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인’ 정체성이 예술의 원동력

2004 <입양인, 이방인 Our Adoptee, Our Alien>전

오김승원 | 기사입력 2004/08/09 [03:54]

‘입양인’ 정체성이 예술의 원동력

2004 <입양인, 이방인 Our Adoptee, Our Alien>전

오김승원 | 입력 : 2004/08/09 [03:54]
올해로 한국 해외입양이 5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8월 5일부터 개최되고 있는 해외입양미술전 <입양인, 이방인 Our Adoptee, Our Alien>에는 6명의 평면 작가들과 5명의 비디오 및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8일에는 부대행사로 <예술과 운동: 한국입양인의 정체성>을 주제로 한 ‘Art and Activism’ 세미나가 경희대 국제교육원에서 열렸다.

두 개의 정체성, 혹은 제3의 정체성

“나는 한국의 ‘세계화’라는 말에 아이들의 동의 없이 그 애들을 서양국가에 보내는 것이 포함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한국이 이해하기 바란다”라고, 입양인 미희 나탈리 르므안은 썼다. 세계화, 근대화, 서양화라는 소위 발전의 테마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 ‘아이’들이 그들의 ‘인권’이 무시된 채 서양국가에 ‘양도’되어왔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해외입양은 놀랍게도 한국의 세계화와 서양화와 비슷한 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해외입양은 수많은 생명의 인권을 본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박탈하고, 또한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더욱 크게 부각시킨다”라고 입양인 제인 진 카이젠은 말한다. 두 개의 정체성, 혹은 생물학적, 문화적 정체성의 차이가 만들어낸 제3의 또 다른 정체성(제인 진 카이젠), 생물학적 배경과의 단절이 주는 무한의 빈 공간(미희 나탈리 르므안) 등 입양인들에 있어서의 정체성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모호하기 그지없다.

제인 진 카이젠은 자신들이 말하는 정체성이 생부모를 만남으로써 완성되거나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인으로서도, 덴마크인으로서도 어느 한쪽도 버리지 않고 양쪽을 지키며 사는 것은 나의 삶의 여정이 될 것이다.”

예술은 사회를 재조명하는 도구

“1980년대 후반 입양 한인들은 의학 및 심리학 조사연구의 좋은 대상이 되었다”는 말로 미희 나탈리 르므안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연구대상이 되었다는 말이 내포하는 의미는 그들을 정의 내리고 판단하고, 제어하고, 또 가둔다는 것이다.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그 사회는 누군가 원인제공자를 찾기 마련이다. 찾는다기보다는 규정한다는 말이 더 맞다. 그리하여 정부나 사회가 규정한 정상 범주 안에 있지 않은 존재들은 쉽게 ‘일탈의 주범’이 되거나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로 둔갑한다. 두 개의 문화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10대 이민자녀들, 자신과 다른 모습을 한 입양국민들과 부모 사이에서조차 이방인의 그물을 벗어나기 어려운 입양아들이 그 타깃이 되기 쉽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입양인을 만들어낸 것은 누구인가.

제인 진 카이젠에게 있어서 “예술은 사회를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적절한 도구”다. 그는 “오늘날의 사회구조는 세계 정치나 미디어의 조종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미술은 사회적으로 쓸모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밖에서 독자적으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독립적인 사고방식이나 운영방식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캔버스를 벗어나, 전형화된 틀을 벗어나

예술과 운동 사이에서 그 둘을 잇는 것은 무엇일까. 입양인으로서 그들의 예술작업은 사회운동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입양인들의 경험은 그들이 접근했던 예술계와 학교가 그들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말하고 있다. 모든 근대화는 서양화로 가는 것이고, 모든 예술계는 백인남성문화에 편입되는 것이었다.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일, 사회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자신이 보는 사회를 말하는 일, 그것이 그들에게 곧 작업활동이 된다.

“나는 홀로 작품활동을 하는 것을 멈추고, 나의 예술세계에 있어 좀더 액티비즘을 부각시켰으며, 곧 그룹활동의 필요성을 이해하게 되었다.”(미희 나탈리 르므안)

그들의 작업은 기존의 전형화된 틀과도 괘를 달리 한다. “한국에서 사는 것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또한 작업을 하기 위한 비용도 너무 비싸다. 운반하는 것 조차도 비싸다.” 그들의 작업은 커다란 캔버스를 벗어난다. 새로운 미디어와 혼합장르는 그들에게 또 다른 방식이자 의미다. 장르를 고집하지 않는 것, 장르 간 차이를 즐기며 표현하는 것 역시 그들이 가진 체험과 동떨어진 일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해외입양미술전 <입양인, 이방인 Our Adoptee, Our Alien>전은 서울 금산갤러리와 동산방화랑에서 14일까지 계속된다. 한나 알브그렌, 송미 허프, 미희 나탈리 르므안, 수잔 스폰슬러, 순자 테르위, 마야 웨이머 등 평면(2D)작가와 제니퍼 아든, 타미 주, 조이 디트리히, 아델 귀용, 제인 진 카이슨 등 필름,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작품 40여 점을 전시한다. (www.artcam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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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04/08/13 [08:20] 수정 | 삭제
  • 전시회 끝나기 전에 가봐야겠네요.
    해외입양은 보통 잘 사는 국가로 수출되는 거니까, 외모부터 차별을 많이 겪게된다고 합니다. 일탈 낙인 찍히기도 쉽겠죠. 모국이 기댈 수 있는 구석도 하나 없고, 오히려 많이 원망스럽겠죠. 해외입양 50주년이라니 아픈 역사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국에선 어떤 노력을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 Miou 2004/08/09 [11:29] 수정 | 삭제
  • 거기서도 느낀 건데요. 해외입양인 중에 여성비율이 굉장히 높은 것 같아요.
    딸인 경우 입양보내는 일들이 많았던 것인지, 아니면 딸들이 커서 모국을 방문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유독 많은 것인지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전자가 아닐까요?
    해외입양인전시회가 열리는 줄은 몰랐었는데 함 가봐야겠네요.
    복잡하고 답답한 정체성을 담고 있는 예술작품일 것 같아요.
  • 고산 2004/08/09 [09:44] 수정 | 삭제
  • 작품들도 세 개밖에 안 봤지만 느낌이 좋아요.
    해외입양인의 정체성을 아무나 이해 못한다고 생각해요.
    2개의 정체성을 한꺼번에 가졌지만 이방인인 사람들, 사회적 낙인 얘기가 나온 걸 보니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힘들게 살아가나 보네요.
    그 분들이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법이 예술을 통한 것이니까, 전시회를 통해서 해외입양인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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