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피해여성의 남편살해, 살인죄 합당한가

서울여성의전화 “정당방위 인정하라”

문이정민 | 기사입력 2004/12/19 [22:48]

폭력피해여성의 남편살해, 살인죄 합당한가

서울여성의전화 “정당방위 인정하라”

문이정민 | 입력 : 2004/12/19 [22:48]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남편을 살해했다면, 살인인가 정당방위인가. 오랜 세월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한 사건들이 공론화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들의 범죄를 생존을 위한 방어, 즉 ‘정당방위’로 인정하기보다는 ‘살인’으로 바라보는 법 집행이 우세한 현실이다. 지난 15일, 서울여성의전화는 “폭력피해여성에 대한 정당방위 인정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남편살해, ‘정신이상’이 아닌 ‘정당방위’

조용범 이화여대 교수(심리학과)는 학대 받은 여성의 일반적 증상을 설명하면서 “흔히 그렇게 맞고 여성들에게 왜 떠나지 않았느냐고 묻지만, 여성들의 심리적 상태를 보면 대안을 생각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인지적 왜곡증상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학습된 무기력감으로 인해 오히려 친구나 자식들에게 ‘그래도 그 사람이 마음씨는 착한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등 궁극적으로 학대에 수용적으로 길들여진다”고 말했다.

조용범 교수는 ‘학대 받은 여성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 이하 BWS)’을 소개했다. 남편에게 학대 받은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일련의 증상을 설명하고 있는 BWS는 임상, 법정 심리학자인 레노어 워커(Lenore Walker)가 최초로 사용한 개념으로 폭력에 시달리던 여성의 남편살해를 정신이상이 아니라 정당방위로 읽어내도록 해 미국여성운동에 혁신적인 공헌을 했다. 조 교수는 “이는 학대 받은 여성의 돌출적인 폭력행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남편을 살해한 여성들을 전문가 증언을 통해 법적으로 구제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증후군’의 과학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논란으로 남고 있다고.

또한 조용범 교수는 미국에서의 전문가 증인 변호전략에 대해 발표하면서 “피할 수 없어 살해했다거나 일시적인 정신이상으로 전략을 짜는 ‘변호성 변호’가 아니라 전통적인 정당방위 개념에 대해 도전하면서 합리적 대응방식으로 바라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편살해 여성 44.5%, “남편폭력 때문”

김영희 충북대 교수(아동복지학과)는 2004년 법무부 용역보고서로 작성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월 청주여자교도소 수감자 531명 중 436명(남편살해 여성 133명 포함)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남편을 살해한 여성들의 44.5%가 남편의 폭력 때문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 주목을 끌었다.

김영희 교수는 “남편살해 여성들이 겪는 학대는 신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정서적 학대, 경제적 학대, 강요, 의처증, 협박 등 다양하고 심각한 수준의 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그토록 시달리면서도 벗어날 수 없었던 요인은 자녀에 대한 연민과 양육책임, 이혼할 경우 남편의 보복위협이나 친정식구에 대한 가해위협, 그리고 무엇보다 이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주위에 친한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것’, 즉 집을 벗어나면 갈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편살해 여성들은 “친정식구들에게는 죄스러워서, 친구들에게는 부끄러워서” 무시무시한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는데, 설령 주변에 상담을 한다고 하더라도 “참고 살라”는 조언을 주로 받은 것으로 드러나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이 미흡함을 나타냈다.

이어 김 교수는 “남편으로부터 학대나 가정불화 해결을 위해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는가에 대한 답변에서 40%에 가까운 비율이 아무에게도 도와달라고 한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학대나 불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도 지지도 받지 못하는 고립된 정황이 살인범죄와 관련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움 받을 사람이 주변에 있었다면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등의 남편살해 여성들의 진술은 사회적 지원기관의 필요성을 상기시켜주는 대목이다.

재판 구조 속 성별격차 내재돼

남편살해사건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조사과정과 재판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김영희 교수는 “면담과정에서 매우 많은 수형자들이 경찰과 검찰의 조사과정에서 심리적으로 매우 탈진한 상태였음을 보고했다”면서, “그 여성들이 겪은 힘든 결혼생활이나 폭력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공범여부와 살인상황에 대해서만 다그쳤고,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자포자기상태로 조서를 꾸미게 된다”고 설명했다.

죄책감으로 인해 ‘차라리 사형을 시켜달라’고 진술하는 등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한 발언이 결국 형 선고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많다. 김 교수는 “대부분 남편살해 여성들이 '검찰이나 검사는 여자마음을 너무 모른다'고 말해 재판 구조 내에 성별격차가 내재돼 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남편살해에 대한 법 적용을 검토한 이명숙 변호사는 “쟁점이 되는 것은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가 여부”라면서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다 때려죽이면 상해치사가 되는데, 계속 맞던 여자가 방어로 죽이면 살인죄로 처리되는 것은 정당한가” 반문했다. 이변호사는 “가정폭력 피해 아내의 남편살해사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우발적 범죄로서 명백한 살인고의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살인죄로 의율되고 있다”면서 “이는 평소 폭력습관이 전혀 없던 아내가 남편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수사기관을 찾아가 살인의 고의를 인정해버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각적인 방어행위만 정당방위로 봐선 안돼

이어 이명숙 변호사는 ‘정당방위 성립요건의 재검토’ 필요성을 주장했다. 정당방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부당한 침해가 현재 발생하고 있을 것, 방어의 의사로 행해진 방어행위일 것,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 등의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즉 “현재의 공격에 대한 즉각적인 방어행위만을 정당방위”로 본다는 것. 따라서 전통적인 ‘부당한 침해의 현재성’을 강조하게 되면 “잠시 쉬고 있거나 잠을 자는 등 폭력행위가 중단된 뒤 이뤄지는 살해하는 경우나 사건 당시나 사건 발생 며칠 전까지 폭력행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폭력을 견디다 못해 살해한 경우”에는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가정폭력 피해 아내들의 살인행위가 범죄행위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침해의 현재성’과 ‘상당한 이유’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아내와 남편의 특수성이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남편의 폭력이나 협박, 학대가 장기간 걸쳐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형적인 ‘매맞는 아내 증후군’을 겪고 있는 아내가 평소 남편의 거듭되는 폭력을 견디다 못해 남편에게 가하는 반격행위와 같은 특수한 사정 하에서는 ‘침해의 현재성’이 있는 것으로 봐 정당방위, 혹은 과잉방위가 인정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10년이 넘는 기간을 폭력을 행사해오던 가장에 대한 피해자들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범위내의 결과에 이르는 방어를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일반적으로 아내가 남편에 비해 육체적으로 열등한 바, 방어행위의 ‘상당성’을 판단할 때 이러한 점이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명숙 변호사는 현행 법제도의 개선점으로 ‘가정폭력 특수성에 대한 이해와 전담 수사관 및 전담재판부 도입’, ‘가정폭력 관련법규의 재정비’, ‘가정폭력전담법원의 도입’ 등을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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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만하라니 2018/06/03 [02:02] 수정 | 삭제
  • 기사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 Y 2004/12/21 [11:58] 수정 | 삭제
  • 한국은 법적으로 정당방위 설립요건이 좀 체계가 없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남편살해 문제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정당방위 설립에 대한 논란이 좀 더 필요합니다.
    심리적인 이해가 부족하다고나 할까요.
  • 병뚜껑 2004/12/21 [00:26] 수정 | 삭제
  • "검찰이나 경찰은 여자 마음을 너무나 몰라줘용"
    하하하! 미치겄다.
    그 소린 니들 남자친구한테나 가서 해라.
    글고 니들 논리대로라면 부모로부터의 학대와 고통에 못이긴
    존속살해범도 정당방위네.
    더 나아가서는 어린시절 불우한 환경과 가정의 시달림에 삐뚤하게 자란
    연쇄살인범도 원인은 잘못 키운 부모와 사회탓이니 죄를 물으면 안돼네.
    아그들아. 살인은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이제 자극적인 소재거리가 다 떨어졌나 보지.
    이제는 살인에 대해 걸고 넘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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