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감동’

미디어 다음의 감동뉴스를 보고

문이정민 | 기사입력 2005/02/21 [22:54]

그들의 ‘감동’

미디어 다음의 감동뉴스를 보고

문이정민 | 입력 : 2005/02/21 [22:54]
‘감동’이란 뭘까. 미디어 다음에서 꽤 높은 조회수를 보이고 있는 ‘감동뉴스’ 코너를 읽으면서 망연히 드는 생각이다. 그 ‘감동’에서 느껴지는 불편함 때문이다.

“반신불수의 몸에 정신분열증까지 앓고 있는 남편을 매일 업고 출퇴근하는 아내가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중국 일간지 베이징칭니엔바오(北京靑年報)가 최근 보도했다. (중략) 남편을 업고 다니느라 피곤한 아내는 퇴근 후에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고 있는 남편은 매일 밤 10시가 되면 외출하는 버릇이 있다. 몸이 불편한 남편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아내는 매일 밤 남편과 함께 외출을 하고 있다. 보통 새벽 4시쯤 집에 돌아오는데 그때야 남편은 잠이 든다. 아내가 새벽 4시가 넘어 눈을 붙이면 2~3시간 뒤 남편은 다시 잠에서 깨어나 소변을 보고 싶다고 아내를 깨운다. (장애인 남편 업고 출퇴근하는 아내, 미디어다음 / 김태훈 중국 통신원)”

“헬름즈는 출산 1달 전 자신이 유방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3년 전 완쾌했으리라 믿었던 암이 재발한 것이었다. 당시 그는 임신 22주. 헬름즈는 출산을 포기하고 방사능치료를 받아야 할지 결정해야만 했다. 그는 아기를 살리고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기로 했다.(중략) 헬름즈는 이런 결정을 내린 뒤 1달 동안 태어날 조산아를 조금이라도 더 튼튼하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캐나다 밴쿠버의 한 병원에서 암과 사투를 벌였다. 고통이 극심했지만, 남편 로버트 쇼어가 함께 있어준 덕분에 견뎌낼 수 있었다. (태어날 아기 위해 암 치료 안 받아 사망, 미디어다음/ 이영주 캐나다 통신원)”

매일 남편을 업고 출퇴근 하는 아내의 사정을 안다면 매일 밤 외출하는 버릇쯤은 고쳐보는 게 어떨까, 아이가 소중하긴 하지만 정작 남편은 아내의 생각에 동조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어쩔 수 없이 스친다. 사실 남편이나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의 일화는 우리사회 십팔번 미담 중에 하나다. 명절 때만 되면, 시부모에 시동생에 남편까지 부양하며 견디거나, 병수발에 여념이 없는 며느리 일화를 지긋하게 봐야 한다. 물론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견뎌 나가는 그녀들의 모습을 지지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것을 ‘감동’으로 한껏 치장한 미디어의 저의에는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다.

개인의 삶에는 무수한 선택들이 존재하고, 어떤 가치관을 가졌느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무수한 뉴스의 주인공들 역시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을 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선택에 ‘감동’이라는 항목과 함께 암묵적으로 들이밀어지는 가치관이다.

미디어가 추켜세우는 ‘감동’의 가치관에서 벗어난 인물들은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돈 한푼 못 버는 남편, 주렁주렁 달린 자식들과 시부모, 도저히 삶을 꾸릴 수 없어 집을 나간 여성들이 ‘천하의 인정머리 없고 독한 인간’이 되는 것, 아이를 키울 준비도 능력도 계획도 없을 뿐더러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무서워 아이를 낳고 도망쳐버리는 미혼모들이 ‘모성을 버린 더럽고 무책임한 여자’로만 치부되는 것 등. 마치 사회가 ‘감동’하는 것, 미디어가 ‘감동’으로 제시한 가치관에서 벗어난 인물들을 비난하며 규정된 틀로 길들이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그 영향력은 강고하다.

사실 미디어에서 선택하는 감동이란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훈훈한 ‘미덕’을 되살리려는 의도가 작동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미디어 다음의 기사에서 되살리려는 ‘미덕’은 가족의 희생 정도가 될 것이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우리가 원하는 감동은 늘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가. 특히 헌신적인 모성애를 그리워하는 이 사회의 향수병은 너무 뻔해서 이제 처량할 정도다.

반신불수의 몸에 정신분열증을 앓으며, 매일 밤 산책을 해야 하는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은 누구에게는 삶의 보람일지 몰라도 누구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역일 것이다. 그렇다고 고역을 참지 못해 남편과 이혼을 한다면 그 여성은 피도 눈물도 없는 몹쓸 여자가 되어야 마땅한 걸까. 그 감동과 가치관은 옳은 것이고 중립적인 것일까.

‘감동’은 중립적이지 않을뿐더러 개인적인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미디어가 ‘감동’이라고 선택한 이면의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다. 내가 감동하지 않은 것은 뉴스 주인공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주인공의 선택을 ‘감동’으로 만든 미디어의 바로 그 가치관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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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호 2005/02/28 [18:21] 수정 | 삭제
  • 위에 남자건, 여자건 감동은 희생으로 전제하냐고 묻고 있자나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여성, 모성과 희생이라는 조합은 더 이데올로기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잠탱팬더 2005/02/25 [17:50] 수정 | 삭제
  • 예, 기사들 중에서 이런 여성의 헌신이 감동적이라는 기사가 남성의 희생에 비해 숫적으로 많습니다. 문화적인 영향도 클테죠. 기자님의 의도도 분명 알겠으나, 이런 기사들의 포커스는 누군가의 '헌신'이지 그게 '여성'이냐 혹은 '남성'이냐의 성질을 따지는 건 글쎄.. 라는 생각이 드네요.
  • jyk 2005/02/25 [11:22] 수정 | 삭제
  • 오늘 다음 뉴스에서 "아이가 된 아내 지극정성 간호하는 남편 감동"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더군요. 기자님은 이런경우 어떻게 보실건가요? 이런 기사에도 감동적이지 않다고 하실텐가요?

    아래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수많은 감동적인 사연중에도 헌신하는 사람이 남성일수도 있고 여성일수도 있는데 굳이 여성인경우만 꼬집어 여성만 희생한다는 편견으로 바라보았던 것인지요.
    그분들이 겪는 고통,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에 격려를 주지 못할망정 "여성의 희생"에만 집착해서 비판부터 가해야만 하는게 참 씁쓸합니다.
    기사를 뽑은 사람은 정작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여성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것이 그 기사를 뽑은 사람의 생각이라는 선입견을 먼저 개입시키고 기사가 주는 진정한 의미는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한쪽면만 바라보면 한쪽면밖에 생각할수 없습니다.

    만약 기자님이 이글을 보시면 불편해하실지 모르지만 기자님의 눈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 고현주 2005/02/23 [11:01] 수정 | 삭제
  • 일련의 예로 말이죠
    이산가족 상봉때 할머니들이 50여년동안 수절하면서 자식을 길러낸 뒤 이미 결혼한 남편을 만나는 사연이 눈물겨운 감동으로 보도되더군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수절한 남편과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하여 새 살림을 차린 아내의 상봉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가 되지 않더란 말입니다
    그런 사연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전자가 눈물겨운 감동적인 이야기라면 후자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이 사회에서 말이죠..
    자신의 삶을 양보하면서까지 남을 돌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왜 대부분 희생해야하는 쪽은 여자여야하는지.. 그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아마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될 겁니다..
  • .... 2005/02/23 [01:36] 수정 | 삭제
  • 처참한 것이 감동이라도 되는 것처럼....
    때로는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의 희생에 떠넘겨버리는 것 같아요.
    동감입니다.
  • 말코비치 2005/02/22 [17:05] 수정 | 삭제
  • 종교에서 바라는 것이 개인적 헌신이잖아요?
    그러한 헌신 끝에 찾아오는 기적..
    감동, 드라마 이런 것 역시 마찬가지이죠
    개인적 헌신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는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사회의 모순은 더욱 더 깊은 구름 속으로 들어갑니다.
    다음에는 종교의 측면에 관해 다루는 기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추가하고 싶은 점이라면, 종교에서 사람들이 구원을 찾듯, 감동에서도 구원을 찾는다는 것이겠지요.
    감동과 종교에서 구원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사회의 진실을 말해주는 일다가 되길 바랍니다
  • 지겨워 2005/02/22 [13:03] 수정 | 삭제
  • 감동은 왠 넘의 감동?
    감동 먹을 넘(뇬?)들이나 실컷 먹어라.
    열녀도 제 좋아 한다면 별 문제 없겠으나 멀쩡한 사람까지 잡을 생각으로 `홍살문' 세워가며 열녀 강요하지 마시라 하고싶다.
    감동은 왠 얼어죽을 감동이더냐?

    으~. 홍살문 생각나...
    으~. 몸서리쳐져...
    으~. 욕나오네...
  • jyk 2005/02/22 [12:01] 수정 | 삭제
  • 동전의 한면만이 아니라 양면을 모두 바라봤으면 합니다.
    이 기사는 감동뉴스에서 나온 내용이 한 사람, 한 가족의 사랑이 아니라 "여성"의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있군요.

    수많은 기사내용중에 나오는 감동뉴스에 가족의 희생과 헌신의 주인공이 남성일수도 여성일수도 있지요. 단지, 여성이라서 불쾌한 것인가요? 만약 남성이 여성에게 희생하는 내용이 나왔어도 불쾌하게 느꼈을까요?
    그리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으면서 굳이 읽는 사람이 불쾌하게 느껴야만 하는 것일까요?
    위 기사의 밑에서 두번째문단 "그렇다고 고역을 참지 못해 남편과 이혼을 한다면 그 여성은 피도 눈물도 없는 몹쓸 여자가 되어야 마땅한 걸까."에서 입장을 바꿔
    만약 남편이 아내의 병수발을 들다가 고역을 끝내 못참고 이혼을 하였다는 내용이 기사에 나왔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남편을 파렴치한놈, 피도눈물도 없는놈이라고 비난했겠지요.
  • 초록 2005/02/22 [11:17] 수정 | 삭제
  • 감동이라기 보단 끔찍한 소식일 때가 많다..
    정의로운 사람들 얘기는 보기 좋지만.
    끔찍하다는 느낌을 주는 얘기를 감동뉴스라고 하면..
    저렇게 살면 안 되는데 뭐가 아름답다는 거지 싶은 그런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