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이동옥님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용역을 주고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진행한 ‘군대 내 성폭력 실태 조사’에 참여한 연구원입니다. 이 기사의 내용은 연구팀의 공식적인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2003년 11월부터 2004년 2월까지 군대 내 성폭력 실태조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여성학 연구자로서 군대문화와 그 상징적인 의미, 군대와 남성성의 관계 등에 관심이 있던 나는 군대를 연구할 기회를 갖게 되어 기뻤다. 그러나 막상 연구에 들어가자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됐다. 군대에 대해 무성한 이야기들이 떠돌지만 실제 군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군인들을 만나 설문을 하거나 심층면접의 연구참여자로서 피해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휴가병을 대상으로 기차역이나 서울역에서 설문을 부탁할 때 사병들은 휴가 나가서 설문을 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하면서 몇 번이나 설문을 거절했다. 또한 피해자를 찾기 위해 성폭력 관련 상담소에 협조공문을 보냈고 제대병들을 대상으로 피해자를 찾았지만 피해자는 만날 수 없었다. 단지 아는 사람을 통해 몇 명의 피해자를 만나 볼 수 있었으나 그들도 자신을 피해자로 명명하지 않았고 자신을 ‘목격자’의 위치에 두려 했다.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부대를 방문해 설문조사를 하고 군교도소를 방문해 가해자 면접을 했으며, 연구 후반에 국방부를 통해 관련 자료를 받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군대의 특수성과 접근의 어려움, 그리고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의 힘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성행위와 성폭력 구분 안 해 군대는 상명하복과 질서를 중시하는 가운데 사병들이 병영생활을 하는 곳이다. 군대는 국가안보를 위해 기밀유지가 필요하고 폐쇄적인 특성을 갖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개별 군인의 인권은 전체 집단을 위해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군대에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논리는 군대생활의 인내와 극기를 통해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된다고 말하지만, ‘군인은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처럼 집단의 목적을 위해 개인의 희생과 인권 유린을 간과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계급에 따른 명령과 지휘체계가 확실한 군대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은 후임병들이 선임병이나 계급이 높은 장교나 부사관에게 성폭력을 당할 때, 피해자들은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합숙생활을 함으로써 지속적인 피해를 당하게 된다. 군대는 ‘성군기 문란’으로 성폭력을 다루면서 군의 명예를 실추하는 행위로 인식하고 있었다. 군대는 군인 개인의 인권,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 받은 사실보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에 고민하고 있었다. 군대에서 성폭력을 성군기로 다루려는 태도는 문제해결에서 한계점을 갖는데, 결과적으로 성폭력에서 중요한 개념인 피해자의 ‘동의’ 문제를 간과한다. 성군기라는 용어는 원하지 않은 성행위, 강제적으로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인지하기보다 성행위 자체를 군기를 문란시키는 행위로 파악함으로써 성폭력과 성관계를 구별하지 못한다. 이러한 태도는 군대 내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처리와 성교육이 성폭력 예방에 실효성을 발휘할 수 없는 이유와 연관된다. 군대는 성군기 유지를 위해 부대 내 모든 성행위를 처벌하고 있는데, 특히 남성간의 성행위는 ‘계간’(남성간 성교)으로 처벌함으로써 동성애 혐오와 이성애중심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군대 내 성폭력 가해자가 동성애자라기보다 이성애자인 경우가 많은 현실을 볼 때, “동성애자를 사전에 입대하지 못하게 막으면 남성간 성폭력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성폭력을 기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한편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는 동거동락을 해야 하는 병영생활에서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띰으로써 성폭력을 사건화하기 어렵다.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위를 단순한 ‘성적 장난’이라고 말하면서 억울해하기도 하고, 군법으로 처벌 받는다고 교육받았지만 자신이 처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또한 선임병의 성폭력에 고통을 받지만 폭력을 용인함으로써 군대생활을 좀더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 선임병이 되면 성폭력에서 자유로워질 있다는 믿음, 군대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사회에 돌아가야 한다는 긴장감, 함께 생활하는 동료를 신고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신고 이후의 군대생활이 불편해질 것이라는 두려움 등이 성폭력을 사건화하지 않는 결과를 낳는다. 성폭력 피해자로서 남성의 말하기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라는 인식은 남성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게 한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서 남성 하급자가 여성 상급자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사례가 드러나고, 남성들만이 생활하는 교도소 안에서 성폭력을 당하는 외국의 문헌과 소문들을 접하지만, 여전히 남성은 성폭력의 피해자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성폭력에 대한 법규정이 삽입성교만을 강간으로 인정하는 것은 이성애중심적인 사고를 반영하면서, 남성을 성폭력 피해자로 인정하는 데에 제한점을 갖는다. 연구참여자인 피해자들은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지 않거나, 피해를 사소화하면서 가해자의 언어로 피해를 설명하며 자신을 피해자로 명명하지 않으려 했다. 남성으로서 성폭력을 당해 남성성의 손상에 직면하는 것은 충격적이고 수치스럽고 불편한 일이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를 드러내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이러한 피해사실을 숨길수록 심리적 부담을 커지며 후유증 치료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사회와의 연계하에서 군대 성교육은 너무나 중요하다. 지휘관과 장교들은 군대내의 예산 부족을 이야기하면서 “사비를 털어가며 사병지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러한 현실은 군대 내 성폭력을 예방, 근절할 수는 없다. 현재 군대 내 성교육은 군대 내의 인력을 활용하여 교육 관련 장교나 군종장교가 성교육을 받고 사병을 지도하지만 그 전문성에서 한계를 갖는다. 군대가 성폭력 근절에 대해 의지를 보이고자 한다면 성폭력 예방을 위한 예산을 할당해야 하고 외부전문가들과 네트워킹해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폭력의 상처는 순환된다 남성간 성폭력은 동성애 혐오 부분과 성폭력 피해자를 여성에 한정하는 법규정 안에서 남성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에 한계에 부딪힌다. 군대 내 성폭력은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함으로써 피해자로 하여금 신고를 주저하게 하고, 문제를 확대함으로써 군기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사건을 침묵하는 결과를 낳는다.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 문제는 피해자의 숫자에 관계 없이 한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더라도 군인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또한 군대 내 성폭력의 결과는 군대의 명예를 실추하는 자료로 이해되기보다 군대 내 성 의식을 재고하고 성폭력예방에 주력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또한 군대와 더불어 사회 전반의 성 의식을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성폭력에 대한 이해부족과 둔감성이 성폭력을 재생산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학교 및 사회의 성교육은 군대내의 성교육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성평등한 의식을 가진 남성일수록 군대라는 제한된 공간 하에서 동료 사병을 성적으로 대상화하지 않고 성폭력이 범죄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군대 내 성폭력은 군인이었던 사람이 사회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군대에 가고 군대 내에서 일정 기간 동안 성을 폭력적으로 경험한 후 사회에 돌아왔을 때 폭력의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순환된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가 이 문제를 나의 문제로 껴안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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