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당신의 여성인권 체감지수는?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4/01/13 [22:47]

[논평] 당신의 여성인권 체감지수는?

조이여울 | 입력 : 2004/01/13 [22:47]
2004년 현재, 우리 사회의 가부장성은 어느 정도인가. 성차별의 정도는 어떠한가. 여성인권은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다고 봐야 하나.

정부와 언론의 여성인권지수 측정법

이러한 것들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요즘처럼 소위 ‘유명여성인사’들이 언론에 조명을 받고, ‘임명’ 혹은 ‘배정’ 식의 할당을 ‘여성정치세력화’로 등치시켜 버리는 행태들이 계속되는 상황에선 더더욱 그러하다.

여성인권지수에 대한 얘기들은 어딜 가나 흔히 들을 수 있다. 언론이나 정부에서 여성인권지수를 언급할 때는 주로 어떤 분야에 여성이 처음 발을 디뎠거나, 어떤 직급에 여성이 처음 올라선 것, 그리고 여성관련 법률이 제정되거나 개정되는 것을 토대로 다룰 때가 많다. 여성총경 1호와 여성장군 1호, 첫 여성 언론사사장과 첫 여성 헌법재판소 재판관, 첫 여성 장관수행비서, 첫 여성 대학응원단장의 탄생, 고용평등법, 성폭력, 가정폭력특별법, 모성관련법의 제정과 개정, 여성부의 출범, 여성국회의원의 비율과 여성CEO의 비율 혹은 증가율. 이러한 ‘수치’를 곧 여성인권지수로 매기곤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측정된 여성인권지수는 언론을 통해 그대로 반영되는데, 여성 1호의 탄생을 언론이 놓치는 법은 별로 없다. 여성이슈는 가뭄에 콩 나듯 담는 언론에서도 유명여성인사들의 얼굴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여성정치’ 또는 ‘여성정치세력화’라는 이름으로 각 언론들이 부각시키고 있는 정당의 비례대표 할당과 관련한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생색내기로 사용되는 여성이슈

이러한 방식으로 여성인권지수를 측정하는 것은 수치화하거나 통계를 내기도 쉽고 사람들의 눈에 ‘띈다’는 데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측정법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가장 큰 위험성은 인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이 주로 ‘대외’용으로 사용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엔개발계획의 여성권한척도 등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의 여성인권지수는 꼴찌 그룹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더더욱 대외 이미지 관리를 잘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엔 여성부가 생겼고 여성장군도 나왔소”라고 선전하는 것은 한 마디로 ‘뽀대’나는 일이다. 언론에선 논설을 통해 “여성고위관료 비율을 높여서 대외 이미지를 좋게 하자”는 제언을 하기도 한다.

일례로, 미국 국무부의 보고서가 한국을 인신매매 방지실태 등과 관련해 ‘3등급’이라는 최하 등급을 매겼을 때, 우리정부는 미국과 양국간 다자문제에 대한 협의를 벌이면서 등급 상향조정을 요구했고 몇 달 새 한국은 1등급으로 껑충 올라섰다. 명목상으론 우리 정부가 제도적인 대안을 모색하려고 이것 저것 방침을 세우는 등 노력을 했다는 것인데,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었다. 설마 하니 몇 달 새 인신매매되고 성매매 되는 여성들의 상황이 달라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대외적인 ‘평등지수’라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이고 ‘외교적’으로 매겨지고, 또한 이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현재 각 정당들이(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앞다투어 여성에게 비례대표 1순위를 주겠네, 50%를 할당하겠네 하고 나서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정당의 구조개선과 개혁성향, 평등정책이나 여성인력양성과정, 심지어 할당을 어떤 방식으로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서조차 점검하지 않은 채, 비율만 가지고 ‘여성정치세력화’를 논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정당의 선거 전략이자 이미지 관리 차원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언론까지 합세를 해서, 할당제가 실현되면 여성정치가 이루어진다는 식으로 호도하고 있다. 여성유권자들을 전혀 건드리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할당제가 어떻게 여성정치 시대를 여는 것이라 할 수 있나. 정치는 이미 ‘남성들의 드라마’로 자리잡았고, 여성과 정치의 관계는 극과 극인 듯 인식되고 있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소수 여성들이 정치권에 ‘배정’되고 ‘임명’되는 것일 뿐이다.

땅에서 하늘의 별 쳐다보기

나는 우리 사회의 여성인권지수를 가늠해보는 데 있어, 지금 이러한 함정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손에 꼽히는 ‘잘 나가는 여성’들이 여성 전체를 대변하듯 보이는 것, 십여 년 만에 여성관련 법들이 줄줄이 제정된 것, 정당이 여성우대정책을 펴겠다고 공언하면 몇 개월 만에 여성정치세력화가 가까워왔다고 전망하는 것. 사람들은, 여성들조차 이제 우리 사회가 평등해 진 건가 하고 헷갈린다. 그리고 갈수록 남성들의 ‘역차별’ 공세는 거세지고 있다.

평등에 대해 논할 때,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예를 들면 최근 군대 내 성폭력 사건들이 이슈화되기 전까지 국방부와 우리 군은 “군대에선 절대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었다. “군대처럼 남녀 평등한 조직은 세상에 없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는데, “여자 기자라서 군 사회를 잘 모른다”나? 그러나 성폭력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통제가 심해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었을 뿐이다. 막말로 사관학교를 여성에게 개방하고 여성장군 1호가 나왔다 해서, 접대관련 업무에 하사관급 여군들을 내보내고 있는 현실이 미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여성들만이 부각되는 상황에선, 땅을 거닐고 있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어떤 지형에 서 있는가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우리 발바닥을 ‘비추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제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차별을 겪는 사람들조차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 새내기들에게 여성주의 세미나를 할 때면 언제나처럼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 받지 않았어요. 그래서 여성문제에 대해 잘 모르겠어요”, “능력이 있으면 이제 남녀가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대 아닌가요?” 그렇게 얘기를 시작했던 학생들은 세미나를 하면서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된다. 왜냐면 남아선호, 오빠와 남동생으로부터의 폭력, 순결교육, 성희롱, 성별역할분리, 외모지상주의 등의 차별에서 자유로웠던 여성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여성들의 모습에서, 차별을 ‘차별’이라고 명명하고,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는다. 그리고 차별을 ‘감추고’ 있는 것, 쉽게 ‘평등’이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소위 상층으로 유입되는 여성들을 부각시켜 여성인권지수를 측정하고 평등을 논하는 것은, 그 ‘일각’을 제외한 여성들이 겪는 차별을 은폐시키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둔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아래로부터의 접근법

얼마 전 대학언론사 학생들이 강의를 부탁하면서 ‘한국의 여성인권’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한 적이 있다. 바로 며칠 전에도 한 대학 학보사 기자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인권이 어느 정도 보장 받고 있다고 봐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대학언론인들은 ‘21세기엔 여성들의 현실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 우리 사회에 여성주의가 확산된 것이 아닌가’라는 가정을 깔고 있었다.

나는 아까운 시간에 두루뭉실하게 ‘대한민국의 여성인권’에 대해 논하느니,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얘기해보자고 했었다. 그 때 강의를 한 내용은 한국의 ‘성매매’ 실상에 대한 것이었다. 성매매 관련 취재를 해오면서, 우리 사회에서 매매되고 있는 여성들의 현실만큼 기 막히게 왜곡된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디서나 여성의 몸은 술과 더불어 팔리고 있는데, 포주와 중개인 사이에서 노예처럼 매매되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을 몇 년 전 군산에서 죽은 다섯 명의 어린 여성들의 주검을 접하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남성들은 자기 좋을 대로 ‘성매매 불가피론’을 펴며 되려 ‘여자들 탓’을 해왔고, 정부는 유명무실한 법을 하나 가지고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해왔으며, 여성계에서조차 이 문제를 외면했었다.

군산 화재사건 이후로 성매매가 이슈화되긴 했지만, 대학생들에게 성매매는 ‘금지주의’니 ‘규제주의’니 ‘합법화’니 하는 관념적인 것으로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남성들의 인식도 그리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강의 도중 들려준 현장의 이야기들이 그들에게 주는 충격이나 문제의식은 상당히 컸다. 그 때 나는 결국 ‘성매매’ 된 여성들의 현실이 지금 한국여성인권실태이며, 여성의 성이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체 여성들의 인권지수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세상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앞서 얘기한 것은 여성인권지수를 어떻게 가늠할 것인지 방안을 찾기 위해 제시한 한 가지 예일 뿐이다. 여성주의 관련 서적을 통해 접한 그림이 하나 있는데, 여성인권지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소개하고자 한다.

인간의 진화과정을 표현한 그림인데, 다른 동물들처럼 엎드려 기어 다니던 인간이 두 발로 걷고, 도구를 사용하고, 현대인이 되기까지 네 장의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아마 생물시간에 다윈의 진화론을 배울 때 비슷한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옆에는 여성의 진화과정이 나와있다. 첫 번째 유인원 그림과 네 번째 현대인의 모습은 옷차림만 다를 뿐 똑같다. (네 발로) 엎드려 바닥을 닦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여성들의 현실을 빗댄 그림이다. 또한 인류, 인간, 휴머니즘의 정체가 ‘남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음을 비꼬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파악하기에 이 그림이 전달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세상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은 강요되고 부계혈통주의도 견고한데, 며느리와 어머니로서의 전근대적인 역할은 여전히 기대된다. 고용차별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행해지는데 증거를 잡거나 싸워나가기 어려운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여성의 성에 대한 비하와 폭력, 도구화는 조금도 주춤하지 않았고, 이제 외모중심사회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니 받아들이라 한다. 대부분 여성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노조를 만들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지만, 이들의 인권은 ‘대형노조’들의 운동방향에서 계속 밀려나간다.

여성인권지수를 측정해보고자 한다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은 것들을 함께 보아야 한다. 만약 저변이 변하지 않았는데 “여성들 잘 나간다”, “여성들이 살기 좋아졌다”는 바람이 불고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위험한 신호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여성들 간의 괴리가 심해진다는 것이고, 차별을 ‘드러내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표시다. 이것이 2004년 들어와 내가 가늠해 본 여성인권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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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rone 2004/02/05 [10:08] 수정 | 삭제
  • 어쩜 그리 제가 느끼는 답답함을 잘 대변해주시는지요. 제발 많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깨달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열고, 눈을 뜨고 말이지요.

    저도 20대 거의 후반 되어서야 남녀차별을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던 사람입니다. 제 앞길에 남자들에게는 없었을 장애물들이 자꾸 나타나는 것을 보고 말이죠.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잘나갔던' 제가 사석에서 열변을 토하면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온다는 것에 놀라면서요.

    지금 저는 여자 사장님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장님은 툭하면 신문에 나시죠. 뭐 저절로 회사 홍보가 되니까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우려되는 것은 '여자도 이렇게 마음먹은 대로 회사를 운영해나갈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라는 인식을 퍼뜨리는 것과 '여자도 마음만 먹으면 아무나 잘 나갈 수 있다. 니들이 바보라서 그렇게 사는 거야. 제발 불평좀 하지마.' 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는 점이랍니다.

    사실 사장님이 여자라는 것뿐이지 전체 직원중 여자의 비율은 15% 미만이어요. 업무 외에 커피 심부름이라든가 하는 잔심부름을 '자연스럽게' 여자가 하게 되는 일도 많구요.

    암튼, 편집장님과 같은 분이 많은 사람들의 의식개혁에 힘써주시니 희망을 가져봅니다.
  • hieroglyphic 2004/02/03 [21:56] 수정 | 삭제
  • 말씀도 잘 하시지만 글도 진짜 잘 쓰시는 군요. 글 잘 읽고 갑니다. 일다를 이제야 알게되었습니다. 자주 들러서 업데이트 되는 글들 보려고 합니다. 편집장님 수고하십시오.
  • 2004/02/02 [12:09] 수정 | 삭제
  • 말지에서 이 글 먼저 보았습니다.
    연재하고 계시는 글들 정말 소중하게 잘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 손석희씨가 진행하는 시사프로에서 말씀하시는 것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일관된 말씀을 하시는 분은 여울님 뿐이더군요.
    여울님의 글이나 말씀을 듣고 든든하게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을 겁니다.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잘 되시길 바랍니다.
    여성을 위한 활동 더 많이 기대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magic 2004/01/26 [21:30] 수정 | 삭제
  • 땅에서 땅 쳐다보는 것도 힘든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사람들은 성공신화다 뭐다 해서 하늘 쳐다보는 데 익숙해진 것 같아요.
    현실을 인식하는 것도 쉽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겠지요.
  • 남방 2004/01/20 [21:19] 수정 | 삭제
  • 억압의 정도가 심할수록 그것은 내면화한다, 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일상에서의 차별은 그것이 차별인지
    아닌지 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또한 그것을
    전 사회에서의 극심한 어떤 억압과 비교하여
    지금이 예전보다 훨씬 나아지지 않았느냐, 라고 말하죠.

    폭력의 스펙트럼이 연속성상에서 수치의 차이일 뿐인 것과
    마찬가지로 가장 극심한 형태의 억압이 존재한다면, 그 아래
    무수한 형태의 억압과 차별이 존재하기 마련이죠.
    법 제정이 가지는 한계점, 형식적인 평등의 근거.

    아직도 여성이 '인간다움'을 행사하려 할 때
    따르는 많은 제약과 비난들.
    그 안에서 너무 많이 투쟁해서 다치고, 깨져
    스스로 위축되어 운동에 대한 상실감을 갖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즐겁게 운동!해야겠습니다.

    부디 권력 아래에서 차별받는 여성들을 보라,
  • 줌마 2004/01/18 [02:48] 수정 | 삭제
  • 일다의 관점이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새해에도 시원스런 글로 인사를 하시는 것 같군요. 이번 글은 특히 저에겐 감동적입니다.

    지난 번에 여성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글을 따로 쓰셨지만 여울님이 쓰시는 글은 모두 여성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글이라고 생각하고 보고 있습니다.

    여성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일다에 애정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일다를 끌어가주시는 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 슬리퍼 2004/01/15 [23:14] 수정 | 삭제
  • 운동을 한다는 게 무브먼트인지 스포츠인지 플레이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글 보니까 힘이 나려고 합니다.
  • 보라빛 2004/01/15 [11:46] 수정 | 삭제
  • 여성인권지수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에 대해서요.

    그동안 저도 간과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차별에 대해 얘기하면 시대착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요.
    저 혼자 딴 소리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거든요.
    친구들도 그럭저럭 적응하고 살자는 분위기구요.

    이 글 보고 사람들의 여성인권 체감지수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아래로부터의 접근법 기억할게요.
  • 겟츠 2004/01/14 [17:54] 수정 | 삭제
  • 여성이슈는 정말 생색내기용으로 쓰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오랜만의 글 반갑네요.
  • ... 2004/01/14 [11:26] 수정 | 삭제
  • 잠시 만난 어떤 여자분과 직장얘기를 했었습니다. 사회운동의 맥락에서 운영되고있는단체인데요, 생리휴가가 있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하더군요. 전 운동권이면 그정도의 인식과 복지는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였습니다. 그래서 전 그런 단체에서 왜없는지 의아해하면서 물었더니 생리휴가가 오히려 여성중심적인 거라고 생각한다더군요. 남자들의 역차별을 얘기하면서요. 그리고 생리휴가를 남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없는게 낫다고 하더군요.

    다른건 다 몰라도 생리휴가가 다른 이유도 아니고, 여성중심적이다라고 하는말에 적잖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른곳도 아니고...그 얘기를 시작으로 여성과 남성에 대한 얘기, 차별에 대한 얘기를 했었죠. 그런데 이 사회에서 여성이 차별받고 있다고 전혀 느끼지 못하더군요. 참 답답하면서도 외로웠습니다. 처음에는 내 생각을 말하다가 그냥 아무말 안하고 듣고만 있었습니다.

    차별받는 당사자도 그것이 차별이라고 느끼지 못하는고 있는것을 볼때면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설명을 하면 민감한 여자가 되기 일수죠.
    이런일을 겪을때마다 일다와 같은 공간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너무 감사하답니다
  • Blue 2004/01/14 [10:44] 수정 | 삭제
  • 옳으신 말씀입니다. 여성인권지수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의 문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울님 말씀대로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들을 따져보면, 전혀 변하지 않은 차별들이 더 많죠.

    '저변은 바뀌지 않았는데 여성바람이 부는 것처럼 보이면 위험신호다.'

    저는 지난 해부터 그 위험신호를 많이 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계에서도 여성들 간에 괴리가 계속 조장된다는 생각이 들어 무섭습니다. 아마 여울님도 그런 것들을 같이 지적하신 것이겠죠. 이 글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네요.

    여울님 새해도 건강하시구요. 2004년도 힘차게!
  • 팡이 2004/01/14 [01:50] 수정 | 삭제
  • 남자들한테 요즘 세상에 성차별이 어딨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이 글을 보여줘야 겠네요. 저에게도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 글이었어요. 편집장님 글 보면 항상 탄탄한 글이라는 느낌을 줘요. 내공이 장난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일다도 잘 되길 바래요.
    일다가 있어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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