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의 중요성은 하도 자주 나온 얘기라 이제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된 것 같다. 먹는다는 행위에 이렇게 관심과 주의를 기울였던 적이 있었을까. 배곯음을 벗어났더니 곧바로 먹는 행위는 건강과 직결되어, 삶의 수준으로, 문화로, 산업으로 요란한 탈바꿈을 한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조차 스스로 확인하지 못한 채 습관이 되어버린다.
지금 내 아이가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내 입에도 넣어봤더니 어금니가 뻐근할 정도로 달았다. 너무 달았다. 아이는 이미 단 맛에 중독되어 있다. 이 달디단 식품이 그 작은 혀를 얼마나 매료시켰겠는가. 울다가도 “사탕 줄게”하면 뚝 그친다. “울지 않을게, 미운 애기 되니까”하고 한 술 더 뜬다. 사탕 먹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엄마를 확신시켜두고 싶을 만큼 단 맛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다. 몸에는 안 좋지만,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삶의 방식에도 위배되지만, 그럼에도 탐닉하는 음식이 내게도 있다. 가끔 그것을 입에 넣을 때의 행복감은 반성과 자아성찰의 부족 덕분인지 모르지만 쉽게 포기되지 않는다. 그것을 아는 나는 아이에게 단 것에의 탐닉을 허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너의 혀를 감싸 돌며 널 얼마나 행복하게 하겠니. 문제는, 아이는 아직 사회화 과정에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일차적 욕구가 세상과의 의사소통의 전부다. 단 것을 원하면 먹어야 하고 거부당하면 좌절한다. 때로 그 쾌락 때문에 일상을 거부한다. 이렇게 달콤한 게 있는데, 왜 지근지근한 밥을 매일 씹어야 돼? 나는 밥상머리에서 아이와 여러 번 충돌했고, 그 충돌은 여러 가지 안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아이는 분명 스트레스를 받았고(나 또한), 나와 아이의 관계에 불신이 싹 텄으며(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이다, 엄마가 먹으라고 하는 것은 맛이 없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 말에 눈치를 보게 되었고, 동의나 합의 이전에 권력의 수직 관계에 자신이 놓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깟 사탕쪼가리와 과자부스러기가 던져놓은 결과들에 나는 놀랐다. 어느 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있었던 걸까? 처음,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이 할아버지가 아이 입에 아이스크림을 넣어 주었던 그 순간부터일까. 그때 그걸 먹지 못하게 하고, 엄마가 부엌에서 꺼내온 것 외에 가게에서 사는 것들은 한 입도 먹지 못하게 했었어야 했는가. 장 보러 나가서 과자 하나만 사달라고 하는 아이의 요청을 언제나 매몰차게 거절했어야 했는가. 설마, 이 대목에서 ‘그렇다’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똑똑한 엄마가 잘 골라 먹인다”라는 광고 카피를 새삼 곱씹으며, 무엇을 어떻게 골라 먹였어야 했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지만 여전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똑똑한 엄마가 골라 먹인다는 그 광고의 제품들 역시(아이를 위한 두유나 우유, 요구르트, 과자 등) 하나같이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어금니를 뻐근하게 할 정도로 달다. 살펴보면 당분이 절반을 육박한다. 음료수조차 아이들 용으로 나온 것들은 온갖 진한 향이 들어가 있어 불량식품 맛이 나지만, 아이들에겐 인기 최고다. 아이를 키우며, 아이 입에 먹을 걸 넣어주기 시작하며, 아이들 먹거리가 지나치게 달다는 걸 발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아이들 충치는 우리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심각해서, 이가 채 나기도 전에 속에서 썪어 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건 모두 아이들 먹거리의 문제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바뀌지 않는 걸까. 아이들의 입맛을 그토록 달게 만들어놓는 그 모든 제품들의 저의를 나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먹거리가 중요하다고 연일 외친다. 특히 아이들의 먹거리는 평생의 건강과 인성을 좌우하며, 또한 두뇌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학교 성적에도 영향을 미치며, 어느 대학을 가느냐 등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게 된다고들 떠들어 대는 것이다. 그러니 애들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뭘 먹여야 하는지 특별히 주의해야 하고, 조심해야 하고, 신경을 써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특별히 건강과 영양에 좋은 거라는 이름을 달고 나와있는 것조차 의심되지만, 고개를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봐도 그것을 살 수 밖에는 없는 개인들은 집에 돌아와 또다시 밥상머리 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의 불똥은 도대체 누가 떨어뜨려놓은 건지, 번번히 아이와 전쟁을 치를 때마다 나는 “어느 단추부터?”를 되뇌지만 여전히 답을 찾을 수 없다. 그것은 늘 개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지지만, 결코 그 개인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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