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2일 양일간 열린 ‘하이서울 2004 실버취업박람회’를 찾아 삼성 코엑스 태평양홀에 온 고령자 및 노인들은 몇백 미터의 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려야 했다. 노인은 ‘쉬어야 할 나이’라는 의식이 변화되고 있고, 경제적 수입 확보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일을 하고 싶어하는 노인들의 욕구를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사적 영역에 분리돼있는 노인여성 대다수의 노인남성 사이에서 언뜻 보이는 노인여성의 모습은 ‘노인’의 취업이 ‘노인남성’을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노인취업은 젊은 남성에게 밀려나는 노인남성에 초점을 두고 있어 결국 노인 안에는 노인남성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박람회장을 찾은 노인여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가 취업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박람회장에는 고용대상을 남성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남성을 의식하거나 남성에게 유리한 경력을 요구하는 직종이 많았다. 박람회의 참가업체가 단순, 노무직에 한정되어 있는 것을 전제한다 하더라도, 노인여성이 접근할 수 있는 직종은 제한되어 있었다. 기계에 익숙하지 못하고 사무직의 경험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 취업의 기회는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계품질관리, 주택관리, 운전직, 건축, 건설, 위생설비 AS 업무, 주례 등은 남성의 일로서 이해되는 영역이었고 노인남성을 위한 일자리였다. 한편 주최측에서는 노인여성의 취업을 위해 ‘여성인력채용관’이라는 여성만을 위한 부스를 따로 마련했다. 여성들에게 간병인, 실버시터, 베이비시터 등의 취업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보살핌 노동의 경험을 살릴 수 있도록 했지만 성별 직종분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또한 일반 부스에 마련되어 있는 보험설계사나 결혼 커플매니저(중매인) 등과 관련된 참가업체도 노인여성을 선호했다. 결국, 이러한 직종들은 여성들로 하여금 사적 영역의 경험을 살려 자원을 마련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를 나타내지만 박람회를 굳이 통하지 않더라도 다른 경로를 통해 취업할 수 있어 형식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노인여성은 2차적인 노동권자?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수명이 긴 점을 고려한다면 노인여성에게는 경제적으로 더욱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노인여성이 노인취업에서 주요한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남편이나 자녀의 노동을 통해 경제적 자원을 분배받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노인여성은 사적 영역에서 일을 해왔고 가족 안에서 생계부양자 남편이나 자녀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로서 국가와 시장에 의해 노동의 권리에서 2차적 존재로 배치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노인일자리사업에서도 여전히 노인남성에 밀려나 있는 현상 안에서 작동한다. 노인여성은 공적 영역의 역할상실이 사회문제화된 노인남성처럼 가시화된 존재도 아니며, 집안에서 가사노동을 하고 자녀의 손자녀양육을 지원함으로써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손자녀양육의 지원이 경제적인 수입을 가져다 주는 경우도 있고 노인여성들이 자녀 및 손자녀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면서 가족 내에서 노년기를 보내고 싶어할 수도 있어, 생계부양자나 사회참여의 주체로서 강한 정체성을 갖는 노인남성처럼 역할상실이 동인이 되어 취업의 욕구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평생을 이어온 보살핌노동이 노인여성에게 취업보다 자원이 되는지 질문해야 한다. 노인여성이 취업을 원하는지 질문하기보다 노인여성에게는 취업의 욕구가 없다고 단정하고 노인여성을 가족을 위해 묵묵히 지원하는 존재로서 이해하려는 사회적 인식은 노인여성들의 취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인여성의 취업에 대한 필요성 환기되어야 자녀에게 노년기를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려는 문화 속에서 자원을 마련하지 못한 노인여성에게 취업은 노년기의 생계와 간병을 위한 자원을 마련하기 위해 중요한 권리이지만, 양육과 가사노동은 노년기에도 여성들의 취업기회와 노동의 성격을 한정 짓는다. 이 문제는 기혼여성의 취업 및 재취업과 보육문제와 연결하면서 노인여성의 취업을 제도적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많은 여성들이 가사와 양육을 위해 취업을 포기하고 재취업의 노동조건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 있고 노년기에도 취업의 기회를 제한받는 것은 보살핌노동의 평가절하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베이비시터, 실버시터, 간병인 등을 통해 노인여성들이 사적 영역의 경험을 살릴 수 있고 실질적으로 자원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박람회에서 나타난 성별 직종 분리 현상은 노인여성이 지원할 수 있는 폭을 한정지음으로써 취업 기회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한다. 일을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의존자로서 이해되는 노인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노인여성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노동의 권리를 지닌 존재로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인일자리 사업과 관련된 정책은 노인여성을 취업의 대상자로 인식하며 노인여성에 대한 교육과 잠재된 취업욕구를 끌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노인여성들 스스로 이해가 반영될 수 있도록 노동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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