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기관 자체에서 일어나는 폭력성이 더 심각하다고 본다. 지금 언론에서 말하는 일진회는 학교 내 폭력이라기 보다 일진회 안에서 폭력이다. 그 아이들이 일반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 출범 준비위원회 김한솔(여, 20세)씨의 말이다. 지난해까지 고등학생이었던 김씨는 대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중고등학교 때의 경험했던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학교 분위기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학교문제 상담, 교사문제가 절반에 달해 학교폭력의 문제를 ‘일진회’에 국한해서 대응책을 모색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학교폭력문제의 당사자인 학생들로부터 불거져 나오고 있다. 지난 달 31일, 서울경기 지역 중고등학교 학생회장 및 대학생 35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학교폭력대책마련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학생들은 소그룹 토론을 통해 학내폭력의 실태를 진단하고, 스쿨폴리스 제도를 골자로 한 교육부 주도 정부대책의 허점을 지적했다. 이날 참석한 중고등학생들은 무엇보다 교사 체벌실태의 심각성에 대해 지적하면서 학교폭력의 종식을 위해서는 “교내의 민주적인 해결”이 우선되어야 하며, “승진이나 실적위주의 교사들 기본적인 마인드를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이하 참교육학부모회)도 2004년 한 해 학교문제 상담내용을 분석한 결과 “전체 788건 상담 건수 중 교사문제가 42.6% 차지하여 전체에 절반에 이르는 압도적인 비율”이라고 발표해, 교사체벌 문제를 비롯한 교사 문제의 심각성을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다. 참교육학부모회 노원재 상담부장은 “예전에 비해 많이 변화하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교사가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치아 손상, 망막 및 고막 손상, 턱 관절 손상 등 학생들 얼굴에 가해진 폭력은 평생 학생들이 폭력에 의한 상처를 안고 살아야 되기 때문에 치명적이다”라고 우려하면서, “이런 폭력을 당한 학생들은 결국 계속 학교를 다닐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돌림방 체벌, 성추행도 자행돼 참교육학부모회에 가장 최근 상담 접수된 체벌 사례는 교사폭력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담임은 교무주임이고 교감 승진을 앞두고 있다. 반 아이들을 투명의자로 벌을 주고, 아이의 자세가 흐트러지면 발로 차서 아이를 쓰러뜨렸다. 아이들이 이런 교사의 폭력에 충격을 받고, 집에 돌아와 얘기해 부모님들이 항의했다. 그러자 교사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나는 재산과 땅도 많다’고 교사 체벌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의 사례) “흡연으로 14명의 학생이 걸렸다. 엎드려뻗쳐 자세로 벌을 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학생주임 교사를 포함한 5,6명의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몽둥이로 아이들을 때렸다. 엉덩이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심하게 체벌을 받은 아이들은 ‘이렇게 맞다가 죽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을 정도였다.”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의 사례) 소위 ‘돌림방 체벌’ 사건을 알게 된 학생 부모들은 학교측에 “담배를 피는 등의 학칙 위반 사항이긴 했지만 체벌이 과했다”고 항의했지만 학교측은 별다른 응답이 없었다고 한다. 노원재 상담부장은 “이런 경우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폭력적 체벌에 대해 행동시정을 요구하는 등 대응을 해야 하지만, 의학적 증빙자료를 준비하기에 어려움이 있어 법적인 대처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참교육학부모회 상담실로 접수되는 교사 체벌은 크게 보면 습관적 체벌, 감정적 체벌, 폭력적 체벌, 성폭력적 체벌, 언어폭력적 체벌 등이다. 특히 성폭력적 체벌은 아이들에게 이후 성적 수치심 및 정서적인 충격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하다. 접수된 상담사례를 보면 ‘막대기로 남자 아이들의 성기를 친다든지 성기를 잡아 빼는 등’의 행위, 여학생의 경우 ‘성기 주변의 사타구니가 멍이 들 정도로 꼬집어서 상처를 남기는 등’의 행위, “난 눈을 감고도 너희들 젖꼭지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알아” 등 성폭력적 언사를 한 경우 폭력의 수위가 매우 심각하다. 예전에 비해 체벌이 많이 없어졌다고도 한다. 그러나 물리적인 폭력 외에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언어폭력 역시 학생들의 인권을 훼손하는 심각한 폭력이다. 김한솔 씨는 “기성세대들은 눈에 보이는 폭력에 노출돼 성장했고, 그에 비해 지금 가시적인 폭력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학교 환경은 견고하다”고 지적하면서,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교사들에게서 존댓말은 생각도 못하고, 인신모독적인 언어 폭력은 예사다. 그런 부당한 대우가 만연한 학교 안에서는 한 사람으로 대접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어른 식’ 해결방법이 ‘폭력’이다 교사들 내부에서도 교사들의 폭력과 권위적인 태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올해 교직 생활 6년 차에 드는 남희정(화계중학교 사회과목 담당) 교사는 교사발령을 받자마자 생활지도부를 담당해왔다. 그러나 이내 생활지도부의 학생 선도 방침이나 체벌 방식에 대해 많은 문제 의식을 느꼈고 그에 대해 다른 생활지도부 교사들과 토론을 하다가 생활지도부 부장 교사와 의견 다툼이 있기도 했다. 당시에 2년 차 밖에 되지 않았던 남 교사는 “일제 식민지 근대 교육이 가장 우수한 학생 지도 방식”이라는 부장교사의 교육신념에 대해 토론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공포감과 위협감은 상당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동료 교사 사이에서도 나이나 직분에 따라 다른 의견을 밝힐 때 그토록 위협감을 느끼는데, 학생-교사 간 권위적인 관계는 어떻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교사들의 폭력적인 언행은 ‘교육적 목적’이라는 명분 하에 쉽게 그 심각성이 은폐된다. 학교 내에 만연한 일상화된 폭력으로 인해 학생들의 인권은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그토록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교사들의 해결방식을 학생들이 자연스레 내면화 하게 된다는 점이다. 남희정 교사는 “일진회 학생들이 선배가 후배한테, 강한 아이가 약한 아이에게 행사하는 폭력을 보면 생활지도부 교사가 아이들을 체벌하는 똑같은 방식으로 한다. 아이들은 부모와 교사, 사회 어른들에게 배운 대로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분석은 지난 달 25일 전교조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한 ‘학교폭력 문제 이렇게 풀자’ 토론회에서 학생대표로 참석한 김원(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 출범 준비위원회)씨가 제기한 “우리 사회는 그 동안 토론과 타협보다는 권위, 힘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줘 왔다. 결국은 그런 ‘어른 식’의 해결 방법이 폭력이 된 것”이라는 진단과 일맥상통한다. 학교 내 폭력, 제대로 진단하고 있나 학교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교사폭력’을 논하지 않고 ‘일진회’의 폭력이 학교폭력의 주범인 것처럼 논의되고 대책을 논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일진회’의 폭력적인 문화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일진회는 일반학생은 피해갈 수 있지만(주로 학교 밖에서 일진 간에 폭력이 이뤄진다), 생활지도부 교사는 직접적으로 학생들을 억압하고 때리니 더 싫다”고 말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학생들에 의해 “일진회를 비롯한 학생들의 불량 서클의 폭력행위와 문화를 선도하기 위한 대책과 학교 내 폭력 문제는 별개의 접근법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러한 현실에 기인한다. 교사-학생간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관계 및 학교 내 군사주의적 문화, 교사에 의한 체벌이 학생들에게 폭력으로 내면화되는 문제, 학생들의 인권이 교사나 학교제도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현실 등 그간 교육관련 시민단체 및 전문가들로부터 누누이 지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선 눈 감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교육부 차관을 위시하여 8개 관련부처가 참여해 추진하고 있는 학교폭력 대책이 언론과 여론을 의식해 내놓은 임시방편용 대책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학교 안에 자리잡고 있는 뿌리깊은 폭력의 문제를 제대로 진단한다면, 교사폭력에 대해서부터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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