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석재은님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입니다. -편집자 주>
공적연금은 소득이 없는 노령계층에게 안정된 수입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보장제도다. 1인 1연금은 말 그대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최소한 각자 하나의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연금체계를 의미한다. 우리 나라는 아직 국민연금제도의 도입 역사가 짧아 연금이 노령계층의 주수입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 못하지만, 연금도입 역사가 긴 선진국의 경우 연금은 노동시장에서 은퇴한 노령계층의 주수입원이다. 따라서 연금수입의 유무 혹은 그 수준이 노령계층의 생활수준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연금을 수급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본인의 명의로 된 연금을 받는 것(개별적 수급권)이고, 다른 하나는 배우자의 연금수급권에 의해 파생된 연금을 받는 것(파생적 수급권)이다. 개별적 수급권을 획득하는 방법으로는 근로 연령기에 소득활동을 통해 연금보험료를 납부해 연금수급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와, 연금보험료 갹출에 관계없이 거주에 기반한 시민권에 의해 연금을 수급하는 경우다. 파생적 수급권은 배우자와의 혼인상태가 유지되는 상태에서 배우자의 노령연금 수급시 피부양자 몫으로 부가적으로 주어지는 가급연금을 수급하거나 혹은 배우자 사망 시에 유족연금을 수급하는 것이다. 파생적 수급권은 혼인관계 유지를 조건으로 배우자에 의해 발생한 연금수급권을 부가적으로 누리는 것이므로 이혼, 독신 등의 경우 수급할 수 없다. 반면, 개별수급권은 본인 명의의 독자적 연금수급권을 가지는 것이므로 가족의 구성 및 해체와 관계없이 연금수급권이 유지된다. 즉, 개별적 수급권이 개별 단위 보장이라면, 파생적 수급권은 가족단위 보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증가와 비혼, 이혼율의 증가로 가족단위 부양에 대한 전제가 흔들리는 현시점에서 파생적 수급권보다는 개별적 수급권이 연금수급의 기본적 전제돼야 한다. ‘남성부양자에 의한 가족단위 보장’ 원리 깨야 복지국가의 사회보장 기본 틀을 제공한 베버리지(Beveridge)는 생애주기에 걸쳐 소득이 상실되는 주요한 사회적 위험을 고려해 모든 국민에게 국민 최저(national minimum)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보장체계를 제안했다. 그 구상이 발표된 지 60년이 지난 시점에서 모든 국민에게 국민 최저의 보장이 필요하다는 베버리지의 핵심 아이디어는 유지되어야 하지만, 그 보장의 방법론은 경제사회적 환경의 대변화로 인하여 몇 가지 측면에서 수정될 필요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남성-생계부양자’ 및 ‘여성-가정 돌보기’의 성별 역할분리에 입각한 남성부양자에 의한 가족단위 보장이라 할 수 있다. 결혼을 하지 않거나 이혼을 하는 비율이 증가하는데도 ‘부양자 남성에 의존한 여성의 생활유지’ 라는 전제하에서 파생적 수급권 중심의 연금이 노인여성의 주수입원이 되는 경우, 노인여성의 상당수가 빈곤상태에서 노령기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베버리지의 사회보장 방법론 중 수정되어야 하는 것의 또 다른 한 가지는 사회보험을 사회보장의 주요방법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는 완전고용사회를 전제로 하였기 때문에 고용된 사람들로부터 정기적인 사회보험료 갹출이 당연시되고 가능했던 그 시대 상황을 반영한다. 그러나 현 시대는 경제의 세계화와 기술혁신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유연화 경향 속에서 완전고용이 포기되어 실업자가 양산되고, 비정규, 비정형 근로자가 증가하는 매우 불안정한 노동시장을 특성으로 한다. 더 이상 완전고용 상용근로자를 전제로 한 사회보험이 보편적인 국민최저보장을 달성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라 할 수 없게 됐다. 실업자나 비정규, 비정형근로자는 사회보장 수급권을 획득하기 위한 사회보험료를 제대로 납부할 수 없고, 사회보험체계에서 적절히 포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된 노동시장 여건에서도 보편적인 국민최저를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보장 방법론이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것이 노동시장의 참여 여부, 참여형태, 갹출여부와 관계없이 조세를 재원으로 거주에 입각하여 국민최저를 보장하는 이른바 시민권 기반 사회보장이다. 시민권에 입각한 1인 1연금제도가 ‘대안’ 1970년대 미국에서는 여성가구주 가구가 급격한 증가와 함께 빈곤인구 구성에서 여성이 빈곤의 주류계층을 구성하는 현상을 일컬어 ‘빈곤의 여성화’가 관찰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여성’이 빈곤정책의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었고 정책적 관심을 받게 되었다. 여성의 빈곤은 시장소득을 얻을 수 있는 노동시장 참여의 미흡, 노동시장 실적에 연계된 사회보장제도로부터의 배제, 가정 내 경제적 자원배분의 불평등과 여성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무보상 등 자원배분을 결정하는 시장-국가-가족의 주요 영역에서의 중층적인 배제와 소외로 인하여 빚어진 결과다. 노인여성의 빈곤도 예외는 아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현재 우리 나라 노인여성 가구주 100가구 중 56가구가 빈곤하고, 노인여성의 빈곤위험은 노인남성의 2배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노인여성의 빈곤 역시 근로연령기에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거나 경제활동을 하였어도 무급 가족종사자로서 일을 하거나 비공식부문에서 노동을 함으로써 개인적으로 노후대비가 불가능했고, 노동시장 참여여부 및 참여의 질에 연계하여 보장여부 및 보장수준이 달라지는 사회보장(연금) 수급대상에서 여성의 대부분이 배제되어 있으며, 가사노동에 대해서는 사회적 보상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등 여성의 전 생애에 걸쳐 시장-국가-가족에 의한 자원배분 성적표의 최종적 결과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와 같은 노인여성의 빈곤은 현행 국민연금제도가 성숙한다 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왜냐하면 현행 국민연금은 소득활동을 하는 사람들만을 당연적용대상으로 포괄하는 1소득자 1연금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0% 수준이고,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에도 약 70%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적용율은 20~25% 수준이다. 이렇게 보면 여성 중 30% 정도만이 연금수급을 받을 수 있고 나머지 70%는 노령기에도 연금수입이 없는 무(無)연금으로 살아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남성가장에 의한 부양도 가족변화로 인하여 급속히 약화되는 상황에서 노인여성의 무연금은 노인여성의 빈곤으로 이어질 거라 예상된다. 남성부양자 모델의 약화,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거대한 경제사회적 여건의 변화 하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시장-국가-가족 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져 있는 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여성에게도 적절한 경제적 자원이 배분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그 방법은 세 가지가 고려될 수 있다. 첫째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경제활동 내용도 상용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둘째는 노동시장에서의 지위 및 성과와 밀접히 연계된 사회보장시스템에서 시민권에 기반한 사회보장제도로 전환함으로써 노동시장에서의 불리함이 사회보장에도 이어지는 고리를 끊는 것이다. 셋째는 여성의 무보수 가사노동 및 돌봄노동을 연금크레딧(예컨대, 육아기간 동안 연금보험료 납부로 인정), 보호제공자수당 등의 사회적 보상제도의 도입을 통해 일정한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첫 번째 여성 비정규직 노동을 정규직화로 노동시장 흐름을 바꾸는 것은 ‘경제의 세계화’라는 거대한 불가역적 변화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므로 쉽지 않아 보인다. 세 번째 무보수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보상장치의 도입은 무급 가사(돌봄)노동을 유급노동으로 변화시키는 상징적 의미는 있으나, 실질적인 경제적 자원배분의 측면에서는 여성에게 큰 힘이 되지 못한다. 두 번째 시민권에 입각한 1인 1연금제도가 노동시장과 가족의 대변화 속에서 보편적인 국민최저를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보여진다. 문제는 시민권에 기반한 사회적 연대를 위한 자원배분에 대해 어떻게 국민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과 막대한 재원조달을 실현 가능케 하는 점일 것이다. 현행체계론 여성 다수가 무(無)연금 상태에 놓일 것 그럼, 현행 연금체계에서 어떻게 1인 1연금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현행 국민연금은 전체 가입자 평균소득에 준하여 결정되는 균등부분과, 개별가입자 생애 평균소득에 준하여 결정되는 소득비례부분이 결합돼 연금급여가 결정된다. 균등부분은 기초보장과 세대 내 소득재분배를 실현하고, 소득비례부분은 근로연령기 생활수준 유지라는 철학을 반영한다. 기여와 급여가 밀접히 연계되지 않는 사회연대적인 균등부분과 기여와 급여가 밀접히 연계되는 소득비례부분이 하나의 급여산식에 결합되어 있어서, 현행 국민연금은 많은 국민적 불신을 자아내고 있다. 자영자 소득파악 곤란에 따른 사업장가업자의 불만이 있으며, 급여산식이 복잡해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지 못하다.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재정안정화 문제에서도 제도목표와 기능에 따른 분명한 목표를 세우기 어렵다. 따라서 현행 국민연금의 균등부분과 소득비례부분을 구조적으로 분리해, 균등부분은 수급대상을 전 노령계층으로 확대하여 보편적 기초연금으로 정립하고, 소득비례연금은 소득활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득비례연금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즉 보편적 기초연금이라는 하나의 제도 내에 모든 노령계층을 참여시켜 동일한 원칙하에 세대간, 세대 내 재분배를 적용하고, 소득비례연금은 본인의 기여대로 투명하게 받아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형평적이고 투명한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OECD 국가들 대부분은 보장방식과 수준은 약간씩 달라도 어느 누구도 무(無)연금의 상태에 놓이지 않도록 연금을 통해 기초소득을 보장하는 연금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현행 연금체계가 계속 유지된다면 국민의 절반만을 포괄하는 제도가 될 뿐이다. 더욱이 이 체계하에서 여성의 다수는 무(無)연금 상태에 놓여질 것이다. 포괄적인 세원 확보를 통하여 조세로 국민연대에 입각한 기초연금을 조달하는 것에 대하여 재원규모가 크더라도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기초연금 재원규모의 50~60%는 현행 국민연금의 갹출 중 일부를 조세로 전환하는 것이고, 10%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재정절감을 가져올 것이다. 나머지 30~40% 정도가 추가 재원이 필요한 것인데, 기초를 보장하는 일을 두고 반대할 국민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훨씬 투명해지고 급여와 기여의 연계가 밀접해진 소득비례 국민연금에 대한 갹출과 제도유지도 더욱 건실해 질 것이다. “여성운동이 앞장서 촉구해야 할 문제” 이와 같이 1인 1연금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연금은 무(無)연금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여성이 연금혜택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따라서 변화된 경제사회적 환경에 걸 맞는 방식으로 사회보장 패러다임을 바꿔나가는 선봉장의 역할을 여성이 담당해야 한다. 이는 곧 여성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성의 이해를 대변하는 여성단체들이 왜 기초연금 도입에 소극적 혹은 유보적 자세를 취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왜 여성단체가 앞서서 예산을 걱정하고 실현가능성을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경우는 소득비례연금의 민영화 혹인 민영위탁 우려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공적연금 급여수준 삭감 혹은 연금에서의 국가역할 퇴보를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을 들으면서, 다시 질문이 생긴다. 누구의 급여가 삭감되었다는 것인가. 혹여 운영주체가 바뀐다 하더라도 그것이 급여삭감을 반드시 동반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미 연금권을 확보한 반쪽의 국민들의 공적연금 급여수준에만 관심을 갖고 그 적절성을 논하는 것이 아닌가. 나머지 절반의 국민은, 대다수의 여성은 전혀 연금수입이 없는데 말이다. 국가의 역할은 기초보장이다. 그 이상의 보장은 국가가 직접 보장하든, 혹은 규제를 통하여 보장의 여건을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현재 논의되는 1인 1연금은 단순히 여성에게 사회보장 혜택을 주기 위한 도구적 정책방안이 아니다. 변화된 경제사회여건이 요구하는 사회보장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운동에 여성이 앞장서야 한다. 호주제 폐지가 단순히 이혼가정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관심단위가 가(家)에서 개인으로 변화하게 되는 기폭제라고 볼 때, 1인 1연금으로의 사회보장 패러다임의 전환은 개인존엄성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실천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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