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잊혀지지 않는 그날

동성간 사랑을 ‘표현’하면

혜원 | 기사입력 2004/11/28 [21:35]

[기고] 잊혀지지 않는 그날

동성간 사랑을 ‘표현’하면

혜원 | 입력 : 2004/11/28 [21:35]
내 인생에 몇 가지 잊지 못할 사건 사고들이 있는데 그 중 몇 가지는 성정체성과 관련한 일들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두 명의 학생으로 인해 학교가 어수선해졌다. 유명한 커플이 생긴 것이다. 당시엔 레즈비언이란 말이 사용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모두들 그 두 학생이 보통 사이가 아니란 걸 알았다.

따지고 보면 학교에 커플이 한둘이겠는가. 반마다 커플이 있었고, 나처럼 ‘게이다’가 작동하는 사람의 눈에는 교사-학생 커플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를 모두가 다 아는 것은 아니란 점에서 이 두 사람과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든 주인공들은 나와 같은 학년이었는데, 둘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가 2학년 와서 다른 반이 됐다.

그 애들의 사랑은 모두의 눈에 띄었다. 쉬는 시간에도 항상 만나고, 복도에서 껴안기도 하고, 점심 때마다 벤치에 앉아 서로의 얼굴을 만지기도 했다. 나는 그 애들이 방과 후 운동장을 가로질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입맞춤을 하는 것도 봤다. 놀라운 일이었다. 남들이 보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애정표현을 하다니.

내 경우만해도 동성의 친구, 선배, 혹은 후배에게 느껴지는 감정이 당혹스러웠고 육체적인 접촉은 둘만 있는 경우에도 조심스럽고 두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당시 내 생각은, ‘도대체 저 아이들의 사랑은 얼마나 대단하기에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서로에게 끌리는 대로 행동하는 것일까’ 하는 데 치중해있었다. 그 애들이 나와 어디가 다르고, 어디가 같은지 궁금했다.

수소문을 해 보니 그 애들이 속한 반의 아이들, 혹은 친구들의 반응은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쟤네들 원래 그런 애들 아니었거든?”, “멀쩡한 애들인데, 공부도 잘 하고. 2학년 들어와서 갑자기 이상해졌어.” 이런 식이었다. 한 마디로 그 애들은 ‘이상한’, ‘정신 나간’ 애들로 취급 받고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반응은 그런 게 아닌데 말이다. 그런 반응들 속에서 나 역시 그 애들을 약간 이상한 애들로 보는 것처럼 맞장구를 쳐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매점에서 떡볶이를 사 먹고 나오는 길에 학교 벤치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아니, 어쩌면 그 애들이 보고 싶어서 매점에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 즈음 그 애들이 그 곳에 있곤 했으니까. 둘이 딱 붙어 앉아서 오직 서로만을 바라보며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애들을 나는 먼 발치에서 바라봤다.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잠시 생각했던 것 같다. 갑자기 학교 위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위를 올려다 보니 4층 창문이 줄줄이 열려 있었다. 3학년 선배들이었다. “야, 이 년들아. 둘이 안 떨어져?”, “더러운 년들아!” 소리와 함께 선배들은 빈 음료수 캔들을 두 사람을 향해 집어 던졌다. 음료수 캔들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너무나 충격적인, 너무나 무서운 광경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그 애들을 보고 ‘이상하다’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만 해도, 선배들과 선생님들까지 그 두 아이의 관계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조차 그것이 동성애자에 대한 극심한 혐오감이라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었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동성 간 사랑을 ‘표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 때 처음 알게 됐다. 선배들의 욕설과 그들이 집어 던진 캔들이 내는 소리는 당시 나를 한참 동안 비틀거리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십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찔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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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음 2013/12/21 [11:13] 수정 | 삭제
  • 2013년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2004년 이후 9년의세월이 흘렀지만 학교내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여전하다는 사실이 슬프네요. 과연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사라질 날이 언제가 될지...마음이 아픕니다.
  • 몽이 2004/12/01 [21:26] 수정 | 삭제
  •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이런 일들 알게 모르게 많을 거예요.
    반에서 왕따당하는 문제도 그렇고, 이반들이 상처를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그러는데 사회에서는 더 심하겠죠.
    커플인 게 알려진다면요.
    사람들이 무섭고 가슴아파요.
  • 토토로 2004/11/30 [22:18] 수정 | 삭제
  • 이반감성 글들 다 잘 보고 있어요.
    가슴아픈 내용이네요.
    레즈비언으로 커밍해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왔음 좋겠습니다.
  • blue 2004/11/30 [00:46] 수정 | 삭제
  • 학생들 간의 사랑을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그게 여자 간일 때는 더러운 걸로 보이나?
    내 눈엔 더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세상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 버드 2004/11/29 [20:53] 수정 | 삭제
  • 저거 범죄 맞죠? 그 학생들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나요? 나쁜 선배들이네요. 근데 만약에 써클이었으면 더 큰일 났을지도 몰라요. 고등학교에선 선후배 관계가 거의 깡패수준이잖아요. 무섭네요.
  • 바다 2004/11/29 [10:31] 수정 | 삭제
  • 우리 학교에서도 커플이라고 알려진 애들은 욕을 심하게 먹었어요.
    반에서도 왕따를 당했고, 소문이 다 퍼졌죠.
    그런 일 때문에 전학가는 애도 있었어요.
    이 글 보니까, 그 애들이 선배들한테 걸리면 훨씬 더 무서웠을 것 같아요.
    우리 학교 선후배 관계가 특히 엄했거든요.
  • thella 2004/11/29 [04:30] 수정 | 삭제
  • 학창시절 연애와 주위 사람들 시선 얘기 정도일 거라 생각하고 읽다가, 끝부분에 가서 보고 기분이 몹시 우울해집니다. 저런 식으로, 호모포비아가 물리적인 폭행으로 표출될 수 있는 여지를 느끼게 될 때가 있어요.
  • 초록 2004/11/29 [02:41] 수정 | 삭제
  • 효신과 시은이 교실에서 키스하던 씬이 떠오르네요.
    아이들의 야유가 님의 그 고등학교 선배들의 욕설과 비슷했을 것 같아요.
    깡패도 아닌데 모르는 애들한테 깡통을 던지다니 폭력적이네요.
  • 은빈 2004/11/29 [00:46] 수정 | 삭제
  • 너네 인정해줄테니 사람들 눈에 띄는 사랑은 하지 말고 몰래 숨어있으라고 한다.
  • G.hye 2004/11/28 [23:20] 수정 | 삭제
  • 그렇게 놀랄 만한 사건은 아니지만요.
    (((집에서 알게 돼 병원에 끌려간 애들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요즘은 고등학교 같은 경우는 쪼끔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남한테 폐끼치는 것도아닌데 저렇게 욕하고 그러는 거 너무 화나요.
  • 혜시 2004/11/28 [21:53] 수정 | 삭제
  • 저도 위에 말씀하신 똑같은 상황을 겪었었죠. 물론 깡통세례를 맞은 것은 빼고 말입니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와 서로 좋아했었고 2학년 올라와서 서로 다른 반이 되어서도 당당히 밝히고 위에 상황과 같은 날들을 보냈죠.

    그렇지만 저렇게 무시무시한 깡통세례나 욕세례를 받아본적은 없습니다. 물론 호박씨들은 다 까고 제가 지나가면 수군거리기는 했지만요. 카메라로 사진까지 찍더군요. 일약 스타가 됐죠. 그래도 참 다행입니다. 그정도 반응들이기에요.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저런 반응들을 당하지 말란 법이 없기에 조심하며 살아야겠군요. 조심하다라..문득 슬프네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조심시키며 살아야하는 현실이라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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