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나이주의가 밥줄 끊는다

문이정민 | 기사입력 2003/12/28 [21:19]

[기자의 눈] 나이주의가 밥줄 끊는다

문이정민 | 입력 : 2003/12/28 [21:19]
“한 살 더 먹으면 취직도 안될 텐데.”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푸념이다. 새해가 밝고 나이가 한 살 더 먹는 일이 불안하고 위태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오랜 관행처럼 굳은 기업의 ‘나이제한’ 때문이다. 한국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이다. 스물 여덟까지는 가능한데, 스물아홉이 되면 일할 자격이 없다니, 말이 되나. 그 일년 사이에 일할 능력이 현저히 감소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사실 이렇듯 관행으로 굳어진 기업의 나이제한은 한국사회에 강건히 자리잡은 ‘나이주의’와 연관이 깊다.

“몇 살이세요?”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빼놓지 않고 건네는 질문 중 하나다. 우리사회에서 ‘나이’는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나이 어린 사람에게 대뜸 반말하는 장면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나이가 많으면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나이가 많으면 그럴만한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사회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존경 받고 살기 편한 사회인가. 그런데 왜 기업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들을 안 뽑나. ‘나이’라는 것은 ‘위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미 직장에는 과장, 부장, 대리, 평사원 등 직위별로 위계질서가 형성돼 있다. 과장은 평사원에게 “이거 제대로 해놔!”라고 반말로 명령할 수 있다. 부하직원이니까. 그런데 만약 평사원이 과장보다 나이가 많다면? 당연히 편치 않다. 나이주의가 강한 우리사회에서 ‘존댓말’로, 게다가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명령’하기란 쉽지 않다.

직급별로 형성된 직장, 명령하고 지시하는 위계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그 어느 누구도 직위에 따른 위계와 나이에 따른 위계가 대치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이 많은 과장이 나이 어린 평사원에게 명령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니까, 그저 그것이 ‘편하고 익숙한’ 질서기 때문이다. 그 질서가 ‘옳은가 아닌가’ 합리적으로 따져보기보다는 안전하게 유지되기만을 원한다. 그러니 과장보다 나이가 많은 신입사원은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불편한 존재일 뿐이다.

신규인력 선발에 있어 기업이 제시하는 나이제한은 합리적 차등이 아니다. 그저 불편하기 때문에, 기존 조직질서와 어긋나기 때문에 행해지는 비합리적인 관행일 뿐이다. 이렇듯 합리적인 차등이 아닌 기업의 나이제한은 명백한 ‘차별’이다. ‘나이’가 차별의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나이주의가 낳은 폐해다. 나이주의가 기업의 잘못된 선발관행을 정당화하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밥줄을 잡아매고 있다.

혹자는 우리나라의 나이주의는 ‘동방예의지국’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전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왜 예의의 기준이 ‘나이’여야만 하는가. 결국 나이에 의한 위계질서가 수많은 이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현실 속에서 ‘예의’라는 막연한 당위로 차별을 감수해야 한단 말인가. 나이주의는 단순히 나이든 사람들에 대한 존경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기업의 차별적 선발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명하달 식으로 구성된 조직문화를 바꾸고 우리사회 뿌리깊게 자리잡은 나이주의를 타파해야 한다. ‘나이’는 개인을 설명하는 다양한 특질 중 하나일 뿐이다. 나이가 권력을 만들고, 권력에 의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기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이에 상관없이 개인을 존중하고 합리적으로 능력을 판단, 인정하는 조직문화의 정착과 사회전반의 인식전환이 이뤄진다면 ‘스물여덟은 되고, 스물아홉은 안 된다’는 식의 기업 선발조건은 당연히 ‘상식 이하로’ 폐기 처분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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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조 2004/01/07 [01:32] 수정 | 삭제
  • 이십대 중반을 넘어서버린 저로서는 은근히 나이로 인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뭔가 미래를 구상하고 준비하려고 해서 나이 제한 때문에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거나 망설이는 경우도 많구요. 저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 해요.

    그리고 이제 곧 구정이 돌아오는데 매번 시골에 내려갈때마다 친척들의 결혼압력도 장난 아니고, 어떤 Tv 드라마에선 여자 나이를 크리스마스 케잌으로 비유하던데 이러한 주위의 비아냥도 화가 나구요.
  • 태평 2004/01/02 [13:44] 수정 | 삭제
  • 기업의 나이제한을 나이주의와 관련하여 풀어낸 것은 참 시원했습니다.

    직위에 따른 위계와 나이에 따른 위계가 갈등하는 모양새도 그렇고 그걸 나이제한으로 해결하려는 것도 참 우스꽝스럽네요.

    그치만 어떤 면에서 보면 차라리 나이주의가 돈이나 직위에서 나오는 우격다짐보다는 그래도 좀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 yop 2003/12/31 [12:19] 수정 | 삭제
  • 저도 사실 나이가 들다보니 어린 사람들을 대할때 저도 모르게
    더 어른스러워야 하고 어른스러운 대접을 받고 싶어합니다.
    사실 당연한 일인데도 저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 --씨 이렇게 말하면
    좀 어색하기도 합니다.
    나이주의라는 것이 태어날때부터 깊숙이 각인된 것이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것 같아요.
    전반적인 조직문화나 사회적인 분위기가 바뀌면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될 것 같습니다.
    나이주의가 결국은 개개인을 옭아매고 있으니 말입니다.
  • june 2003/12/31 [01:08] 수정 | 삭제
  • 자기가 나이가 많으면 반말하는
    무례한 것들.
    정말 역겹습니다.
  • 마저 2003/12/30 [19:08] 수정 | 삭제
  • 우리나라의 나이주의가 결국 일도 못하게 하는군요.
    생각해보니 다 관련이 있군요.
    어른들 예우하는 듯이 보이지만
    결국 그런 위계질서 때문에 나이 많으면
    일도 못하게 되다니.

    글 잘 읽었습니다.
  • cat 2003/12/29 [10:43] 수정 | 삭제
  • 나이에 민감한 사회가 정말 싫어요.
    어디서나 나이 따지고. 짜증나요.
  • 페페 2003/12/29 [01:21] 수정 | 삭제
  • 27살은 되고 28살은 안 되고.
    그것밖에 이유가 없고.
    왜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 안해봤을까.
    나도 나이기준에 길들여졌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