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이들 먹거리 너무 달다

밥상머리 전쟁을 벌이며

이유지현 | 기사입력 2004/11/07 [19:54]

[기고] 아이들 먹거리 너무 달다

밥상머리 전쟁을 벌이며

이유지현 | 입력 : 2004/11/07 [19:54]
먹거리의 중요성은 하도 자주 나온 얘기라 이제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된 것 같다. 먹는다는 행위에 이렇게 관심과 주의를 기울였던 적이 있었을까. 배곯음을 벗어났더니 곧바로 먹는 행위는 건강과 직결되어, 삶의 수준으로, 문화로, 산업으로 요란한 탈바꿈을 한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조차 스스로 확인하지 못한 채 습관이 되어버린다.

지금 내 아이가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내 입에도 넣어봤더니 어금니가 뻐근할 정도로 달았다. 너무 달았다. 아이는 이미 단 맛에 중독되어 있다. 이 달디단 식품이 그 작은 혀를 얼마나 매료시켰겠는가. 울다가도 “사탕 줄게”하면 뚝 그친다. “울지 않을게, 미운 애기 되니까”하고 한 술 더 뜬다. 사탕 먹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엄마를 확신시켜두고 싶을 만큼 단 맛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다.

몸에는 안 좋지만,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삶의 방식에도 위배되지만, 그럼에도 탐닉하는 음식이 내게도 있다. 가끔 그것을 입에 넣을 때의 행복감은 반성과 자아성찰의 부족 덕분인지 모르지만 쉽게 포기되지 않는다. 그것을 아는 나는 아이에게 단 것에의 탐닉을 허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너의 혀를 감싸 돌며 널 얼마나 행복하게 하겠니. 문제는, 아이는 아직 사회화 과정에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일차적 욕구가 세상과의 의사소통의 전부다. 단 것을 원하면 먹어야 하고 거부당하면 좌절한다. 때로 그 쾌락 때문에 일상을 거부한다. 이렇게 달콤한 게 있는데, 왜 지근지근한 밥을 매일 씹어야 돼?

나는 밥상머리에서 아이와 여러 번 충돌했고, 그 충돌은 여러 가지 안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아이는 분명 스트레스를 받았고(나 또한), 나와 아이의 관계에 불신이 싹 텄으며(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이다, 엄마가 먹으라고 하는 것은 맛이 없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 말에 눈치를 보게 되었고, 동의나 합의 이전에 권력의 수직 관계에 자신이 놓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깟 사탕쪼가리와 과자부스러기가 던져놓은 결과들에 나는 놀랐다.

어느 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있었던 걸까? 처음,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이 할아버지가 아이 입에 아이스크림을 넣어 주었던 그 순간부터일까. 그때 그걸 먹지 못하게 하고, 엄마가 부엌에서 꺼내온 것 외에 가게에서 사는 것들은 한 입도 먹지 못하게 했었어야 했는가. 장 보러 나가서 과자 하나만 사달라고 하는 아이의 요청을 언제나 매몰차게 거절했어야 했는가.

설마, 이 대목에서 ‘그렇다’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똑똑한 엄마가 잘 골라 먹인다”라는 광고 카피를 새삼 곱씹으며, 무엇을 어떻게 골라 먹였어야 했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지만 여전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똑똑한 엄마가 골라 먹인다는 그 광고의 제품들 역시(아이를 위한 두유나 우유, 요구르트, 과자 등) 하나같이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어금니를 뻐근하게 할 정도로 달다. 살펴보면 당분이 절반을 육박한다. 음료수조차 아이들 용으로 나온 것들은 온갖 진한 향이 들어가 있어 불량식품 맛이 나지만, 아이들에겐 인기 최고다.

아이를 키우며, 아이 입에 먹을 걸 넣어주기 시작하며, 아이들 먹거리가 지나치게 달다는 걸 발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아이들 충치는 우리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심각해서, 이가 채 나기도 전에 속에서 썪어 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건 모두 아이들 먹거리의 문제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바뀌지 않는 걸까. 아이들의 입맛을 그토록 달게 만들어놓는 그 모든 제품들의 저의를 나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먹거리가 중요하다고 연일 외친다. 특히 아이들의 먹거리는 평생의 건강과 인성을 좌우하며, 또한 두뇌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학교 성적에도 영향을 미치며, 어느 대학을 가느냐 등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게 된다고들 떠들어 대는 것이다. 그러니 애들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뭘 먹여야 하는지 특별히 주의해야 하고, 조심해야 하고, 신경을 써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특별히 건강과 영양에 좋은 거라는 이름을 달고 나와있는 것조차 의심되지만, 고개를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봐도 그것을 살 수 밖에는 없는 개인들은 집에 돌아와 또다시 밥상머리 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의 불똥은 도대체 누가 떨어뜨려놓은 건지, 번번히 아이와 전쟁을 치를 때마다 나는 “어느 단추부터?”를 되뇌지만 여전히 답을 찾을 수 없다. 그것은 늘 개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지지만, 결코 그 개인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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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구.. 2004/11/19 [12:05] 수정 | 삭제
  • 아이들을 키울때, 사탕이나 과자가 착한일, 잘한일에 대한 보상이 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아요.
    보상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인데(칭찬, 쿠폰, 동전...) 그 가운데 가장 쉬운 방법이고 잘 먹히는 방법이니까요..
    이런 교육 방법 역시 아이들이 단 음식에 노출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봅니다.
    '내가 착한일을 하면 사탕을 얻을 수 있다. 사탕은 노력의 댓가다..'
    뭐 이런식으로다가..

    엄마들이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봐요.
    인식하는 엄마들이 늘어나면 과자 회사도 바뀌겠죠.
  • 와삭 2004/11/11 [14:20] 수정 | 삭제
  • 밥에 콜라를 부어서 먹어요.
    저는 그거 보고 너무 놀랬는데 그렇게 안 하면 아예 밥을 안 먹는다고 하니 손을 못 대고 있는 형편이더군요.
    콜라가 얼마나 안 좋을텐데... 무턱대고 좋아하는 걸 막을 수도 없구..

    이번에 한국판 슈퍼사이즈미가 중단됐다고 하는데
    그 영화하고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봤거든요.. 외국판..
    아이들 보는 시간대 광고금지나.. 학교광고 문제삼는 시민운동.같은 것도 이어져서
    결국은 받아들이게 했다는 내용을 보면서..
    소비자 입장에서 뭔가를 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애들 밥맛이나 이런 문제로 개개인들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건.
    그것을 이용하는 시장의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계속적인..
    이익만을 가져다주는 일이라서 경계해야합니다.
  • ㅋㅋㅋ 2004/11/10 [13:19] 수정 | 삭제
  • 아이들 입맛이 원래부터 정해져있는거 아니것같은데?
    아이들 입맛을 이따위로 만든게 누구떄문인지 생각해볼필요가 있음...
    어머니들 아이기르실떄 밥하기귀찮타고 피자나 햄버거같은거 많이 먹이지 마세요.
  • 파이자 2004/11/10 [07:46] 수정 | 삭제
  • 흠흠.... 여자들도 단 거를 좋아한다.
    쵸콜렛. 특히 좋아하지.
    피자같은 서양음식도.
    입맛이 어린아이들과 비슷하다.
    잘 우는 것도 비슷하지.
    감정적으로 내세우는 것도 비슷하지.
    누가 돌봐줘야하고 무엇이든지 배려를 받아야 한다는 느낌도 비슷하지.
    모든 면에서 비슷하다.
  • 2004/11/09 [23:56] 수정 | 삭제
  • 먹거리 문제만이 아니죠.
    다른 생활 습관들이나 성격이나 가치관 같은 것들도, "대체 어느 단추부터?"하고 묻게 만드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사회의 테두리란 게 있기 때문에 환경,교육,인권의식 같은 모든 면에서 딸리는 사회에서 내 아이만, 특별히 좋은 부모 만난 아이만 다를 수도 없는 일이죠.
    아이키우는 일이란 너무나 힘든 일인 것 같아요.
  • 서진 2004/11/09 [16:40] 수정 | 삭제
  • 애들 간식으로 마땅히 줄게 없다.
    아토피도 심하고 가려먹어야 하는데
    남들 다 쪽쪽빠는 사탕도 안되겠고.
    어디보니 누룽지나 고구마로 간식도 주더만..
    애가 이미 입이 길들여져 고민이 이만저만.
    애들 먹거리에 대한 관심, 정말 필요하다.
  • 줌마 2004/11/09 [01:15] 수정 | 삭제
  • 심각하게 이빨 썪는 아이들은 과자소송이나 사탕소송같은 거 할 수 없는지.
    애들 몸보다는 무조건 애들이 좋아할 것들을 만들려고 하니까 그렇게 당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죠.
    애들 먹는 것들은 달아서 어른들은 먹지도 못하겠더라구요.
    몸에 좋을리가 없죠. 그런 식품들이.
  • 연희 2004/11/08 [23:27] 수정 | 삭제
  • "몸에는 안 좋지만,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삶의 방식에도 위배되지만, 그럼에도 탐닉하는 음식이 내게도 있다. 가끔 그것을 입에 넣을 때의 행복감은 반성과 자아성찰의 부족 덕분인지 모르지만 쉽게 포기되지 않는다. 그것을 아는 나는 아이에게 단 것에의 탐닉을 허할 수밖에 없다."

    아토피 아이들은 육식을 하면 안 좋다지만, 다른 식구들은 먹는 것을 한 아이에게만 못 먹게 한다는 건, 아무리 이유를 댄다해도 못할 일이란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러려면 모든 식구들이 채식을 하던가, 애들에게 좋은 것만 먹어야겠죠. 근데 맘 같이 쉽지가 않더군요. 음식점 메뉴도 없고, 집에서조차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아이들 먹거리가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식사 용으로 먹일 건 찾기가 어려워요.
  • 푸른노래 2004/11/08 [16:45] 수정 | 삭제
  • 애 키우는 사람이라면 알겠죠..
    밥상머리 전쟁..
    요즘 애들이 밥 고분고분 먹는 애들이 얼마나 되나요.
    다 먹으면 사탕줄게.. 이러죠.
    저도 걱정입니다.
    애들 먹을 것으로 나오는게 성인용보다 더 나은 것 같지도 않구.
    애들이 밥에 사이다를 말아먹고.. 그런 식인데
    무조건 못하게 막을 수도 없고.. 그런 게 참 문제죠.
    엄마들이 얼마나 독한 여자가 되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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