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7집에 실린 ‘victim’이 방송불가판정을 받은 데 이어 ‘로보트’의 뮤직비디오도 “내용이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방송부적격 판정을 받을지 모른다고 한다. ‘victim’의 의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재심의를 신청했지만, 방송사들이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해당 곡을 방송불가 처분한 데 이어 또 다시 이런 소식이 들리니 참으로 씁쓸한 마음이다. 지난 1996년 ‘시대유감’ 이후 음반에 대한 사전심의제도는 폐지되었지만, 창작물에 대한 ‘검열’의 칼날이 아직도 여전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창작자가 나름의 의도를 가지고 만든 예술적 창작물을 추상적 문구로 된 몇 줄의 심의 기준과 ‘자의적’ 판단에 따라 자른다는 것은 참으로 무례한 일이다. 이번 ‘victim’의 경우처럼 (방송사의 말에 따르자면) “직설적 가사”가 문제가 된다면, 창작자가 그 주제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제한하겠다는 뜻인가. 표현이 직설적이든 우회적이든 그 방식을 택하는 것은 창작자의 몫이다. 또 ‘지나친 표현’, ‘폭력성’, ‘직설적 가사’ 등 애매하고 추상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심의에 있어서, 방송사의 ‘판단’이 일관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검열 기관에서 내세우는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그만큼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그들’의 시각에서 불편한 곡들을 거르는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창작자의 사상과 정치적 입장을 재단하는 가위가 되고 있다. 아직까지 방송국 심의 기준에서 ‘일반적 정서’, ‘보편적 정서’란 보수적인 시각, 기득권의 시각에 더 가깝다. 이러한 잣대 안에서는 사회 비판적이거나 사회적 소수자의 입장을 담은 곡들은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러니 ‘victim’에서의 “지나친 표현”이라는 것도 보수적 관점에서 수용할 수 있는 비판의 수위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함이 좀더 정확한 표현일 게다. 과거의 경우를 보아도, 사회 고발적이나 ‘사상적으로 불순하여’ 심의관들을 불편하게 하는 곡들은 심의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었다. ‘붉은 색’의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곡들이 가차없이 금지곡이 되었던 1970년대의 어두운 과거를 우리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대학생들이 많이 부른다는 이유로 ‘아침이슬’은 금지곡이 되었고,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가사가 불건전하고 “비상식적”이라는 이유로-우스꽝스러운 가사로 세태풍자를 한 것이 당국을 불편케 한 게다-금지곡이 됐다. 독재정권 시대의 이러한 검열은 자신들의 입장과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는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통제하는 수단의 하나였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억압의 권력은 사라졌지만 다양한 입장과 목소리를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편협한 태도와 보수성은 여전히 남아있음을 이번 ‘victim’ 방송불가판정은 보여주고 있다. 한국 사회는 너무 오랜 시간 ‘검열’이 ‘당연하게’ 이루어져왔다. 때문에 전반적으로 ‘검열’의 심각성과 위험성에 둔감해져 버린 것이 아닐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싹둑’ 잘라버리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오싹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자유로움과 다양성이 살아있는 문화적 창작물이 나올 수 있겠는가. 방송사들은 ‘victim’이 "한국 사회의 여성 현실과 차별에 대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에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모든 연령층의 국민들이 다 보는 지상파 방송의 특성상 지나치게 직설적인 표현을 그대로 방송하는 것은 어렵다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곡에 대한 판단은 받아들이는 자들 각자의 몫이다. 그것을 ‘심의’라는 제도를 통해 방송여부를 좌지우지하고 아예 볼 기회도, 판단의 기회도 ‘박탈’할 권리, 그러한 판단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가. 노래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그 창작물을 받아들이는 수용자들의 몫이어야 한다. 방송사들은 더 이상 제멋대로인 가위질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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