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북경여성회의에서 북경여성행동강령을 채택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성과와 변화, 한계가 있었을까.
지난 1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개최한 ‘Beijing+10 기념 심포지엄’에서는 북경여성행동강령에 대한 한국정부의 이행정도를 평가하고, 이행과정에서 제기된 긴급 과제와 최근의 동향을 정리하는 논의가 진행됐다. 특히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여성과 가족’, ‘장애여성’, ‘이주여성’, ‘성적 소수자’와 같이 한국적 특성에 따라 새롭게 조망,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는 이슈들에 관한 발표가 눈에 띄었다. 여성연합, “건강가정기본법, 전면개정 계획” ‘여성과 가족’에 대한 발표를 맡은 한국여성단체연합 남윤인순 공동대표는 “북경행동강령의 주요 관심 분야에 가족은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러나 유교적 문화가 강고한 한국사회에서 ‘가족’은 주요관심 분야가 될 수 밖에 없으며 여성정책분야에 평등가족, 열린 가족 정책이 포함돼야 여성이 온전한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 상황의 특수성에 주목했다. 남윤인순 공동대표는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의 가족정책은 보호를 요하는 취약한 가족에 대한 대상별 복지서비스를 시행하다가 2002년부터 저출산, 고령화, 높은 이혼율 등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면서 정부는 가족 전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분석하면서 “가족의 기본적인 기능인 출산과 부양이 가족 안에서 원활하게 해결되지 않자 가족을 지원한다면서 ‘건강가정기본법’을 제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건강가정기본법’은 법 자체의 모순과 허점이 많을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가족’의 범위를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뤄진 기본단위로 상정, 변화하는 가족의 모습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해 남윤인순 공동대표는 “건강가정기본법 제정과정에 여성단체 등 이 법과 관련 있는 다양한 정책참여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다”면서 “여성연합 복지위원회 가족분과에서 가족정책 마련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으나 대응이 늦었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이미 시행령이 통과되고 일부 시범 시설이 운영되는 등 급속도로 건강가정기본법이 그 틀을 잡아나가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대응계획이 시급하다. 차후 계획에 대해 남윤인순 공동대표는 “2005년 시행 전에 폐지를 하기는 힘들 것 같고, 명칭부터 내용까지 전면개정으로 나아갈 계획”이라고 말하면서 “무엇보다 새로운 가족의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확대하고, 대안적인 가족기본법안을 마련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적소수자,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았던 문제 ‘성적 소수자’ 이슈에 대한 발표를 맡은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 모임 끼리끼리 케이 간사는 “북경여성행동강령이 채택된 지 10년이 흘렀고, 한국 성적 소수자들의 본격적인 인권운동 역사가 10년이 됐다”면서 그 10년 사이의 ‘간극’에 주목했다. 즉 ‘여성성적소수자’ 항목이 현재 ‘새로운 이슈’로 분류, 제기되고 있는 현실은 그만큼 10년 동안 성적소수자 문제가 한국에서 소외돼 온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케이 간사는 “여성성적소수자가 최근 들어 유난히 수의 급증을 보이는 것도 아니며, 여성성적소수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갑자기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다만 인권운동 진영을 비롯한 소위 진보 진영에서조차 소외당해 온, 그러나 우리에게는 절박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이슈”라고 말했다. 케이 간사는 “제 4차 세계여성회의로부터 도출된 북경선언 및 행동강령 그 어느 곳에도 여성성적소수자를 다룬 항목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비판하면서 “성적소수자 문제에 무감하기 보다는 오히려 성적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머리 속에 그려보지조차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여성 성적 소수자의 문제는 기존 여성경험과는 매우 다른 문제이므로 그 다른 점을 드러내어야 과제를 도출하기 용이하다”고 제언하면서 ‘형사사법절차상의 성적소수자 인권보장’, ‘아웃팅 폭력에 대한 법적 제재 조치 마련’, ‘동성간 성폭력/가정폭력 피해 예방 및 가해자 처벌’, ‘성적소수자의 가족 구성권 보장’, ‘교육 과정상의 이성애 중심주의 철폐’ 등 다양한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장애여성 현실, 질적 변화 없어 ‘여성장애인’에 대한 발표를 맡은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조옥 사무국장은 10년 전 제 4차 북경 세계여성대회의 한 주제로 ‘여성장애인’이 채택된 것은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이슈 중 하나로 여성장애인이 새롭게 주목 받기 시작한 계기”였다고 회고하면서 여성장애인을 위한 해결 과제들의 이행실태를 점검했다. 먼저 조옥 사무국장은 ‘성폭력 특별법, 성매매 방지법 등 여성관련 법 속에 여성장애인 항목이 포함됐고, 여성장애인 전문 성폭력 상담소와 쉼터가 설치 운영되는 등 1990년대 중반 이후 여성장애인 관련 정책과 제도가 마련되기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그럼에도 조 사무국장은 “여성장애인이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의 상황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일반적 견해기도 하다”고 덧붙이면서 “여성장애인 이슈가 더 이상 끼워넣기 식으로 되어서는 안되고 여성운동의 중심이슈로 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경여성대회에서 언급하고 있는 여성장애인 인권과 복지 관련 조항들이 국내 관련 법률 속에 구체적으로 명시되고, 실효성 있는 제도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여성의 빈곤화, 이주여성들이 늘고 있다 한편 ‘이주여성’ 이슈를 발표한 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염 대표는 “여성의 빈곤화로 고향을 등지고 이 땅에 들어와 살고 있는 외국인 이주 여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면서 “이들은 노동현장에서, 성매매 현장에서, 국제결혼현장에서 고통 받고 있다”고 말했다. 먼저 ‘성차별적 임금과 대우’ ‘모성보호와 육아지원의 부재’ ‘성희롱, 성폭력, 가정폭력’ 등 특수한 인권유린상황에 처해있는 이주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진단했다. 또 한 대표는 “불법체류로 쫓기는 아버지를 추적할까봐,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학교조차 못 가고 있는 현실”이라며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인권문제도 지적했다. 또 국제결혼으로 들어온 이주여성의 경우 “인신매매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하면서 “상담사례를 볼 때 ‘한국에서는 농부가 가장 존경 받고 부자인 직업이다’, ‘한 달에 삼백 달러씩 친정에 송금해 주겠다’, ‘한국 가면 공부시켜 주겠다’ 등 거짓 정보를 주고 결혼을 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선 본 남성이 마음에 안 들어 결혼을 거부하는 경우 ‘경비를 모두 네가 지불해라’ 등의 협박으로 결혼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결혼정보회사나 개인적인 브로커 등을 규제할 구체적인 방법은 전무한 실정이다. 이에 한 대표는 “중개업소와 개인 중개인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절실하며, 중개인에 의한 피해자의 경우 일정심사를 거쳐 인신매매 피해자로 지정, 재활과 치료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관계법령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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