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 시절 삭발의 기억 어린 시절 꿈은 놀랍게도 댄서가 되는 것이었단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지요. 춤추는 것도 좋아하고. 어릴 때는 예술 중학교를 보내달라고 졸랐지요.” 하지만 경제적 뒷받침을 해 줄 수 없었던 부모님은 그녀에게 그 꿈을 포기하도록 설득했고, 그녀는 꿈을 접어야 하는 좌절을 맛보았다. 비록 댄서의 꿈은 꺾였지만 자유로운 기질은 꺾이지 않았다. 그녀는 일반적인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청소년기 내내 모범생이었던 그녀가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 삭발을 감행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남학생들은 삭발을 하기도 하는데, 여학생들은 왜 삭발을 안 하는 걸까? 이해가 안 갔지요.” 삭발이 교칙에 위반이 되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그녀는 별 특별한 생각 없이 삭발을 해 버렸다고 한다. “반항아도 아니었고, 삭발이 반항이 된다고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삭발을 한 후,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보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어요. 사람들의 반응에 오히려 놀랐지요.” 학교 선생님들, 친구들, 주변 사람들의 과민한 반응, 사이코 취급에 겁먹은 그녀는 차라리 자신이 반항아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그 일로 인해 모범생이었던 그녀의 생활기록부 준법정신은 ‘다’로 기록되었고,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남자한복을 입고 앉아 있는 재미있는 졸업사진을 남기게 되었다. '동거' 못할 이유가 없다 ![]() “상냥한 그는 제게 남녀관계의 연애, 섹스를 넘어 가족과 같은 느낌을 주었어요. 내 가족 말고도 이렇게 가까울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지요. ‘가족 같고 편안한데 왜 같지 살지 못하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함께 살지 않아도 자주 만나고 가까이 살면서 잠도 같이 자는데 굳이 함께 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기만적이라고 생각되었다고 한다. “남에게 해악을 주는 것도 아니데 굳이 동거를 하지 말아야 할 필요가 뭘까요?” 동거생활은 지금도 참으로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동거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들은 좋은 것들 뿐이지 나쁜 것은 없었어요.” 하지만 동거생활을 접고 그와 헤어진 것은 동거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같이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당시 우리의 대학생활이 불안정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것이 문제였어요. 동거는 우리에게 세상으로부터 도피공간을 제공했지요. 서로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느 날 그 상황이 지겨워지기 시작한 거지요.” “결혼이란 틀은 웃기는 거예요” 그런데 “동거나 이혼은 차이가 없어요. 결혼 전 전남편에게 ‘난 이혼한 것이나 마찬가지야’라고 고백했지요”라고 말하는 그녀가 결혼을 감행한 것은 왜였을까. 그녀는 ‘소유욕’ 때문이었다고 잘라 대답했다. 기존의 결혼제도를 이용해서 한 남자를 묶어 놓고 평범한 삶의 행복을 실현해 보려는 욕망에 잠시 사로잡혔던 것이었다. “남녀가 사랑하기 때문에 섹스 하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육체는 껍데기죠. 껍데기를 벗어야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관계의 진짜, 가짜가 드러나거든요. 대부분의 경우는 자고 나면 분명해져요. 신속히 알 수 있지요. 이후 정신적 부분이 중요해요.” ![]() “내가 그를 완전히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혼을 무기로 쓴 거지요. 결혼한 이상 나만 사랑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죄악이라는 것. (웃음) 사람들이 결혼에 부여한 사회적 의미를 받아들여 활용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서 관계는 왜곡되기 시작했어요. 그때 싸웠어야 했는데…” 결혼 전에 자신을 존중해주고 그토록 매력적이었던 사람이 결혼제도 속에서 완전히 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남편이 자신의 인간관계들 대부분을 차단했을 때도 오직 행복하기 위해 참고 견디며 받아들였다고 한다. “결혼 제도 안에서 보호 받긴 했지요. 몇 년은 가능했지만 약발이 떨어진 거죠. 결혼이란 틀은 웃기는 거예요.” 1년여 전에 8년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이혼한 그녀는 분명하게 말한다. “결혼은 엄마로서, 아빠로서,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등등의 의무를 강요하는 의무 덩어리예요. 결혼이 주는 경제적, 사회적 혜택 등도 사실 그 제도의 무게를 견디는 대가로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구속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지요.” 다시 또 결혼할 생각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더 이상 결혼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동거는 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답한다. 결혼제도만큼의 제도적 대가는 없지만 단지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좋아서 가능한 것이 동거라면서. 과거엔 튀어나오는 대로 살았지만… ![]() 그런데 올해 1차 시험을 합격하면서 그녀가 깨달은 것은, 사법고시 공부도 결과도 그녀의 적극적 선택이 아니라 ‘그녀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것이었다. 법조인이 된다면 자신과 자기 가족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단다. 지금 그녀는 큰 변화를 겪어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과거에는 생긴 대로, 튀어나오는 대로 살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좀 저를 만들고 싶군요.” 만약 고시에 합격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거냐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그때는 다른 일이 제게 다가오겠지요”라고 담담히 말하며 웃는 그녀가 정말로 자유롭고 행복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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