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교육 ‘가정과목’ 왜 남아있나

전근대적 가치관 담고 있는 죽은 교육

김이정민 | 기사입력 2005/02/14 [18:32]

중등교육 ‘가정과목’ 왜 남아있나

전근대적 가치관 담고 있는 죽은 교육

김이정민 | 입력 : 2005/02/14 [18:32]
얼마 전 내가 가르치는 한 학생이 가정숙제로 스커트 만들기를 해야 한다면서 곤혹스러워 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와 똑같은 과제인지라 나는 문득 요즘 가정 과목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지 궁금해졌다. 6차 교육과정에서부터 여학생과 남학생 모두 동일하게 가정과 기술 과목을 배우는 것으로 교육과정이 바뀐 지 꽤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그 이후 가정과목의 학습내용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살펴본 즉, 여전히 가정 교과서는 여성을 주 가사노동자로 규정하고 남성은 여성의 보조로서 역할을 다 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정과 가족의 의미 해석 역시 여전히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가정’이라는 과목을 통해 중 고등학생들에게 주입시키고자 하는 내용은 가족 및 여성과 남성에 대한 전근대적 가치관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 내용과 방향의 전면적인 변화 없이, 표면적으로 여성과 남성에게 동일한 교과목을 가르친다고 해서 중고등학생들에게 성 평등에 대한 인식이 생길 리 없다. 또 실업가정 교과목의 학습 목표라고 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교양과 지식 습득’을 하기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6차 교육과정 개정 이후로도 가정 교과서는 여성과 남성, 가족에 대한 보수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계속해서 지적을 받아왔다.

실업가정 교과목은 성별 이분법과 고정된 성역할을 강화한다는 문제점뿐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는 실업가정 교육 자체가 학생들에게 유효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애초에 1950년대에 만들어진 1차 교육과정에서 가사, 재봉, 수예 등을 포함하는 실업가정은 남녀 구별 없이 필수와 선택 교과로 이수토록 했었다. 당시 실업가정 교육은 한국전쟁 이후 경제 부흥 등에 동원할 적절한 국민 만들기를 위한 학습의미를 가진 것이다.

이후 필요에 의해 성별에 따른 교육을 하던 실업가정 교육이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성별 구분 없이 동일하게 학습하는 것으로 바뀐 것은 전혀 다른 시대적 변화와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실업가정교육은 더 이상 ‘필수’ 과목으로서 의미를 거의 갖지 못해 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 한 대안학교의 동아리로부터 성소수자에 관한 세미나를 하고 싶으니 관련된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학교에서는 선택과목으로 여성학을 가르친다고 했다. 물론 대안학교이기에 좀더 유연하게 선택과목을 고를 수 있겠지만, 가정 교과목을 가르치는 대신 각 학교들이 고등학생들을 위한 여성학 교양 과목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기를 바란다.

의복 다루는 법이나 출산 날짜 계산하기를 외우는 것보다는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 등에 관해 토론하는 수업을 바라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일까.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정된 성역할을 반복하고, 가족에 대한 보수적인 가치들을 주입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고 고민할 수 있는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ㅇㅇ 2016/11/13 [13:43] 수정 | 삭제
  • 2016년에 이것이 얼마나 말같잖은 뻘소리인지 체감하고 갑니다.
  • 주녕 2012/03/01 [21:56] 수정 | 삭제
  • 양현실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독해력과 젠더감수성을 키워 훈늉한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 이하중 2005/02/20 [01:03] 수정 | 삭제
  • 기사 내용에 대부분 공감합니다만, 저는 좀 다른 시각에서 여쭈어보고 싶네요.. 성인이 된 이후에 가정의 가사노동 분담은 가정을 이루는 이들이 나누어서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제 생각인데요.. 좀더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 유학을 하고 있는 남자학생으로서 차라리 생활기술이나 가정과 같은 과목들을 고등학교에서도 가르쳤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제가 유학와서 처음 몇달은 정말 식사시간만되면 칼들고 도마앞에서서 "엄마, 엄마..!!" 하면서 운적이 한두번이 아니거든요..

    스스로 노력을 못한 죄도 있겠고, 가정교육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으나, 제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요리라는 걸 하려다 보니, 초등학교 실과시간에 배웠던 것들이 요긴하더군요..

    우리나라 교과과정은 의외로 몸을 쓰는 것들이 별로 없는데요. 여성학이라는 것도 자라는 아이들에게 실천적으로 양성평등교육을 실시하면서 같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이 들구요..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늘상 엄마가 부엌에서 마술처럼 해주시는 음식, 잘 꿰메어주신 양말, 단추, 잘 깎아주신연필,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주셨던 책꽂이등등 정말 저는 가정과 생활기술만큼 재미있었던 것도 없거든요..

    정말 중요한것은 죽은 교육을 통째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건질 것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새마을 운동을 통해 통째 버렸던 수많은 전통문화중 지금은 오히려 아쉬워하는 것들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전 가정교육 문제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도 요리, 바느질 좋아하는게 이상하지 않도록 했으면 합니다. 전 제가 성정체성에 문제가 있는줄 알았거든요, 초등학교때.. 난 왜 가정을 배울수 없나.. 나 요리만드는거 무지 좋아하는데..

    일다 화이팅!!!!

    열심히 요리하는 재미를 솔솔 느끼는 남자유학생 올림.
  • june 2005/02/19 [00:01] 수정 | 삭제
  • 심지어 대학에서도 쓸모없는 내용을 가르치기도 하죠.
    가정이나 기술은 실생활에 연계되어서 꼭 배워야하는 것을 가르치면 좋을텐데, 우리 학교다닐 때 생각해보면 아무 짝에 쓸모가 없었죠.
    가정이라고 하면 포괄적인 걸 의미하는 것 같지만 교과내용은 규수교육같은 거잖아요.
    그런 걸 남녀가 같이 배우게 한다고 뭐가 얼마나 바뀔지 모르겠어요.
    필요한 것만 뽑아서 가르칠 순 없는지.
  • 문구미정 2005/02/17 [16:17] 수정 | 삭제
  • 문제가 있다면 가정 과목이 <살펴본 즉, 여전히 가정 교과서는 여성을 주 가사노동자로 규정하고 남성은 여성의 보조로서 역할을 다 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겠지요. 어른 되고 보니, 기술을 제대로 못배운 것이 얼마나 안타깝던지요.
    이를테면, 영어를 그렇게 배우고도 나는 영어 한마디도 못한다해서 영어과목 자체를 없애자 말자 말하지 않잖아요. 영어를 잘못배웠다고 말하잖아요. (그 과목의 시수는 제쳐두고서..)
    저는 가정/기술/예체능 같은 과목들이 훨씬 시수도 많아지고, 수업의 내용도 풍부해져야 옳다고 봅니다.
    사람 살아가는 데 기본이 되는 일이잖아요. 스스로 삶을 경영할 수 있게 밥짓고, 옷짓고, 집짓고 하는 것들을 직접 해보고 그 원리를 알아야 다른 손을 빌려서라도 하지요.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실업가정 교육 자체가 학생들에게 유효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고 하셨는데요, 말씀하신 대안학교들은 따로 의식주교과라는 것을 만들어서, 옷만들기, 음식만들기, 집짓기와 같은 수업을 하고 있는 학교가 많습니다. 만약 '가정'시간에 배운 내용들을 외우게만 했고, 쓰임이 없었다면 직접 해보고, 토론해보고, 쓰임있는 것들로 구성하게 해야 합니다.

    가정과목은 확대되어야하고, 여성학과 같은 수업은 신설되어야 하며, 가정이라는 과목이 성차별적으로 구성되어있어 이를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아이들이 얼기설기 바느질하느라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이제는 저 아이들이 놀다가 튿어진 교복 밑단을 스스로 꿰메겠구나 생각하며 흐뭇해지곤 합니다. 아니, 아직은 스스로 해야할 필요를 모른다해도, 적어도 나중에는 몰라서 못한다는 소리는 안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가정기술 과목을 자세히 들여다보진 못했지만, 어쩌다 아이들이 바느질하고, 못질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과목이 <기타과목>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이 과목을 의심한다는 기사의 내용을 보고, 마음이 무겁습니다.
  • 44 2005/02/16 [16:43] 수정 | 삭제
  • 그럼 수학은 뭐 실생뢀에 필요해서 배우는줄아나?
    실생활과 연관성이 없어도 배우는거지 ㅡㅡ
    그리고 시험볼떄 달달외우는 과목이 가정밖에없나?
    다른과목들도 시험볼떄 달달외우는건 마찬가지임.
    여기서는 그냥 남녀문제차원에서 괜히 트집잡을려는 글로 보여짐 ㅡㅡ
  • nanri 2005/02/16 [11:00] 수정 | 삭제
  • 가정, 가사과목은 스커트,한복 만들기의 헤프닝 정도로 기억되고 있죠.
    재봉틀도 못 쓰게 하고, 손으로 바늘땀 뜨게했는데 그게 뭔 짓입니까.
    만든 거 입고다니는 사람은 한 반에 1-2명 정도?
    그리고 시험볼 때 엄청 달달 외워야했던 기억도 있는데 별로 실용적인 과목이 아니었죠. 실용성이 없어도 알아야하는 지식도 있지만, 가정과목이 그렇다면 문제가 많죠.
    문과에서 가정,가사 너무 싫어했던 애들이 그거 대신 더 어려운 과목을 선택과목으로 했던 기억도 나네요.
    내용이 거기서 거기라면 가정과목을 남녀가 같이 배우게됐다고 해서 남학생들이 바뀌는 건 별로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가사노동을 분담시키는 게 중요하지, 그리고 장보고 집안일 하다보면 알게되는게 산 지식이죠.
  • ?? 2005/02/15 [12:43] 수정 | 삭제
  • 남아있으면 안되나?
  • 메이 2005/02/15 [11:22] 수정 | 삭제
  • 여성학은 왜 대학에 가야만 들을 수 있나요?
    요즘 선택과목들은 다양하게 나오는데, 필수과목은 아니더라도 고등학교에서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 루디 2005/02/15 [10:27] 수정 | 삭제
  • 가정, 기술에서 진짜로 필요한 건 몇가지 안 될 것 같고, 진짜로 필요한 것중에 가르치지 않고 있는 실기들은 많을 것 같은데, 그런 것 모아서 실기를 통합시키고 그 외에 것은 중등과목에서 치워버렸으면 좋겠습니다.
  • cat 2005/02/15 [00:37] 수정 | 삭제
  • 가정학 전공자들 먹여살리기 위해서죠.
    그런 학문들이 몇 개 더 있을 걸요.
  • 밀크티 2005/02/14 [21:56] 수정 | 삭제
  • 만드는 것보다 사는 것이 훨씬 싸다는 거.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