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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소개] 칼로(지은희)는 석사학위 논문으로 「사회적 돌봄과 지역 페미니즘 정치: 춘천여성협동조합 마더센터와 뚜루뚜를 중심으로」를 썼다. 이 연구는 지역(춘천)을 여성들 삶의 현장으로서 다양한 수행과 전환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주목했다. 15명의 심층 면접을 통해 마더센터의 페미니즘 정치와 공동체 기반의 사회적 돌봄이 지역사회와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의미화되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춘천여성협동조합 마더센터. 이름만 들어도 따뜻한 느낌이 드는 이 공간은 13년 전, 춘천 지역 여성들이 ‘두려움 없는 제안과 수용’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만들어낸 공동체다. 처음에는 ‘꾸러기 어린이 도서관’에서 출발해 춘천여성회로, 다시 이후 마더센터 춘천여성협동조합으로 이어진 변화의 궤적을 논문으로 기록한 연구자 칼로를 만났다.
그는 “특별한 문제의식이 있었다기보다 제가 공동체 활동을 한 것에 대한 ‘기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연구 동기를 밝혔다. “아무도 기록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개인의 기록이 아니라 공동체의 궤적, 특히 “가장 활발했고 역동적이었던 시기”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n번방’ 사태에 항의하는 ‘거주지 앞 1인 시위’ 릴레이
칼로가 마더센터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고민은 “운동성”에 관한 것이었다. “(여성단체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을 하면서 운동성이 많이 떨어지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하고 있는 게 여성운동인가?’, ‘내 활동이 운동이 맞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운동이라 하면 그동안에는 NGO나 시민사회에서 이슈 파이팅 위주의 활동들을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마더센터의 ‘지역 페미니즘 정치’는 기존의 중앙 중심 여성운동과는 확연히 달랐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접하며 시작된 ‘거주지 앞 1인 시위’였다.
“거주지 앞 1인 시위를 (마더센터) 집행부의 제안으로 시작해서 릴레이로 이어갔던 운동인데요. 그거는 지역이 아니면 불가능했던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살고 있는 집 앞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 것. 여성운동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이 어떤 이슈로 인해서 그 중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정적이지만 역동적으로 타인을 향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거잖아요.”
박근혜 탄핵 때와 같은 “대규모 집회, 커다란 공간에 집단화된 목소리”가 아니라 “혼자서 할 수 있는, 굉장히 큰 움직임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1인 시위의 힘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맞아, 그거 해보자!’ 두려움 없는 제안과 수용의 문화
마더센터 문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두려움 없는 제안과 수용의 실천’이라는 표현이다. 이 독특한 문화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어느 누군가가 이런 조직을 만들자, 라고 제안했을 때 ‘그걸 우리가 어떻게 해?’라는 두려움이 저희 내부에는 없었어요. 어떤 제안이 되면, 그걸 가지고 서로 이야기하고 ‘할 수 있을까’, ‘하자!’ 별 두려움 없이 건너 온 과정이었던 거예요.”
도서관에서 여성회로, 여성회에서 마더센터로, 마더센터가 협동조합으로, 또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걱정 없이, ‘잘될까?’ 이런 기우 없이” 이어졌다고 한다.
“신기하죠. 저도 신기해요. 어떤 재정적인 물적 토대가 튼튼해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의 물결을 타면서 우리에게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들. ‘그거 안 돼. 못해.’ 이런 불안이나 부정이 아니라….”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서울 중심의 인프라에서 오는 아쉬움이나 박탈감은 없었을까?
“우리는 지역 여성이긴 하지만, 못 해본 게 없어요. 하고 싶은 것 정말 다 했고, 지금도 하고 있고. 어떤 박탈감, ‘중앙엔 이게 있는데, 서울에 이게 있는데, 우리 지역에서는 못하네.’ 그런 거는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지역의 강점을 적극 활용했다. “지역에 있으니까 저희만 모이면 되는 거고 거기서 결정하고 실천하고. 속도 면에서 엄청 빨리 수행을 했던 거죠.”
칼로는 지역에서 좋은 활동과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으로 “활동가들이 공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새로운 거를 활동가들이 빨리빨리 접하고, 사람들이 이런 거를 갈망하고 있구나 라는 걸 캐치한다면, 원하는 걸 기획할 수 있는 거죠.”
순환적인, 연결되어 서클을 그리는 돌봄의 발견
그의 논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개념 중 하나는 ‘순환적이고 원형적인 돌봄’이다. 이는 뚜루뚜(어린이 작업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발견한 개념이다.
“초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깨달음이에요. 덜 불편한 사람이, 돌보는 사람보다 좀 더 불편한 사람을 돌보는 게 되는, 단선적이고 수직적인 일방의 돌봄이라고 인식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뚜루뚜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뚜루뚜라는 공간에 와서 아이들끼리 노는 모습들을 보면, 밖에 어느 어르신이 물 좀 줄 수 있냐고 하거나 목말라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으면 아이들이 그냥 물을 떠 갖고 와서 드리는 거예요. 본인들이 마을 안에서 그런 돌봄을 받고, 그 돌봄이 또 타인에게 가더라고요.”
이것은 “쌍방의 어떤 주고받는 그런 돌봄이 아니라, 연결이 되고 또 그 공간에서 순환이 되고 마을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고” 하는 돌봄이었다. “서클을 그리는 그런 느낌”이라고 그는 표현했다.
‘n번방’ 대책 촉구 1인 시위, 성평등 강사단, 퀴어문화제 연대 활동. 각기 성격이 다른 이 활동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이게 젠더 관련된 실천들이잖아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양육자의 입장인 조합원들이 많았어요. 아이들을 바로 키워내야 하고 올바른 성 의식을 알려줘야되지 않을까 라는 각성과 필요성이 있는 거죠. 형식은 다르지만, 맥락은 하나라고 볼 수 있어요.”
특히 성평등 강사단의 사례를 들었다. “본인이 어느 지점에서, 예를 들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터졌을 때, 자신이 분노하고 화를 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더라는 거예요. 제대로 분노하고 그것을 실천으로도 할 수 있게 해준 게, 성평등 강사단이고 마더센터라고 하더라구요.”
인터뷰 말미에 칼로가 강조한 것은 ‘비폭력 대화’였다. 그는 이를 “가장 오래된 돌봄”이라고 명명했다.
“여성회를 만들고, 그 여성회의 회원으로 오게 된 한 분이 ‘비폭력 대화’ 모임 때문에 오게 된 분이 계세요. 본인의 어려움을 그 모임에서 해결하니까, 그 모임을 포함하고 있는 춘천여성회에 가입을 하시더라고요.”
15년이 된 여성회, 13년 차인 마더센터의 “근간”이 바로 비폭력 대화였다고 그는 말한다. “그 모임 했던 분들이 아직도 집행부에 계시고 중추를 이루고 있거든요. 엄청 끈끈하게 만들었죠. 그래서 뭐 하자, 그래도 그냥 우르르 다 하게 되고.”
‘되어가는’ 여성운동의 새로운 가능성
칼로는 논문에서 ‘되어감의 정치’를 이야기했다. ‘되어감의 정치’가 오늘날 여성운동과 공동체 운동에 어떤 대안적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까?
“계속 시도하고 도전해 보는 거죠. 어떤 완결체가 아니라. 변화를 겪으면서 그 변화의 물결을 계속 타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는 거예요. 완결된 운동이나 공동체의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 사회 자체가 되게 역동적이잖아요. ‘그러한 변화 안에서 계속 만들어 간다’, 그래서 ‘됨’이 아니라 진행 중이라는 거죠.”
하지만 13년을 이어온 마더센터도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새로운 고민을 하고 있다. “13년 전에 해왔던 마더센터, 이 방식이 지금도 맞을까요? 라고 저는 되묻고 싶은 거죠. 달라져야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는 거죠.”
특히 20~30대들의 문화가 “어디에 귀속되거나,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 상황에서 “가입서를 쓰고 회비를 내고 후원을 하면서 정해진 소모임을 하고 정기 총회에 가는” 정형적인 방식이 맞는지 성찰하고 있다.
최근에는 “회원이 아니어도 다 오픈해서 와서 들을 수 있게 하고, 본인이 후원하고 싶다 하면 그때 후원서를 내밀고, 강제하지 않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마을이 안전망이 되면, 걱정할 게 없어진다 “우리 활동이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시들거나 소진되지 않고”
뚜루뚜가 있는 후평3동에서 2년간 사업을 하면서 칼로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마을이 안전망이 되는구나”였다.
“마을이 안전하면 진짜 걱정할 게 없겠더라고요. 서로서로 봐주니까. 경계망이 되고 덜 불안하죠. 애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도서관이든 마더센터든 놀이터에서 놀다 와서 물 마시고 들어가고 나가고, ‘우리 엄마 없어요?’ 그러고 가고. 그게 너무 자연스럽게 형성이 됐거든요.”
지역에서 실천과 연구를 함께 해나가고자 하는 활동가나 연구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묻자, 칼로는 의외로 간단한 답을 내놨다.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하는 일이. 그러니까 시들거나 소진되지 않고 재미있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 구조가 사실 안 될 때가 많죠. 그 구조를 함께 만들고 그래서 재미있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는 자신의 논문을 “연구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기록”이라고 겸손하게 표현하면서도, 이런 조직에 대한 기록들은 “점점 없어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여성회 자체가 늘어나지 않으니까. 대신 더 다양하고 더 새로운 주제의 연구들이 더 많이 되겠죠.”
춘천여성협동조합 마더센터의 13년 궤적은 지역에서도, 아니 지역이기 때문에 가능한 페미니즘 정치와 사회적 돌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두려움 없는 제안과 수용”으로 시작된 이들의 실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완결되지 않은 채로, 계속 ‘되어가면서’ 말이다. [끝]
[필자 소개] 성희령(상드): 페미니스트 인권교육활동가. 7년 동안 지역에서 페미니스트 책방을 동료들과 꾸려오다 마무리하고, 현재는 그중 한 동료와 함께 공동체 라디오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사람과 삶의 모든 영역이 서로 얽혀 있음을 믿으며, 세상과 사람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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