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가 가르치는 한 학생이 가정숙제로 스커트 만들기를 해야 한다면서 곤혹스러워 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와 똑같은 과제인지라 나는 문득 요즘 가정 과목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지 궁금해졌다. 6차 교육과정에서부터 여학생과 남학생 모두 동일하게 가정과 기술 과목을 배우는 것으로 교육과정이 바뀐 지 꽤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그 이후 가정과목의 학습내용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살펴본 즉, 여전히 가정 교과서는 여성을 주 가사노동자로 규정하고 남성은 여성의 보조로서 역할을 다 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정과 가족의 의미 해석 역시 여전히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가정’이라는 과목을 통해 중 고등학생들에게 주입시키고자 하는 내용은 가족 및 여성과 남성에 대한 전근대적 가치관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 내용과 방향의 전면적인 변화 없이, 표면적으로 여성과 남성에게 동일한 교과목을 가르친다고 해서 중고등학생들에게 성 평등에 대한 인식이 생길 리 없다. 또 실업가정 교과목의 학습 목표라고 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교양과 지식 습득’을 하기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6차 교육과정 개정 이후로도 가정 교과서는 여성과 남성, 가족에 대한 보수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계속해서 지적을 받아왔다. 실업가정 교과목은 성별 이분법과 고정된 성역할을 강화한다는 문제점뿐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는 실업가정 교육 자체가 학생들에게 유효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애초에 1950년대에 만들어진 1차 교육과정에서 가사, 재봉, 수예 등을 포함하는 실업가정은 남녀 구별 없이 필수와 선택 교과로 이수토록 했었다. 당시 실업가정 교육은 한국전쟁 이후 경제 부흥 등에 동원할 적절한 국민 만들기를 위한 학습의미를 가진 것이다. 이후 필요에 의해 성별에 따른 교육을 하던 실업가정 교육이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성별 구분 없이 동일하게 학습하는 것으로 바뀐 것은 전혀 다른 시대적 변화와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실업가정교육은 더 이상 ‘필수’ 과목으로서 의미를 거의 갖지 못해 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 한 대안학교의 동아리로부터 성소수자에 관한 세미나를 하고 싶으니 관련된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학교에서는 선택과목으로 여성학을 가르친다고 했다. 물론 대안학교이기에 좀더 유연하게 선택과목을 고를 수 있겠지만, 가정 교과목을 가르치는 대신 각 학교들이 고등학생들을 위한 여성학 교양 과목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기를 바란다. 의복 다루는 법이나 출산 날짜 계산하기를 외우는 것보다는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 등에 관해 토론하는 수업을 바라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일까.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정된 성역할을 반복하고, 가족에 대한 보수적인 가치들을 주입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고 고민할 수 있는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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