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살아있다

<그때 그 사람들>을 둘러싼 논란

문이정민 | 기사입력 2005/02/07 [20:21]

박정희는 살아있다

<그때 그 사람들>을 둘러싼 논란

문이정민 | 입력 : 2005/02/07 [20:21]
법원은 10.26 사건을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박지만씨의 영화상영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해 “다큐멘터리 장면이 삽입되면 관객들이 영화 내용을 실제 사실로 인식할 수 있다”며 다큐멘터리 부분을 삭제한 뒤 상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영화 내용을 실제 사실로 인식할 수 있으니, 박정희 장례식 장면 등 실제 화면 삽입 부분은 삭제하라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장면을 보고 관객은 허구와 실제를 구분하지 못하는가, 허구와 실제를 어디까지, 왜 구분해야 하는가 등의 논란은 차치하고 이번 결정을 둘러싼 추이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박정희는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시사회장을 나서는 국회의원들과 배우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취재를 거부한다. 마치 잘 못 건드리면 큰일날 폭탄이라도 되는 듯이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박정희의 개인적인 사생활, 그리고 ‘엔카’를 즐겨 들었다는 취향 등을 둘러싸고 ‘선친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문제 삼은 박지만 측의 요구와 상관없이 법원은 다큐멘터리 장면 삭제라는 뜬금없는 판결을 내렸다.

조선일보는 ‘박정희 넘어서기’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광복 60주년에 맞춰 박 대통령이 쓴 광화문 현판을 바꿔 달자는 주장”과 영화의 내용을 연관 지으며 “싫든 좋든 박정희는 현재 한국의 틀을 만든 사람이다. 우리가 서 있는 발 밑을 통째로 허물어 버리기 보다는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주는 긍정, 부정의 교훈이 무엇인지를 가려내는 것이 현명하다”고 주장한다. 영화적인 평가는 물 건너 갔고, 논쟁의 중심에 ‘박정희’만이 살아 숨쉰다.

부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나 올리버 스톤의 <제이에프케이(JFK)>, <닉슨> 등 정치적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과 재해석의 시각은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소재며 주제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역사를 어떻게 판단하고 해석하느냐는 관객의 몫이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의 판국은 지루하게 반복돼 왔던 정치적인 입장 차이와 이념의 대립으로 불거져 갈 뿐이다.

법원은 ‘실제 박정희는 그러지 않았으니 착각하지 말라’고 노심초사하고, 보수언론은 현 정치와 연관해 ‘박정희 죽이기를 멈추라’는 공세를 벌이고, 몇몇 국회의원은 자신의 아버지가 모욕을 당한 듯 착잡해 한다.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조차 발끈하고 부정하기 바쁘다. (우리는 그만큼 박정희를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한 편이 이렇듯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그 주인공이 ‘박정희’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정치권에 있어 그의 존재는 ‘현재적’이기 때문이다. 난파하는 한나라당을 일으켜 세울 정도로 박정희란 존재는 현 정치 중심에 놓여있다. 박근혜 대표는 박정희의 연장선에 서서 한발자국도 비껴서지 않은 채 그의 정치의식과 인맥과 역사를 통째로 받아 안고 있다.

과거사 청산, 한나라당의 입지, 이념의 대결구도, 정치권의 메커니즘 한 가운데 박정희는 여전히 살아있다. 언론과 법원, 그리고 관객들이 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리고 있다. 그것이 박정희 시대가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되고, 평가되고, 청산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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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2/10 [23:11] 수정 | 삭제
  • 법적으로 무슨 명예훼손이라든가, 다큐멘터리의 문제라든가, 사실성의 문제 등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명예훼손당했다면 법적으로 보상받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아직도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 속에 - 특히 보수층의 - 면면히 '박정희 숭배'같은 것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지오 2005/02/08 [14:14] 수정 | 삭제
  • 영화에서 실제 자료 화면을 삭제하라니.....
    정치적 검열을 지금 시대에 법원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건가요?
    문화후진국이라더니 한류 어쩌고 자랑할 일 아닌 것 같아요.
  • ?? 2005/02/08 [06:47] 수정 | 삭제
  •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극과극을 보여주죠.
    보수언론에서는 박정희 찬양. 한겨레와 같은 언론은(일다도 포함?) 박정희 맹목적 비난...
    어는한쪽으로만 치우쳐서는 안된다고 보여집니다.
    어두운부분이 있으면 밝은부분도 있을터인데...너무 한쪽으로만 가는건 아닌지..우리모두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보여집니다.
  • 흠... 2005/02/08 [06:40] 수정 | 삭제
  • 박정희라는 인물을 통해 광고효과를 볼려고하는 영화사의 작전이 성공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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