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국회의원 비율이 5.9%에서 13%까지 올라가는 성과를 이루었다는 식의 여성연합의 내부 평가는 기존언론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정치에 대한 환상만 부추길 뿐이다. 왜냐하면 여성의원의 증가 외에 변한 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 주최로 열린 ‘17대 총선과 여성운동 대응활동에 대한 평가 토론회’에서 제기된 조순경 교수(이화여대 여성학과)의 지적이다. 이날 토론회에선 ‘총선여성연대’와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이하 ‘맑은넷’)의 활동을 중심으로 여성연합이 진행한 총선대응활동에 대한 비판이 공개적으로 이뤄졌다. ‘여성의원 늘리기’에 주력한 방식은 옳은가 먼저 주제발표를 한 여성연합 남윤인순 공동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곳은 ‘여성과 민주노동당’이라는 주변의 평가를 많이 듣는다”면서 “여성국회의원 비율이 늘어 세계184개국에서 62위로 올라가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지만, 한편 여성의원들을 화려하게 등장시킨 뒤에서 여성운동은 상처입고 피 흘리고 있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순경 교수는 여성연합이 할당제나 여성광역선거구제 사안에 집중, ‘여성의원 늘리기’에 주력했던 총선대응방식에 대해 비판했다. 조 교수는 “남녀고용평등법에서 성폭력특별법, 성매매방지법에 이르기까지 변화는 여성의원들이 이루어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운동이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의원 수가 아니라 여성운동이 강하게 살아남는 것”이라며, “여성연합의 여성정치세력화 운동이 여성운동에 미친 영향에 대해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논란이 됐던 여성단체장의 정계진출과 맑은넷의 여성의원 리스트 선정 기준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남윤인순 대표는 “17대 총선에서 여성연합이 ‘참가의 정치’로 방향을 정한 후, 정치관계법 개정운동을 하면서 여성할당제가 도입되면 개혁적이고 성평등 의식을 갖춘 여성들이 참여하는 것이 제도 개선의 의의를 살릴 수 있다고 봤다”면서, 여성단체장의 급작스러운 정계 진출에 대해 “위기는 있었지만 명분과 기회가 상존했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은 “'참여의 정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지만 운동진영의 정치화 바람이 상당히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제도 안으로 흡수할 때 그것은 ‘운동성’의 흡수가 아니라 ‘운동하는 사람’의 흡수다. 이는 결국 운동성의 거세로 이어져 시민사회운동의 역동성을 고갈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김 사무처장은 “'참여의 정치'로 나가려면 조기에 분화하고 나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운동적 기득권과 정계진출 기회 둘 다를 쥐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대화 교수(상지대)는 “운동을 정치와 지나치게 분리시켜 보는 것 같다. 정치와 운동 사이에 건널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처럼 오해를 유발해선 안 된다”며, “정치와 시민사회는 각자 기능하면서 밀접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맑은넷 리스트,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 이어 조순경 교수는 여성연합이 말하는 ‘참여의 정치’에 일관성이나 원칙이 없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여성단체장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할 때는 진보적으로 훈련 받은 여성이 참여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왜 맑은넷과 총선여성연대는 보수적인 여성들까지 포함하고 갔나”라고 반문했다. 중앙일보 문경란 정책기획부장 역시 맑은넷의 101인 리스트에 문제제기 하면서 “인물을 선정하는 분명한 잣대가 필요한데 ‘도덕성’이라는 기준 자체가 너무나 성근 그물망이었다”면서 “선정된 리스트에서 비리에 연루된 인물이 뒤늦게 삭제되는 일도 있었고,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여성도 있었는가 하면 이당 저당 기웃대며 공천만 받아도 된다는 식의 인물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문경란 정책기획부장은 “리스트 중 70%가 선정되는 성과를 보였다는 여성연합의 보도자료는 아전인수격”이라고 못박으며 “이 리스트가 선거기간 동안 어떻게 작용했는지 냉정하게 평가 받아야 한다. 취재한 바에 의하면 이 리스트가 중요한 참고자료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나 역시 이 리스트를 보면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조순경 교수는 “맑은넷의 101인 후보 가운데 적지 않은 비율이 여성연합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면서 “온정주의가 뿌리깊은 사회에서 이들이 정치권에서 잘못된 행동을 취할 때 제대로 비판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여성연합의 의사결정구조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조순경 교수는 “여성단체장의 정치진출이 여성운동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면 이에 대한 결정은 누가해야 하는가. 이 사안에 대한 여성연합의 의사결정 단위는 대표자 회의로 돼 있다”면서 “문제는 이러한 규정을 제정하고 개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계진출의 잠재적 당사자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또 “여성연합을 중심으로 이뤄진 ‘여성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의견개진이 어려운 ‘침묵의 구조’는 여성연합이 점차 권력화 돼 간다는 것과 무관치 않다”고 지적했다. “여성연합 권력화” 주장 놓고 공방 그러나 여성연합 정현백 상임대표는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먼저 정 상임대표는 “내부민주주의를 거론하는 것에 상처 받았다”면서 “단체 내에서도 소통의 구조가 있었고, 나 역시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조직에서 과도적인 지배가 있을 수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여성단체장의 정계진출에 대해서는 “원칙 없이 좌충우돌한 것이 아니고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결벽증적인 분리만을 주장하는데, 더 고민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맑은넷 후보선정과 관련해서 정 상임대표는 “보수적인 여성들까지 포괄한 것은 사회적 명망이 있는 원로들을 추천위원으로 모시다보니 그 분들이 보수적인 여성들을 추천하기도 했고, 양적 변화에서 질적 변화로 간다는 단계적인 사고가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순경 교수는 “원칙이 아니라면, 보수적 인물을 포괄해야 한다고 주장한 추천위원을 바꿔야 하지 않았는가”라고 반박했다. 사회를 맡은 여성연합 정치발전센터 김상희 소장은 “여성연합과 일각의 여성주의자 사이의 소통방식에 문제가 있다. 소통방식이 과연 여성주의적이었는지 회의적”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조순경 교수는 “서로 안다고 해서 사전에 사적으로 말하고 수정될 사안이 아니지 않느냐”며, “객관화시키기 위해서는 공론화 돼야 하는 문제고, 공적인 문제로 의제화하는 것이 페미니스트간의 소통방식”이라고 반문하는 등 첨예한 공방이 오갔다. 한국여성민우회 윤정숙 대표는 “여성연합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비판은 일각의 여성주의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연합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이제는 비판에 대해 보다 심각하게 직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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