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란 뭘까. 미디어 다음에서 꽤 높은 조회수를 보이고 있는 ‘감동뉴스’ 코너를 읽으면서 망연히 드는 생각이다. 그 ‘감동’에서 느껴지는 불편함 때문이다.
“반신불수의 몸에 정신분열증까지 앓고 있는 남편을 매일 업고 출퇴근하는 아내가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중국 일간지 베이징칭니엔바오(北京靑年報)가 최근 보도했다. (중략) 남편을 업고 다니느라 피곤한 아내는 퇴근 후에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고 있는 남편은 매일 밤 10시가 되면 외출하는 버릇이 있다. 몸이 불편한 남편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아내는 매일 밤 남편과 함께 외출을 하고 있다. 보통 새벽 4시쯤 집에 돌아오는데 그때야 남편은 잠이 든다. 아내가 새벽 4시가 넘어 눈을 붙이면 2~3시간 뒤 남편은 다시 잠에서 깨어나 소변을 보고 싶다고 아내를 깨운다. (장애인 남편 업고 출퇴근하는 아내, 미디어다음 / 김태훈 중국 통신원)” “헬름즈는 출산 1달 전 자신이 유방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3년 전 완쾌했으리라 믿었던 암이 재발한 것이었다. 당시 그는 임신 22주. 헬름즈는 출산을 포기하고 방사능치료를 받아야 할지 결정해야만 했다. 그는 아기를 살리고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기로 했다.(중략) 헬름즈는 이런 결정을 내린 뒤 1달 동안 태어날 조산아를 조금이라도 더 튼튼하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캐나다 밴쿠버의 한 병원에서 암과 사투를 벌였다. 고통이 극심했지만, 남편 로버트 쇼어가 함께 있어준 덕분에 견뎌낼 수 있었다. (태어날 아기 위해 암 치료 안 받아 사망, 미디어다음/ 이영주 캐나다 통신원)” 매일 남편을 업고 출퇴근 하는 아내의 사정을 안다면 매일 밤 외출하는 버릇쯤은 고쳐보는 게 어떨까, 아이가 소중하긴 하지만 정작 남편은 아내의 생각에 동조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어쩔 수 없이 스친다. 사실 남편이나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의 일화는 우리사회 십팔번 미담 중에 하나다. 명절 때만 되면, 시부모에 시동생에 남편까지 부양하며 견디거나, 병수발에 여념이 없는 며느리 일화를 지긋하게 봐야 한다. 물론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견뎌 나가는 그녀들의 모습을 지지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것을 ‘감동’으로 한껏 치장한 미디어의 저의에는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다. 개인의 삶에는 무수한 선택들이 존재하고, 어떤 가치관을 가졌느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무수한 뉴스의 주인공들 역시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을 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선택에 ‘감동’이라는 항목과 함께 암묵적으로 들이밀어지는 가치관이다. 미디어가 추켜세우는 ‘감동’의 가치관에서 벗어난 인물들은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돈 한푼 못 버는 남편, 주렁주렁 달린 자식들과 시부모, 도저히 삶을 꾸릴 수 없어 집을 나간 여성들이 ‘천하의 인정머리 없고 독한 인간’이 되는 것, 아이를 키울 준비도 능력도 계획도 없을 뿐더러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무서워 아이를 낳고 도망쳐버리는 미혼모들이 ‘모성을 버린 더럽고 무책임한 여자’로만 치부되는 것 등. 마치 사회가 ‘감동’하는 것, 미디어가 ‘감동’으로 제시한 가치관에서 벗어난 인물들을 비난하며 규정된 틀로 길들이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그 영향력은 강고하다. 사실 미디어에서 선택하는 감동이란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훈훈한 ‘미덕’을 되살리려는 의도가 작동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미디어 다음의 기사에서 되살리려는 ‘미덕’은 가족의 희생 정도가 될 것이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우리가 원하는 감동은 늘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가. 특히 헌신적인 모성애를 그리워하는 이 사회의 향수병은 너무 뻔해서 이제 처량할 정도다. 반신불수의 몸에 정신분열증을 앓으며, 매일 밤 산책을 해야 하는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은 누구에게는 삶의 보람일지 몰라도 누구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역일 것이다. 그렇다고 고역을 참지 못해 남편과 이혼을 한다면 그 여성은 피도 눈물도 없는 몹쓸 여자가 되어야 마땅한 걸까. 그 감동과 가치관은 옳은 것이고 중립적인 것일까. ‘감동’은 중립적이지 않을뿐더러 개인적인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미디어가 ‘감동’이라고 선택한 이면의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다. 내가 감동하지 않은 것은 뉴스 주인공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주인공의 선택을 ‘감동’으로 만든 미디어의 바로 그 가치관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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