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통해 신분적 상승을 이루는 신데렐라, 왕자를 만나서야 저주가 풀리는 백설공주와 잠자는 숲속의 공주 이야기의 해악(?)은 이미 유명하다. 동화의 주독자층인 어린 아이에게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주게 되고, 특히 수동적 여성상을 바람직한 것으로 장려하며, 높은 신분과 아름다운 외모에 대해 비판의식이 생략된 선망만을 부추기는 등등. 지금껏 동화의 이런 해악을 알리고 바꾸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고, 덕분에 요즘 볼 수 있는 아동/유아용 동화, 만화, 티비 프로그램은 많이 달라졌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나 신데렐라와 백설공주를 보고 들으며 자란 기성세대의 상상력 한계 때문일까. 고정관념은 여전해 보인다. 많이 달라진 내용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티’가 눈에 띈다. 그리고 이 작은 티는 공들인 내용을 자칫 도로아미타불로 만들 만큼 핵심적인 한계처럼 보인다. 유아 대상 프로그램에는 의도적으로 소년, 소녀를 등장시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 구별이 모호한 아이처럼 성 구별이 모호한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동물을 의인화하거나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서 외모, 목소리는 물론이고 행동, 성향 등으로는 남녀 구별을 할 수 없다. 주인공의 성 구분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활동적인 중심인물과 보조적인 주변인물의 활동상을 성역할로서 연결시키지 않으려는 제작 의도를 느낄 수 있다. 아이들에게 여자, 남자 구분의 틀을 섣불리 주입시키는 것의 위험성을 고려한 것일 게다. 긍정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프로그램마다 후속으로 주인공에 상대되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했다. <방귀대장 뿡뿡이>에는 ‘뿡순이’가 등장했고, 딩동댕 유치원 <뚝딱이네 집>의 ‘뚝딱이’ 주변엔 ‘뚝순이’가 있고, <바나나를 탄 끼끼>에는 ‘끼순이’가 나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호했던 캐릭터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순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여자’ 조연들 덕분에 확실한 ‘남자’ 주인공 선언을 해버렸다. 이런 식의 관례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아동용 캐릭터의 대표 성공작 <미키마우스>도 그렇다. 생쥐를 의인화한 이 캐릭터는 정의감이 강하면서도 인정 많고 재치가 넘쳐 다른 조연들을 이끄는 리더인데 완벽한 중성의 이미지는 여성 상대자, 미니마우스에 의해 완벽한 남성 이미지로 탈바꿈 되었다. 곤경에 빠진 미니마우스가 “미키~”를 외치면 달려가 미니마우스를 구해내는 미키마우스는 이제 너무 상투적이라고 씹기에도 지친 헐리우드 각본 그대로다. 갑자기 등장한 일련의 ‘순이’들은 여성 캐릭터의 역할과 중심인물의 역할의 차이는 기존 성 역할의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성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모두 보조인물로서 중심인물의 활동을 지켜보고 받아주는 역할에 국한되어 있을뿐더러 그나마의 역할도 극 진행에 ‘있거나 말거나’ 위치이어서 등장 횟수도 한 달 동안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그럼에도 굳이 무수한 ‘순이’들을 배치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결국 구태의연한 고정관념의 발로라는 결론밖에 안 나온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인 만큼 교육적인 효과를 고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통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로 하여금 ‘성별’을 ‘차이’로 인식하게 만드는 방법은 어쩌면 이토록 빈곤하기만 할까. 여자인지, 남자인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이들이 미처 깨닫기도 전에 어른들은 정답을 내밀어 놓는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단다,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도 있지, 그리고 남성은 주인공이 되고 여성은 남성에게 구출을 받거나 남성을 보조하는 조연이지, 그렇게 말이다. 그 지루한 각본이 아직도 통용되는 것을 보면서 딸아이가 걱정되는 것은 비단 나 뿐일까. 아동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세심하고 용감한 변화들에 반가워 찬탄을 하곤 했던 지지의 마음이, 덧칠된 통속적인 고정관념에 힘없이 무너지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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