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 이후 대체법안 준비하자

행정적 효율성과 ‘가족’해체 우려 깨야

나김영정 | 기사입력 2005/03/07 [21:35]

호주제 폐지 이후 대체법안 준비하자

행정적 효율성과 ‘가족’해체 우려 깨야

나김영정 | 입력 : 2005/03/07 [21:35]
지난 2일 호주제 폐지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호주제 폐지를 오랫동안 이끌어온 여성단체 등의 노력과 시간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호주제는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악법이었다. 호주제 폐지는 일제가 조선을 통제하기 위해서 호주제를 만들었으며 해방 이후 지금까지 국민통제 및 관리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점, 호주에 입적되었는가 여부로 가족을 파악하는 것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호주제의 폐지가 양성평등이라는 점이 일부 집단을 제외하고는 사회적인 공감대를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제는 이러한 공감대를 담아서 어떻게 대체법안을 잘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공감대’를 해석하는 시각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미 호주제 폐지안에서 호주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개념이 삭제되었지만 민법개정안에서 가족의 개념은 새롭게 규정되었다(일다, ‘가족규정 삭제 없이 호주제 폐지 없다’, 2003년 10월 30일 기사 참조). 이것은 양성평등을 가족의 보호와 동일시한다는 점(?), 현실의 다양한 가족관계를 여전히 혼인과 특정 범위의 혈연관계로 한정시킨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점들은 정부가 내놓은 대체법안(1인1적 가족부)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으며, 정부는 이를 ‘국민의 정서’로 설득하고 있다. 또한 많은 언론에서 호주제 폐지 후 정부의 1인 1적 가족부가 시행되는 것이 결정된 것처럼 보도함으로써 더 나은 대안에 대한 논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있다.

정부안은 행정적인 효율성을 중요시하면서, 신분등록제도의 목적을 벗어나는 과도한 정보가 집적되게 하고(본적, 신분변동사항, ‘가족’사항, 주민등록번호의 사용 등), 일방적으로 ‘가족’범위를 규정함으로써(배우자, 부모, 자녀, 배우자의 부모, 형제자매) 혼인과 혈연관계만을 ‘가족’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호주제 폐지 운동을 통해서 확산시킨 인식들을 대체법안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려 노력하지 않는 것은 결국 호주제 폐지의 취지를 퇴색시킬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한 차별과 불편은 또다시 여성과 소수자의 몫이 된다.

지금이 신분등록제도를 다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신분등록제도는 국가 안에서 개인의 기본적인 법률 지위를 규정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차별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그만큼 의미가 깊다. 따라서 차별의 매개가 될 수 있는 여지들을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 즉 이제껏 신분등록제도가 국민관리를 위해 개인의 정보를 국가가 강제로 수집하던 차원에서 “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사실과 필요한 신분사항을 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개인의 정보를 국가에 등록하는 제도”로 재정의 돼야 한다.

목적별신분등록제도가 마련하고자 하는 목적별신분등록법은 위의 원칙들을 지켜나가기 위해 신분등록제도의 목적에 맞는 정보만을 담고 있으며, 신분사항과 혼인사항을 분리하고 정보변동사항을 현재의 정보와 구분한다. ‘가족’범위에 대한 규정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법적 혼인관계와 혈연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확인절차를 두는 것이 옳을 것이다. 목적별신분등록법은 이미 차별적인 문제들을 지적받고 있는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않고도 신분등록제도의 실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올해 상반기까지 대체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행정적 효율성과 ‘가족’해체 우려에 따른 국민정서를 어떻게 깰 것인가다. 사실 목적별신분등록제도를 마련했을 때 당장 영향을 받는 것은 국가기구다. 따라서 ‘국민편의’나 ‘국민정서’를 무분별하게 끌어들여서 될 문제가 아니다. 목적별신분등록제는 국민의 신분등록정보를 혼인, 혈연관계까지 손쉽게 파악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국민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도록 하고, 반차별의 관점에서 법을 만들고 시행하도록 의무를 지우는 것이며, 국가의 정보독점과 활용에 대해 제동을 거는 것이다.

현재 목적별신분등록제실현연대는 올해 상반기 대체법안 마련과 통과를 대비해서 연대체 명을 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으로 개칭하고 더 많은 단위와 함께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현재 목적별편제방안을 법안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으며 정보인권과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한 사업들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호적제도 피해사례 발표와 지문날인, 주민등록법의 문제점과 가족주의에 대한 문제제기 등의 사업을 통해 정보인권이 보장되고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인정 받을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할 예정이다.

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 참여 문의 altersyste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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