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다 보면 나중에는 예외 없이 모두 괜시리 화가 나게 만드는 주제가 있다. 그것은 자신이 학교 다닐 시절의 소위 학교괴담이다. 새 학기가 시작하면 선생님께서는 한 아이를 ‘지목’하여 “이번 학기의 반장인 OOO예요”라고 인사시켰었다. 나 또한 선생님들이 육성회비가 밀린 아이들의 머리를 출석부로 때리고 뺨을 때리는 것을 무력하게 바라보아야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장 참담한 기분을 느끼게 한 것은 “자, 이제부터 눈 감고 자기 집에 있는 것에만 손 들어보자. 집에 TV 있는 사람? 그 다음엔 전축 있는 사람, 에어컨 있는 사람, 마지막으로 자가용 있는 사람!” 이런 내용의 일명 ‘가정환경조사’다. 세월은 흐르고 사회는 민주화 되어 학생들이 학급임원을 직선제로 선출하고 선생님들이 예전처럼 ‘노골적으로’ 학생들을 차별했다가는 큰 코 다치는 세상이 되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보수적인 옛 틀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 작년에 나는 모든 항목을 빈칸으로 두고서 맨 밑에 있는 ‘기타(학생의 특이한 점, 선생님께 바라는 점)항목’(정작 기타항목이 가장 중요한데 칸이 너무 작아서 많이 쓰려면 뒷장을 이용해야 한다)에만 빽빽하게 적어서 가정환경조사서를 제출했다. 며칠 후 담임선생님이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해왔다. “저 담임인데요. 아니 아무 것도 안 적어서 내시면 어떡하시겠다는 거예요. 오늘까지 컴퓨터에 입력해야 되니까 빨리 불러주세요. 일단 주민등록번호부터 불러주세요.” “아니, 학생들을 파악하는데 부모 주민등록번호까지 입력해야 됩니까?” “(예의 사무적인 목소리로) 네! 빨리 불러 주세요.” “………………” 이런 식의 가정환경조사서가 아이들을 교육하는 학교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을까? 학교의 입장에서 ‘문제행동’을 한 아이를 발견하게 되면 학교는 가정환경 조사서를 보게 될 것이다. 부모 다 존재하고 아버지가 소위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면 “어? 이런 애가 왜 이러지?”, 만약 반대의 경우라면 “아하, 이런 가정환경이기 때문에 그렇구나!”라고 낙인 찍기 쉬울 것이다. 중산층을 준거 틀로 한 정상가정에 대한 편견은 이런 식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문제는 이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버지가 은행장이었던 내 친구는 학창시절 내내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받은 선생님이 많았다는 걸 냉소적으로 털어놓는다. 최근에 교사가 현직 검사 아들의 시험 답안지를 대신 작성해 제출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터지자 비슷한 사례를 경험하고 목격한 다른 학교 선생님들의 제보가 잇따랐다. 이 사건의 원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겠으나, 만약 교사가 특정학생의 아버지가 현직 검사라는 것을 몰랐다면 어땠을까? 만약 학교가 학생의 보호자가 어떠한 학력을 소지하고 있고 어떠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면 조금 다른 학교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재작년에 전교조에서 주도한 네이스 반대투쟁은 학교 내 정보인권의 문제를 이슈화하여 학생들의 인권의식고양에 불을 지폈다. 나 또한 네이스 반대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지만, 학생들의 정보라고 할 때 어디까지가 학생들의 기본적인 정보인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약간의 아쉬움이 들었다. 이제 3월이면 새 학기가 된다. 새 학년이 된 학생의 보호자들은 몇십 년 전의 양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그 놈의 가정환경조사서를 받아 들고 갈등을 겪어야 할 것이다. 학교는 보호자의 학력과 직업에 대해 알 권리가 없다. 아니 알아서도 안 된다. 여기서부터 학교의 민주화, 학생들의 인권과 관련된 투쟁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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