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농산물에서 기준치를 훨씬 넘는 농약이 검출됐다는 소식으로 온 나라 안이 시끄러웠다. 그 바람에 소위 ‘웰빙족’들은 더더욱 ‘유기농’에 관심을 보이게 됐다.
그러나 굳이 웰빙이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건강을 생각하면 육류보다도 채소가, 또 채소 중에서도 농약이나 화학비료에 오염되지 않은 유기농 농산물이 몸에 좋다는 것을 모를 리 없건만, 정작 가난한 사람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는 멀기만 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보도를 접한, 정말 돈 있고 여유 있는 사람들은 유기농 제품으로 식단을 금방 바꿀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어떨까? 누군들 건강을 생각하지 않아 농약에 찌든 농산물을 먹을까? 사실 유기농 농산물을 먹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비싸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 보도를 지켜보면서 좀 다른 생각을 했다. ‘농민들은 어찌 그렇게 많은 농약을 뿌려댈 수 있을까?’라고 분노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농약과 같은 화학 약품을 남용하는 사람들은 농부들만이 아니다. 지난 봄, 햇볕 좋은 날 동네 공원 잔디밭에서 쑥을 뜯은 적이 있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잔디밭 속에는 쑥이 참 많았다. 주변에는 나 말고도 쑥을 캐는 아주머니들 서너 분 더 계셨고, 나도 그 분들 멀찍이 자리를 잡고 앉아 쑥을 캤다. 당시, 한참 즐겁게 쑥을 캐고 있는데, 공원에서 일하고 계시는 한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와서는, “제가 늘 봐서 아는데, 이 쑥은 안 먹는 게 좋을 거에요. 여기 농약 정말 많이 뿌리거든요. 게다가 어찌나 독한지. 재미로나 뜯지 드셔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그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 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그것을 공원 한 켠에 버리고는 털레털레 빈손으로 돌아오면서야 공원에 쏟아 붓고 있는 농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공원을 바로 면하고 있는 길에도 나무들이 햇볕을 잘 받으며 자라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나무들과 그 열매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나무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먼 기억들을 더듬으며 즐겁게 그 길을 지나다녔었는데, 그 일이 있은 뒤에야 나뭇잎들 위에 뽀얗게 앉아 있는 농약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그렇게 내려도, 그 하얀 농약 찌꺼기들은 씻겨 있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 농산물 사건을 접하게 됐다. 나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되려 담담하기조차 했는데, 그것은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결코 농부만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주변의 나무며 풀, 곳곳에 식품에 직접 치는 것 보다 더 독한 맹독성 농약을 쏟아 붓는 사람들이 어찌 농부들에게 그렇게 농약을 뿌려댈 수 있느냐고 따질 수 있을까? 우리는 다른 생명체들과 같이 살고 있다. 그들이 우리 인간들을 귀찮게 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생명체들이 살 수 없는 환경이라면 인간들도 역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당연한 사실을 너무 자주 잊는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의 건강은 반드시 다른 생명체들의 건강 역시 생각하는 한해서만 보장된다는 것을 늘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이번 가을에도 우리 아파트 단지 내 감나무에는 감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작년만 해도 군침을 흘리며 바라보았던 그 감을 그렇게 순진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오늘날 우리가 꿈꿀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이 가을, 마음이 쓸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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