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펨 이분법이 불편한 이유

다양한 레즈비언 커플모델 나오길

김혜정 | 기사입력 2004/12/05 [23:06]

부치/펨 이분법이 불편한 이유

다양한 레즈비언 커플모델 나오길

김혜정 | 입력 : 2004/12/05 [23:06]
<필자 김혜정님은 부산여성성적소수자인권센터(www.womcenter.org)에서 활동하는 레즈비언인권활동가입니다. -편집자 주>

‘부치’(butch)와 ‘펨’(femme)은 레즈비언 중의 어떤 유형을 지칭하는 단어다. 누가 이 단어들을 만들어냈는지, 정확한 개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부치’는 중성적인 스타일의 외모나 성격을 가진 레즈비언, ‘펨’은 보다 여성적인 외모나 성격을 가진 레즈비언을 뜻한다. 특히 성격보단 외모로 유형을 구분하는 경향이 강하다.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들어와서 “부치예요, 펨이예요?”라는 질문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지금은 그런 질문을 받으면 “전 전천후랍니다, 하하하~”하고 웃어넘겨 버리지만 처음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들어왔을 땐 “저는 그런(부치/펨) 구분 싫어해요”라고 말해서 주위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부치/펨’을 구분하는 이유는 주로 교제와 관련된 것이다. 흔히 부치 스타일의 레즈비언은 펨 스타일의 레즈비언을, 펨 스타일의 레즈비언은 부치 스타일의 레즈비언을 좋아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취향을 가진 경우도 있지만, 부치/펨 문화 때문에 그렇게 짝지어지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가령, 내가 아는 한 레즈비언은 외모가 펨 스타일로 보이기 때문에 주위에서 항상 부치 스타일의 레즈비언을 소개시켜 주는데, 자신은 그런 취향이 아니라 괴롭다고 한다.

부치/펨 문화는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남성’과 ‘여성’이 짝을 지어야만 한다는, 수천 년간 이성애 중심사회에서 공고하게 다져진 전제가 여성들 간의 사랑에도 끼어들어 굳이 ‘남성성’과 ‘여성성’을 나누어 짝을 이루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다양한 동성애자 커플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부치/펨’ 문화가 만연한 원인일 수도 있다. 현재 한국의 ‘부치/펨’ 문화가 서구의 20년 전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는 한 외국인 친구의 말이 어느 정도 타당한 것 같다. 또한 ‘부치/펨’ 문화의 영향력이 불과 몇 년 전에 비해 약해지는 걸 봐도 그런 것 같다.

레즈비언을 ‘부치’ 아니면 ‘펨’ 이렇게 나누는 문화는 레즈비언의 개성과 다양한 욕구를 누르게 하는 면도 있다. 요즘 나는 ‘부치’를 남성적, 또는 남성성이란 말을 사용해 설명하는 경우들에서도 뭔가 위험하단 느낌을 받는다. 한 사람의 특성을 ‘남성성/여성성’만으로 얘기하는 건 한계가 있다. 그런데도 왜 다른 특질들에 앞서 ‘남성성/여성성’이란 구분이 한 사람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잣대가 되어버리는 걸까.

사실 ‘남성성/여성성’의 이분화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부치’ 스타일을 ‘남성성’과 연관시키는 것은 기존 ‘남성성/여성성’이란 개념에 갇혀 우리가 다른 상상력과 언어를 갖지 못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쩌면 ‘부치’는 남성성과 별로 관련이 없는지도 모른다. 기존의 ‘여성성’이 현실적으로는 실제 여성들(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개념이란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더더욱 그러하다. 짧은 머리의 여성, 웬만해선 치마를 입지 않는 여성, 허스키 보이스의 여성이라 해서 섣불리 ‘남성성’이란 개념을 들이댈 수는 없다.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들어온 초기에 ‘부치/펨’ 문화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은 자꾸만 ‘부치, 아니면 펨’으로 나를 규정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서였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부치나 펨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규정하지 말라고 할 생각은 없다. 자신을 부치나 펨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에겐, 그럴만한 어떤 이유(각자 다르겠지만)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 자체로 존중해줘야 한다고 본다. 다만 레즈비언 커뮤니티가 그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좀더 다양한 규정들과 커플 모델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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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ㅁㄴㅇㄹ 2019/04/07 [14:38] 수정 | 삭제
  • 델마와 루이스에서 유래한 용어 아닌가요?
  • resilience 2017/01/22 [14:56] 수정 | 삭제
  • 교제의 편의를 위해 구분짓는 건 이해하지만, 헤테로가 아닌 걸 선택한건데 그 속에서 헤테로와 조금 모습만 다르다 뿐이지 본질적으로 비슷하다고 느껴서.. 아 부치/펨 이 자체가 비슷하다는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구분 짓고 하는 문화가 그렇다는 겁니다 참고로. 글쓴분 말대로 다양한 레즈비언 커플이 많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 bi 2014/06/18 [14:52] 수정 | 삭제
  • 뭐 그렇게 구분해서 올바른 인식을 갖고 사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기 때문에 약간 불편한듯해요. 레즈비언이던 비레즈비언이던 사회적 영향을 받은 사람이란건 똑같으니까... 그런 인식이 레즈비엔커뮤니티에만 있다고는 말할순 없겠죠..
  • 영혼 2010/01/05 [15:39] 수정 | 삭제
  • 왜 인지.. 그런 구분에 목 매는 분들이 많긴 하지만
    용어에 거부감을 가진 분들도 많은 거 같아요.
    그냥.. 자연 스럽게 누군가를 만나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될 텐데..
    너무 머리 아프게 나눌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ㅎ
  • 2009/07/22 [23:53] 수정 | 삭제
  • 그냥 나누는 이유는 서로 사귈때 구분 해서 사귀귀위해 그런거아닌가요 .,,이성?을찾으려면 ,,,,,,,뭐 ,,,
  • 2005/05/03 [11:54] 수정 | 삭제
  • 겉모습 보고 그렇게 부르고요,
    비투비도있고, 쌍피도 있는데요
  • 이바닥? 2004/12/11 [18:53] 수정 | 삭제
  • 이 바닥 7년째 ㅋㅋㅋ
    여전히 그런거 따지는 사람들 많지요.

    경험적 이야기로는 탐 바텀 이야기는 좀 들은지 오래됐지만
    부치 펨은 아직도 자주 보거든요...

    뭐 내 주위 환경이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구분 좀 촌스러운 거 같아요.
  • 졸린밤에 2004/12/11 [13:09] 수정 | 삭제
  • 부치나 펨은 또 하나의 성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세상에는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등등의 성 정체성이 있고 또 동성애라는 성 정체성 안에 부치나 펨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구요.

    이성애자가 동성애라는 정체성을 무시하고 동성애자들을 자기들의 기준 안으로 들어오라 강요하고 억지로 편입시키려는 것이 옳지않듯,
    동성애자들 사이에서도 부치나 펨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그런 기준 안으로 무조건적으로 편입시키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겠죠. 동성애자들 중에는 부치나 펨도 있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사회니까요.
    하지만 부치라는 정체성은 펨이 취향이고 펨이라는 정체성은 부치가 취향이니 그 사람들이 자꾸 그렇게 사람들을 구분하려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건 취향의 문제니까(어떤 유형의 사람이 성적으로 끌린다는 문제는 타인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뭐 그런 이분법적 구분을 같은 커뮤니티 안의 사람들에게 억지로 강요한다면 옳지 않지만요.
  • 김치만두 2004/12/10 [15:40] 수정 | 삭제
  • 저는 이반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지만;; 이 기사에 많이 공감합니다.

    한 인간은 강하고 씩씩하고 크고 암튼 사회적으로 남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과 약하고 부드럽고 작고 등등 여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으로 딱부러지게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격투기 선수가 바느질을 즐길 수도 있고, 한 사람이 꽃과 이종격투기를 동시에 좋아할 수 있는 것처럼요.

    또 하나 설령 어떤 사람이 특정한 성격이나 외모를 가진다 해도 그가 꼭 그와 반대되는 성격 이나 외모를 가진 사람에게 끌린다는 법도 없죠(물론 저는 제가 좀더가깝게 접할 수 있는 이성애의 사례를 떠올리고 있습니다만).

    부치.팸 구분은 이성애와 동성애 여부를 떠나 인간 내면과 인가 관계를 보는 지루하고 진부한 관점이란 생각이 듭니다.
  • 2004/12/09 [21:35] 수정 | 삭제
  • 머리길이에 목소리에 의상까지 해서 그런 이미지를 양극대화하는 경향도 유행했어요
    거기에 반발해서 팸투팸 부치투부치 커플문화같은 것도 생겨나구요
    요즘은 10대들이 외모중시하는 경향이 더 강해서 부치펨구분은 좀 줄어드는 것같아도 또 외모로 뭔가 유행은 계속 번지는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제일 좋은 건 역시 자연스러운 거 아닐까요
    스타일 중시하는 이반들 오히려 촌스러보여요 그것도 한때겠죠
  • 하늘색 2004/12/09 [01:51] 수정 | 삭제
  • 커트머리에서 머리를 좀 길면 부치가 펨되고. 의상만 좀 바꿔도 펨이 부치되고.
    키크고 목소리 저음인 애 사귀면 부치가 펨되고. 반대로 펨이 부치되고.--> 애인이랑 비교해서 상대적인 컨셉으루.

    또 어떤 이반들은 (나도 때로는) 부치는 부치로 타고나고 펨은 펨으로 타고난 기질같은 게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부치 펨은 영원한 숙제일까.
  • esthete 2004/12/08 [11:42] 수정 | 삭제
  • 부치 팸으로 규정되지 않는 부분은 모조리 여백으로 남거나 ,
    억지로 부치 팸이라는 범주 안에 쑤셔넣어지거나 둘 중 하나죠 .

    세상의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규정되는 것도 아닌데 .
  • Justin 2004/12/08 [02:08] 수정 | 삭제
  • 진지해보이지 않아서 싫었어요.
    모임같은 데 가면 부치/팸 나누는 게 집단적으로 장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거든요.
    연애가 장난인가? 사랑이 절실해보이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지금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그런 면도 있는 것 같아요.
  • 소금 2004/12/06 [23:12] 수정 | 삭제
  • 연애를 위한 편의상 부치/펨을 구분한다고는 하지만 또 그렇게 구분하다보니 어떤 부류로 사람들이 것두 두 편으로 나뉘니까 같은 레즈인데도 또 너무 다르게 보이고. 부치는 펨들이 문제라고 하고 펨은 부치들이 문제라고 하고 그런 싸움(?)도 종종 일어나는 것 같아요.
  • 이스트 2004/12/06 [14:20] 수정 | 삭제
  • 솔직히 거부감 느껴지더군요.
    참 곤란해져요 특히 채팅이라도 해볼까..해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듣는 질문중 하나죠
    그러면 굉장히 곤란해져요 그러데 또 전천이라고 말하기도 뭔가 모하고..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를 잔뜩 대면 그냥 전천이라고 하면 되겠네. 한마디 하더군요.
    그럴땐 뭔가 답답하기도 하고..그러죠
    저는 분명 레즈비언이고 그렇게 규정되지만 팸이나 부치로 규정되어지는 사람은 아닌데 말이죠.
    여성성이 강하기도 하고 중성적이기도 하고..
    특별히 남성성이 강한 사람을 찾는것도 아니고 여성성이 강한 사람을 찾는것도 아니고.. 말이죠. 곤란해요..저것 참=_=
  • 사과나무 2004/12/06 [11:19] 수정 | 삭제
  • 세대 차라고 해야하나요?
    나이대에 따라서 그게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요즘은 그런 거 따지지 않는 이반들도 많은데 나이드신 분들은 유독 그게 강한 것 같던데요.
    그렇게 보면 나중엔 부치/펨 구분하는 것도 조금씩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아닐까요?
  • 넝마 2004/12/06 [04:08] 수정 | 삭제
  • 아주 획일적이지만 않으면 그렇게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요.

    획일적으로 딱 나누는 경우에는 거부반응 저도 일어요.

    부치니까 이렇게 하고, 팸이니까 이렇게 하고, 그렇게 나누는 경우는 싫거든요.

    그냥 좋아하는 취향이랄까 그 정도로만 분류하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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