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여성운동계’라고 하면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을 지칭해왔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등치가 정당한가. 여성연합 안팎으로 ‘여성연합이 갖는 대표성이 적절한가’에 대한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여성운동의 지형이 다양화되고 관점의 차이가 부각되는 지금, 여성연합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단 목소리다.
“여성연합 관점 보수화” 지적도 1987년에 창립된 여성연합은 현재 전국 6개 지부와 28개 회원단체를 두고 있다. ‘보수적’인 색깔의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와 대별되는 ‘진보적’ 여성단체들의 대표성을 가진 연합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2004년 현재, 더 이상 보수적인 ‘여협’과 진보적인 ‘여연’ 구도로는 여성운동진영을 설명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한 듯 보인다. 한국여성민우회(이하 ‘민우회’) 윤정숙 대표는 “예전에는 여성연합과 대별되는 대상이 오직 여협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가시적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말한다. 본지 조이여울 편집장도 “여성연합은 결성 이후 지부를 건설하고 회원단체들을 모으면서 ‘보수’ 단체와의 차이, 즉 여협과의 차이를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여성연합을 이야기할 때 ‘보수’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이는 여성연합이 호주제 폐지운동을 벌이면서 ‘가족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일단 호주제 폐지 하고 보자’는 입장을 보인 점, 총선 과정에 있어서 정당 불문 여성의원 수 늘리기에 급급한 여성정치세력화 운동을 진행한 점, 동성애자나 장애여성을 비롯한 소수자 여성들의 인권문제에 소홀했던 점 등의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2003년 여성연합과 선을 긋고 새로운 여성주의 연대체를 모색하며 ‘다름으로닮은여성연대’가 출범한 것도 여성연합이 한국의 진보적 여성운동을 대표하기엔 무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회원단체 간 입장차이 묻혀져 한국의 여성운동 지형은 다양해지고 있고 입장의 차이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연합의 입장이 전체 여성운동을 대변하는, 즉 ‘여성계 입장’으로 비춰지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여성연합의 모 회원단체에서 일하는 한 실무자는 “여성연합 내에는 이미 여성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입장을 같이 할 수 없는 단체들이 존재한다”고 털어놓으면서, “여성연합이 성명서를 내면 회원단체는 자동적으로 여성연합과 같은 입장인 것처럼 읽혀진다. 여성연합이 ‘연합’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의견을 통일해서 내는 것이 전제가 되는데, 실제로 의견을 모을 수 있는 구조나 상황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여성연합 회원단체들이 단체의 입장표명을 여성연합 측에 미뤄온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이나 외부에서 여성사안에 대해 시시때때로 입장을 묻거나 즉각적인 코멘트가 필요할 때, ‘여성연합으로 전화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각자의 전문영역이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에 비어있는 부분에 대한 논설을 여성연합에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 단체들도 즉각적으로 사안에 대응하고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역량강화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3일 여성연합 여성운동전망팀이 주최한 ‘여성운동 전망 워크샵’에서 본지의 조이여울 편집장은 “여성연합 지부를 제외한 회원단체들의 활동가들은 대부분 자신이 속한 조직이 여성연합과는 ‘별개’라고 인식하고 있다”면서, 그 이유에 대해 “실질적으로 단체들의 활동은 독자적으로 돌아가고 있고 단체장 간 만남이 있다 하더라도 어떤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해서 공통 입장을 결정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이 편집장은 “여러 사안들에 있어서 여성연합과 회원단체들 간의 관점의 차이, 운동 목적의 차이, 그리고 방식의 차이가 존재하며 앞으로 이런 양상은 더 뚜렷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면서, “문제는 그런 차이가 존재한다면 드러내고 논쟁이 되어야 발전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는데 여성연합의 ‘연합’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러한 논쟁을 막고 있고, 마치 여성운동계에 하나의 입장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고 있다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민우회 윤정숙 대표 역시 “여성연합의 과잉 대표성과 통일적 상징성은 내부 여성운동들의 다양한 입장과 위치를 보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하면서, “회원단체의 모든 여성활동가는 ‘여성연합 사람’이고 여성연합의 입장이 곧 회원단체 모두를 대표하는 의견이 되어버리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여성단체들의 연합체, 여전히 유효한가 그렇다면 여성연합 내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성연합이 ‘연합체’로서 위상을 가져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여성연합의 한 회원단체 활동가는 1987년 여성연합 창립 당시 여성운동에 있어 연합체가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그 때는 여성운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없고, 개별 단체들의 힘이 미약했기 때문에 연합체가 필요했다”는 것. 그러나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여성단체들의 ‘연합체’로서의 여성연합은 그 위상과 역할에 대한 문제제기를 안팎으로 받고 있다. 이영자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연합이 단체들의 연합체로서 많은 활동을 주도하고 전담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여성운동을 독점하는 것으로 비추어진다면, 현재 여성연합의 조직체계와 활동방식이 이대로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정숙 대표 역시 “이제 여성운동은 동질적이지 않다. 회원단체들은 각각의 이슈와 영역별로 전문화되었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니고 성장해왔다. 여성연합의 경우 사안에 따라 회원단체 모두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기도 하고, 때로는 개별단체로서의 위상을 갖기도 하는데 이제는 ‘합의와 통일성’의 강조보다는 차이가 다양성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조직적 재편과 운동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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