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 균열의 양쪽을 응시하는 힘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정체성을 질문하는 정유경 작가

전솔비 | 기사입력 2025/12/29 [19:05]

꽝! 균열의 양쪽을 응시하는 힘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정체성을 질문하는 정유경 작가

전솔비 | 입력 : 2025/12/29 [19:05]

‘디아스포라’(Diaspora)는 역사적, 국가적, 민족적 맥락과 긴밀하게 얽혀있는 용어이다. 이 말은 단순한 ‘이동’, ‘이주’, ‘이민’과는 다르며 오히려 이산가족이라는 말에 쓰이는 ‘이산’에 더 가깝다.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디아스포라의 어원 속에는 충돌 혹은 사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디아스포라는 본래 팔레스타인을 떠난 유대인을 의미했지만, 식민 통치와 분쟁, 전쟁, 분단, 시장경제 등 외부의 원인 탓에 강제적으로 이주당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을 이르는 용어로 확장되었다. 그렇기에 다양한 이주민과 난민을 포함한다.

 

중요한 것은 디아스포라라는 말에 파괴의 의미가 들어있다는 사실이며, 폭력적으로 자신이 속해있던 공동체로부터 떠남을 강요당했던 사람들의 역사가 함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디아스포라를 사유하는 일은 지리적으로 고정된 단위로 파악되지 않는 동아시아 역사를 입체화하는 작업과 맞닿는다. 하늘과 육지, 바다와 섬을 거치며 필연적 혹은 강제적으로 이동해야만 했던 수많은 존재의 역동성으로 인해, 동아시아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곳과 드러난 곳에서 임시 소속과 망명, 도피와 잠적의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삶으로 채워져 있다.

 

동아시아 디아스포라, 혹은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범주 안에서 우리는 다양한 주체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분단으로 인한 실향민, 이산가족, 고려인, 재독 간호사와 광부, 재일조선인, 해외동포, 그리고 한국으로 온 난민, 외국인 이주노동자, 국외 결혼이주여성, 라이따이한, 코피노 등. 균일하고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한국이라는 기표는 이들과 함께 흔들리며 진동하고 있다.

 

디아스포라 미술은 국가의 경계에서 뒤섞이는 문화와 이데올로기의 충돌 속에서 역사와 개인의 서사를 탐구한다. 디아스포라 미술이라고 하면 디아스포라가 주체가 되어서 만든 작품과 그 안에 디아스포라가 주제로 표현된 작품을 모두 포함한다. 이 글에서는 디아스포라가 창작의 주체가 되어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살펴보고자 한다. 바로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정유경 작가의 작업이다.

 

나는 그의 작업에서 정체성이라는 개념에 자리 잡은 균열의 풍경을 감지하곤 했다. 그것은 균열이 깨지는 순간 나타날 복수의 시선들과 다양성의 공존을 예감하게 하는 일종의 신호였다.

 

▲ 정유경 作 〈OMURA-yaki Target〉(2024) ©jongyugyong.com


재일조선인 3세, 연속 혹은 단절의 마음

 

“그럼 어떻게 써나갈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설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왜 여기에 있는가? 지금까지 인생의 여러 국면에서 얼마나 여러 번 이 물음과 마주해왔던가. … 독자들은 여기서 이미 ‘참 복잡하구나’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더 복잡한 것을 써 내려가야 한다. 디아스포라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추방당한 자의 시선』, 김혜신 옮김, 15-17쪽)

 

정유경 작가의 작업에는 재일조선인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그의 작업을 설명하기 전, 호명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재일한인, 재일동포, 재일한국인,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조선인, 재일조선한국인, 재일, 자이니치, 재일코리안, 재일교포 등 ‘재일-’ 이주자를 지칭하는 어휘는 굉장히 많다. 이러한 단어의 나열은 사회·정치적 문제나 언어의 제약, 습관적 관행들을 반영한다.

 

여기서 각각의 단어가 불편한 추정들과 함께 사용되며 암묵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부르느냐, 혹은 타인이 호명하느냐에 따라 같은 단어가 다른 뉘앙스를 갖기도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재일조선인을 북한 국민으로 오해하거나, ‘자이니치 조센’이라는 말이 재일조선인 스스로 말할 때와 일본에서 혐한 표현으로 사용될 때 뉘앙스가 달라지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 글에서는 민족과 국민을 동일시하는 ‘단일민족국가’라는 환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서경식 작가의 지적을 참고하여, 국가적 관념인 ‘한국’보다는 민족을 나타내는 ‘조선’의 한정된 의미를 고려한 ‘재일조선인’이라는 용어를 쓰기로 한다. 재일조선인의 국적은 개인적 배경과 결정에 따라 한국, 일본, 조선으로 나누어진다.

 

거칠게나마 재일조선인의 세대 구분을 해본다면,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1910년 이후 일본으로 이주하여 살아간 세대를 1세, 1세대의 직계 후손으로 일본에서 태어나 살아오고 있는 세대를 2세, 계속하여 2세의 후손으로 태어나 살아오고 있는 세대를 3세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세대에 따른 구분을 도식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이를 통해 현재의 디아스포라적 존재들을 더 입체적이고 주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보는 방향으로 사유할 필요가 있다. 세대 감각으로 편의상 분류하겠지만, 또 그것만으로는 분류가 불가능한 정체성의 다면적인 면 또한 잘 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정유경 작가의 작업은 3세 이후부터 경험하는 정체성의 새로운 문제들을 탐구한다. 폭력적이거나 강제적인 이유로 국경을 넘는 경험을 하지 않은 디아스포라는 어떻게 디아스포라가 되는가? 일상에서 예고 없이 마주치는 역사적 트라우마와의 친숙한 조우를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2세대는 1세대와 언어, 문화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었지만, 3세대 이후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에 익숙한 2세대와 의사소통의 문제를 겪지 않으며, 일본인과의 문화 격차 또한 이전 세대처럼 크게 겪지 않는다. 얼굴도 일본인과 비슷해서 내가 출신을 바꾸고 이름을 바꾼 채로 일본인으로 ‘패싱’(passing)하며 산다면 그렇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사회 내에서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상적 혐오와 혐오범죄,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은 바뀌지 않고 있다.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나와 상관이 있다는 걸 자각하면 순식간에 낯선 일상이 되어버리는 재일조선인 정체성이라는 문제. 일상에 잠재된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껴안고 살아가는 3세 이후 세대는 자신의 정체성에 묶인 매듭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을까.

 

일본인도, 조선사람도, 한국인도 아닌

 

정유경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20년에 열린 전시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5월 22일~8월 23일)에 있던 회화 작업 〈dot painting〉 시리즈와 영상 작업 〈이등병의 편지〉를 보고서였다.

 

▲ 정유경 作 〈#nkgram〉(2020) ©jongyugyong.com


〈dot painting〉은 인터넷에서 수집한 북한의 선전 포스터 및 공산주의 도상들을 인쇄 망점을 모티브로 하는 ‘팝 도트’로 치환하는 회화 작업이다. 함께 소개된 〈#nkgram〉 프로젝트는 〈dot painting〉을 위한 스케치 작업으로, 자신의 그림이 만약 북한의 거리에 전시된다면 어떨까 라는 상상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본래 선전 포스터나 동상이 설치된 곳에 팝 도트 드로잉을 덧씌움으로써, 북한의 풍경이 지니고 있던 이데올로기적 색깔이 흐릿해지는 효과를 낸다.

 

이렇듯 정유경 작가는 재일조선인 사회와 자신의 정체성 간의 관계에 대한 관심에 기반하여, 도상과 이미지의 괴리, 본래의 문맥과 인식되는 것 사이에 또 다른 층을 끼워 넣는 방식의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등병의 편지〉는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한 작업이다. 2017년 한국으로 거점을 옮긴 그는 어느 날 재일조선인인 자신 또한 징집의 대상이 될 거라는 안내문을 통보 받는다. ‘재외국민2세 지위상실 규정 개정’ 안내문은 2018년 5월 29일 이후 3년을 초과하여 국내에 거주할 경우, 징집의 대상이 된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재외국민2세 지위가 상실됨과 동시에 병역 의무가 부과되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정유경 작가는 그동안 크게 자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디아스포라성을 재확인하게 된다. 조선학교에서 북한을 옹호하는 교육을 받고 한국에 왔는데, 한국에서는 그에게 북한의 침략을 막는 역할을 부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제외국민2세 지위에 관한 조항에는 재일조선인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없기에, 개인은 국가 시스템에 의해 선택권이 없는 폭력적인 상황 앞에 놓이게 된다. 작가는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정유경 작가는 자신이 포함될 수 없는 ‘한국 남자’라는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다가, 유튜브에 올라온 이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 아래에 달린 댓글들이 실제로 상호적인 편지처럼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한다. 군대에 다녀온 남성의 추억, 군대에 다녀온 남성이 곧 군대에 갈 남성에게 건네는 응원, 군대에 곧 가게 될 남성의 복잡한 심경, 그리고 군대에 가지 않는 여성들을 혐오하는 남성들의 연대가 그곳에 뒤엉켜 있었던 것이다.

 

이등병의 편지 아래에는 불특정 다수 남성의 댓글편지들이 쌓여 군사주의를 중심으로 연대하는 한국 사회의 남성성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정유경 작가는 그 댓글들을 진지하게 읽으며 한국 남성의 마음에 자신을 이입해 보려 한다. 하지만 낭독이 이어질수록 댓글의 진지함이 주는 우스꽝스러움은 심화되고, 외부인이자 내부인으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작가의 시선 끝에서 ‘국가’, ‘국민’, ‘군인’이라는 거대한 단어들은 결국 텅 빈 기호로 남는다.

 

▲ 정유경 作 〈이등병의 편지〉(2020)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작가와의 대화에서 정유경 작가는 그동안 일본인도 조선사람도 한국인도 아닌 듯한 자신의 상태가 나쁜 것만은 아니며 때로는 편하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 안내문이 왔을 때는 ‘너는 한국인 남자다’라는 것을 나라가 강요하는 것 같아서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흔들리는 상태 자체를 특별하게 받아들이는 3세대 이후 작가들의 작업 속에서 디아스포라는 그저 트라우마와 고뇌로 가득 찬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경험되지 않은 것, 혹은 소속되지 않는 것에 대한 긴장과 즐거움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들을 담는 그릇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균형이 안 잡히고 흔들리는 자신의 상태가 예술을 하기 위해선 좋은 상태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흔들리는 정체성보다는 특별한 정체성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설명하고자 한다.

 

충돌의 순간을 감지하는 자리에서

 

이어지는 작업 〈오무라 야키〉(2023)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지닌 두 개의 역사,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기억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의 문제를 살핀다. 오무라 야키(OMURA-yaki)는 나가사키현 오무라 지역의 도자기라는 뜻이다. 오무라는 ‘오무라 수용소’에서 가져온 말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주로 일본에서 강제송환이 결정된 한반도 출신자들을 수용하는 시설이었다. 한국에서 온 밀항자나 재일조선인, 다양한 국가의 이주노동자나 난민신청자를 수용했던 이곳은 일본이 국민과 비국민을 분류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남아있다.

 

장기간 구금되며 열악한 환경과 비인도적 대우 속에 살았을 사람들에 대한 상상은 리서치 과정 속에서 오무라에서 가까운 아리타가 유명한 도자기 생산지라는 사실과 만난다. 정유경 작가는 일본이 2차대전 말기에 철이 부족해서 궁여지책으로 만든 도자기 수류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당시의 모습을 추측해서 실제로 도자기 수류탄 모양의 작품을 제작했다.

 

도자기의 표면에는 38선, 철조망, 호랑이 등 이념에 의해 만들어진 물리적, 심리적 경계선을 암시하는 상징들이 그려져 있다. 도자기가 깨지면 함께 사라져 버릴 위태로운 과거가 잔존하고 있다. 아래에 보이는 두 개의 ‘오무라 야키’에는 각각 ‘Zainichi Against Racism’을 뜻하는 기호와 ‘38도선’이 그려져 있다. 첫 번째 도자기에 적힌 문구의 의미는 ‘인종주의에 대항하는 자이니치’라는 뜻이며, Z와 R 사이에 A가 상하 반전으로 적혀있다. 일본이 제국주의 전쟁을 위해 사용했던 도자기 폭탄의 형상 위에 재일조선인을 향한 차별에 저항한다는 의미가 삽입되며, 이 작품은 언제든 경계를 향해 던져질 태세를 하고 있다.

 

▲ 정유경 作 〈OMURA-yaki〉(2023-) 좌: 〈Zainichi Against Racism #4〉, 우: 〈38도선 #3〉 ©jongyugyong.com


‘나란 누구인가’라는 끈질긴 물음

 

서경식 작가는 『디아스포라 기행-추방당한 자의 시선』에서 니키 리 작가의 사진 작업을 다루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자기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듯도 하며 반대로 무엇인가 다른 것이 되더라도 태생의 각인을 지울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듯도 하다. ‘아이덴티티’라는 사고방식 자체에 대한 항의라고 이해되는 한편 아이덴티티를 끈질기게 주장하는 듯도 하다. 그런 양가성이 흥미롭다. … ‘아이덴티티’라는 말은 일본에서는 때에 따라 ‘애국심’이나 ‘민족의식’과 같은 의미로 잘못 쓰이기도 한다. 아이덴티티란 ‘나란 누구인가’라는 끈질긴 물음일 것이다.” (같은 책 103쪽)

 

정유경 작가의 작업은 냉전 이후, 신자유주의와 개인주의 속에서 흐릿해지는 듯 하지만 여전히 선명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자신의 디아스포라성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 질문한다. 또한 내재하지만 인지하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어떻게 발견할 것인지, 트라우마 바깥에서 자신과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지 등을 고민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는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그리움, 혹은 경험하지 않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뤄야 하는 후세대의 관점에서 어떻게 현재를 재정립할 것인가 라는 고민의 방법론적 변형을 질문하고 있다.

 

균열이 일어난 곳에는 언제나 안쪽과 바깥쪽이 생기기 마련이다. 흔들림을 축으로 살아온 사람은 그 양쪽을 모두 응시할 수 있는 다각적인 시선을 지니고 있다. 정유경 작가의 작업은 중첩되는 두 개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두 개의 언어와 두 개의 시점을 섞어서 그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다양한 얼굴들을 보게 한다.

 

▲ 정유경 作 〈KKWANG!〉(2025) ©jongyugyong.com


근작인 〈KKWANG!〉(2025)에서 작가는 경계의 양쪽을 오가지만 어느 쪽에서도 온전한 자리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꽝!이라는 효과음으로 표현했다. 충돌의 소리가 이미 터져 나왔는데도 경계는 여전히 그림 속에 흔적으로 남아있다. 경계는 여러 번의 충돌 속에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터져버리고 말 이분법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예감하며 충돌 이후를 내다보는 시선 또한 여전히 그림 속에 남아 다음의 충돌을 예비할 것이다.

 

[필자 소개] 전솔비. 시각문화 연구자. 정체성과 수행성의 문제를 연구하며 전시와 책을 만들어왔다. 동시대 현장에서 생산되는 이미지의 정치성과 예술적 실천을 탐구하며 예술가, 연구자, 활동가 동료들과 여러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난민캠프라는 현장을 만나며 〈연약한 기록들의 춤〉(신촌문화발전소, 2022), 〈캠프 사운드 커뮤니티〉(2023)를 함께 만들고,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파시클, 2024)라는 책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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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풋사과 2025/12/30 [18:25] 수정 | 삭제
  • 요즘 유튜브 즐겨 보면서 이주민의 2세대 3세대만이 갖는 재치와 유머와 나아가 기질까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디아스포라 미술의 개념은 처음 접하는 것 같네요. 재일조선인 3세의 시선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많이 낯설게 하는 것이 흥미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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