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시내씨는 카운터로 씩씩하게 걸어 갔다. “계란이랑 식혜랑 바꿔주세요.” “이걸 어떻게 얼마나 바꿔요”라며 황당해하는 직원에게 시내씨의 거침없는 대답이 이어졌다. “계란 하나에 4백원이고, 식혜는 600ml에 2천원이니깐 4백원에 대략 120ml잖아요? 지금 280ml 남았으니까 400ml까지 채워주시면 되겠네요. 여기 눈금도 있잖아요.” 똑 떨어진 대답에 생글생글 사람 좋은 웃음이 이어지는데, 매점 직원 당할 길 없다. 결국 백기를 든 직원, 600ml가득 식혜를 담아 오고 말았다. 조금은 엉뚱하고 추진력 있는 시내씨의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람을 쉽게 자르는’ 회사가 싫었다 대학에서 의상 디자인을 공부한 시내씨는 졸업 후 한 의류업체에 취업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은 일년 반 만에 접었다. 아무렇게나 사람을 ‘잘라버리는’ 회사의 풍토 때문이었다. ![]() 의류업계는 3~4년 정도로 직원교체 주기가 짧고, 업계 내에서 직원들이 로테이션되는 문화라고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필요 없어지면 언제든지 쫓겨 날 수 있는 거에요. 그게 언제든지 내가 될 수도 있는 거고.” 회사 생활에 염증을 느낀 시내씨는 평소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옮겨간 곳은 광고회사. 시내씨가 맡은 분야는 의류업체의 카탈로그와 지면광고 쪽이었다. 패션 디자인을 했기 때문인지 패션광고와 시내씨는 잘 맞았다. 회사의 광고 디자이너 중 패션을 아는 사람은 시내씨가 유일했다. 맡은 일은 확실히 했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사장과도 싸웠다. 게다가 감각도 좋았다. 시내씨가 만든 광고는 거의 모두 광고주에게 선택되었고, 회사 내에서 시내씨의 입지는 확고해졌다. 석 달 만에 팀장이 되었다. “사장님이 제 위로는 다 자르고 저한테 팀장을 맡겼어요. 출퇴근도, 일도 알아서 하라고 하셨죠.” 26살의 팀장, 회사에 나오는 시간도 맘대로인 ‘정직원이면서 프리랜서에 가까운’ 묘한 위치였지만 입사초기부터 시내씨를 봐온 동료들은 아무런 딴지를 걸지 않았다. 그게 시내씨의 작업 방식이었고, 그 효과성은 시내씨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새로 들어 온 직원들에겐 시내씨는 이해 안 되는 여자였다. 호주에서 해외촬영을 마치고 뉴질랜드에서 사장님 일행과 함께 여행을 하고 돌아 온 시내씨는 자신보다 경력은 높고, 직급은 낮은 동료에게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사장님이랑 썸씽있어요?” 사장님이랑 사귀는 거 아니냐는 빈정거림이었다. 암울했던 중학교 시절 ![]() 그 때문에 중3무렵부터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찍 학교를 마치고 취업할 생각을 했다. 공고를 가겠다고 했다가 담임에게 얻어 맞기도 했고, 인문계로 진학한 후 고 3때는 남들 수능 공부할 때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혼자 워드 연습 같은 걸 해보기도 했단다. 시내씨가 ‘돈 버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부자’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힘을 가지고 싶어서다. 시내씨는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다. 가능하면 결혼을 하게 되도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 “아이 때문에 헤어지고 싶어도 못 헤어지면 어떻게 해요.” 그 말을 하는 시내씨의 표정에서 피상적이 아닌 어떤 절실함이 느껴진다. 광고업계의 봄, 가을이 비수기다. 그 틈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웨딩드레스 샵을 개업했다. 웨딩드레스 샵을 개업하고 1년 동안 회사와 샵을 오가며 365일 중 이틀 빼고 363일을 바쁘게 일했다. 드레스 샵 일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샵에 집중했다. A라인으로 심플하게 만들었던 드레스가 우연히 틈새시장을 파고 든 셈이 되어서 장사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바쁘게 돌아다니던 사람이 좁은 가게 안에 갇혀 있으니 우울증이 생겼다. 취미에서 얻은 기회들 ![]() 우울함을 달래는 또 하나의 취미였던 ‘드레스놀이’(스스로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어 미니 홈피에 올리는 것을 지칭하는 시내씨의 표현)을 통해서는 새로운 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일명 ‘드레스 카페’. 여러 가지 드레스를 입어볼 수 있는 일종의 분장 카페로 며칠 전 이대 앞에 개업했다. 여자들끼리 편하게 즐기기 위해 ‘여성전용’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남자친구와 오고 싶다는 손님의 요구에 남성출입을 허용하게 됐단다. 아쉽지만, 어쩌랴. 고객의 요구라는데. 카페라고 하니 굉장하게 들린다. 돈 좀 들었겠다는 말에 시내씨는 손사래를 친다. “운이 좋았어요. 권리금도 싸고, 자리를 잘 잡았죠.” 남들은 1억씩 들인다는 카페 인테리어에 달랑 천 만원을 들였다. 다 발로 뛴 덕분이다. 쿠션, 테이블보, 커튼 등 패브릭들은 천을 끊어다가 직접 만들었다. 웨딩드레스 샵을 운영하면서 잠시 손을 댔던 봉제인형과 패브릭 디자인이 도움이 되었다. 광고디자인을 했던 경험을 살려서 간판, 명함, 메뉴까지 혼자서 만들었다. 인테리어 소품을 살 때도 한 시간씩 졸라가며 악착같이 가격을 깎았다. 그만큼 고생도 많았다. ![]() 굉장히 다양한 일을 해 온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시내씨는 그 일들이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결국 디자인이라는 한 점으로 수렴된다는 말이다. 수렴점이 될 수 있는 목표로 패브릭, 가구 등 여러 가지 인테리어 품목을 취급하는 멀티샵을 내는 것이 꿈이다. 지금 시작한 카페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중간 과정이다. 카페를 준비하면서 가구를 취급하시는 분과도 인연이 닿았다. 무엇보다도 카페를 통해 돈을 마련하는 게 목표다. 어쩌면 꿈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시내씨에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목표가 바뀌면 바뀌는 대로 해 나간다. 변화에 몸을 맡기고 새로움을 거부하지 않는다. 겁이 나도, 일단 하고 본다. 그것이 시내씨가 가진 힘이고, 시내씨의 성장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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