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노동, 여성의 숙명인가

간병휴직제도 등 대안마련 시급

김홍수영 | 기사입력 2004/12/26 [23:06]

간병노동, 여성의 숙명인가

간병휴직제도 등 대안마련 시급

김홍수영 | 입력 : 2004/12/26 [23:06]
인천에 살고 있는 이숙희(가명, 32)씨는 1달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대신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이직을 한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주위에 간호해줄 사람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숙희씨는 어쩔 수 없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홍미현(가명, 42)씨는 2년째 치매에 걸린 친정어머니를 간호하고 있다. 그 전에는 중풍에 걸린 시어머니를 3년 동안 간호했으니, 무려 5년째 간병생활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홍미현씨는 “식사나 대소변, 목욕 수발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 놓고 외출을 못해서 무척 괴롭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판 남에게 아픈 혈육을 맡길 수 없다”

보통 출산, 육아, 간병은 개별 여성들이 마땅히 담당해야 할 ‘가사’로 분류되어 왔다. 하지만 ‘가사노동을 사회화해야 한다’는 이슈가 제기되면서, 출산과 육아를 정책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아직은 미비하지만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은 이 같은 노력의 결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간병노동의 사회화’에 대한 논의는 아동양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판 남에게 아픈 혈육을 맡길 수 없다”는 정서는 여성들을 은근히 억압하기도 한다. 이때 아픈 가족을 돌보는 역할을 떠맡는 가족구성원은 대개가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가사노동을 하고 있는 여성들은 물론이거니와, 직장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도 사표를 내고 혈육을 돌보는 일을 투신하는 것이 가족애를 지키는 순리다. 이 같은 정서에서 벗어난 경우라도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는다. 간병료가 의료보험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유료 간병인을 쓰게 되면 엄청난 의료비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어떨 때는 남편이 빨리 저 세상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프죠. 처음에는 남편이 아프다는 사실 자체가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혼자 환자를 뒷바라지 하는 데에 힘이 다 빠져버렸어요.” 1년 동안 위암에 걸린 남편을 간호해온 서지혜(가명, 38)씨의 말이다.

어머니, 딸, 며느리, 아내의 역할

핵가족 제도가 전형인 현대사회에서 주위의 친지나 이웃의 도움 없이 환자를 간병하는 일은 거의 ‘도를 닦는 수행과정’과 다를 바가 없다. 간병노동으로 ‘득도’한 여성들을 심정적으로 보상하는 ‘효행상’이나 ‘장한 어머니상’와 같은 제도는 이미 약발이 떨어진 지 오래다. ‘착한 어머니’, ‘착한 며느리’의 판타지로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메우기에는 간병으로 여성이 짊어져야 할 고행의 짐이 너무도 무겁다.

‘착함’에 대한 강조가 ‘먹히지’ 않을 때에 등장하는 또 다른 전략은 여성을 ‘매정한 어머니, 딸, 며느리, 아내’라고 ‘사회적으로 비난’하는 것이다. 간병노동을 ‘게을리’하거나 ‘거부’하는 여성들은 인간미가 없는 성격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눈총을 받는다. 여성들은 자기 자신의 욕구를 표출하는 이름보다 매정한 ‘어머니, 딸, 며느리, 아내’라는 타인의 욕구를 반영하는 이름에 반응하도록 강요 당할 때가 많다. 따라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족간병’이라는 표상에 어설프고 힘겹게 부응하고 있는 게 현 실태다.

물론 현재 사회정책의 체계 안에 간병을 지원하거나 보조하는 제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원요건이 지극히 까다롭고 선별적이다. 예를 들어, 산재보험에는 입원 중에 소요된 간병료를 지원하는 ‘요양급여’와 퇴원 후의 간병비를 지급하는 ‘간병급여’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에게만 해당되는 지원일 뿐, 산재보험을 적용 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환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하반신마비’, ‘손가락을 모두 잃은 경우’ 등 타인의 조력이 없이는 거동이 ‘전혀’ 불가능할 때에만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고용보험에서도 “30일 이상 가족을 간병하기 위해서 사직을 할 경우”에 실업급여를 제공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일을 그만 두어야 하고’, ‘주위에 간병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야 한다’는 항목을 충족시켜야 한다.

간병비 의료보험 추가 등 제도 마련돼야

이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고 극단적인 간병지원제도를 보완하는 대안으로는 다음 세 가지 정책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간병휴직제도’를 시행하는 방안이다. 현재 여성이 가족을 간호하기 위해서는 ‘사직’ 외에 택할 수 있는 대안이 별로 없다. 그러나 사실 서구 복지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간병휴직은 아주 생경한 제도만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공무원들은 “부모, 배우자, 자녀 및 배우자 부모를 간병하는 목적으로 1회에 1년(재직기간 총 3년)까지 휴직하는 것”을 보장 받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남성과 여성 노동자에게도 간병휴직제도를 확대 적용하여 가족간병으로 인한 극단적인 희생을 줄일 필요가 있다.

둘째, 특정계층에게 제공되고 있는 무료 ‘간병인 서비스’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현재 자활후견기관에서는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목표 하에 저소득층 여성을 대상으로 ‘간병인 교육’을 실시하고, 이들로 간병인 사업단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간병인 서비스는 독거노인, 장애인, 소년소녀가장에 한해서만 무료로 제공된다.

그러나 국가보조금 외에도 이용자가 일부 비용을 부담하도록 변환시키고, 대신 간병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대상자를 넓히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간병 도우미 사업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이는 ‘여성고용창출’과 ‘가사노동의 사회화’라는 양 측면에서 눈여겨볼만한 대안이다.

마지막으로 ‘간병비를 의료보험 급여항목에 추가’하는 방안이다. 이는 간병인 서비스를 국가가 직접 지원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간병비로 인해 과도하게 짊어져야 하는 의료비의 자기부담율을 낮추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위에서 제시한 대안들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제도개혁이다. 이제는 ‘간병노동의 사회화’를 구호를 넘어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단계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고민할 때이다. 간병노동은 개별여성이나 한 가족이 짊어져야 할 ‘개인적인 숙명’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충분히 조절될 수 있는 ‘정치적인 영역’이다. 사회화되어야 하는 것은 여성이 간병노동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시선이 아니라, 간병노동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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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1/01 [13:18] 수정 | 삭제
  • 간병노동도 '분담'과 '사회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도 어떤 노동은 아예 없는 것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죠.
    복지차원에서도 그렇고 노인문제, 여성문제로 봤을 때도 시급한 문제인 것 같아요.
  • zzz 2004/12/30 [07:59] 수정 | 삭제
  • 요즘 세상에 어떤여자가 혼자간병할려고하냐?
    다 나이먹은 어머니들이 간병하는거지 당신들세대와는 다릅니다.
    젊은 여자들주에 간병을 혼자 도맡아하는게 요즘 세상에 그리 흔치않은 일이지
    그리고 어떤 아들들이 시간이 남아도 간병안합니까?
    현경님 가족중에 그런아들들이 잇나보져?
    남자들을 완전 폐륜아처럼 보시네..
    근대 시간이 남나? 병원비 벌기도 힘들텐데...
  • 현경 2004/12/29 [18:01] 수정 | 삭제
  • 애들 간병하는 것도 힘든데 성인을 특히 노인을 간병하는 건 배로 힘들다고 할 수 있죠.
    그걸 효라는 이름으로 한 여자가 책임질 수 있을까요?
    저같으면 못할 것 같아요. 한달 정도면 모르겠지만요.

    무료 간병인 제도가 많이 확산되면 좋겠고.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요.
    그리고 가족들도 혼자서 도맡으면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해요.
    보면 딸들은 부모 간병을 해도 아들들은 시간이 있어도 간병 안하려고 하더군요.
    손녀가 하면 했지.
    그래서 그런 거 보고 아들은 헛 키웠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봤어요.

    간병일이 얼마나 힘든 건지 알았으면 좋겠구. 공평하게 역분하는 것도 필요하구요.
    그리고 간병인 제도 많이 사용될 수 있는 게 좋은 방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빨리 그런 사회가 오길.
  • 감자 2004/12/28 [14:55] 수정 | 삭제
  • 우리 집도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몇달간 병 간호를 한 적 있는데요. 처음엔 어머니와 우리가 옆에서 간병하고 했는데 나중엔 엄마가 거의 하시게 되고.. 그러다가 엄마까지 병이 나시고 정말 거의 다들 쓰러질 지경이 됐어요.
    가족들 간에 신경전도 있게 되고 몸이 힘드니까, 그리고 아버지도 병 때문이겠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 넘 생각 안해주시고 그런게 감정적인 문제까지 번지더라구요. 간병하고 그러는게 얼마나 힘들고 속 사정들이 많이 생기는지 그 때 처음 알게됐어요.
    주위에서는 간병인을 쓰라고, 돈이 들어도 그게 서로를 위해서 좋다고, 그랬는데 처음엔 엄마도 반대하시고 그러는게 꼭 매정한 것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도 그렇게안하려고 했는데 나중엔 간병인을 쓰게 됐어요.
    근데 간병인 아주머니는 정말 대단하시더라구요. 일도 척척 잘 하시고 아빠가 어디 편찮으신지 우리보다, 본인보다 더 잘 알고 그래서 그 때 처음부터 간병인을 써야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아빠를 우리가 안 찾는 것도 아니고, 같이 간병하니까요. 간병문제는 사회화라는 거 인식이 부족한 거, 좀 많이 알렸으면 해요.
  • 푸하하 2004/12/28 [12:08] 수정 | 삭제
  • 당연히 집에있고 시간이 많이 사람이 아픈사람 돌바주는건 당연한거 아닌가?
    직장다니고 있는 남편한테 간병보라고하냐?
    아직까지 대부분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집에있는 시간이 많기떄문에 간병보는걸 가지고 뭐 이게 차별이라고 떠들고 다니냐? 누가 간병하고 누가 좀더 희생하면 어떠냐?
    남자들은 부모님 아프면 마음도 안아프고 아무것도 안하는것처럼 말하지말아라
    남자들도 가까이에서 부모님들 간병하고싶다. 근대 병원비를 벌어야할꺼아냐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들보고 병원비벌라고 나가서 일하게하고
    남자들보고 간병하라고하냐? 현실적으로 생각좀 해바라
    간병하는게 희생이냐? 그게 왜 희생이냐 당연이 자식으로서 지켜야할 도리이지.
    너희들은 나중에 늙어서 아픈데 자식들이나 남편들이
    간병인 불러서 모든거 해결하게하고 병원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찾지도않으면 기분이 어떻겟냐? 병에걸린 노인들은 말로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시러서 빨리죽어야한다고 말하지만 그게 진심으로 하는말이라고 생각하냐?
    현실적으로 생각해라.
  • hide 2004/12/27 [21:47] 수정 | 삭제
  • 주위에서 노인 모시는 집 보면 정말 늙어서 저렇게 되면 어떡하나 싶거든요.
    어른들도 빨리 돌아가시는 게 며느리 고생 덜 시키는 건데.. 이런 얘기들 하시죠.
    다른 사람에게 몸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게 불행한 일이잖아요.
    내가 사는 게 누군가에게 짐일 뿐이고 내가 빨리 죽는게 돕는 거고.
    그렇게 되면 사는 게 서럽고 지겨울 것 같아요.
    간병이 한두 사람에게 너무 큰 부담만 지우는 게 아니라면..
    전문적인 간병인이 적어도 일주일에 3일 정도 와주고 그런 식이라면
    훨씬 그런 인간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몸을 의지하는 사람과 간병을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요.
    언제까지 가정에, 며느리에게 간병을 강요하고, 그게 안 되면 될 대로 되라 식으로
    사람을 방치하고 그렇게 냅둘 것인지 모르겠어요.
  • orora 2004/12/27 [15:51] 수정 | 삭제
  • 간병문제는 결코 개인의 짐으로 떠넘겨져선 안됩니다.
    간병노동의 사회화 전략... 멋지네요.
  • 디디에 2004/12/27 [11:27] 수정 | 삭제
  • 자신을 키워준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도 아니고,
    남편의 부모에게 효라는 이름으로 숙명인 듯 간병을 할 수밖에 없게되는..
    며느리들의 상당 수가 너무나 힘들게 살고 있다.
    그걸 효부라고 칭하면서 칭찬하는 것은
    계속해서 그런 일을 여성에게 도맡으라고 하는 암묵적 강요다.
    그래서 효자,효부상이 싫다.
    간병이든 가사노동이든 육아든 모두가 책임지고 모두가 그 속에서
    소중한 경험과 사랑도 나누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
  • 모카 2004/12/27 [08:53] 수정 | 삭제
  • 간병을 집안에서 한 사람(며느리죠. 보통은.)이 담당하는 거 그 사람보고 인생 포기하라고 하는 거나 다름 없다. 간병이 아름다운 일이어야 겠지만 실제로는 비인간적인 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는 거 알았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간병을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제도가 필요한 것 같다.
  • 2004/12/27 [02:25] 수정 | 삭제
  • 간병인을 써야 좋은 상황에서도,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직장인이라면 직장 그만 두는 것보다야 낫죠) 가족이 간병을 꼭 해야만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력 때문에 간병을 하는 경우들도 있는 것 같아요.

    간병도 하루이틀이죠. 간병일이 사람 잡는 거라는데 가족이 간병을 하면 더 어려운 점들도 많잖아요. 지치면 사람이 미워지기까지 하고요.

    간병인은 그 일에 전문가이고 의료에 대한 지식도 많으니까 더 많이 도움을 줄 수도 있는데, 모르는 사람 쓰면 안된다는 암암리에 전제돼있는 생각들도 바뀌어가야 할 거예요.
  • wild 2004/12/27 [01:02] 수정 | 삭제
  • 간병이 극단적인 희생이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집에 몸을 가누기 어려운 환자가 생기면 파탄이 날 지경이죠.
    나이들수록 다들 두려워하는 분위기입니다.
    여성이란 이유로 그 힘든 일을 혼자 도맡아야 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죠.
    돌아가면서 휴직을 하고, 형편이 너무 어려우면 국가지원도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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