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여성시대’에서 소외된 여성들

2005년 여성운동의 방향을 제안하며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5/01/31 [22:11]

[논평] ‘여성시대’에서 소외된 여성들

2005년 여성운동의 방향을 제안하며

조이여울 | 입력 : 2005/01/31 [22:11]
얼마 전 한 경제신문 기자가 연락을 해서 ‘여성시대’ 혹은 ‘여성상위 시대’라는 말에 대해 의견을 달라고 했습니다. 일다는 계속해서 더욱 열악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는 여성노동권에 대해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노동운동, 여성운동의 큰 흐름에서조차 비껴나 있던 여성 비정규직화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논의하던 중에, 그런 질문은 ‘생뚱맞게’ 들리기까지 하더군요.

그러나 진보적 시사주간지를 자처하는 모 언론에서도 그 즈음 ‘여성시대’를 화두로 꼽았었습니다. 어제는 주요 일간지에서 “남성시대 끝났다”는 제목의 기사를 띄웠더군요. “숫자가 증명”을 해준다고 합니다. 거의 사법고시, 외무고시, 행정고시, 변리사와 회계사 시험 등에서 여성이 수석을 차지했다는 것이지요. 1등에 열광하는 사회인지라 여성시대, 남성시대와 같은 ‘성평등’ 관련한 이슈에 대해서도 그렇게 분석을 하나 봅니다.


‘다른 길’이 없는 절박한 현실 반영

여성들이 고위직에 진출을 하고, 각종 국가고시에 합격한 비율이 늘어나는 것은 한편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은 갑자기 여성들이 변해서, 혹은 사회가 변해서 생겨난 일은 아니지요. 그 배경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더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노력을 했는가를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얘기해서 여성들의 성적은 이전에도 좋았습니다. 모 남녀공학의 공과대학에 다녔던 친구는 학과가 신설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여학생은 상위 10% 안에 들었고, 수석도 여학생들 차지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의 분석은 이러했지요. “여자들은 소수고, 과 분위기에 적응하기 어려우니까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공부만 하는 거지.”

그 말은 조금 허탈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얘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렇게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여자선배들이 취업을 잘 했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언제나 우선권은 ‘성적이 덜 우수한’ 남학생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한층 더 심각합니다.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길에 겹겹이 쌓여있는 벽을 실감한 여성들은 그나마 성적을 통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각종 시험들에 ‘남성들보다’ 더 목을 매게 됩니다. 각종 ‘고시’들에 합격한 여성들의 비율이 늘고, 수석의 영예까지 안는 것은 그 외의 다른 길이 차단된 여성들의 절박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외된 여성, 배제된 인권

극소수의 ‘빛나는 여성’들을 언급하면서 여성인권과 성평등 지수를 거론하는 것의 문제점에 대해, 공교롭게도 딱 1년쯤 전에 이 공간을 빌어("당신의 여성인권 체감지수는?" 2004년 1월 13일) 지적한 바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사회에서 여성들 간 간극이 심해질 때 소외된 여성들의 수는 더 많아지고 여성운동도 그 힘을 잃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 재직하고 있는 도로시 키드 교수를 만났습니다. 도로시 키드 교수는 1970년대부터 미디어 운동을 해온 여성주의자인데, 미디액트가 주관한 행사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가, 국내 여성주의 그룹으로 일다를 소개 받아 인터뷰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일다가 지향하는 가치와, 기존 여성주의 흐름과의 차이점, 현재 주목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시금 일다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여성들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달랐고’, 여성들을 하나의 범주로만 보고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방식은 이제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일다는 시민사회가 놓치고 가는 여성인권, 그리고 여성주의 진영이 놓치고 가는 이슈들에 주목해왔습니다.

도로시 키드 교수는 서구의 경험과 비교하면서 현재 한국사회의 여성주의 운동과 여성매체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았습니다. 특히 이주여성들의 현실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많은 관심을 보이더군요. 조선족 여성들을 비롯한 이주여성노동자들, 한국의 성산업에 유입되는 외국인 여성들, 그리고 우편주문신부들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새삼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만약 이주여성들의 상황이 열악한 만큼, 이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가 존재하고, 의지할 수 있는 공간과 사람들이 있고, 대변해주는 운동단체들이 있다면 그렇게 갑갑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들 여성들의 인권은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암흑상태입니다.

심지어 여성들 다수와 관계된 비정규직 문제, 노동시장의 성차별 문제도 여성운동의 성장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속수무책으로 계속 밀리고 있습니다. 시민권도 얻지 못하고 있는 레즈비언, 이동권도 보장 받지 못하는 장애여성, 견고한 나이주의로 인해 목소리가 묻혀버린 아동과 십대여성, 그리고 노인여성의 삶이 곧 한국사회 여성들의 인권현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세워가야 할 여성주의

도로시 키드 교수를 만나고 난 다음 날, 평생을 여성운동에 바쳐온 선배운동가 한 분을 만나 뵈었습니다. 최근 여성운동 진영은 어떤 지각변동이 있으며, 앞으로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논의하고 있는지 의견을 나누었지요. 물론 일다의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도 그에 포함됩니다.

여성운동 진영이 여성들의 변화하는 현실과 다양한 목소리들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새롭게 제기되는 인권이슈들에 대해서도 눈을 돌리지 못하는 면이 많다는 것은, 여성문제를 꾸준히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어느 정도 공감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의 방향 설정이 관건이 되겠지요.

일다 역시 앞으로의 기획과 방향설정에 돌입했습니다. 독자들도 아시다시피 작년 말 경부터 폐간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일다는 비전을 뚜렷이 세우지 못한 채 새해를 맞아야 했지요. 일다 운영에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매체가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선배운동가와의 만남은 여성운동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는 것뿐 아니라 앞으로의 활동에 있어서 무한정 애정과 독려를 받는다는 점에서, 이런 때 항상 힘이 됩니다.

일다는 지금까지 제기해 온 이슈들 이외에도, 끈질기게 이야기하고 다시 세워나가야 할 여성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 중입니다. 특히 현재 여성운동 진영의 흐름에서 소외되고 있는 부분에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다 기자들의 커뮤니티에 “목이 메이고 가슴이 켕기는 부분들, 그런 이슈들과 그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고 제안을 했고, 함께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 고민을 독자들과도 공유하고 싶습니다. 가려진 여성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많고, 방패막이 없이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소수자 여성들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현실을 우리는 ‘여성시대’란 말을 입에 담기 전에 먼저 둘러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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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ream 2005/02/09 [03:03] 수정 | 삭제
  •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하고, 주위를 바라보게 하고, 안 보이는 곳까지 바라보게 하는 글이어서 감동적입니다.
  • 일다의 2005/02/07 [03:51] 수정 | 삭제
  • 일다가 있어서 왜 좋은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네요.

    소수자 여성들의 존재와 그들이 소수자인 이유가 그야말로 “목이 메이고 가슴이 켕"깁니다. 그들을 연민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곧 나의 다른 모습 같아요. 발 한 번 삐끗하면 내가 바로 저 모습, 내일의 내가 바로 저 모습. 이 사회가 너무 답답해요.
  • 뒷모습 2005/02/03 [18:14] 수정 | 삭제
  • 민주노총이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민주노총 죽인다고 남 탓 하기 전에 조직안의 문제에 대해 뼈를 깎는 성찰을 해야만 살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민단체들-여성단체들을 포함해서- 운동의 제도화 문제도 심각한 위기입니다.
    일다 편집장님의 글이 시민사회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운동을 해나가야 하는지 방향을 찾게 도와주는 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Hyades 2005/02/02 [12:32] 수정 | 삭제
  • 일다가 지향하는 방향과 일다의 여성주의에 동의, 지지를 표합니다.
  • 제크 2005/02/01 [20:16] 수정 | 삭제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일다는 꼭 필요해요.
  • 현경 2005/02/01 [09:16] 수정 | 삭제
  • 이 글 보면서 제가 여성주의자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생각했어요.

    여자들이 살기 좋아졌는데 여성운동이 왜 필요하냐고 얘기하는 속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얄궂게 생각될 때가 있었죠.
    성평등한 세상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두 번째로 생각한 건 일다가 변함이 없는 초심이라는 걸 확인했어요.

    일다를 알게된 것이 1년이 넘는 것 같은데요. 제겐 여성주의와 인권의식을 배우는 곳이었고, 관심없던 문제들에 대해 많이 알게됐어요.
    내 앞길만 생각하면 어떤 문제들은 왜 꼭 알아야 하고 관심가져야 하나 하고 생각하게 되기도 쉽거든요. 사회에 나와서 이기적으로 살기 쉽고 세상에 길들여진달까, 타협하기 쉽게 되는데, 일다에 와서 많이 배우고 생각을 고쳐먹곤 했죠.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죠. 자기 문제는 절실하고 남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등 돌리고요..
    여성문제도 나와 딱 관계된 것만 관심갖고, 다른 여성인권은 눈을 돌리지 않기 쉬워요. 나중에 그게 내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도 근시안이죠.
    그걸 뛰어넘는 게 여성주의자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일다가 계속되었으면 좋겠어요. 간절히요.
  • 지나가다 2005/02/01 [06:42] 수정 | 삭제
  • 전, 운동이나 학생조직(여성조직도 포함)에 몸담았던 사람의
    집단주의적 의식구조와 폭력성에 가끔 아연질색합니다.

    "가진 자"나 "일정 직업군들"을 비난하는 갖은 욕설들
    예를 들어, 이런거죠.
    "도대체 X는 왜그러는 거야?" "어.. 걔는 교수잖아?"
    또 "걔는 있는 년 아니야?! 그래서 그런거야.."
    있는 자들에 대한 왕따와 노골적인 거부감.

    그동안 받았던 '계급적 차별'을 한 순간에 '보복'이라도 하듯... 내뱉는 말
    여성주의자이건 아니건... 한꺼번에 삼켜버리는 거죠.

    사실 제가 만난 적 있는 일부 여성주의자의 행태입니다.
    그들은 나이가 어리지도 많지도 않으며, 왕따의 기술을 저항의 언어로 터득한... 소위 학력이 높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느냐에 따라 카멜레온 처럼 변합니다.

    아,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두 여성주의자이지만..
    이런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언어를 계속해서 유지하고자 하는데
    동의할 수 없기에.. 한번 글을 올려봤습니다.
    제가 아는 좋은 사람들이 여성주의 장을 떠나고 있습니다.
  • 2005/02/01 [02:18] 수정 | 삭제
  • 여성들 취업문이 좁으니까 고시 쪽으로 더 몰릴 수밖에 없는 거죠. 훨씬 더 치열하잖아요. 그걸 가지고 남성시대가 갔다고 엄살을 떨다니 너무하죠. 그런 여성들은 소수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 여성들인데 말이에요. 여성상위 시대라고 얘기하는 남자들은 여자들이 하소연하는 성차별 문제가 별 거 아닌 줄 아나봐요.

    편집장님 시원한 글 봐서 역쉬 좋았어요. 일침! ^^ 일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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