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은 지난 1월 8일 한국에이즈퇴치연맹과 남서울대 이주열 교수팀의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여성동성애 에이즈감염 첫확인'과 '남성동성애자 28% 헌혈경험'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가 나간 직후 동성애자 인권단체들은 이 기사를 “특종에 눈이 먼”, “만행에 가까운”이라는 표현을 쓰며 경악과 분노를 표명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연구와 관련된 단체 및 연구자들 역시 이 사태에 대한 해명과 사과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기사를 내보낸 한겨레 신문과 안종주 기자만이 침묵하고 있는 상황이다. ‘동성애=에이즈’ 가정하에 추측보도 “국내에서 2명의 여성동성애자(레즈비언)가 동성애 관계로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렸다는 연구조사 결과가 나왔다. (중략) 이번 조사는 감염인 일부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동성애 관계로 에이즈에 감염된 여성이 더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여성동성애 관계로 국내에서 에이즈에 걸렸다는 조사 결과는 1985년 국내 첫 에이즈 감염인이 보고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중략) 특히 여성 감염인 3명은 많은 여성과 자주 동성애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혀 여성동성애 관계를 통한 에이즈 전파가 우려되고 있다.” (한겨레 2004-01-07 ‘여성동성애 에이즈감염 첫확인’) “한국에이즈퇴치연맹과 남서울대 이주열 교수팀이 에이즈 감염인 실태조사와 별도로 최근 남성동성애자 1160명을 조사한 결과 81.7%는 순수한 동성애자였고 17.3%는 양성애자, 0.9%는 성전환자(트랜스젠더)로 나타났으며, 기혼자가 14.6%, 미혼자가 84.4%였다. (중략) 동성애자는 최근 3년 동안 에이즈 검사를 한번도 받지 않은 비율이 51.4%였으며 37.5%는 1~2차례, 11.1%는 3차례 이상 검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 2004-01-07 ‘남성동성애자 28% 헌혈경험’) 이 기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기사 자체가 ‘동성애=에이즈’라는 기존의 편견을 강화시키고 있으며 개념조차 불확실하게 사용했다. 게다가 연구과정에 있는 보고서의 내용을 설문문항과 연구의 맥락을 무시한 채, 폭로라도 하듯이 통계를 나열하며 추측성 멘트로 왜곡된 위기감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그 논거는 희박하다. “당장 국립보건원 에이즈결핵관리과만 보아도, 같은 날 해명자료를 발표해 기사에 언급된 설문조사시 명시된 항목은 "본인이 생각하시기에 어떻게 감염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로, 정확히 조사된 감염 경로가 아닌 설문조사를 통해 본인이 '동성애를 통해 감염되었다라고 생각한다'라고 응답한 자료는 여성동성애 에이즈 감염의 근거로서 사용되기 어렵다고 밝혔다.”(한국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 성명서 ‘언론의 정도를 버린 한겨레 신문과 안종주 기자의 각성과 사과를 촉구한다!’ 1월 9일) 또한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성명서를 통해서 “WHO(세계보건기구)에서도 동성애가 에이즈의 직접원인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하며, 감염원인을 밝히는 공개자료에서는 동성애라는 단어를 사용조차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에이즈 감염인들의 인권상황을 다루지는 못할 망정 편견을 강화시키는 이 기사에 대해서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역시 이 기사가 “감염인의 성관계를 논의하면서 ‘철저한 교육’ 운운하며 동성애자와 감염인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며 8일에 성명서를 발표했다. 기자와 언론이 지켜야 할 윤리 무시 두 번째 문제는,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의 기자와 언론이 지켜야 할 윤리, 그리고 해당 기자의 자문위원으로서의 자질 문제다. 안종주 기자는 자문위원으로 참석한 회의에서 받은 비보도용 연구 자료를 무단으로 기사화했다. 이 연구는 언론에 발표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동성애자들의 협조를 구하여 진행 중이었다. 기사가 나간 8일, 한국에이즈퇴치연맹 게시판에 ‘실망이다’라는 아이디로 글을 남긴 사람은 기사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응했는데, 이성애자와의 비교도 없이 이런 식의 기사가 나간 것에 대해 “연맹 설문에는 다시는 응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불만을 터트리며 해명을 요구했다. 이에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사무총장은 같은 날, 해명서를 통해 이번 연구는 절대로 보고용으로 사용하지 않는 “연구용”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보도자료를 배포한 적도 앞으로 배포할 예정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한 내부 연구보고서가 언론에 유출된 것에 사과하고 “한겨레 신문사를 상대로 문제 기사를 인터넷 판에서 삭제할 것을 요구한 상태이며, 추후 한겨레 신문사와 안종주 기자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11일 현재 기사는 여전히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주열 연구팀은 9일 해명사과문을 통해 안 기자를 자문위원으로 회의에 참석시켰으나 언론보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안종주 기자가 이 보고서 초안의 일부를 연구진과 상의 없이 기사화한 이유는 “반대할 것 같아서”라고 이주열 교수와의 통화에서 말했다고 전한다. 동성애자 단체들이 안종주 기자에게 ‘저급한 인권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며 자문위원 자질 재심사를 요구하는 것이 충분히 일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보도용 자료로 편견을 강화하는 기사를 썼고, 동성애자 단체들의 거센 항의가 있음에도 안종주 기자와 한겨레 신문은 현재까지 아무런 반성의 기미도 없이 신속한 대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안종주 기자가 자문위원으로 그 자리에 참석한 것은 “에이즈 및 성 관련 문제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연구진들이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우 의구심이 드는 것은 과연 그 ‘전문보건기자’의 ‘많은 지식’이 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전세계가 경고하듯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에이즈를 둘러싼 편견과 거짓, 그리고 에이즈 예방법이다. 그것은 그 동안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기사를 써온 안 기자도 머리로는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쉽게 왜곡되는 성소수자 관련 논의들 흔히,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이 사회로 당당하게 나와야 동성애자들의 인권도 향상되고 편견도 줄어든다는 식의 ‘잔소리’들을 늘어놓는다. 자신은 편견이 없고 여러분들의 인권을 위한 것이며 비밀보장을 하겠다며 연구나 기사, 리포트 등을 위한 인터뷰, 설문조사, 사진촬영 등에 응해달라는 경우들도 많다. 그러나 그 동안 한국에서 동성애자들은 한정된 독자를 위해 찍은 사진이 무단으로 일간지에 실린다던가, 전시회만을 위한 것이라고 약속한 사진을 무작위로 배포하는 등의 초상권 침해부터 시작해서, ‘인권’ 운운하며 진행한 인터뷰가 왜곡되거나 엉뚱한 곳에 실리게 되는 등의 경험들을 해왔다. 동성애와 관련된 것들이 희소성 있고 자극적이며 눈길 끄는 주제로서 취급, 이용되면서 그로 인한 인권침해는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이 너무 많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의 선상에 있기에, 안종주 기자와 한겨레 신문이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사과를 표명한 연구팀과 관련 단체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앞으로의 연구자료 관리에 좀 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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