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

여성문학 시리즈-3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5/03/14 [19:01]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

여성문학 시리즈-3

김윤은미 | 입력 : 2005/03/14 [19:01]
지하철 성희롱처럼 분노스러운 일부터 ‘넌 여성적이지 못해’와 같은 사소하게 짜증을 돋구는 언행까지 성차별적인 사태를 겪고 나면 누구나 잠시만이라도 여성들의 유토피아를 꿈꿀 것이다. 유토피아 소설은 세계의 문제점을 뽑아내서 이를 교정한 이상향 사회를 제시하여 미래에 대한 개혁적인 전망을 유도하는 이념적인 장르다. 페미니즘 역시 이 장르와 상당히 근접한 거리를 유지해왔다.

성차별적 현실을 뒤엎는 이상향 사회 제시

▲ 샬롯 퍼킨스 길먼의 <여자만의 나라>  
그런데 모든 구성원에게 평등한 대우를 보장해야 할 유토피아 소설이 언제나 성평등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1516년 토머스 모어가 발표한 최초의 유토피아 소설 <유토피아>는 복종과 획일화를 요구하는 지극히 가부장적인 사회를 담았다. 1888년 에드워드 벨라미가 발표한 <회고> 역시 겉으로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를 존중하였다고 밝히고 있으나 실제로는 여성의 본성을 하찮은 것으로 규정하여 여성집단을 분리한 성차별적인 텍스트다.
 
벨라미가 소설을 쓸 당대는 남성과 여성의 동등함을 요구하는 여권신장운동이 막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결국 벨라미는 이 흐름에 반하여 남성과 여성이 본질주의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주장한 셈이다. 이처럼 유토피아 소설이 그리는 이상향 사회는 지극히 역사적으로 구조화돼 있으며, 따라서 어쩔 수 없이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1916년 발표된 샬롯 퍼킨스 길먼의 <여자만의 나라>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이다. 샬롯 퍼킨스 길먼은 정형화된 여성상을 요구하는 남성적인 정신의료기술로 인해 서서히 미쳐가는 여성의 내면을 실감나게 형상화한 단편소설 <노란 벽지>로 유명한 페미니스트 작가다. <여자만의 나라>는 여성들 서로간의 애정과 민주정신, 탐구성에 바탕을 둔 세계 ‘헐랜드herland'에 3명의 지극히 평범한 남성이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이 남성들이 지닌 여성에 대한 편견은 헐랜드의 용감한 여인들에 의해 무참히 부서지고 만다.

이처럼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들은 성차별적 현실을 뒤엎는 이상향 사회를 구조적으로 제시하여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유토피아 소설의 고전적 양식은 사회 문제를 분석하는 포괄적인 틀을 제시하고 아울러 현실을 개혁해야 한다는 의지를 북돋워줄지는 모르나 소설을 읽는 맛은 꽤 떨어지는 편이다. 보통의 경우,지리적으로 괴리된 곳에 위치하며 초역사적인 속성을 띄고 있어서 백화점처럼 이상향 사회의 정보를 훑어보게 하는 차원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이 전달하는 긴장감이나 인물 내면의 변화가 전달하는 생생함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 마가렛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때문에 현대에 등장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들은 장르의 법칙을 해체하여 보다 흥미로운 내용을 선보이고 있다. 이상사회와 디스토피아를 병치하거나 혹은 현실을 병치하는 방식, 열린 결말의 이용 등이 그 예다. 이는 디스토피아와의 근접을 초래하기도 한다.

마가렛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는 얼핏 보기에는 남성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여 기계적으로 섹스와 임신을 제어하는 지극히 우울한 사회를 그리고 있지만, 성적 자유가 주어졌던 과거와 미래로 향하는 열린 결말을 통해 새로운 미래가 도래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남겼다. 또한 여성들 간의 차이에 주목하고 있는 현대에 와서는, 추상적인 자매애에 기반을 둔 이상향 사회는 이미 설득력이 떨어졌으므로 다른 방식으로 우회하여 보다 치밀하게 이상향을 꿈꾸거나 이상향의 한계를 소설 속에서 제시하기도 한다.

두 개의 재판을 통해 제기된 논쟁적 이슈들

A. S. 바이어트의 <바벨탑>(1996)은 여성의 이혼과 성적 자유의 문제를 다룬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전복적인 이상향 사회의 소멸을 그린 소설 속 텍스트 ‘배블탑’이 현실에 수용되는 과정을 통해 당대 여성이 처한 현실을 보다 날카롭게 파고든다.

역사 너머로 사라진 어느 여성 시인의 삶과 사랑을 추적하는 소설 <소유>로 유명한 A. S. 바이어트는 생경한 역사적인 자료들과 당대의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이슈들을 능숙하게 소설 속으로 삽입하여 읽는 재미를 배가시키는 법을 아는 작가다. 뿐만 아니라 어디엔가 꼭 있을 법한 전형적인 인물들을 포착해내는 능력이 있다. 흥미로운 신문기사들을 직조하여 소설화했다는 느낌을 줄 정도다.

<바벨탑>의 배경은 1960년대로 막 접어든,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판금 해제와 더불어 성문제와 일상적인 억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한 영국 사회다. 소설은 두 개의 재판을 다룬다. 하나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 지성적인 여인 프레데리카의 이혼 소송이고 다른 하나는 누드모델 주드 메이슨이 쓴 유토피아 소설 '배블탑'의 음란 여부를 따지는 재판이다.

지은이는 이 두 개의 재판을 통해 교육받은 여성의 사회적 이미지와 역할모델, 여성의 성적 자유, 성도착적 내용을 다룬 매체에 대한 수용 여부와 같은 논쟁적인 이슈를 다룬다. 이 이슈들은 단독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지은이는 심리치료나 문학교육과 같은 인간의 심성을 다루는 영역의 역할을 진단하는 한편 막 생기기 시작한 클럽문화와 인도 등지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심리치료를 겸비한 신종교의식들을 소개하면서, 개인의 심성-특히 여성의 심성에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프레데리카는 잘 나가던 문학 비평가였으나 언니가 어이없이 감전사를 당한 후 갑자기 결혼을 결심한다. 그녀가 선택한 사람은 문학적 교양과는 아무 상관없는 시골 귀족 나이젤이다. 프레데리카가 나이젤을 선택한 것은 나이젤이 프레데리카에게 성적인 만족을 통해 생명감을 주는 존재로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나이젤이 부유한 귀족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녀는 결혼의 구속력을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성적인 모험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은 기대 이상으로 억압적이다. 남편은 그녀가 일을 하는 것을 막으면서 집안에서 아이 양육에만 몰두하기를 바랬다. 그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는 평소에는 감춰져 있지만 그녀가 반항하며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면 즉시 튀어나온다. 남편에게 폭행당하고 손도끼로 등을 가격당한 후 그녀는 아이와 함께 집을 뛰쳐나오고 만다.

프레데리카의 이혼 소송은 법정의 언어가 남성 중심적이며 개인의 삶과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법 논리를 보다 잘 활용하는 자에게 관대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일상적인 상태, 그러니까 적당히 자존심을 지키고 상대의 사정을 봐주는 심정으로 법정과 맞섰던 그녀는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남편에게 당했던 폭력들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반면 프레데리카가 집을 나온 후 가졌던 성관계들은 남편이 돈을 주고 고용한 심부름센터 직원에 의해 노골적으로 까발려진다. 프레데리카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교육을 잘 받은,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는 여성’이 되었다.

편견으로 작동되는 사회 시스템의 통제

▲ A. S. 바이어트의 <바벨탑> 
한편 주드 메이슨의 '배블탑' 소송 역시 법정과 법정을 지지하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지닌 편견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배블탑'은 프레데리카가 출판을 제안한 소설로 아르토의 잔인극에 비견되는데, 성서의 바벨탑이 무너진 것처럼 이상향 사회가 무너져가는 과정을 그렸다.

 
이 소설의 사상적인 바탕에는 푸리에와 사드가 있다. 푸리에는 인간의 열정과 욕망을 모두 충족시켜주면 조화로운 세계가 온다고 믿었으며, 성도착으로 분류되는 사람들 또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설의 진행은 사드 후작의 사상을 빌려오는데, 컬버트와 그가 이끄는 집단은 모두에게 성적 자유를 허용하는 사회를 제창한다. 그러나 성적 자유는 반드시 조화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컬버트의 남자 시종 데미안이 컬버트의 애인 레이디 로즈에이스를 원하면서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배블탑은 욕망을 좇아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강간하고 고문하는 세계로 변모한다. 결국 레이디 로즈에이스는 컬버트가 만든, 성적 자극을 주는 고문 기계에 의해 무참히 죽임을 당한다.

'배블탑'을 둘러싼 법정 논쟁은 ‘금기’를 넘어서는 성적인 내용을 다루는 매체에 대한 논쟁점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이 같은 논쟁은 주로 독자들의 반응과 이를 보다 미학적으로 점검한 문학 비평에 의해 근거들이 제시된다. 법정에서는 외설을 인간을 타락하고 부패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몇몇 독자들은 '배블탑'이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주장한다. '배블탑'과 같은 포르노는 인간을 신체의 부분으로만 국한시켜 반복적, 강박적인 기능만을 부여하여 수치심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인간성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은 '배블탑'이 세계의 추악함을 표현하는 계몽적인 텍스트라고 반발한다. 또한 실제적인 위험성 또한 점검하는데, 성적으로 가학경향을 가진 사람이 그러한 가학적인 내용이 담긴 소설을 읽으면 그 경향이 강화되는가를 검증하는 것이다.

이런 논쟁들은 결국에는 개인의 도착적인 성적 환상을 사회가 얼마나 허용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런데 '배블탑'의 저자 주드 메이슨은 흥미로운 주장을 제기한다. 자신이 다닌 엄격한 기숙사 학교에서 소설 속의 행위만큼이나 잔인한 매질이 일어났으며 자신이 그 학대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이는 환상을 가능케 한 현실로 관심을 되돌려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또 한 가지는 1960년대인 데다가 법정에서 벌어지는 논쟁인 만큼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여성주의적 관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프레데리카와 '배블탑'의 소송을 법 논리에 의한 내면적인 자유의 배제라는 측면에서 고찰하는 것으로 볼 때, 지은이는 적어도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지나친 억압이 여성의 성적 자유를 제한하는 도덕적인 억압과 결탁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가지 소송을 동시에 겪으면서 프레데리카는 '배블탑'의 저자 주드와 자신이 사회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혔다고 생각한다. 법정의 논리는 그녀와 주드가 이해할 수 없다. 사실 배심원 12명이 '배블탑'을 인간을 타락시키는 음란물로 낙인찍은 사건이나 프레데리카의 이혼 재판을 담당한 판사가 교육받은 여성에게 가진 편견은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편견이 사회 시스템을 움직이면서 다른 생각을 가진 개인들을 통제하려고 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벨탑>은 이상향 사회를 소설 속 텍스트로 삽입하여 당대 현실과 병치한, 새로운 스타일의 유토피아 소설이다. 앞으로 등장할 페미니스트들의 유토피아 소설은 페미니즘이 직면한 문제나 여성들이 새롭게 부닥친 장벽과 같은 현실적인 소재들을 이상향과 비교하면서 흥미로운 내용을 펼쳐나갈 것으로 기대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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