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한혜규님은 군포여성민우회 가족과성상담소 소장입니다. - 편집자주>
현재 우리 사회의 모든 제도가 양부모 가족 중심의 일방적인 체계로 되어 있기에 이혼가정을 위한 복지는 전무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제 우린 “왜 이혼하느냐”가 아니라 “이혼가정이 왜 힘이 드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평등한 이혼을 위한 사회적 조건 어떤 부부는 성격 차로 협의이혼했는데 아이들이 생활의 변화로 인한 충격을 받지 않도록 상당 기간 아내는 같은 집에서 아이들 양육을 맡았고, 남편은 따로 살며 아이들 양육비와 전업주부인 아내에 대한 생계비를 지급했다. 이후 아내가 재혼했는데 그들 이혼 부부는 서로에 대해 여전히 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있으며, 아이들 교육과 관련하여 계속 상의하고 협조하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남편과 아내가 이웃과 사회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부부 간 평화롭게 이혼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인데 이는 극히 드문 경우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평화로운 이혼’이란 상처 없는 이혼이 아니다. 어찌 개인적 상처가 없을 수 있겠는가. 평화로운 이혼은 부부관계의 해소일 뿐 아이들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며, 이혼의 과정에서 서로가 최악의 감정으로 치닫지 않도록 개인적으로 노력하고 사회적으로도 지원해주는 이혼을 말한다. 그것은 이혼의 결과에 따르는 이혼 이후 삶이 아내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간에 비교적 평등하게 이루어지는 경우 가능하다. 사실 이혼한 사람들은 상처를 주고받은 전배우자 개인에 대한 원망보다는 이혼과 연관된 사회환경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을 경험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그 분노와 무력감이 해소되지 못한 채 전배우자에게로 다시 투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혼 후 삶이 어떠한가는 사회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관계된다. 따라서 평화로운 이혼이란 평등한 재산분할, 양육에 대한 개인과 국가의 책임의식, 모든 개인에게 평등하게 보장되는 사회보험제도와 같은 사회적 조건이 만들어질 때 가능해진다. 재산분할, 양육비등 이혼‘결과’ 엄격 심사해야 ![]() 이혼한 가정에서 여성이 자녀양육을 맡게 되는 경우가 80% 이상이다. 이 경우, 한부모 가정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 빈곤이다. 소득수준 최하위 7%에 해당하는 저소득 모부자 가정에 대해 국가가 제공하고 있는 6세 미만 아동 1인당 양육비는 한 달에 1만 7천원. 대한민국 복지의 현주소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한부모 가족이 증가하고 있지만 구빈 차원의 정책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평등한 이혼을 위해서는 국가가 한부모 정책에 대해 젠더(gender) 친화적인 접근을 해야 하며, 한부모 가정에 실질적인 혜택을 주어야 한다. 남편의 잦은 외도와 시댁갈등으로 협의이혼을 한 후, 학습지 방문교사를 하며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J씨는 전남편이 상당한 수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혼 당시에 양육비를 요청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J씨는 “당시엔 너무 괴로워 한시라도 빨리 헤어지고 싶었고, 그런 것을 요구하면 이혼해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그냥 이혼부터 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전남편과 다시 연결되어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J의 이야기는 아주 흔한 협의이혼 사례다. 이혼 당시 마음의 고통이 너무 심해 양육비, 재산분할, 위자료 등 이혼 후 삶의 필수적인 부분에 대한 합의 없이 이혼여부만을 가지고 협의이혼한 경우다.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이 강한 우리 나라에서 양육비에 관한 결정사항에 대해 아무런 법적 구속력 없이 너무도 간단하게 이뤄지는 형식적인 이혼제도(협의이혼의 경우)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사실 재판을 통한 이혼에서조차 자녀 양육에 관해 합의된 사항을 제출할 의무가 없다. 이혼의 가능성을 무제한 인정하는 국가에서도 이런 이혼 제도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이 허술한 이혼제도가 아이를 양육하는 많은 여성 한부모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법원은 이혼 당사자에게 협의안을 제출하도록 하고, 이혼의사에 대한 심사는 형식적일지라도 재산분할이나 자녀양육과 같은 이혼의 결과에 대한 심사는 아주 엄격하게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예측되는 이혼 이후의 부부의 삶이 비교적 평등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혼 과정에서 전문상담 필요 감정적으로 이미 악화된 부부 당사자들 스스로가 이혼 후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논의하기는 힘들 것이다. 특히 가정폭력이 원인이 된 경우는 이혼과정 자체가 힘겨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러한 조정기능을 위해 전문 상담기관을 활성화시키고 있는데, 당사자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여 합의를 유도하는 데에는 법원보다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돕는 전문 상담기관이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혼에 이를 때까지 부부가 단 한 차례의 전문적 상담조차 받지 못한 채 이뤄지는 이러한 협의이혼을 자율적인 이혼이라고 하기 힘들다. 우리의 경우도 협의이혼 의사확인을 신청할 경우에는 당사자들에게 기본적인 상담의 기회가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 외부의 전문상담기관을 지정하여 연계하여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원과 연계하여 전문 상담 기관에서 조정을 통해, 재산분할, 자녀양육과 같은 이혼의 결과에 대한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부부가 이혼을 재고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조정 과정이 일방에게 무의미한 고통을 준다고 판단되면 빠르게 진행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복지부가 추진하겠다는 ‘이혼숙려기간’을 두자는 얘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얼마 전 한 방송사에서 복지부의 제안에 대해 찬반토론을 벌였는데, 이혼을 방지하기 위해서 숙려기간을 두자는 것은 이혼을 하려는 사람들의 현실과 괴리된 주장이다. 이혼 방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이혼’, '평화로운 이혼'을 위해 협의이혼의 ‘과정’에 전문적인 상담과 조정이 필요하다. 양육비 청구대행, 선급제도 도입해야 ![]() K의 경우도 아주 보편적인 사례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이와 같이 비양육 부모가 고의적으로 양육비를 부담하지 않는 경우에 별달리 강제할 방법이 없다. 국가는 외국의 경우처럼 자녀 양육비 청구권이 실현되도록 적극 개입해야 한다. 부양의무자가 양육비를 지급할 능력이 있는데도 지급하지 않는 경우, 이를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형사법의 적용을 받도록 해야 한다. 양육비 청구와 관련된 제반 업무를 수행할 별도의 기관을 설치하여 그곳에서 양육비 지급을 비부양 부모에게 청구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강제 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양육비 청구 대행기관의 업무는 모든 한부모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전배우자를 상대로 소송을 해도 양육비를 받는 데까지는 최소한 몇 달의 시일이 소요되는데 당장의 생계가 곤란한 경우나 비부양 부모가 양육비를 낼 능력이 없는 경우, 양육비 청구가 그림의 떡 같은 절차로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를 위해 국가가 생계비를 먼저 지급하는 양육비 선급제도가 필요하다. 양육비 선급제도는 외국 여러 나라들이 1950년대부터 이미 도입한 제도로, 이로 인해 이혼자녀, 별거중인 자녀, 부모가 사망한 자녀, 혼인 외 자녀들이 국가로부터 기본적인 생계비를 지원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부양의무자에 대한 양육비 채권은 국가가 갖게 됐다. 서독이 1980년 1월, 이 제도를 처음 시행할 때 연 국민 소득은 7천불 미만이었다. 또한 양육비 지급액수가 현실화되어야 한다. 부모의 소득은 천차만별인데 법원의 판결은 거의 일정하게 30만원이다. 양육비의 액수를 비양육 부모와 양육부모가 1/2로 나누는 것은 부당하다. 가정법원은 아이를 키우는 쪽의 시간과 노동력을 평가하지 않고 있는데, 응당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노력을 인정해 양육비를 산출해야 할 일이다. 이혼조항 없는 결혼계약은 무모하다 평등한 이혼, 평화로운 이혼. 이것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성평등 지수, 복지수준과 정비례하는 개념이다. 결혼은 무엇보다도 잘 계획된 결혼계약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결혼을 하는데 이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혼에 대한 조항이 없는 결혼계약은 참으로 무모하다. 혼인 신고서에 부부재산 계약서를 첨부하게 해서 결혼이 해소될 경우 재산분할과 양육비 문제 등에 대해 미리 합의하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볼 일이다. 결혼 계약이 평등하게 이루어졌는지 치밀하게 검토하는 것이 결혼 주례가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한부모 가족에 대한 사회적 지원체계는 빈곤 가족에 대한 시혜차원에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양부모 가족 중심으로 짜여져 있는 현 사회 제도 및 정책을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평등하고 다양한, 그리고 민주적인 가족을 위한 제도가 자리잡아야 한다. 한부모가 정신적으로, 현실적으로 안정되어 있을수록 그 자녀들 역시 적응력이 높아진다. 한부모 가족을 지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복지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평화로운 이혼의 기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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