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김진영님은 경기도 구리시 토평중학교 교사입니다. -편집자 주>
며칠 전, 공부는 꽤 잘하지만 학교에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 학생이 결국 우리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에 대한 불신을 안고 떠났고, 교사들은 ‘그들이 자기 잘못은 하나도 모른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지나치게 엄격한 학교 규칙, 아직 선생님 훈련을 덜 해서 학생들과의 만남을 힘들어하는 새내기 교사들, 학생들의 반발심을 불러일으키는 체벌 등 교사 입장에서 보아도 학교의 문제는 분명히 있다. 한편 교사의 말을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학생 말만 무조건 믿으며, 자기 아이를 과보호하려는 학부모도 문제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제도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거나 도의적으로 교사나 학부모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와 이 아이 사이에 얽힌 사건과 그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 아이 이름은 영우(가명)다. 나는 2학년 앞 반 담임이고 1반에서 5반까지만 수업에 들어가고, 영우는 뒷반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마주칠 일이 없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굴도 몰랐다. 그런데 몇 주 전, 우리 반 학생 준호(가명)가 학교 앞 아파트 단지에 있는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돈이 많이 든 가방을 잃어버렸다. 가방에는 학원비와 친구 선물 살 돈 13만원과 책들이 들어있었다. 놀이터 의자에 친구들과 같이 가방을 벗어 놓고 농구대 근처에 가서 놀고 왔더니 준호 가방만 없어졌다는 것이다. 준호가 가방을 잃어버린 날, 나는 퇴근하는 길에 준호와 우리 반 아이들이 준호 가방을 찾으러 다니는 것을 보았다. 준호와 같이 놀던 우리 반 녀석들은 아파트 경비실에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놀이터를 비추던 CCTV를 확인했다. 그런데 거기에 영우와 같은 반 친구 성민이(가명)가 잡혔다. 그 아이들이 준호 가방을 들고 도망간 것이 드러난 것이다. 다음날 준호가 나한테 와서 이 이야기를 하면서, “영우가 가방은 가져갔지만 돈은 안 가져갔다는데요?” 했다. 다른 선생님 말을 들어보니 평소에 영우는 지능적인 수법으로 여러 선생님들을 괴롭힌 적이 있었다. 학교 도서관 책 훔치고 숨기기, 도서관에서 장난치기, 점심 후식으로 나온 옆 반 요구르트 40개를 다른 친구 시켜서 훔치게 하고 화장실에서 친한 친구들과 나눠 먹기, 청소하지 않고 도망가기, 선생님 말에 사사건건 토 달고 대들기 등. 영우의 담임 선생님은 착하디 착하고 순하디 순한 새내기 선생님이다. 영우가 평소 담임 선생님에게 함부로 대하고, 제 멋대로 행동해왔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 사건에 우리 반 학생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이 사건에 내가 주도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우가 착한 자기 담임 선생님한테는 요리조리 거짓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기회에 영우의 잘못된 버릇을 바로 잡지 않으면 점점 겉잡을 수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영우 담임 선생님에게 이 사건을 알린 후 영우를 호출했다. ‘이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돈은 어디 간 것인지’ 영우와 성민이를 추궁하자, 둘은 정말로 ‘돈은 자기가 모르는 일’이라면서 펄쩍 뛰었다. 영우가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증거를 대 봐요!”하고 대들자, 난 “그럼 우리 반 애가 거짓말을 했단 말이냐? 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지만, 걘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하며 영우에게 윽박질렀다. 일단 나는 고단수인 영우에게 기 싸움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고, 가방을 가져간 것에 대해서는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 안 하면서 교사에게 대드는 게 미워서 나도 모르게 영우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영우는 “왜 때려요!”하고는 “으악!” 막 소리 지르면서 울었다. 옆에 있던 선생님들이 ‘김선생도 영우도 조금 진정된 뒤에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영우는 담임 선생님에게 넘어갔다. 오후에 영우와 성민이 부모님이 학교에 오셨다. 영우와 성민이 부모님은 ‘영우와 성민이가 돈을 가져갔든, 안 가져갔든 간에 돈을 물겠다’고 했고, 우리 반 준호 부모님은 ‘잃어버린 아이 책임도 있으니 돈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영우와 성민이는 준호 가방을 훔친 것에 대해서 일주일간 교무실 청소를 하는 것으로 하고, 이 일을 마무리 지었다. 나 나름대로 내가 만나는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번 사건에서 내가 영우에게 보인 태도는 내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만일 영우가 우리 반 아이였거나 내가 수업 시간에 만나는 아이였다면 난 영우를 어떻게 대했을까? 아마 내가 지난 번 영우에게 했던 것처럼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평소 ‘아이들의 감정을 존중해야 하고, 혼내기 이전에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며 엄격하되 따뜻함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우리 학급이나 국어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대할 때 실수도 하지만 위험한 경계를 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데 영우는 내가 평소에 만나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할 학생들의 범주에 들어 있지 않은 아이였다. 단순히 질서를 교란시키는 무법자로만 보였다고나 할까? 영우에 얽힌 사건은 내가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했던 제자 사랑의 범주가 아주 협소하고 이기적이고 내 것만 챙기려 하는 모습이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영우와 성민이는 며칠간 교무실 청소를 잘 하는가 싶었다. 그런데 영우는 이후에 담임 선생님과 마찰이 좀 있었고, 옆 반 학생들 실내화를 훔치는 것이 들킨 데다가 이전에 했던 안 좋은 행동까지 있어서 학생부에 넘어갔다. 그리고 학생부 선생님과 또 갈등이 있었고 급기야는 학교를 안 나오겠다고 버텼으며 결국 전학을 가고 말았다. 영우가 전학을 가기까지는 내가 개입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있어서 내 힘으로 영우 전학을 막을 순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영우가 학교를 옮기겠다고 생각한 원인 중에 나도 끼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무겁다. 영우가 교무실 벌 청소를 잘 끝내면 차분히 데리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풀어주려고 했는데,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고 영우는 이미 다른 곳으로 갔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학생들은 교사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존재는 아닌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좁고 이기적인 내 제자 사랑의 벽을 한 단계 뛰어 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반,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일반 학생들은 물론이고 사람들을 대하는 일관된 태도로 넓혀야겠다. 앞으로 자주 영우를 떠올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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