방문했어요. 시장 어귀 한편에서 스무 명 되는 여성들이 식사를 만들어 학교에 제공하고 있더라고요. 아랍여성들이 ‘히잡’으로 인해 억압받는 이미지가 강한데, 워낙 ‘기쎈’ 언니들이래요.
전장이 된 지 70년 이상이 된 도시에서 한국의 전통 발효기법과 김치 만들기 워크숍을 하고, 지리적으로 해조류 식문화를 접해본 적 없으니 가져간 김으로 전을 부치고 타파스를 만들어 모임에 내기도 했어요.
집 앞에 8m 높이의 담이 세워져 있고, 자주 다니던 길에 갑자기 바리케이트가 쳐져 통행이 막히고, 초대받아 놀러간 집 옆에서 폭격이 터지는 땅에서 농사를 짓고 밥을 짓고, 예술이 흘러넘쳐요. 거기 분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고, 한국어도 잘 해서 놀랐어요.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돌아와서도 더 읽고 공부하고, 기회가 닿는 한 그곳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나누려고 해요. 팔레스타인 체류가 출국 때 문제가 될 수 있어서 못 올렸던 그때 일기를 뒤늦게 SNS에도 올리고 있고요.”
“요리하는 과정이 동경했던 예술가의 창작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예술은 여전히 동경하고 선망하는 대상이에요. 요리가 더 좋아서 떠나왔지만 제일 편견 없이 세상의 변화를 포용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이야기들을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예술 관련 행사나 자리에서 케이터링을 하면, 그 일원이 된 것 같아 뿌듯하죠.”
지금, 소영에게 예술은 뭔지를 물으니 돌아온 답이다. 그리고 소영은 자신의 책 『나를 만드는 바스크 요리』(니터, 2023)에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재료가 우선이고, 이 재료를 어떻게 표현하고 무슨 이야기로 전달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나에게는 동경했던 예술가의 창작과 다르지 않았다. (...) 밭은 영감의 천지다. (...) 좋은 예술교육자는 가르침을 말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배웠다.”
소영은 예술을 끊어내거나 단절하지 않았다. 예술에서 배운 ‘태도’를 가지고 땅을, 재료를, 사람을, 자연을, 세계를 대한다. 그리고 “내 삶의 예술은 요리였고, 그래서 요리사가 된 후에도 끝없이 질문 속에 살고 있”(마하키친 블로그 https://blog.naver.com/soyoung_shin)다고 말한다. 나는 어떻게 방향을 ‘전환’해야 하나를 고민하며 소영을 만났지만, 소영은 이르는 방법만 바꾸는 ‘변환’을 했을 뿐이다.
“근처에 가족이 가진 작은 산이 있어요. 그냥 방치되어 있어서 누가 갖다놨는지도 모르는 농업 폐기물로 가득했는데, 가족, 모임 사람들과 함께 천천히 정리해 나가고 있어요. 땅을 잘 회복하고 싶어요. 할머니들이 농사를 지었을 땅이 다시 건강해지도록. 저희가 ‘마하동산’이라고 부르는 그곳에서 다시 농사를 짓고 그 재료로 같이 요리해 파티하는 즐거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남은 음식을 담은 팔레스타인 도시락과 소영이 직접 수확해 말리고 있는 마늘 한뿌리를 받아들고 집으로 향했다. 워낙 길치여서 내비게이션을 켜도 길을 잃는 건 일상이다. 그럴 때마다 처음에 운전연수를 해준 친구의 말을 떠올린다. “괜찮아요. 어차피 길은 다 이어지게 되어 있어요.”
[필자 소개] 고주영. 몇몇 예술축제와 지원기관을 거쳐 2012년부터 공연예술 독립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안산순례길 프로젝트](2015~2019), [플랜Q 프로젝트](2018~2023), [연극연습 프로젝트](2018~현재)를 기획·제작했고, 하고 있다. 연극과 연극 아닌 것, 극장과 극장 아닌 것, 예술과 예술 아닌 것 사이에 있고자 한다. 2007년부터 〈일다〉에 일본 제휴 매체인 〈페민〉 기사를 번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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