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우연히 앨리스 워커의 소설 <은밀한 기쁨을 간직하며>를 읽었을 때 인상적이었던 점은 여러 가지 억압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흑인여성의 문제를 쉽고 간명하게 전달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전달보다는 ‘호소’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소설은 정서적인 부분을 강하게 자극한다는 면에서 대중적인 종교 서적을 읽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은밀한 기쁨을 간직하며>는 흑인여성 타쉬의 몸에 가해진 끔찍한 할례의 고통과 그녀가 할례로 인한 트라우마(외상, 영구적인 정신장애를 남기는 충격)적 기억과 싸우는 처절한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소설은 결코 타쉬의 고통과 상처에 매몰되지 않는다. 작가는 타쉬의 문제를 강제로 타 대륙으로 이주 당한 후 성차별, 인종차별, 노동착취에 시달리는 흑인여성 집단의 역사적인 문제로 연결시키고, 그녀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억압에 반대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소설 전반에 걸쳐 드러낸다. 독자들은 역사가 보여주는 (백인남성들의) 폭력성과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삶을 살아온 여성들의 생명력을 한없이 믿고 그녀들의 삶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는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정서적인 힘, 약간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세상을 치유하고자 하는 영적인 힘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즉 “세계가 대부분 우리의 ‘아들’, ‘형제’, 그리고 ‘아버지’에게 할당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 내 어머니의 끝없는 반영이기도 한 어두운 여성들이 별다른 노력 없이 스스로 얻어진 자생의 힘으로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 무엇이든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소제목이 붙은 앨리스 워커의 에세이집 <사랑의 힘> 역시 <은밀한 기쁨을 간직하며>와 비슷한 인상을 준다. 사랑하면 구원 받는다니, 자칫하면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 없는 상업적인 휴머니즘으로 오해 받기 쉬운 소제목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면, 앨리스 워커가 말하는 사랑과 구원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에세이 역시 소설처럼 매우 쉽게 읽힌다.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차별 당해온 흑인여성의 역사가 그녀의 글을 통해 묵직하게 전해지기 때문에 그녀의 메시지를 쉽게 지울 수는 없다. 앨리스 워커는 정통 기독교 교회의 남성 지도자들이 냉혹하게 자신들의 선조인 이교도와 종교가 없는 자들의 땅을 뺏고 그들을 노예로 만들었다고 비판하며, “모든 사람은 그들을 존중해주는 신을 숭배할 자격이 있다”고 단언한다. 오랫동안 노예로, 노예해방이 이루어진 후에는 소작농으로 고달프게 살아왔기에 흑인들은 종교에 기댔지만, 정작 백인남성들이 제시한 종교는 흑인들과 여성들을 존중하지 않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은밀한 기쁨을 간직하며>에서 다룬 여성할례 문제의 경우 그녀는 할례를 반대하는 대회에 참여해서 할례 당한 여성들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은 경험을 서술하면서, 할례에 대해 “일상적이고 놀라울 정도로 무심한 공격”이라고 명명한다. 또한 그녀는 할례와 같은 여성 폭력이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폭력에 무심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진저리 나는 고통 속에 있는 한 우리는 태초부터 스스로에게 부여된 역할, 즉 주위의 환경을 돌보는 역할을 할 수 없다”) 앨리스 워커는 인종차별, 성차별 등 인간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과 억압을 비판한다(그녀는 백인여성 페미니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성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는 ‘우머니스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바 있다). 그녀는 피부색으로 인한 인종차별이, 성차로 인한 남녀차별과 유사한 형태라고 생각하고 궁극적으로 문명에 의한 자연파괴와도 이어진다고 본다. 때문에 그녀의 글에서는 흑인여성과 자연이 함께 연결되어 나타나며, 여성성에서 어떤 본질적인 영성을 구한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저자의 인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그 인식이 살면서 만난 수많은 흑인여성들에 대한 그녀의 경험들이 남긴 통찰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거를 살아내고 그로부터 자양분을 받아 유지하기 위한 나의 투쟁일 뿐 아니라 현재를 껴안고 미래를 위해 싸우기 위한 투쟁을 대변한다.” 때문에 앨리스 워커가 전하는, 호소하는 듯한 강력한 메시지들에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어떤 본질적인 여성성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여성성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투쟁해 온 여성들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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