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 벌금 4백? 그거 내고, 마을이 성폭력 해결하자!삼태마을 이야기 1편: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해 상 받은 농촌 마을전남 곡성군 죽곡면 삼태마을. 이 마을이 특별한 주인공이 되어 회자된 날이 있다. 2025년 2월 4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특별디딤돌상으로 삼태마을과 담양인권지원상담소에 시상했다. 특별디딤돌상은 성폭력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이번 삼태마을의 수상은 ‘마을’이 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다. 그런데 이 마을은 성폭력 피해가 발생했을 시 마을 전체가 남다른 행보를 보인 것뿐 아니라, 마을 내 ‘성차별 임금 폐지’를 선언, 남녀 인건비를 차별 없이 지급하고, 공유농장, 공동밥상 등 새로운 마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삼태마을의 활동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박진숙 농민(죽곡 함께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인터뷰해 나눈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기획의 말]
혈연친족으로 이뤄진 배타적 집성촌에서 약자 상대로 일어난 성폭력 사건 가해자 측에 마을 전체가 공동 대응해, 사건의 향방 결정지어
농촌의 ‘마을’이 ‘성폭력 사건에 대응하고 피해자를 보호’했다니, 잘못 쓰인 문장처럼 낯설다.
혈연·친족으로 이뤄진 배타적 공동체 구조, 신고·수사에 대한 접근성 부족, 가부장적·위계적 문화, 결혼이주여성·고령 1인가구여성 등 취약한 인구가 많은 농촌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 농촌에서 성폭력은 신고도, 피해자 보호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농촌 마을이 피해자를 보호하고 성폭력 사건에 대응해 1년 7개월여를 싸워온 후 “마을 주민들이 안전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했다니,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사건의 한복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자와 연대해 해결해온 박진숙 활동가를 만났다. 필자는 ‘호미’라는 필명으로, 박진숙 활동가는 ‘잎싹’이라는 활동명으로, 그리고 피해자는 ‘은희 씨’라는 가명으로 표기하였다.
이야기는 2022년 겨울, 마을의 여성 청년이 잎싹을 찾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가 특별디딤돌상 시상을 위해 정리한 사건의 전말을 보자.
〈가해자는 피해자와 사돈지간으로 피해자 고모의 시동생이며, 한 마을에 거주하는 이웃주민이었다. 피해자 부모의 장애(부친: 청각장애, 언어장애/모친: 뇌병변장애, 경계선 지능장애)로 인해, 평소 가해자가 부모 외출 시 이동을 도와주면서 ‘사돈으로서 돕는다’는 미명하에 피해자 부모를 관리, 통제하며 경제적 착취를 일삼았다. 피해자가 부(父)의 건강 악화로 인해 병간호를 위해 집에서 지내게 된 이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애인하자’며 여러 차례 강제추행 및 1회의 폭행이 있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동네 지인에게 처음 말했고, 이를 전해 들은 동네 이장에 의해 장애권익옹호기관, 상담소로 연계되었다.〉
호미: 성폭력 사건에 어떻게 마을이 함께 대응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잎싹: 은희 씨가 저를 찾아와 피해 사실을 말했죠. 피해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삼친회에서 의논했어요. ‘삼태리에서 친한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마을 젊은이들, 귀농인들 모임이에요. 마을일을 대부분 여기서 의논하죠. 이장님도 있고요. 자연스레 이장한테 신고한 게 되었지요. 우리는 처음부터 이 일은 은희 개인의 일이 아니라, 마을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을에서 책임지고 대응하자고. 피해자를 설득해서 경찰에 신고하고 소송을 시작했죠. 장애권익센터와 담양인권지원상담소의 자문을 받아가면서 했어요.
‘2차피해’ 막기 위해 총회 열고…마을이 피해자 보호하자
잎싹: 소송을 결심하는 것부터, 일이 진행되면서 은희 씨가 너무 불안하고 힘들어했어요. 그 친구의 엄마도요. 왜냐하면 약자잖아요. 동네에서 쉬쉬하면서 넘겨짚고, 없는 말 만들고… 뒤에서 얘기하는 것들이 그게 얼마나 불안해요, 약자한테는. 그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이장한테 ‘임시총회 해줘라.’ 했지요. 상담소에서는 그게 사실관계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들어간다고, 사실이라도 가해자의 명예훼손이라며 말리더라고. 그래서 벌금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400만 원이래요. 그러면 그거 내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래서 피해자와 피해자 어머니 동의를 얻어서 마을 총회를 열었어요. 우리는 총회하면 주민 100명 다 모이거든요. 회관 가운데 문을 폴딩도어로 바꿔서, 문 밀면 다 앉을 수 있어요. 가해자 쪽 사람도 왔어요. 마을에 친한 몇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이 녹음을 하더라고요. 우리도 준비를 해 갔지요. 내가 사건 경과를 죽 이야기하고, 어떤 피해가 벌어졌고, 소송 진행상황을 알려줬죠. 변호사도 선임되었고, 가해자가 법적으로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다 이야기했어요.
가해자 쪽에서도 나와서 말했어요. “OO(가해자)가 겉으로는 말이 거칠어서 그렇지, 실제 내가 겪어보니까 그런 사람은 아니더라. 그냥 장난으로 딸 같이 편해서 했던 것인데, 얘(피해자)가 철이 없어서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이제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내가 잘 타일렀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괜히 동네 시끄럽게 하면 안 되지 않겠느냐. 이런 일들은 마을에서 그냥 이제 잘 마무리하고 잘 살도록 해야 하지 않겠냐”고, 아주 점잖게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보실 수도 있다. 근데 이 친구(피해자)는 지금 OO살의 아가씨가 어떤 이득이 있어서 이야기할까요? 말하기 힘든데도, 이 친구는 견디고 견디다 이야기를 한 거다. 사실이 아닌 걸 이야기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 친구가 지어낼 수 있는 이야기인가요?”
그러면서, 현재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응이 예전하고는 다르다. 이제 옛날 사회가 아니다. 약자라고 해서, 예전처럼 그냥 이렇게 동네 안에서 대충 넘어가고 또 넘어가고 하는 일들은 이제 용납하지 않을 거다. 우리 동네는 귀농인이 많고, 나도 귀농자고 젊은 사람이다, 이런 일들을 대충 덮고 끝내버린다면, 나는 우리 동네 무섭고 불안해서 못 살겠다. 명확하게 법적으로 대응해서 안전한 동네가 됐으면 좋겠다. 인권단체하고 연대해서 끝까지 해나갈 거다. 우리가 피해자에게 힘이 되어줘야 된다, 얘기했지요.
‘이제 숨이 쉬어져’…동네에서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법들
잎싹: “이 친구는 피해자다. 문제를 만든 사람이 아니다. 이 친구뿐만 아니라 이 친구 가족 전체가 피해자다. 이런 일 생기면 피해자가 결국 동네에 못 버티고 대부분은 나간다. 우리 동네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 이 친구가 우리 동네에서 재판이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됐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거 해줘야 된다. 어른들이 좀 해달라. 우리 젊은 사람들은 이 친구의 재판에 적극적으로 나설 테니까, 이 친구와 엄마를 좀 보듬어줘라. 이 친구의 엄마 지금 너무 힘들어서 화병 도지고 우울증 약까지 드신다. 우리가 마을 안에서 보듬어 주자.” 그랬더니 어른들이 다 “그래, 그렇지.” 하면서 남자 어른들까지 동의를 해버리니까, 이제는 더이상 그런 말에 대해서 얘기를 안 하지요. 그리고 쉬쉬하며 뒤에서 말하는 게 싹 없어졌어요. 사실이 다 만천하에 드러났으니까.
가해자들도 별말 없더라구요. 총회에서 마을 주민들의 분위기를 봤거든요. 나중에 전여농(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의 준말) 연결해서 마을 성평등 교육도 주민들이 다 모여서 받고. 그러니까 피해자 어머니가 나중에 오셔서 하는 말이 “내가 이제 숨이 쉬어져.” 하시더라고.
우리 마을 ‘공동밥상’에 여기도 권력이 있거든. 냉장고 관리며 필요한 식재료가 뭐가 있고 이런 거 정리하는 거, 이게 곳간 열쇠인 셈이라, 할매들하고 우리 조합원들하고 얘기해서 이 언니(은희 씨의 어머니)에게 그 권한을 드렸지요.
은희 씨도 공유농장 활동가로 투입을 했고요. (※삼태마을에는 ‘다함께 공유농장’이 있다. 이름 그대로, 모두를 위한 논과 밭이다. 삼태마을은 매일 마을 주민 공동밥상에서 점심을 같이 나누는데, 이 공유논에서 난 쌀로 밥을 짓고, 공유밭에서 나는 방풍나물 등 먹거리들로 반찬을 마련한다. 죽곡면 ‘마을공동체 밥상’과도 연계해 마을주민들과 주 1회 밥을 해먹고, 반찬도 만들어 밥상차리기 힘든 이들 집으로 배달한다.) 이건 일자리기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오전에 농장 일을 하는 거예요. 선진지 견학 오기도 하니까 손님들 맞고. 농장 작업에 주된 관리와 할매들과 소통하는 역할을 이 친구한테 위임했지요. 오늘은 비 오니까 날짜를 옮긴다거나, 오늘은 무슨 작업한다… 같은 거. 은희 씨가 오면, 할매들이 엄청 챙겨줘요. 그렇게 해서 이 친구는 동네를 안 떠나고, 동네 안에서 돌봄이 된 거지요.
잎싹: 가해자가 나하고 ‘OO이 형’을 증인으로 지목했어요. 좋다, 가겠다 하고 갔어요. 가해자는 모든 걸 부인했고요. 근데 피해자 쪽 증인들이 워낙 많아요. 가해자 쪽 증인은 없고요. 가해자 측에서 변호사를 새로 선임했더라고요. 국선 안 하고. 그 양반, 이번에 걸리면 가중처벌되거든요, 전력이 있어서 절실하지요.
가해자 쪽 변호사가 말하기를, 피해자가 얘기하는 것들이 일관되지 않고, 피해자가 경계성 장애라는 거 강조하면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하고. ‘OO이 형’을 증인으로 세운 게, 장애가 있으시고 가해자한테 휘둘릴 것 같으니까…. ‘OO이 형’님이랑 몇 차례 워크숍을 하고, 형님께는 정확히 명확히 기억하시는 것만 얘기하고, 나머지는 그냥 모르겠다고 하고 끝내시라 하고.
내가 증언했지요. “은희 씨가 경계성 장애이기 때문에 미숙하고 판단이 정확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하는데, 나도 지적장애 1급인 자녀를 키우고 있다. 장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은희 씨는 현재 장애 등급이 없다. 지역에서 나름대로 자기 활동을 다 하고,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일관되고 신빙성 있게 진술하고 있다. 이 친구 가족은 오랫동안 가스라이팅을 당해왔다. 부모는 몹시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있다. 가해자는 자기 입으로 예전에 꽃뱀한테 걸려가지고 자기가 벌금 물은 전력도 있다고 떠벌여온 사람이다. 이 친구의 이야기에 우리 마을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마을에서 대책회의를 했고, 인권센터하고 연결해 자문받아가며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랬더니 가해자 측 변호사가, 개인의 일에 왜 마을이 나서냐고, 뭔가 다른 속셈이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 얘기를 했지. 귀농 전부터 시민사회 운동을 오랫동안 했다고, 장애인 부모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더 많이 접해왔고.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잘 숙지하고 있다고. 마을 차원에서 대응하는 게 일반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우리는 성숙하게 잘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판사가 열심히 듣더라고. 판사도 자기 궁금했던 거 다 묻고. 이 마을 사람들은 시민운동했던 사람들이 결합해서 이렇게 해주고 있구나 하더라고요.
호미: 가해자 쪽에서 ‘잎싹’을 증인으로 부른 이유가 ‘왜 개인의 일에 마을이 나서냐고, 뭔가 정략적인 속셈이 있다’고 몰아가려고 한 거였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냈네요.(웃음) 2심 소송에서 최종 이겼지요. 가해자는 실형을 살게 되었고요. 은희 씨는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잎싹: 인권센터에서 범죄 피해자 지원 프로그램에 은희 씨네를 연결해줬어요. 경제적으로도 조금 도움이 되고, 피해자 상담도 부모 상담까지 하고, 이 친구가 굉장히 좋아지고 있어요. 은희 씨의 어머니도 부녀회장이 되셨어요. 이 분이 장애가 있고, 글도 모르셔요. 처음엔 주민들이 반대했죠. 젊은 사람들이 설득했어요. 가해자가 출소하면 피해가 또 발생하거나, 보복할 수도 있다, 권력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함부로 못한다고. 이 언니가 장애가 있어도 마을 주민으로서 할 거 다하지 않았냐고. 글로 하는 건 젊은 사람들이 도우면 된다고. 잘하세요. 지금. 자부심도 있으시고.
호미: 삼태에서는 장애가 장애가 아니로군요.
잎싹: 농촌에서 장애는 그렇게 도드라지진 않죠. 자신의 장애에 맞게 일을 하죠. 물론 관 중심 사업에서는 장애를 장애로 뚜렷이 인식하고, 부녀회장이나 이장으로 세우는 일은 잘 없죠. 근데 우리 마을 같은 경우는 마을 안에 장애를 보완해 주는 시스템들을 만들고, 그분들이 일할 수 있도록 보완하죠.
호미: 이 마을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지요?
잎싹: 그럼요. 10년 전에, 이 마을에 처음에 왔을 때 이 마을이 집성촌이니까, 유지들 횡포가 심했어요. 장애가 있다고 ‘OO 아저씨’나 ‘OO이 형님’을 무시하면서 대놓고 일 시키고 그랬어요. 마을의 문화가 그러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들을 했던 거죠. 그러다 새로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마을 활동을 하면서 집성촌의 질서가 순식간에 무너졌어요. 처음엔 저항도 컸죠. 마을의 일부 사람-나갔다 들어오신 분들-이 아직 상황파악을 못하고, 들어온 사람(귀촌인)들이 세가 커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 싶어하셨죠. “들어온 것들이 우리 O씨를 이렇게 무시해?”, “우리 O씨가 옛날에 어쨌는데!” 이런 식으로 얘기했죠. 그래봤자 안 좋은 소리들이 나오니까, 이제 좀 쭈그러드는 추세죠. 눈치 보여서.
할매들한테는 이 젊은이들이 이미 ‘들어온 것들’이 아니거든요. 할매들한테는 이 사람들이 그래도 마을 안에서 어떻게든 같이 살려고, 저 혼자만 안 살고 같이 살려고 한다, 이장, 부녀회장, 이장 각시가 애쓴다고, 마을 사업도 가져오고 해서 우리 마을이 좋아졌다, 그렇게 할매들이 나서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죠. 이 마을 안에 오랫동안 이어졌던, 범접할 수 없는 O씨들의 권위, 그 횡포로 속으로만 부글부글했던 할매들이 이제 표현하기 시작하셨죠. 결국 할매들이 이겼지요. 성폭력 사건 때도 그렇고.
이번에 성폭력 가해자 편에 선 분들도 O씨 소수 사람이예요. 가해자가 작년에 감옥에서 나와서 마을에 소란을 일으키고 있어요. 이분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체제 안에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악수들을 두고 계시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는 마을 공동체 권력과 조직이 자기들 밑에 있질 않으니까요.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필요하고, 조금 더 강하게 힘을 보여줄 필요도 있죠. 결국에는 그분들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인정하고 조용히 같이 살게 되겠죠.
가해자에게 실형이 선고되고 그 자리에서 구속된 날, 잎싹은 SNS에 이렇게 썼다.
〈일 년 넘게 진행된 법정 싸움에서 우리 마을 성폭력 피해자가 승소했다. 겁도 많아 두려워했던 친구가 힘내서 끝까지 싸워줘서 참 고마웠다. 무엇보다 내 일처럼 나서서 피해자와 가족을 보듬어 주고 챙겨준 마을 사람들이 참 멋지다. 또한 변호사 선임하여 챙겨주고 비빌언덕이 되어준 담양군 인권센터에 고마움이 크다. 가해자에게 실형이 떨어지고 바로 구속되었다는 말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복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한다. 가해자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가족이고… 또 우리 마을 사람이다. 부디 피해자에게 진정한 속죄의 시간을 갖고 건강한 마을사람으로 돌아오길….〉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특별디딤돌상 시상 이유에 대해, “마을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시 공동체가 어떻게 대응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향방이 결정되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고 밝히며, “성폭력 근절에 용기 있게 앞장선” 삼태마을에 고마움을 전했다.
“마을 공동체는 피해자로부터 처음 피해를 듣고 전라남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신고함으로써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추가 피해를 막았으며, 피해자가 고소를 망설일 때 지속적인 설득과 지지를 통해 피해자가 결심하도록 조력하였다. 또한 수사, 재판 과정에서도 마을 주민 2인은 가해자의 보복 위험을 무릅쓰고 참고인으로서 진술 및 증언함으로써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사건을 승소로 이끄는 데 기여하였다. (중략) 마을 공동체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말하고 2심 승소 판결에 이르기까지 1년 7개월여 기간 동안 피해자가 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끌어갈 수 있도록 지지자, 협력자,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필자 소개] 호미. 한국양성평등교육원 농촌성평등 강사, 귀농운동본부 귀농통문 편집위원,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여성농어업위원회 위원, 장애활동지원사, 동화집필 노동자이다. 서울에서 귀농했다가 도시로 역이주했다. 여자들이 귀농하기 만만치 않지만, 그 여자들도 만만치 않다는 걸 드러내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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