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이 제일이다?

6.15 공동선언 기념 ‘우리민족대회’에 참가하고

한국염 | 기사입력 2004/07/08 [18:14]

우리 민족이 제일이다?

6.15 공동선언 기념 ‘우리민족대회’에 참가하고

한국염 | 입력 : 2004/07/08 [18:14]
<필자 한국염님은 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책기획위원장이자 청암교회(기장) 목사입니다. 이 기사는 이주여성인권센터 소식지 3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 달 15, 16일 양일간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우리민족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엔 남과 북, 해외동포들이 모여 6.15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고 정상회담에서 결정한 사항들의 이행을 촉구했다. 1, 2차는 금강산에서, 3차는 남측과 북측이 따로 하다가 올해 4차 대회를 처음으로 남측에 모여 열었다. 북측에서 1백여 명이 왔고 남측에서 천명 가량이 참여했다. 이미 금강산에서 열렸던 남북여성대회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 터라 별로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남쪽에서 처음 열리는 대회기에 기대를 갖고 참여했다.

북측 대표들은 대회사에서 3대 구호를 중심으로 통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고, 남측에서도 이에 화답하였다. 그리고 대회 내내 “우리끼리 힘을 합쳐 통일을 이루자”, “우리 민족 제일이다”, “남북공조, 조국통일” 구호가 울려 퍼졌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을 하자거나 민족이 공조해야 한다는 것에는 아무 이의가 없다. 그러나 “우리 민족 제일이다” 구호를 들을 때는 등이 오싹했다.

밤에 인천문학경기장 야구장에서 남북 예술공연이 열렸을 때, 스탠드를 꽉 채운 사람들이 “우리 민족 제일 좋아”라는 북한가수들의 노래에 박수와 함성을 지르며 한반도기를 흔들어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하고 중얼거렸다. 옆에 있는 다른 여성참가자들에게 “’우리 민족 제일이다’ 구호는 너무 심한 것 아닌가? 민족중심주의는 곧 차별주의인데, 난 이 구호가 영 못마땅하네!”라고 말했더니, “참, 외국인노동자 인권운동을 하는 목사님 입장에서는 그렇겠네. 목사님 이야기 들을 때까지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네요”하고 공감을 해주었다.

한민족 중심주의, 이주노동자들에겐 폭력

미국에 기죽어 사는 우리에게 ‘우리 민족이 제일’이라는 구호는 민족자긍심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또한 약소국으로서 민족을 외치는 것은 ‘민족생존’과 결부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독일에서 한국 여성운동을 소개하면서 민족문제를 언급했을 때, 지도교수가 ‘민족주의’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다. 그때 나는 “독일에서는 히틀러 시대의 경험 때문에 민족문제가 좋지 않은 개념으로 쓰이지만, 우리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민족주의’가 문제지, ‘민족’을 강조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항의한 적이 있다.

물론 독일의 아리안주의가 빚어낸 유대인 학살, 일제의 천황주의가 빚어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의 만행, 그 속에 들어있는 민족주의가 빚어낸 병폐, 즉 민족주의가 민족우월주의로 이어지고 다른 나라를 무시하는 삐뚤어진 제국주의로 나아감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약소국가로서의 민족주의는 다르다는 생각을 해온 게 사실이다. 일제식민지 지배 하에서 민족의 해방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고, 분단 상황에서 ‘한 민족’이라는 말은 통일의 키워드가 됐고,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이나 한미행정협정과 관련해서 민족주의라는 것이 어느 정도 당위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문제와 씨름하면서 민족주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를 접하면서 민족주의라는 것이 자칫 민족우월의식이나 열등의식으로 이어지고, 타민족이나 타인종에 대한 배타성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민족우월주의로 이어질 때는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나 민족에 대해 얕잡아보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가난한 제삼세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고 무시한다. 반대로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에 대해서는 민족열등의식에 빠져 그들을 부러워하면서 좋게 대접한다. 제일세계에서 온 백인들에게는 잘 보이려고 애를 쓴다.

이런 실정에서 한국인들의 “우리 민족 제일이다” 구호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몸서리쳐지는 구호겠는가? 가뜩이나 인종차별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우리 민족 제일’이라는 이 구호는 차라리 폭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타성으로 이어지지 않는 통일의 길 고민하자

이 폭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 바로 국제 결혼한 여성들이 한국에서 당하는 고통이다. 결혼을 하면 응당 배우자를 존중하며 잘 살아야 하는데 흔히 한국남편들은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여성이라고 아내를 구박한다. 툭하면 ‘너희 나라’, ‘너희 백성’ 운운하며 모욕을 준다. 문화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를 서로 이해하면서 해결할 생각을 안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래야 한다”면서 한국문화에 적응하기를 강요한다. 이건 가난한 나라의 남자들과 결혼한 한국여성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상대편 나라의 문화와 풍습에 대한 배려 없이 우리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뒤집어서 제일세계의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 우리 문화가 우월하니 우리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내세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한국남편에게 구타 당하고 어깨를 들먹이며 우는 이주여성들을 대할 때마다 한국인의 잘못된 민족우월감과 인종차별주의에 분노를 느낀다.

‘우리 민족 제일주의’는 북한에서는 미국을 겨냥하는 소리겠지만, 남한의 경우는 제삼세계에서 온 이주노동자 내지 가난한 나라에서 온 배우자들을 멸시하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민족은 하나가 되고 서로 도와야 한다. 북한의 용천사고, 북녘에서 굶주리는 동포들을 남측은 당연히 도와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 민족끼리나 우리 민족 제일주의는 곤란하다.

우리 민족 제일주의는 다른 나라와 더불어 사는 것을 방해하고, 세계가 한 평화의 공동체가 되는 것, 더불어 숲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인류가 지구촌에 사는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미국이라는 한 패권주의 나라에서 잘 배우고 있지 않은가? 배타성으로 이어지지 않는 통일의 길, 민족사랑의 길을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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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된인권 2008/04/15 [22:46] 수정 | 삭제
  • 일다에서 민족주의 안티하는 분들은

    역사상 민족국가를 건설한 적도 없고 중동 5개국에 흩어진 쿠르드족의 독립운동,

    체첸 독립운동,

    코소보 독립선포와 유럽연합의 지지,

    인도네시아에서 동티모르의 독립,

    티베트 민족의 독립운동

    등 세계도처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 표출을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

    자본주의를 악하다 혹은 선하다라고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는 분 계시는지요?

    민족주의도 그와 같습니다.

    일부 악덕기업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해서
    자본주의 자체를 없애고 사회주의로 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엄연히 현재 세계적으로 민족주의가 존재하고
    민족주의도 자본주의와 같이 선하다, 악하다를 따질 수 없습니다.

    민족주의를 없애자는 주장은 자본주의를 없애자는 주장처럼
    비현실적이며 비이성적인 오버일 뿐입니다.

    일부 국회의원이 한심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이제부터 국회의원 아예
    선출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 참된인권 2008/04/15 [22:37] 수정 | 삭제
  • 기독교가 제일이다라고 외치며 수천년간 타종교를 말살하고 지금도 한국에서 가장 비난 받는 종교인 기독교의 목사님이
    우리 민족 제일이 잘못이라고 하다니...
    이건희 회장이 사회정의를 개탄하는 것을 보는 듯 합니다.


    19세기 이후 외세의 침략과 분단을 겪은 남한사람과 북한사람이 만나
    "우리 민족이 최고다"라고 말한 것을
    히틀러, 천황주의와 연관시키는 것은 논리적 오류입니다.

    언어학 화용론적으로 장소와 맥락에 따른 해석을 이해 못 하는 건지?

    삼성 그룹 임원이 "우리 기업이 세계최고다."라고 말하는 것이 인종차별이라고 하는지?


    천주교 미사에서 포도주와 빵을 예수의 피와 살이라 하는데,

    그것을 보고 식인풍습이라며 천주교를 야만이라 규정한 사람들도
    역사적으로 다른 문화권에 있었습니다.

    일다에서 민족주의를 안티하는 사람들은 천주교도를 식인종이라 하고,

    대기업이 비리를 저질렀으니 모든 대기업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는 오류를

    자주 저지릅니다.
  • 딜레마 2004/07/12 [15:35] 수정 | 삭제
  •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시오니즘)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으로 폭발된 이슬람과의 인연과 시오니즘에 대항한 이슬람 민족주의(혹은 이슬람 근본주의)
    모두 똑같은 것이죠. 누가 먼저 테클걸었냐만 다를뿐...
    독일의 히틀러가 우생학으로 아리안 우월주의 표방하며 유대인을 학살했는데..
    웃긴게...히틀러의 전쟁자금은 바로 미국의 경제지원에서 얻은것이였고 미국돈이라면 뭐 말안해도 오디오죠..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독일의 1차대전 재건복구사업에 혈안이 되어있었죠.
    그런데 돌아온건 2차대전이란 비극이고 유대인 학살이라는 피의 대가를 치르고 말았죠.
    한국이 아무리 약소국이라지만 민족주의는 아랫님 말대로 역기능이 더더욱 많고 그 무게도 더하는 것이죠. 역사를 배우는것은 바로 그러한 것을 반복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지 민족적 우월감을 가지라는 것은 아니겠죠.
  • 안티민족주의 2004/07/11 [17:34] 수정 | 삭제
  •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쟁취투쟁에 대해
    한국의 거대노조가 소극적으로 마지못해 대응하는듯한
    느낌을 항상 받고 잇었습니다.
    오히려 인권운동 활동가들이 더 치열한것 같구요.

    글들을 읽으면서
    그 원인이 타민족에 대한 배타성도 작용하고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민족제일주의는 더이상 도움이 안되는 건 확실한듯 하네요.
  • 단비 2004/07/10 [19:26] 수정 | 삭제
  • 무지와 편견은 차별과 불평등, 소외를 낳습니다.

    우리민족제일주의는 민족배타주의도 아니요 민족우월주의도 아닙니다. 우리민족제일주의는 '민족자주권'이라는 집단으로서의 '인권' 개념으로 이해해야 옳바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제일주의'라는 주장이 현실에서 어떤 내용을 갖고 있는지는 보지 않고 그저 '우리민족제일'이라는 단어를 맥락과 무관하게 잘라버리고 인식하는 것은 '우리민족제일주의'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자랑하는 일밖에는 어떤 것도 아닙니다.

    여성주의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여성들이 여성주의 공동체를 통해 자아존중감을 찾아간다는 원리와 동일하게 '우리민족제일주의'도 민족과 민족들 사이의 지배와 종속의 관계에서 오는 소외와 차별, 상처들을 극복하고 민족 공동체 단위에서의 자아존중감을 회복하고 주체성을 확립하자는 원리입니다.

    '여성이 웃어야 세상이 웃는다'는 슬로건 처럼 '민족이 웃어야 세상이 웃는다'는 슬로건이 '우리민족제일주의'라는 단어로 나타났다고 이해하는 것이 보다 바른 이해라는 생각이 듭니다.
  • 흰파도 2004/07/10 [11:59] 수정 | 삭제
  • 세계인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리려고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문화유산과 세종대왕의 업적, 천문학의 발달 등에 대해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게 어쨌다는 거냐,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죠.

    한비야는 자신의 태도가 국수주의적이었다고 얘기하면서, 다른 한국인들도 보다 넓은 시야를 갖게되기를 바란다는 글을 썼죠. 민족 경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죠. 한국염 기자의 글을 보고 한비야의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통일과 평화를 얘기해도 민족 제일주의는 뛰어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chungya 2004/07/09 [22:56] 수정 | 삭제
  • 사실 서구적 사고에서 보자면 님께서 쓰신글은 타당함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유럽이나 미국 사회가 아니라 한국사회라는 것을 이해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개인적으로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우리 민족 제일주의가 배타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실제로 좌파 운동보다는 통일운동하는 쪽이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 존재를 규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민족 제일주의라고 하는 것은 한반도의 기본 모순인 미국과 반도와의 모순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이길 수 있는 민족의 주체성을 높이기 위한 구호입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하면 생각한다면 님께서 말씀하신 분석은 당연한 분석이겠죠?
    그러나 우리민족 제일이라는 것은 다른 민족에 대해서 제일이라는 것을 부각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흔히 "제 몸 소중한 줄 알면 남 몸도 그만큼 소중한걸 알아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우리민족 제일주의란 민족의 존귀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알아나가는 과정에서 타 민족에 대한 소중함을 알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에 대해서 분명히 상호성을 견지하면서 압박을 가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제일이라고 하는 단어에 얽매여서 경쟁사회의 순위식으로 표현한다든지 아니면 민족이라는 관점을 서구식 사고에 입각한 근대사회에서 나오는 부르조아지의 착취걔념에서 생각한다면 당연히 우리민족 제일주의라는 표현은 국수주의 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한반도 사회에서의 특수성에 기인한 문제이며 각 민족의 특수성과 모든 사람들의 보편성을 인정하고 있는 구호라고 생각합니다.
    인식의 주체성과 자각성을 중심에서 얘기한 것이지 이것을 또 다른 착취와 억압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cass 2004/07/09 [11:35] 수정 | 삭제
  • 아무리 통일을 이야기하는 자리라 해도 "우리민족 제일" 방식은 아니라고 봅니다. 근저에 깔린 민족우월주의, 타민족 배척주의가 문제니까요. 그리고 타민족이라도 한국의 통일 과정에 함께 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 말구요. ^^

    이런 행사에서 민족중심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글을 보게 되니 너무 반갑네요. 잘 보았습니다.
  • 지오 2004/07/09 [00:13] 수정 | 삭제
  • 이제 여러 민족이 함께 살고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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