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대회는 타협하지 않는다

변화된 ‘미인’등 변명 필요없어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3/05/08 [03:49]

미인대회는 타협하지 않는다

변화된 ‘미인’등 변명 필요없어

김윤은미 | 입력 : 2003/05/08 [03:49]
고등학교 시절 (내 눈에는 매력적이었던) 털털한 성격의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짜증을 냈다. 매달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6명도 채 되지 않는 여자아이들을 대상으로 점수를 매기는데, 자기에게 -100점을 매겼다는 것이다. 참고로 그 반의 ‘여성스러운’ 두 여자아이는 100점을 받았다. 당시 점수 매기던 남자들은 왜 여자들이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상금이 걸린 큰 미인대회가 아니라도 남성들이 여성들을 등급으로 나누고 점수 매기는 행위는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몇 주 전 서울대에서는 ‘미스**’를 뽑는 문화가 잔존하는 미술대학의 놀이문화를 비판하는 자보가 붙기도 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전 미대학생회장이 미인대회에 대한 찬반의 입장 없이 “‘대화’가 아닌 ‘폭로’식 문제제기가 온당하지 못하다”는 반박 자보를 게재했을 뿐이다.

너도 저렇게 되면 좋지 않겠냐

이상적(Ideal)인 미인들에게 주어지는 찬사는 그렇지 않은 여성에게 ‘너도 저렇게 되면 좋지 않겠냐’는 충고로 들린다. 여자아이들은 끊임없이 관찰당하며 ‘미인’에 어울리는 몸가짐을 하도록 길들여진다. ‘조신하게 행동해라’ ‘건방지게 똑바로 쳐다보지 마라’ ‘여자 애가 예쁘게 입어야지’ 등이 그것다. 물론 소수의 미인들에게 바쳐지는 찬사 역시 편히 받을 것은 못된다. 그래서 ‘예뻐서 도리어 차별 받았어요’라는 한탄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상적인 여성상을 강요하는 것은 일방적인 시선의 폭력과 규제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욕망은 개개인의 사회적 경험을 통해 구조화되는 것이다. ‘미인’은 여성 내면에서 하나의 욕망이 되어 여성들 스스로를 관찰하게 만든다. 이 같은 관찰은 여성들을 수동적으로 만들며 그녀들의 일상적인 행동에 제약을 가한다.

심리학자 낸시 헨리는 <육체의 언어학>에서 여성들의 경우 상대 남성의 시선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으며, 늘 웃는 표정을 짓고 있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듯한 몸짓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실험을 통해 검증했다. 이는 ‘예쁘고 마음씨 착한 여자’가 되라고 사회에서 몰아붙인 결과인 동시에 여성 스스로가 자신을 규제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그녀는 페미니스트들의 경우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으며, 다른 여성들은 이 같은 시선에 놀라는데, 이는 많은 여성들이 상대를 똑바로 쳐다보는 시선 자체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남자들이 원하는 모양대로 몸이 진화하는 것 같아

‘미인’은 남성들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구성된 일종의 신화다. 이 신화는 여성 내면에서 하나의 욕망이 되며 여성들은 외모에 집착하게 된다. ‘미인’을 욕망하고 이에 닮아 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쾌락은, 남성이 원하는 모양대로 변하는 외모를 자기 자신이 관찰하면서 느끼는 쾌락이다. 이는 여성의 온전한 쾌락은 아니지만 쾌락은 분명 쾌락이다. 이처럼 ‘미인’에 대한 여성의 욕망은 타협적이고, 분열적이다.

35회 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 단편영화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은 동화 ‘인어공주’를 기묘한 방식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어공주는 시종일관 미소를 짓는, 은빛 생선 껍데기를 바른 바비인형이다. 인어공주는 문어에게 강간당하고 쥐에게 다리를 갉아 먹힌 후 비로소 사람의 다리를 얻는다.

 
한편 인어공주를 조종하던 검은 옷의 인형사는 점점 남자가 되어간다. 남성의 성기를 단 인형사는 인어공주 인형을 괴롭히다가 결국 태워 죽인다. 사랑 때문에 죽음을 택한 안데르센의 ‘착한’ 인어공주는 온데간데없고 그 대신 폭력과 강간에 의해 죽어버린 ‘괴물’ 같은 인어공주가 남았다.

<아름다움...>은 썩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바비인형으로 상징되는 완벽한 ‘미인’에 대한 욕망과, 자신의 온전한 욕망이 아닌 바비인형을 잔인하게 죽이고 싶은 여성의 복합적인 심리가 잘 드러난다. 섬뜩할 만큼 한결같은 바비인형의 미소와 인형의 불룩한 가슴, 끈적한 문어와 생선비늘과 같은 소품들은 낯설고 섬뜩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 영화를 만든 원숙현씨는 미스 유니버시티 선발대회에 나간 경험이 있다. 그녀는 씨네21의 인터뷰에서 “합숙을 하는데 제 스스로 몰라보게 몸이 변하는 거예요. 꼭 남자들이 원하는 모양대로 몸이 진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라고 말했다.

미인대회는 타협할 수 없다

미인대회의 문제점은 자명하다.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낸 듯한 미스코리아들의 부푼 머리와 툭 떨어질 것 같은 쌍꺼풀은 예쁘다는 생각이 안들 정도로 획일적이다. 또한 몸매를 드러내는 수영복 심사는 여성이 아닌 남성 시청자의 시선 충족을 상정한 것 아닌가. 미인대회를 바라보는 여성들로서는 그리 마음 편하지 않다.

여기에 미인대회는 한술 더 떠서 미인들이 ‘미모’가 아니라 마음이 아름답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애써 증명하고 싶어한다. 올해 미스코리아의 경우 참가자들이 당당한 커리어 우먼을 지향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정신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 참가나 5·18 참배 등 ‘괜찮은’ 사회참여활동도 합숙 프로그램에 집어넣었다. 합숙기간 동안 인생의 좋은 경험을 했으므로 마음이 아름다워졌다는 소리다(물론 시청자들은 결말을 알고 보는 연애소설처럼 미인대회의 과정이 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TV를 켜고 하나의 구경거리로 보는 것이다).

상대방의 외모를 분석하거나 나 자신을 관찰하고 따져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대상화’는 어디서나 존재한다. 그러나 미인대회처럼 한 성(性)이 다른 성을 집단적으로, 일방적으로, 획일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은 불평등한 권력에 기초하고 있으며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여성의 신체를 부위로 나누어 사이즈를 재고, 얼굴표정과 말씨를 관찰하고, 교양 수준까지 꼼꼼하게 검토하는 것은 현실의 여성들을 압박하고, 여성들이 분열적으로 자기 자신을 욕망하게끔 한다.

 
그러니 수영복 심사가 빠지거나, 변화된 ‘미인’을 보여주면 미인대회도 괜찮지 않느냐는 변명은 이제 삼가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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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픽시 2003/05/10 [03:24] 수정 | 삭제
  • 한 국가 내 여성의 대표인양 행세하기도 했죠.
    미스코리아.
    미라는 것으로 여성들을 줄세웠던.

    미스월드 대회를 보면 그 여성들은 또한 국가적 맥락으로 읽히기도 하죠.
    미스 아메리카와 미스 태국 그리고 미스 레바논은 분명 다르지요.
    그 미라는 것도 우열이 있었죠.

    미스 아메리카는 말을 잘 해야하는 것이 필수라는 식의 말도 공공연히 돌았죠.
    정치적 목적에 따라 흑인이 뽑히기도 했고요.


    일다 참 좋은 매체네요.
  • 멋모르고 2003/05/09 [19:49] 수정 | 삭제
  • 그 이름도 유치한 미스코리아~~~~ (특히 부푼머리ㅠㅠ)
    어렸을 때는 그 언니들이 얼마나 부러워보였던지.... 지금생각하면 창피한데,
    미인대회는 여성규격화의 장본인이죠.

    저런 걸 아직도 한단 말인가. ㅠㅠ
  • 미즈 2003/05/09 [16:13] 수정 | 삭제
  • 짜증나 죽는 줄 알았습니다... -_-
  • 학상 2003/05/08 [15:56] 수정 | 삭제
  • 성폭력에 대해선 한 마디도 없이
    너네(페미니스트들)가 그런 식으로 문제제기하는 게 옳지 않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대학학생회들.
    똑같네요.
    미인대회에 대해선 입장없고
    폭로식 문제제기가 온당하지 못하다고 했다니...
    그럼 학교에서 자보도 못 붙이면 어쩌라는 거야.
    학생회 내에서만 알고 있겠다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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