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경직성을 넘어서자

도식화된 ‘정치적 올바름’은 위험

문이정민 | 기사입력 2004/07/26 [01:18]

여성주의, 경직성을 넘어서자

도식화된 ‘정치적 올바름’은 위험

문이정민 | 입력 : 2004/07/26 [01:18]
“여성주의는 이래야 하는 거 아니야?”

무심코 이런 반문을 종종 접하곤 한다. 어떤 상황, 사안에 대해 판단할 때 여성주의적으로 올바른 방식과 태도, 관점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러한 반문이 상황과 사안에 상관없이 ‘여성주의라면 이래야 한다’는 도식적인 틀을 요구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한 여성단체 상근자를 만났더니 고민을 털어놓는다. 요즘 단체활동 속에서 ‘여성주의/반여성주의’를 가늠하는 판단의 근거들이 일방적이라 답답할 때가 많다면서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단체 활동가들의 의견을 수렴해와서 논의하는 자리였는데, 한 사람이 전혀 논의를 하지 못한 채 참석했다. 이유는 이랬다. 활동가들이 의견을 말하지 않아 한 사람씩 의견을 물었더니, 한 활동가가 “말하기 싫다”면서 “이렇게 모두에게 의견을 묻는 것은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방식이고 상처 받았다”고 항변했다는 것이다. 이후 모임은 진행되지 않았다.

그것이 권위적인 방식인가에 대해 물으면 또 한번 ‘권위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으니 논의는 진전이 안되고 그저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게 된다고 했다. 여성운동단체의 활동가라면 어떤 사안에 대해 판단할 의무와 책임도 일면 있는 것인데, “말하기 싫다”는 무책임한 발언이 ‘여성주의는 권위주의에 반대한다’는 명목 하에 정당화되는 것일까. 그것이 과연 ‘여성주의’적 방식일까.

이런 방식은 여성들끼리 서로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여주어야 여성주의적이라는 식의 믿음으로 이어져, 더 나아가면 자칫 온정주의가 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여성주의자들이 ‘상처’를 말하는 방식이 그리 낯설지 않다. 논쟁이 일 때 서로를 비판하기보다 자매애로 감싸 안아야 한다거나 ‘왜 같은 여성주의자들끼리 상처를 주냐’는 식의 안타까움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정작 비판에 대해 ‘상처주지 말라’고 답하는 것은 여성주의와 상반되는 주장이다. 여성주의는 필연적으로 비판적인 자세를 피력하게 되는데, 그러한 비판을 ‘상처’로 받는다면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을 어떻게 전달하고 설득하고 궁극적으로 타인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나.

경직된 올바름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힘을 갖기 어려우며 문제해결에 다가서기 힘들다. 여성주의에 대한 도식적인 원칙에 경도돼 있는 것은 위험하다. 정황을 보지 않고 단 하나의 원칙에만 매달리는 태도는 성희롱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접하게 된다. 성희롱 사건은 사안마다 그 상황과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사건을 정확히 파악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책이나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실제적 작업이 필요하다.

이 때 ‘피해자 중심주의’는 성희롱 여부를 판단할 때 피해자의 느낌과 경험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건 해결에 있어서 피해자의 모든 요구나 언행에 동의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사안에 따라 현실적으로 무리하다고 판단하는 이에게 ‘여성주의적이지 못하다’고 비판을 하는 등 경직된 방식으로 표출된다면 곤란하다. 이런 태도는 논의를 가로막는다는 점에서도 발전적이지 못하다.

한편, 여성주의는 결혼제도를 비판하니까 여성주의자라면 결혼해선 안된다거나, 여성주의자는 순결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워야 하니까 성관계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거나 하는 식의 생각들이 정작 자신의 느낌, 경험들과 어떤 상관이 있는가 살펴볼 일이다. 여성주의는 도식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며 또한 엄숙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말하는 원칙과 여성주의 속에 자신이 어디 즈음 존재하는지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설명하고 책임질 수 있는 언어로 여성주의를 구성해야 한다.

여성주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치열하게 판단되고, 만들어지고, 논의되며, 그러면서 담론을 생산해왔다. 여성주의자들은 끊임없이 비판에 직면하고 강하게 이겨내고 움직여야 한다. 하나의 정답에 기대어 좌우에 눈을 감기 보다 자기 것으로, 자기 안에서 터져 나오는 언어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여성주의를 사고하고 부딪히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도배방지 이미지

  • 가인 2004/08/06 [15:28] 수정 | 삭제
  • 가끔은,
    '난 페미니스트이다',
    라는 선언이,
    낡게 느껴집니다.

    당시엔 정체성이었겠지만,
    고정된 스타일들이 생겨나고 있으니까요.
  • 야하 2004/07/30 [18:55] 수정 | 삭제
  • 좋은 기사입니다!
    화이또!
  • 2004/07/30 [16:11] 수정 | 삭제
  • 여성주의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경직성이라....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여성주의를 통해서 운동을 해나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을 고민에 빠져볼만한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주의에서 말하는 자매애. 그것이 서로가 서로의 의견과 감수성 차이에 동의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매애는 현재 가부장제에 살고 있는 여성들이 모여 운동을 하든, 이야기를 하든, 하나의 해방구를 만드는데 필요한 감수성으로 이것이 개개인의 의견이나 생각, 사상 등에 대한 '치열한 비판없이' 함께가기는 아닐 거라는 생각입니다.

    이젠 오히려 여성주의 내에서 각자의 목소리를 좀 더 높이고, 비판하며, 가끔은 좀 싸우는 분위기를 만들어내야 다양한 담론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이라는 것은 쉽게 관성화되고, 그 관성화를 깨는 것은 무척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대학생으로서 느끼는 운동의 한계라고도 생각하구요.

    이런 관성화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끊임없는 자기 비판과 서로에 대한 치열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연대하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것도 기득권과 싸우는 중이라면 말이죠. 하지만 그 연대 속에서 서로에 대한 비판이 없다는 것은 곧 '고여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썩을 가능성이 100%라고 할 수 있는.

    여성주의가 경직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하는건 아닐까요? 물론 아프겠죠. 그래도 언제까지나 '그래 맞다' '그건 그래' 의 식으로 하나로 묶어 나갈 수 있을까요?

    없겠죠. 그래서는 안될거구요. 경직성의 탈피는 곧 여성주의에서 시도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을 거구요.

    그냥 대학생의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 노라 2004/07/28 [22:07] 수정 | 삭제
  • 아무 때나 상처를 얘기하는 거나, 내부의 온정주의가 힘을 받는 건, 논쟁이나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적인 문화 토양도 한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마이너리티 집단 내부에선 서로 문제가 있어도 감싸주어야 한다는 온정주의가 어느 정도는 힘을 받게 마련이지요. 그것이 어떤 집단이든 나중에 큰 문제로 나타나게 됩니다. 일종의 딜레마적인 상황이 되는 거죠.

    흑인인권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흑인사회 내부의 성차별성에 대해선 어느 정도 침묵하고 넘어가 준 것도 한 예입니다. 지금도 그러한 면이 있습니다.

    정말로 약자로서 여성을 사고하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한다면 온정주의는 버리고 가야 할 악(비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 프리즘 2004/07/28 [16:29] 수정 | 삭제
  • 저도 여성주의적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고민이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주의적이라는 게 하나의 생각이나 방법만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렇지만 좀 이상하다거나 뭔가 아니다 싶은 생각에 대해서도 여성주의라고 하면서 그것을 타인에게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주의를 문자적으로만 보는 것도 현실감각에 맞지 않을 때가 있어요.
    정치적 올바름에 경도돼서 어리석을 선택을 하게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 ?? 2004/07/28 [14:03] 수정 | 삭제
  • 페미니스트들끼리의 온정주의가 더 나쁠까요?
    페미니스트들의 진보마초들에 대한 온정주의가 더 나쁠까요?
    최근 상생운운하는 집단과 이 기사를 읽고 든 생각입니다.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절대선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여성주의자들의 온정주의라는 것은 어떤 종류의 것이며 어떤 해악을 가져오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기사는 여성계 내부에서 논의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또 머리나쁜 마초들 이거 읽고 멋대로 해석하고 떠들어댈까봐 두려운데.
    어쨌든 늘 생각하는 거지만, 한국땅에서 여성주의자로 살아가기에는 그 포지셔닝이란게 늘 골치아픈 것 같습니다.

    여성주의는 결혼제도를 비판하니까 여성주의자라면 결혼해선 안된다거나, 여성주의자는 순결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워야 하니까 성관계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거나 하는 식의 생각들이 정작 자신의 느낌, 경험들과 어떤 상관이 있는가 살펴볼 일이다

    --> 여성주의란 이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 순결을 지키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뭘 하든간에 여성이 주체가 되어 방해받지않고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문제지요. 그러므로 얼마든지 다양한 결정이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저 기사는 여성주의자들이 아닌 여성주의를 잘못이해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것을 여성주의자들의 온정주의다 하는 식으로 단정짓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ta 2004/07/28 [11:50] 수정 | 삭제
  • 매우 좋은 기사같네요.
    온정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도식화된 '자매애' 에비롯한 온정주의는 여러가지 오류를 낳을수있겠지요.
  • 남방 2004/07/26 [18:22] 수정 | 삭제
  • 기사를 보면서, 내부로부터 생산되지 않고, 고민되
    지 않는 여성주의가 여성주의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또한 여성주의를 이유로 누군가가 비판할 때
    '존중'이 아닌 '권위'로 인식하고 그것에 대한 반감을
    갖고, 수용하지 못하였고, 또한 어떤 이는
    단지 결혼을 했다고 해서, 혹은 그녀가 아들을 가졌
    다는 이유로 해서 함께하지 않으려고도 하였지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채 왜곡된 여성주의를 도식화시키는
    것은 현장에서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매우 경계해야되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여성주의입니다!
  • 가을바람 2004/07/26 [16:48] 수정 | 삭제
  • 우리 여성운동가들이 그토록 노래하는 페미니즘의 진정성은 내부의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노력,소수자에 대한 배려,다수 여성대중에 대한 끝없는 사랑, 여성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노력하는 것일터인데, 언제부터인지 여성단체 내부는 비판을 싫어하며, 자매애라는 허울좋은 온정주의로 점점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조직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염려됩니다.
    물론 아직도 현장에서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며 묵묵히 노력하는 다수 운동가가 있기에 이 땅의 여성주의가 진보한다는 희미한 착각이라도 하면서 살 희망이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남성들이 중심이 되는 시민단체와 여성운동단체는 확연히 구분됩니다.
    남성들이 연대와 사업의 영역을 외부로 열어놓으려 노력하는데 비해 여성단체는 끝없이 내부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러다 가끔씩 여성운동의 이기성이라는 뭇 오해를 받기도 하지요. 이제 여성운동도 눈을 더 멀리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감당할 능력도 되구요. 여성주의 현실을 딛고 보다 유연하게 처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사소통의 부족으로 많은 남성들의 오해와 비협조에서 벗어나려면요..
  • 시냇물 2004/07/26 [15:18] 수정 | 삭제
  • 혹시 이런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민주주의는 대개 말하길 그 어떤 의견도 제시할 수 있으며, 이른바 다양성을 인정하는 거라고 하는데요.

    '민주주의는 반드시 없애야할 가장 나쁜 것이다'라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이것도 민주주의의 정신으로 인정을 해야하는 의견인지..아니면 민주주의를 헤치는 발언이라서 금지시켜야 하는지 말이죠.

    저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보면..민주주의의 강점을 이용해서..그것을 악용하는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처럼 이 기사에 나온 내용도..여성주의가 갖는 일말의 장점을 악용하는 행태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그 여성주의란것으로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옭아맸습니까?

    말한마디로..성폭력이다..성차별이다..그걸 모르는 것은 여성주의적인 마인드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이다..여성주의는..이런 식으로..불리하면..여성주의적인 것이 부족하고..가부장적이라고 억압이라고..너무나 무분별하게 써오지 않았습니까?

    제가 보기엔 기사에 인용된 에피소드는..너무나 편리하게 여성주의라는 것이 사용되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조금만 뭐하면..억압이다 상처다..피해다..가부장이다..이런말이 너무 쉽게 나오다 보니..자기가 조금만 코너에 몰려도..비여성주의적이라고 반박을 하는듯 합니다.

    성차별 성폭력도 이미 여자들의 하나의 무기로써 인식되고 있는 요즘 시점에..

    여성주의적인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좀 해보길 바랍니다.

    여성주의가 해야되는 일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질책한마디해도 안되는 것인가요?
    물론 아니겠죠..다만..그렇게 인식이 되도록 뭐했습니까?

    그동안은 타켓이 남자였기에..그 문제점을 댁들은 아마도 몰랐겠지만..막상 여자들 사이에서도 그런식으로 여성주의를 내세워 면피하는 사람을 보니 답답하지요?

    남자는 그동안 오죽괴로웠겠습니까? 그런 여성주의로 인하여 말이죠.
  • t 2004/07/26 [12:56] 수정 | 삭제
  • 아무리 옳은 원칙이라해도 도전에 열려있지 않거나 답을 할 수 없다면 의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점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에요. 왜냐면 점점 힘이 없어지니까요.
  • ballet 2004/07/26 [12:34] 수정 | 삭제
  • 이런 것도 여성주의일까 싶은 얘기들이 저도 있었는데요.

    행사를 하기로 해놓고 담당자 중 한 사람인데 빠진 경우인데,

    담당자가 빠지면 어떡하냐고 하니까 억압적이라고 하대요. -_-
  • 눈사슴 2004/07/26 [11:36] 수정 | 삭제
  • 피해자가 겪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대해 주로 관심이 많은데요.
    요즘 상처라는 말이 너무 많이 쓰여서 좀 곤란하다는 감을 느낄 때도 있어요.

    너무 많이 쓰이면 그 의미가 좀 훼손된다고 할까요.
    사람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도.
    여성주의적으로 상처에 대해 말할 때는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었는데,
    그게 자꾸만 남용이 되면서 혼돈이 생겨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생각해보면 상처라는 말에만 해당하는 건 아닐 것 같네요.
  • mirror 2004/07/26 [10:12] 수정 | 삭제
  • 문이정민 기자가 의도하신 바가 제가 생각하고 있는 지점과 얼마나 동일한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중간에 보면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고, 저도 입이 간지럽던 차였습니다. 요즘 어떤 경우를 보면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이들이 문제해결의 최선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법을 좀 더 신중하게 배웠으면 싶더군요.

    처음엔 피해자를 지원해주려다가 고생만 하고 도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리는 경우도 보았어요. 성차별이나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나 가해자 집단과 만나서 쇼부를 봐야 하는데, 여성주의적인 정치적 선명성을 세우려다가 아예 길이 막혀버리면, 피해자는 더 피해를 입고 고립되는 경우도 생기거든요.

    법적으로도 변호인이 해줄 수 있는 최선도 역시 피해자에게 무엇이 도움이 되는 것인가 인데, 그걸 판단하는 과정은 정말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느낀답니다. 여성주의에 대한 생각이 도식적이어선 안 되고, 항상 논쟁하고 맞장을 뜨라(?)는 얘기에 솔깃해지네요.
요가툰
메인사진
안 가본 길(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