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정치/정책

무엇을 위한 ‘현실적 고려’인가

호주제 폐지, 대안은 개인별신분등록제다

강우진경

| 기사입력 2004/06/07 [00:21]

사회 >정치/정책

무엇을 위한 ‘현실적 고려’인가

호주제 폐지, 대안은 개인별신분등록제다

강우진경

| 입력 : 2004/06/07 [00:21]

지난 토요일 ‘새로운 신분등록제 마련을 위한 워크숍’에 다녀오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하고 있다. 일단,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호주제 폐지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지난한 시간동안 고민하고 발전시켜온 개인별신분등록제실현을위한공동연대(이하 공동연대)의 노력에 깊은 관심과 지지를 보낸다. 한동안 제자리걸음만 계속하고,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던 호주제 폐지 담론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더불어 여러 논평자들의 문제제기와 비판, 격려가 공동연대가 제시한 안을 조금 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공동연대 안의 현실성에 대해서는 논평자들의 입장이 사뭇 달랐다.

호주페 폐지 이후의 대안에 대해 법무부가 개인별 신분등록제를 제시했던 반면에 여성부와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은 그렇지 못했다. 워크숍에 논평자로 참여했던 이구경숙 여성연합 정책부장은 “여성연합 또한 심정적으로 보면 누구나 일인일적제를 원하지만 현실적 고려를 했을 때 가족부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현실적 고려’란 무엇인가.

어떠한 제도나 법이든지 새로 만들거나 고치는 과정에서 대안에 대한 ‘현실성’이 많이 이야기된다. 아무리 좋은 제도나 법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실행되는 과정에 많은 무리가 따른다면 단계적으로 가야할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엄청난 비용이 필요할 경우, 더 그러하다. 그렇지만 공동연대의 안은 호적 전산화가 거의 이루어진 지금 시점에서 그렇게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가능한 것이며, 출생신고, 혼인신고처럼 현재 사람들이 하고 있는 민원상의 절차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몇몇 논평자들은 강조했다.

공동연대의 안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고려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현실적’이다. 호주제로 인해 고통받고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절박한 상황은 ‘이혼한 여성이 재혼할 경우 자녀의 성이 아버지와 달라서 생기는 문제’로 대표되어 왔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주제로 인해서 피해를 받고 있으며, 그만큼 ‘정상가족’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상황이 새로운 대안에는 반영되어야 한다. 공동연대의 안이 간과하고 있는 점들도 분명 있을테지만, 기본적으로 그러한 문제의식을 담으려고 노력했고, 앞으로도 검토, 보완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가족부를 이야기했던 사람들의 ‘현실적 고려’라 함은 국회의원들에 대한 고려를 의미하는 것이다. 호주제 폐지 이후의 대안에 대해 개인별신분등록제를 주장한다면 국회의원들이 꺼려할지 모르지만 ‘가족부’라면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주의와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가족부는 현실성을 빌미로 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법무부가 이미 개인별 신분등록제를 제시했고, 목적별 공부를 원칙으로 하는 공동연대의 안이 많은 부분에 있어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데도 굳이 가족부를 주장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은 오랫동안 호주제 폐지운동을 주도해왔던 여성운동 진영 스스로가 운동의 성과와 의미를 깎아버리고 뒤로 물러서는 셈이다. 앞으로 새로운 신분등록제에 대한 논의들이 다각도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는 제대로 된 대안을 모색해야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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