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함께 지내며 믿음을 갖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이런 친구를 만나 편하게 정서적인 공감대를 만들어 간다는 게 참 힘든 일인 것 같다.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동성애자인 사람을 만나면 마냥 반갑고, 그런 점에서 본다면 동성애자 커뮤니티는 그 결속력이 더욱 강해질 수도 있으련만 아쉽게도 그렇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신뢰할 수 있는 친구 만나기 어려워 보통 모임을 통해서 몇몇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들과 여러 가지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비슷한 활동을 하며, 좋아하는 취미나 운동을 하면서 관계를 다지게 된다. 그 관계에서 커플들도 하나 둘 생기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그럴 때마다 또 그 사이에 얽힌 실타래를 풀기 어려워, 모임에 나오지 않게 되는 사람들도 생긴다. 사랑을 얻은 사람과 사랑을 얻지 못한 사람은 함께 있기 괴로운 법인가보다. 다 함께 하고픈 마음에 양쪽의 상처를 보듬으며 예전처럼 지내길 바랬지만, 잘 되지 않는다. 여성산행모임을 결성해 약 1년 동안 운영한 경험이 있다. 조용히 걸으며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정상에서의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서 정성스럽게 홈페이지를 만들어 회원들과 월 1회 산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이 모임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모임 구성원의 90%가 커플인 것이 모임중단의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라 생각을 해본다. 새로 가입한 사람이 싱글인 경우 커플위주의 분위기 속에서 적응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커플들이 사이가 안 좋거나, 헤어졌거나 할 경우엔 동시에 두 사람 모두 참석하지 않게 되고, 그러니 산행 참석률 또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불규칙적이었다.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커플이냐 싱글이냐가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일까? 예전에 한 친구는 자신의 애인이었던 사람과 자신의 선배가 사귀게 되면서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는다. 또 한 친구는 각자 애인과 헤어지고 다른 사람과 사귀게 되면서 이전까지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하지 않는다. 난 이 사람들을 오랜 친구라고 생각했기에 너무 황당하고 실망해서 ‘이 커뮤니티에는 친구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지금도 커플이냐 싱글이냐에 따라 관계가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는 커뮤니티 내의 불안한 인간관계가 너무나도 안타깝다. 커플관계에 대한 구속에서 벗어나길 커플인 사람들은 싱글인 사람들에게 “빨리 커플관계를 맺어야 하지 않겠냐”고 조언인 듯 염려인 듯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기나 긴 대화를 채워나간다. 서서히 커뮤니티의 모임은 커플들의 잔치가 되어버린다. 동성애자로 소외 받으면서 산다는 사실 때문에 혼자보다는 둘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더 갖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는 또 다른 소외를 낳고 있다. 동성애자이면서 싱글로 사는 사람들이 설 자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성애자 커뮤니티에서도 이들의 설 자리는 없는데 말이다. 워낙 사회가 가족중심 문화인데다가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조차 커플위주의 분위기가 형성되다 보니 아직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아끼고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커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너무 쉽게 관계를 맺는 경우를 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커플관계를 맺기 위해서, 유지하기 위해서, 또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정신 없이 헤매는 것도 여러 번 보았다. 헤어져 혼자가 된 사람들은 하나 둘 다시 친구를 찾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싱글로 사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 불안해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싱글이었던 때가 있었고, 또한 커플이었던 때도 있을 수 있고, 시간이 지나 다시 싱글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커플이든 싱글이든 커뮤니티에서, 그리고 이 사회에서 얼마나 강하게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지, 얼마나 따뜻하게 누군가를 지원해 줄 수 있는지, 얼마나 아름답게 함께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레즈비언 커뮤니티가 커플관계에 대한 구속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그런 커뮤니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기사 좋아요 2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댓글
|
많이 본 기사
소수자 시선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