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이 여성운동 대표하나

‘연합체’ 위상에 대한 문제제기 시작돼

문이정민 | 기사입력 2004/09/20 [00:16]

여성연합이 여성운동 대표하나

‘연합체’ 위상에 대한 문제제기 시작돼

문이정민 | 입력 : 2004/09/20 [00:16]
흔히 ‘여성운동계’라고 하면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을 지칭해왔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등치가 정당한가. 여성연합 안팎으로 ‘여성연합이 갖는 대표성이 적절한가’에 대한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여성운동의 지형이 다양화되고 관점의 차이가 부각되는 지금, 여성연합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단 목소리다.

“여성연합 관점 보수화” 지적도

1987년에 창립된 여성연합은 현재 전국 6개 지부와 28개 회원단체를 두고 있다. ‘보수적’인 색깔의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와 대별되는 ‘진보적’ 여성단체들의 대표성을 가진 연합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2004년 현재, 더 이상 보수적인 ‘여협’과 진보적인 ‘여연’ 구도로는 여성운동진영을 설명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한 듯 보인다.

한국여성민우회(이하 ‘민우회’) 윤정숙 대표는 “예전에는 여성연합과 대별되는 대상이 오직 여협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가시적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말한다. 본지 조이여울 편집장도 “여성연합은 결성 이후 지부를 건설하고 회원단체들을 모으면서 ‘보수’ 단체와의 차이, 즉 여협과의 차이를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여성연합을 이야기할 때 ‘보수’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이는 여성연합이 호주제 폐지운동을 벌이면서 ‘가족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일단 호주제 폐지 하고 보자’는 입장을 보인 점, 총선 과정에 있어서 정당 불문 여성의원 수 늘리기에 급급한 여성정치세력화 운동을 진행한 점, 동성애자나 장애여성을 비롯한 소수자 여성들의 인권문제에 소홀했던 점 등의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2003년 여성연합과 선을 긋고 새로운 여성주의 연대체를 모색하며 ‘다름으로닮은여성연대’가 출범한 것도 여성연합이 한국의 진보적 여성운동을 대표하기엔 무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회원단체 간 입장차이 묻혀져

한국의 여성운동 지형은 다양해지고 있고 입장의 차이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연합의 입장이 전체 여성운동을 대변하는, 즉 ‘여성계 입장’으로 비춰지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여성연합의 모 회원단체에서 일하는 한 실무자는 “여성연합 내에는 이미 여성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입장을 같이 할 수 없는 단체들이 존재한다”고 털어놓으면서, “여성연합이 성명서를 내면 회원단체는 자동적으로 여성연합과 같은 입장인 것처럼 읽혀진다. 여성연합이 ‘연합’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의견을 통일해서 내는 것이 전제가 되는데, 실제로 의견을 모을 수 있는 구조나 상황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여성연합 회원단체들이 단체의 입장표명을 여성연합 측에 미뤄온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이나 외부에서 여성사안에 대해 시시때때로 입장을 묻거나 즉각적인 코멘트가 필요할 때, ‘여성연합으로 전화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각자의 전문영역이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에 비어있는 부분에 대한 논설을 여성연합에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 단체들도 즉각적으로 사안에 대응하고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역량강화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3일 여성연합 여성운동전망팀이 주최한 ‘여성운동 전망 워크샵’에서 본지의 조이여울 편집장은 “여성연합 지부를 제외한 회원단체들의 활동가들은 대부분 자신이 속한 조직이 여성연합과는 ‘별개’라고 인식하고 있다”면서, 그 이유에 대해 “실질적으로 단체들의 활동은 독자적으로 돌아가고 있고 단체장 간 만남이 있다 하더라도 어떤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해서 공통 입장을 결정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이 편집장은 “여러 사안들에 있어서 여성연합과 회원단체들 간의 관점의 차이, 운동 목적의 차이, 그리고 방식의 차이가 존재하며 앞으로 이런 양상은 더 뚜렷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면서, “문제는 그런 차이가 존재한다면 드러내고 논쟁이 되어야 발전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는데 여성연합의 ‘연합’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러한 논쟁을 막고 있고, 마치 여성운동계에 하나의 입장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고 있다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민우회 윤정숙 대표 역시 “여성연합의 과잉 대표성과 통일적 상징성은 내부 여성운동들의 다양한 입장과 위치를 보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하면서, “회원단체의 모든 여성활동가는 ‘여성연합 사람’이고 여성연합의 입장이 곧 회원단체 모두를 대표하는 의견이 되어버리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여성단체들의 연합체, 여전히 유효한가

그렇다면 여성연합 내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성연합이 ‘연합체’로서 위상을 가져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여성연합의 한 회원단체 활동가는 1987년 여성연합 창립 당시 여성운동에 있어 연합체가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그 때는 여성운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없고, 개별 단체들의 힘이 미약했기 때문에 연합체가 필요했다”는 것.

그러나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여성단체들의 ‘연합체’로서의 여성연합은 그 위상과 역할에 대한 문제제기를 안팎으로 받고 있다. 이영자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연합이 단체들의 연합체로서 많은 활동을 주도하고 전담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여성운동을 독점하는 것으로 비추어진다면, 현재 여성연합의 조직체계와 활동방식이 이대로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정숙 대표 역시 “이제 여성운동은 동질적이지 않다. 회원단체들은 각각의 이슈와 영역별로 전문화되었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니고 성장해왔다. 여성연합의 경우 사안에 따라 회원단체 모두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기도 하고, 때로는 개별단체로서의 위상을 갖기도 하는데 이제는 ‘합의와 통일성’의 강조보다는 차이가 다양성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조직적 재편과 운동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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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냥팔다 2004/09/24 [02:20] 수정 | 삭제
  • 여성연합이 17년전과 똑같이 계속 필요성을 인정받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여성연합 회원단체들 중에 독자적으로 활동하기에 아직 내외부적으로 미약한 단체들은 연합이든 어떤 형식으로든 지원을 받고 묶어주는 그런 조직을 마련하는 게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독자적으로 자체 내 역량이 되는 단체들은 연합으로 있을 때 좋은 것보다 좋지 않은 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운동의 다양성과 전문성 차원에서도 그렇고, 연합의 과잉대표성의 문제도 해결한다는 차원에서.
    이렇게 두 가지 경우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 내일 2004/09/21 [22:47] 수정 | 삭제
  • 뭔가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았는데 무엇을 쓰려고 하니까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복잡하고 끙끙앓기도 했던, 조심스럽기도 한 그런 얘기들이 이렇게 간단히 -간단하지는 않았겠지만 몇분 동안 읽을 수 있는 기사라는 것이- 정리되어 나온 걸 보니까, 허무하게 느껴지는 그런 것도 있다. 단체 실무자라거나 운동가, 상근자, 활동가라는 이름은 평소엔 가볍고 스스로 하찮게 생각되기도 하고, 이런 땐 무게가 많이 실리는, 너무 무거운 이름인 것 같다.

    여성연합은 여성운동 대표 못한다. 그리고 여성연합 회원단체들 간에 차이나 연대나 화합같은 것에서도 문제되는 것들도 많다. 그러나 문제되는 걸 해소하는 게 쉬운일이 아닌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게 진짜로 문제다. 지난 번에 여연대표가 열우당에 갈 때도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누가 손을 쓰지 못하고, 남의 일인 것처럼 하는 것, 그런 문제들이 반복되는 것 같다. 기사를 읽으면 통쾌한 것도 같은데 다시 돌아보면 더 갑갑해지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한다.
  • 학생 2004/09/20 [22:24] 수정 | 삭제
  • 전에 호주제에 대한 주장을 하거나
    당내 여성 정치가에 대한 발언을 할 때 적지 않게 실망했습니다.

    인권을 성장시키는 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질 일이라기 보다 오랜 시간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길일텐데 급격한 변화만을 위한 행동은...

    요즘에 여성들의 활동이 다양한 방면으로 왕성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고요.
    학교 내에서도 여자아이들 스스로가 여성의 인권면을 의식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너무 보수적으로 나아가는 것은 여성의 인권운동이 남자의 인권을 짓누르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너희 오랫동안 우리 누르고 살았지? 우리도 너희 좀 누르고 살아보자!" 이런 식으로 말이죠.

    여성의 인권만이 아닌 사회적 약자의 인권까지 함께 성장시켜, 더불어 모든 사람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우리 모두 화이팅 입니다.
  • alive 2004/09/20 [15:51] 수정 | 삭제
  • 연합 위상에 대한 얘기는 내부적으로 (회원단체들에선) 많이 나왔었죠.
    언젠가는 터질 문제였지 않나 싶어요.
  • 지나는길에 2004/09/20 [13:10] 수정 | 삭제
  • 이런 논의를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여성운동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고, 의미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사의 논조에 동의하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 논의가 진행될지 관심이 갑니다. 더 작고 더 다양한 여성운동 방식이 정착됐음 좋겠네요.
  • 거북이 2004/09/20 [07:50] 수정 | 삭제
  • 못하는 말이 없어..



    ^^
  • 미연 2004/09/20 [07:22] 수정 | 삭제
  • 여연 지부만 아니라 회원단체들 각각 지부까지 합치면 엄청 많죠.
    여연하면 밖에선 그 많은 단체들을 다 합한 것처럼 보이지만 회원단체들 내부에선 여연은 그냥 여연사무국으로만 통하죠.
    여연이 생긴지 벌써 17년이나 됐나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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