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 이후, 어떤 대안을 선택할 것인가. 호주제 대체법안에 대한 일부 여성계의 ‘가족부’ 논의에 대해 개인별신분등록제실현을위한공동연대(이하 ‘공동연대’)는 문제를 제기하며 ‘목적별 공부(公俯)’라는 대안을 들고 나왔다.
‘가족부’와 조대현 변호사 안의 문제점 지난 5일, ‘새로운 신분등록제 마련을 위한 워크숍’에서 중심발표를 맡은 타리(다름으로닮은 여성연대)씨는 “10년 이상 호주제에 대한 비판과 폐지 운동이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상정을 앞두고 폐지를 둘러싼 입장의 차이를 발견하게 됐다”면서, “새로운 신분등록제를 고민하는 데 있어서 원칙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판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좀더 올바른 대안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여성계에서 논의됐던 가족부와 조대현 변호사(당시 판사)가 마련한 신분제 안에 대한 집중 검토가 이뤄졌다. 가족부는 여전히 가족별 편재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기준인’을 둠으로써 결국 현실적으로 성인남성이 가족을 대표하도록 돼 있어, 이미 그 한계가 명확하게 지적된 바 있다. 새롭게 제기된 조대현 변호사 안은 ‘기준인’을 따로 두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각각의 신분등록표를 발급한다는 점에서 가족부와 다르다. 그러나 여전히 배우자, 부모, 자녀의 정보를 담고 있어 가족부의 한계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프라이버시권 보장, 가족형태별 차별 반대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타리씨는 “공동연대는 호주제가 안고 있는 여성에 대한 차별 해소는 물론 프라이버시 권의 보장, 가족형태별 차별 반대에 중점을 두고 ‘목적별 공부안’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목적(사건)별 공부는 ‘출생부, 혼인부, 사망부’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신분등록부, 혼인등록부’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신분등록부에 적힐 기본사항은 ‘신분등록번호’, ‘이름’, ‘생년월일’, ‘출생적’, ‘신고일’, ‘부기번호’다. 혼인등록부에 적힐 기본사항은 ‘혼인등록번호’, ‘당사자 이름’, ‘당사자 신분등록번호’, ‘혼인연월일’, ‘신고일’ 이다. 이혼이나 재혼 시에는 새로운 혼인등록부가 발급되며, 신분등록부와 혼인등록부는 별도 관리된다. 타리씨는 “신분등록부는 출생이나 국적 취득 사실을 증명하고 혼인등록부는 당사자의 혼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것으로, 그 이외의 불필요한 정보를 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혼인등록부는 배우자의 성별을 비롯한 어떤 정보도 담지 않고, 혼인 상태를 증명하는 본래 목적에만 기능하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혼인등록부’라는 명칭이 갖는 한계는 지속적으로 논의돼야 할 과제로 남는다. 이에 대해 타리 씨는 “이성 두 명의 결합만을 ‘혼인’으로 인정하는 사회에서 비혈연 공동체나 동거 등의 형태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는 사회적인 이슈 과정에서 보다 세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분등록부 기재, 핵가족 중심주의 벗어나야 조대현 변호사는 논평문을 통해 “신분등록제도는 개인의 신분사항을 제 3자에게 공시함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호주제가 폐지된다고 해도 개인의 성명, 성별, 생년월일, 부모, 배우자(혼인, 이혼), 사망 등에 관한 사항은 공시의 대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공시가 필요한 사항을 모두 전산기록에 등록시키되 그 공개범위를 제한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 모임 진선미 변호사도 “입력행위보다는 출력행위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이미 호적제도가 전산화된 현실에서 입력에 관여하기 보다 출력에 있어 단계적인 구분을 하고, 필요한 부분만 공개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타리씨는 “출력을 제한하면 된다고 하는 주장은, 호주제 폐지의 의미를 간과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국가가 정보를 수집하고 나열하는 기본적인 포맷은 국가가 ‘가족’을 바라보는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전반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문제이며, 기술적 문제로 축소할 일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즉 호주제 폐지와 대안 논의가 갖는 ‘의미’가 현실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형태와 권리 인정에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부모, 배우자, 자녀 등을 기재하도록 하는 이성애 가족 중심의 등록 포맷은 당연히 폐기되는 것이 옳다는 얘기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은우 변호사도 “출력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입력을 할 때 누가 입력을 받고, 어떻게 입력을 하는가, 데이터베이스를 어떻게 짜는가가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지향에 있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 윤현식 정책연구원도 “출력과 입력을 따로 보는 것은 문제의 기본적 취지를 간과한 것 아니냐”며 “이렇게 나오느냐와 처음부터 이렇게 설정돼 있느냐는 엄청난 차이다. 등록에 있어서는 기존의 모순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서 출력될 때 정보가 선별적으로 나올 수 있으니까 괜찮다는 논리는 사기”라고 비판했다. 한국동성애자연합 케이씨는 “기존 호주제도가 안고 있는 이성애 핵가족 중심주의 전제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호주제 폐지는 의미가 없다. 조대현 변호사 안의 경우 성적소수자를 억압하는 요소들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 노력, 경비 등 실제적인 문제에 대한 공방도 오고 갔다. 조대현 변호사는 “공동연대의 방안대로 신분등록부, 신분변동부, 혼인등록부, 혼인변동부 등으로 신분사항별로 기록을 달리 한다면 비용과 노고를 몇 배나 증가시킬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이은우 변호사는 “공동연대의 안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전산화가 이뤄진 상황이기 때문에 비용은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또 국가가 정보입력 시의 데이터베이스를 짜는 것이 관건일 뿐 국민들은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면 되고 변하는 것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일단 ‘호주제 폐지’하고 보자? 한편 호주제 폐지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론’에 대한 문제의식도 제기됐다. 일단 ‘호주제 폐지’를 일차적인 과제로 삼고 시기적으로 빨리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구경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부장은 “현재대로 진행하면 2년 반이면 가능하지만, 공동연대가 제시한 안대로 바꾸려면 적어도 10년이 소요될 것이다. 호주제 폐지를 기다리는 분들의 절박함을 고려할 때 ‘목적별 공부안’으로 가기 위해 계속 기다리라고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진선미 변호사도 “등록부 자체를 전부 구분 시키는 것은 호주제 폐지 측면에 있어 굉장한 어려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케이씨는 “호주제 폐지가 일단 중요하다는 주장이 가리고 있는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 공동연대의 작업이었다. 호주제 폐지의 목적은 이혼여성의 자녀 성 변동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호주제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현실을 보다 넓게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해야만 호주제 폐지의 진정한 의미가 확보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덧붙여 “일단 통과되고 보자는 판단은 성적소수자 등 호주제로 인해 실제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결국 궁극적인 목표가 더 요원해지는 결과만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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